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천적이라는 단어 뒤에는 "빼도 박도 못하는" 그런 의미가 들어있다. 선천적 희귀병, 선천적 면역결핍증등 조금은 무시무시한 단어앞에서 그것에 쐐기를 박는 단어로 쓰인다. 후천적인 것이라면, 문제가 고쳐질 것도 같고, 어딘가 책임을 돌릴 곳도 있게 된다. 그런데 선천적이라니..
그야말로 태어날때부터 이미 그렇게 운명이 지어졌다는 말.
선천적 복수국적자라는 말에 익숙한지 모르겠다. 친구의 아들 때문에 인터넷을 뒤지다 보니, 그런 용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모국의 발전으로 수많은 2세 청년들이 모국으로의 사회진출을 염두에 두고 있는 이때, 예기치 않은 일이 발생할 수도 있기에 친구의 아들 데니스가 겪은 일을 간단하게 전하기로 한다.
이민온 부모밑에서 데니스가 나고 자란 곳은 이곳 캐나다이다. 20여년을 케네디언으로 살아왔다. 물론 가끔씩 정체성의 혼돈을 겪기는 했으나, 그것은 정신적인 부분이었지, 법적으로 케네디언이라는 것은 변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대학을 졸업했다. 오래전부터 대학 졸업후 한국으로 영어교사를 갈 생각을 해왔다. 제2외국어로 영어를 가르치는 테솔(TESOL,Teaching English to Speakers of Other Languages)을 이수하고, 이력서를 내는등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드디어 한국의 관계기관으로부터 취업허가를 받아 서류를 준비하는중,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들어야 했다. 1992년생인 데니스는 현재 만 22세로 한국의 병역의무를 마치지 않고는 한국에서 일할수 없다는 통고였다.
캐나다에서 태어났고, 캐나다 시민으로 살아온지 22년째인데, 부모중 한명이 한국인이라는 것 때문에 그도 한국국적을 보유하고 있고, 그에 따른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것은 데니스에겐 이해할수 없는 일이다. 한국은 부모의 조국으로 알았지, 자신이 병역의 의무를 해야하는 자신의 조국이라고는 생각지 않았었다.
아마도 외국에서 출생하여 시민권을 취득한 원정출산 자녀들의 병역의무 기피를 막기 위해 생긴 법인 듯한데, 이와는 전연 관계없는 한인2세 청년들이 그 잘못된 화살에 맞아 휘청거린다.
데니스의 부모는 한국의 조부모가 한국에 호적신고를 하는 바람에 한국국적을 갖게 된 큰애를 위해서는 18세 이전에 국적포기 신고를 했다. 그러나 데니스의 경우, 한국에 출생신고를 한적도 없고, 이곳에서 낳아서 이곳에서 키웠으니, 당연히 캐네디언인줄만 알았던 것이다. 그때 조금만 더 주의를 기울였다거나, 관계자의 도움을 받아서 함께 국적포기 신고를 했었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친구는 실망한 아들옆에서 국적포기를 해주지 않은 "죄" 때문에 숨도 크게 못쉰다고 하소연한다.
태어나자마자 선천적 복수국적자가 되어있었다는 것을 한국에 가려고 모든 준비를 마친 다음 알게 되었고, 게다가 복수국적 포기는 병역의무에서 면제되는 37세까지는 할수 없다는 것도 덤으로 알게됐다. 그 말은 군대갈 작정을 하지 않는한 병역면제가 되는 37세까지는 한국에 갈수 없는 형편이 된 것이다. 한국에 대해서 잘 모르는 상태에서 그저 부모중 한명이 한국인이란 것 때문에 병역의무를 하기 위해 한국에 갈 2세 청년이 있을 것 같진 않다.
몇몇 인사들이 자신들의 자녀들을 어떤 방법으로든 병역의무에서 제외시키려 한다는 것을 미디어를 통해 듣는다. 그런 것들을 미연에 방지하느라 한국정부가 넓게 쳐놓은 그물에 애꿎은 2세 청년들이 걸려든다. 순수한 마음으로 한국에 가서, 부모의 조국을 배우고 기량을 펼쳐보려 하였는데 원천봉쇄당한 격이다.
