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 시작이 12시였지만, 절반의 사람들은 11시쯤부터 나와서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마침 페이슬리 민박에 긴박한 사정이 생겨서 11시까지 맞춰갈 수 없어서, 마음이 타들어갔다.
운전하는 남편의 옆에 앉아서 나도 가속페달을 힘차게 밟았다.
겨우 도착한 시간이 11시 45분, 모두가 바삐 움직이고 있다. 게임을 위한 물풍선이 한곳에 쌓여있고, 가라지세일 물건들이 진열되고 있다.
행사장임을 알수있는 장식용 풍선이 매달려 분위기가 보송보송하다. 체크무늬 식탁보가 네 귀퉁이가 묶여 나무 테이블을 감싸고 있어, 무언가 고급스런 느낌도 난다. 석탄 바베큐 그릴에 불을 지피던 남자들이 고기가 오자마자 얹자, 냄새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날씨는 더할 나위없이 적당했다. 엊저녁까지만 해도, 비올 확률이 50%라고 했는데, 날은 환하지는 않지만 비뿌리지 않는 차분한 날씨였다.
12시가 넘었는데, 사람들이 선뜻 나타나지 않았다. 자칫 준비하는 사람들만의 "우리끼리 파티"가 되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됐다. 바로 그때부터 사람들이 하나둘 나타난다. 음식이 차려지고, 고기가 구워지고, 사람들이 모습이 보이니, 잔치 분위기로 얼추 달아올랐다.
장소이야기를 하자.
앞에는 수영할 수 있는 물이 있고, 100명 이상이 앉을 수 있는 야외테이블이 있는 쉘터, 부엌으로 쓸수 있는 용도실에는 냉장고가 있고, 전기코드가 이곳저곳에 있어서, 밥을 그곳에서 직접 지을수도 있는 그런 곳이었다. 쉘터옆에는 아이들 놀이터가 있고, 또 족구를 할만한 넓은 잔디밭이 앞에 있어서. 한 팀이 하루 즐기기에 그만한 곳이 없다 싶다.
12시가 조금 넘어서자,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편지와 이웃의 권유에 따라 나와준 새로운 얼굴들이 많았다. 그 기쁨이라니.
사실, "야유회"라는 건 얼마나 식상한 전통의 방식인가? 밥 한끼 먹고 끝날 수도 있고, 1년에 한번 얼굴보는 사람들, 서먹서먹해하다가, 후회하면서 돌아갔던 적이 내게도 있었다. 그런데 그런 위험을 감수하면서, 발걸음을 해준 이들에게 너무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일단 음식이 너무 좋았다. 많아서가 아니고, 적당량, 알맞은 메뉴가 사람들의 마음을 잡았다고 생각한다. 키치너 한국식품의 돼지고기 바베큐가 인기를 끌었다. 아직은 가난한 우리들의 형편에 값이 비싼 "LA 갈비"를 양껏 먹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비록 돼지고기였지만, 바베큐식으로 재워서 구웠는데, 감칠맛이 났다. 전날 공수되어온 돼기고기 생고기로 재어 맛있을 거라는 식품점 주인의 말이 맞았다. 해파리 냉채, 양장피 냉채, 잡채는 각각 돕는 손길들이 있었다. 무공해 밭에서 기른 여러가지 채소들이 있어서 고기를 쌈싸먹을 수 있었고.
그랬다. 이번 모임은 정말로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다. 각자가 가진 것을 나눈 행사라고나 할까?
가라지 세일만 해도, 수많은 물건들이 주인을 찾고 있었다. 한정된 고객에게 판매해서 물건이 많이 남았지만, 직접 뽑은 상추를 팔고, 그날 남은 음식까지도 모두 판매를 했더니 돈이 솔찮게 모였다. 또 몇몇분은 현금으로 기부를 해주기도 하셨다. 공원에 놀러나왔던 몇몇 백인들이 많은 물건을 사갔다는 후문이다.
음식과 가라지세일을 빼고 행사일정을 채운 것은 대략 세가지로 요약된다.
본인소개와 게임과 작은 음악회.
사실 사회자 문제로 행사전날까지 골머리를 썩었다. "나서기"를 엄청 싫어하는 준비위원들이 모두 사회자 맡기를 고사했던 지라, "맨땅에 헤딩" 식으로 내가 맡기로 했었다. 특별히 머리털을 뽑으며 "게임" 진행을 고민했는데, 제대로 되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그래도 맛뵈기는 되었던 것 같다. 특히 "넌센스 퀴즈"는 내가 할수 있는 유일한 게임방식이긴 했다. 한국식품에서 기부해준 한국과자를 맞춘 사람에게 주면서 즐겁게 마칠 수 있었다.
