본문 바로가기

너나, 그리고 우리

거저 사는 삶


그일이 벌써 25년이 되었다고 한다.
어떤 대형사고는 시간이 지나도 퇴색되지 않는다. 그 사건에 직간접으로 얽힌 사람들에 의해 매해, 혹은 어떤 순간에 바로 어제일처럼 생생히 살아난다.

25년전의 몬트리얼 공과대학의 대량 학살사건도 많은 사람의 뇌리에 강하게 밝힌 사건이다.
나 역시, 1989년 12월 6일에 일어났던 그 사건을 잊을 수 없다.
캐나다 이민한 첫해였기도 했고, 교민 신문사에서 일할 때여서 그랬을 것이다. 
한 공과대학에 무장 괴한이 침입, 여학생만 골라 살해한 무지막지한 사건이었다. 14명의 여학생이 사망하고 14명이 부상당했으며, 범인 마크 라피네(Marc Le'pine)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나는 페미니스트가 싫다"고 외치며 총을 발사한 마크라는 남자의 총성에서 피어오른 여성증오의 냄새는 매년 이맘때만 되면, 여성들의 가슴에 상처로 살아난다. 살아남은 한 여학생은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라고 했는데도 무조건 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올해 25주년을 즈음하여, 토론토 스타에선 마크의 살생부에 들어있던 19명의 리스트중 2명의 인터뷰 기사를 실었다.


나는 19명의 살생리스트가 있다는 이야긴 처음 들었다. 마크는 자신이 죽일 19명의 페미니스트들의 명단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과격한 페미니스트들도 끼어 있었고, 여성장관, 경찰등도 있었단다.

어쨋든 이미 전 캐나다를 뒤집어엎은 그 사건만으로도 가슴을 쓸어내렸던 그 여자들은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 살생리스트를 알게 된 순간 " 나 대신 그 어린 여학생들이 죽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다. 마크가 못다한 일을 내가 마무리하겠다는 모방범죄를 꿈꾸는 자의 협박전화를 받기도 해서 경호원의 도움을 받기도 했어야 했고. 마크는 자신의 실패를 "설치는 여자들 때문"이었다고 그의 노트에 적고 있다. 25년전이면, 여성 평등사상이  정착되어가는 시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이미, 여권이 많이 신장된 것으로 믿었던 캐나다에서 일어난 사건이라 아마도 전세계의 주목을 받았을 것이다. 

마크는 교실에 들어갔을때, 우선 남학생들을 교실밖으로 내보내고,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항변하는 여학생까지 죽인것으로 보도되었다.

그때 죽은 여학생들의 영정을 든 남학생들의 사진이 지난주 토론토 스타 토요일판에 실렸다. 그들은 몬트리얼의 한 고등학교 학생들이다. 매년 기념일을 그와같은 방식으로 한단다. 각각 14명의 남녀, 남학생은 영정사진을 들고, 여학생들은 장미꽃을 들고 행진한다. 그 남학생들은,  같은 교실에 있다가, 밖으로 나와 살아난 그런 학생을 상징할 수도 있다.  그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내가 남자라서 다행이란, 그런 생각을 했을까? 적어도 그 시간만큼은 "내 친구가, 나를 대신하여 죽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을 것 같다.

살생리스트에 있는 그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어째 그런 느낌이 들때가 있다.
대학교때 지리산 여행을 한적이 있다. 노고단을 지나 세석평전 가기전이 아니었을까? 어느 지점에서 눈앞에 펼쳐진 지리산 계곡을 구비구비 보는데, 정말 감동이 격해서인지, 지리산 어느골에 내가 바로 죽는다 해도 그 잎이나 나무의 거름이 된다면, 부족함이 없을 것같단 생각이 들었다.

학교에 돌아왔는데 그 여름에 행방불명된 선배 이야기가 한창이었다. 지리산 산행을 하다 없어졌다는 것이다. 나는 그 이야기에 정신이 퍼뜩들었다. 마치, 내 대신 누군가가 변고를 당한 것같은 죄책감까지 들었고 그 사건은 내 가슴에 남아있는 작은 상처가 된다.

몬트리얼 대학살 사건 이후로 나는 신문에 칼럼을 실었다. 제목은 "양성문화를 꿈꾸며"였던것 같다. 제목에 내가 말하고자 하는 모든 것이 들어있다.

대학살에서 살아남은 남학생들중에 많은 이들이 페미니즘은 여성들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남성들이 함께 도와줘야 할일이라고 말이다. 이 세상은 페미니즘이 필요없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아직도 여성들은 질고에서 헤멘다고 각종 통계는 말한다. 몬트리얼의 대량학살같은 일이 두번다시 벌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이세상을 향한 여성들의 싸움이어서는 안될것같다. 돕는 존재로 지어진 남녀 양성의 함께 문제풀기쪽으로 가야할 것이다. .  

어쩌면 우리는 "대신 죽어준"  사람들 때문에 거저로 사는 삶일 수도 있다. 그것이 주는 의미를 소홀히 하면 안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