만약에 그런 법이 있다면, 신문사나 기타 여러 종류의 미디어를 통해서 널리 홍보해야 한다. 이렇게 무방비로 있다가 모든 준비가 끝난 다음에 일방적으로 당한다면, 조국으로 향하던 마음이 급격히 기울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청년시대의 악몽으로 남게 될 것이다.
한국국민으로서의 권리는 받아본 적이 없는 이들에게 의무를 강제로 부여한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다고 느껴진다. 사회의 첫걸음을 부모의 조국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으로 시작하려던 데니스의 꿈이 산산조각이 났다. 그가 마음을 추스리고, 새로운 비전으로 일어서기를 빌어본다.
남자아이를 키우는 가정에서는 이런 법이 있음을 잘 알고, 추후에 있을 일들을 예방해야 하겠다. 이땅에서 난 시민권자라도18세 이전에 국적포기 신청을 해야 한다는 것, 명심할 일이다.
복수국적과 병역법에 관한 자료
http://www.mma.go.kr/kor/l_seoul/l_seoul03/l_seoul034/__icsFiles/afieldfile/2013/09/02/MEDeVNqFHPfC.pdf
http://www.mma.go.kr
토론토 중앙일보 4월 4일일자 기사 전재
지난달 말로 신고가 마감된 선천적 복수국적자의 국적이탈신고제의 개선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부모가 모국국적을 보유한 상태에서 캐나다에서 출생한 한인 2세인 선천적 복수국적자들에 대한 국적이탈신고제도가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한국정부로부터 법령에 따라 부여 받은 국적과 법령으로 인해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며 이에 대한 개선을 촉구하고 있는 상태다. 이보영(가명/이토비코)씨는 “선천적 복수국적자의 국적이탈신고가 생소한데다 실제 모국의 국적이탈관련 법안이 존재하는 것 조차 알지 못하는 동포들이 적지 않다”며 “이 같은 상황에서 국적법의 내용이 동포 2세들에게 족쇄로 작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토론토총영사관 관계자는 3일 , “선천적 복수국적자들의 국적이탈신고가 많은 편은 아니나 실제 국적이탈제도에 대해 알지 못하고 있다가 취업비자를 신청하려고 영사관을 방문했다가 국적이탈시기를 놓친 것을 알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법률에 의한 규정이기 때문에 3월 31일이 하루라도 지났을 경우 구제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현행 국적법에 따르면 제 1국민역에 편입되는 시점, 즉 18세가 되는 해의 1월 1일전까지는 물론, 제 1국민역에 편입된 이후에도 3월 31일까지는 병역에 관계없이 한국국적포기가 가능하나, 만 18세가 되는 해의 4월 1일 이후 신청자는 병역문제가 해결될 이후에야 비로소 국적포기가 가능하다. 국적이탈시기를 놓쳤을 경우의 만 38세가 되기 이전에 군복무를 해결하기 이전에는 국적이탈이 불가능하게 만들어놓은 규정 또한 불합리하다는 지적도 높다. 김준영(가명/토론토거주)씨는 “원정출산 등의 편법을 통한 군면제를 막기 위한 법령취지는 이해하지만, 한번 국적이탈시기를 놓쳤다고 향후 20년간 국적을 임의로 묶어놓는 것은 개인의 자유의사를 고려하지 않은 기본인권침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로 지난해 9월 미주지역 한인들이 모국의 헌법재판소에 ‘선천적복수국적자의 병역의무 해소 전 국적이탈 자유를 제한한 국적법 규정은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했으나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사건의 심판청구가 헌법소원청구기간을 넘겨 부적법하다’며 기각한 바 있다. 모국정부의 우수해외 인재등용 정책과의 상충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박원모(가명/노스욕거주)씨는 “현재 한국정부가 해외에 거주하는 우수한 동포 2세들을 영입하려는 노력이 활발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현행 선천적이중국적자의 국적이탈신고제도는 이 같은 정책취지와는 잘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한편, 총영사관측에 따르면 올해 3월 31일 현재 선천적복수국적자의 국적이탈은 총 17명이었던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 5년간 국적이탈현황을 살펴보면 2009년 26명, 2010년 16명, 2011년 12명, 2012년 27명, 2013년 17명으로 조사됐다. (전경우 기자 james@cktimes.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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