전체 50여명이었으니, 서로간에 긴 인사를 할수 있어서 좋았다. 대략 언제 이민왔으며, 이쪽 지역으로 이주한 이유와 현재의 생업과 가족소개등으로, 서로가 서로를 알아가는 길을 텄다는데 의미가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야외 음악공연이 또 기억에 남을 것 같다. 플룻의 소리는 애처로우면서도 감미로왔다. 아름다운 연주복으로 이날을 준비한 경순언니에게 너무나 고맙다. 섹소폰연주는 "잘못할 것 같다"는 인삿말로 시작했는데, 청중들이 "잘할때까지 하라"고 주문해서, 잘할때까지 무려 4곡을 선사했다. 마지막 곡은 정말 더 다른 곡을 주문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아름답게 마무리됐다. 백선생님께 감사드린다.
이 행사를 기획하면서, "한민족"이란 테마를 머리에 두었다. 어디에 살더라도, 만날 수밖에 없는 내나라 내 민족의 사람들. 그런 취지에 맞는 아름다운 음악이 울려퍼졌다. 이종화 언니가 "악보없이 부를 수 있는 노래인 애국가를 부르겠습니다. 후렴은 같이 불러주시기 바랍니다" 했을때 그 자리에 참석했던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섰다. 같이 불러야 한다는 것이다. 4절까지 애국가를 함께 불렀는데, 우리는 노래속으로 모두 함께 걸어들어가는 느낌들을 받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청아한 테너 목소리의 주인공 박성훈씨의 가고파 독창으로, 눈물을 흘린 사람도 있다는 소식이다. 실제의 고향들을 그리며, 내가 살고있는 땅을 또 마음의 고향으로 만들었으면 하는 바램이 스며들었다.
그랬다. 성공이었다.
참석하지 못한 이들을 그리며 아쉬워하긴 했으나, 전체적으로 아, 즐거운 따뜻한 만남이었다, 하는 느낌들이 있었으리라 믿는다. 평범한 행사, 야유회가 이런 성공을 거둔 것은, 결국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합했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주최자는 아니었지만, 한마음으로 내가 차린 밥상인 것처럼 불이나케 음료수를 손손에 돌리던 워커턴의 최선생도 고마왔고, 웃음보따리를 쉽게 열게하는 티스워러의 임선생도 고마왔다.
가라지세일에서 발군의 판매실력을 보인(남대문 시장이 이사왔나 했다) 미애씨, 꼼꼼하게 가라지세일을 준비한 한언니와 종화언니 두분, 장소 임대 딜에 혁혁한 공을 세운 김관장님, 그리고 고기를 굽느라 먹지도 못했던 멋진 핸섬한 남성분들, 정말 일일이 다 챙겨 말할 수 없이 힘을 합했던 시간이었다.
보물찾기에 쓸 선물과 기타 1회용품을 철저히 준비한 정옥언니, 이날을 위해 바베큐 그릴을 마련한 인경언니.. 장선생님, 마선생님, 티버튼의 장선생님은 현금으로 기부해주셨다.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LCBO를 겸해 장사하시는 분께서는 맥주를 도네이션해주셨고. 그리고 실업인협회는 기금후원뿐 아니라, 협찬사들로부터 음료수, 과일, 과자등을 기부받아 그 모임이 풍성해질 수 있었다. 남은 바나나와 방울토마토까지 알뜰히 팔아 기금마련에 보태기도 했다.
오죽잖은 실력으로 사회를 봤던 내게도 박수를 보낼만하다. 그 자리가 내게 그만큼 편했다는 것이다. 목청이 좋지도 않고, 소리가 그다지 크지도 않고, 아는 농담도 많지 않은 내가 그날 사회를 봤다는 것에 나도 너무 놀라고 있다. 그리고 스스로 말한다. 잘했다고..^^
평범한 "야유회"가 이렇게 빛이 나게 된 것은, 함께 참여하고, 잔치에 사심없이 참여해준 사람들 때문이었다. 앞으로의 행사도 딱 이만만 했으면 좋겠다. 이번에 사정상 못온 이들까지 다 참석한다면, 규모는 훨씬 불어나리라. 언제 어떤 행사를 할지는 지금부터 생각해야 한다. 생각도 함께 하면 그 양이 훨씬 크게 늘어난다. 그레이 부르스가 언젠간 일을 낼 때가 있게 되면 좋겠다. 철저히 기획해서,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는 그런 행사를 다시 주관할 수 있게 되기를...
가만, 먼곳에서 부터 뭔 소리가 들린다. 이젠 잠시 좀 휴식을 취하자고. 그 다음에 생각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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