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 사는 동생에게서 한국방문을 계획하면서 가는 길과 오는 길에 중국을 경유할 예정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것은 작년말쯤이었다. 그애의 한국방문 계획에 토를 단 가족들은 없었지만, 중국을 경유한다는 계획에는 모두가 쌍수를 들어 반대했다. 그자리에 모였던 이는 엄마와 언니, 나, 그리고 제부등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동생은 이제 9학년인 큰딸의 봄방학을 맞이해서 한국을 좋아하는 그애를 데리고 둘만의 여행을 추진중인데, 중국방문을 팩캐지가 아닌 자유여행으로 할 예정이라고 말해서 우리 모두의 걱정을 샀다.
불과 두어달 이전에 있었던 일이었다. 그때만 해도 중국에 대한 나의 의견은, 매우 위험한 나라, 믿을 수 없는 나라, 돈만 아는 나라로 각인되었었다. 그런데 몸매가 야리야리해서 나이들어보이지 않는 동생이 제 딸을 데리고 간다하니,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까지 들었었다. 나뿐만이 아니고, 제부는 그 위험한 나라에 딸을 동반하냐며 거품을 물기도 했다.
그런데 꽤 도전적인 동생은 우리들의 그런 의견에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북경과 상해를 방문할 예정인 그녀는 전세계 여행객들이 찾는 관광지인데 위험할 것이 없다는 요지였다. 워털루에서 미용실을 경영하는 동생은 고객의 많은 수가 중국인들인데, 그들이 사는 나라를 보고싶다고 말해왔다. 그녀는 아마도 배울 것이 많을 것이라며,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었다. 엄마를 비롯하여 우리들은 "중국에 갔다가 장기를 적출당하고 버려진 관광인들도 있다더라"는 험한 말까지 하면서 그애의 중국행을 만류했다.
그런데 이야기를 나눈지 몇달이 지나지도 않았는데, 지난번 동생과의 통화에서 "중국 방문 준비가 잘되고 있는지"를 묻고는, "중국이 그다지 위험한 곳인것 같지는 않다. 잘 다녀오라"고 상반되는 의견을 전달했다.
사실 중국에 대한 고정관념을 가진지는 오래되었다. 외신을 통해 들려오는 중국에서 사기당한 한국사람들의 소식과, 허삼관매혈기와 형제등 위화가 쓴 소설 두편을 읽고 중국을 상상했고, 캐나다 중국타운의 시장뒷골목 냄새등, 그것에서 비롯된 부정적인 이미지등에서 그 나라에 대한 내 입장을 확고히 했다.
그런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
KBS 국영방송국에서 다룬 "슈퍼차이나"를 시청했다. 며칠후에 몇 가정의 모임이 있는데, 슈퍼차이나를 보고 대화를 나누기로 했고, 중국에 관심이 있는 남편은 그전에 슈퍼 차이나를 시청하고, 나에게도 권유했었다.
13억 인구를 가진 중국의 빠른 발전과 변화, 강력한 나라의 힘을 골고루 편성하여 내보낸 다큐멘터리다. 한국의 국영방송국에서 취재했다고 보기 어려운 공산당의 리더쉽까지 다룬, 거의 흠모에 가까운 방송내용을 지켜보니, 더이상 무시할 수도 무시당할 수도 없이 큰 대국이라는 그들의 국가위상에 대한 그동안의 나의 무지를 고백하지 않을수 없게 된 것이다. 한 나라가 그의 이미지를 바꾸는 데 그렇게 짧은 시간이 걸리다니, 그 사실 자체가 놀랍고도 무섭다. 그 방송은 마치 중국정부의 홍보영상처럼 중국 곳곳을 잘 소개했고, 어마어마한 숫자와 통계자료들 앞에서 기가 죽을 수밖에 없게 편성되었다. 중국인들에게는 자부심이 생기게 하고, 기타 외국인들에게는 흠모를 심어주기에 손색이 없는 시리즈다. 또한 한국의 안방 극장에서 꽤나 공고해보이는 중국의 공산당을 소개해주다니 그것이 믿겨지지 않았다.(이 또한 나의 무지일런가) 중국 공산당 간부가 되기 위해서는 아래로부터 차근차근히 밟고 올라와야 하며, 그동안 실력과 경험을 쌓아야 된다고 한다. 그들에게는 정치스타가 존재하기 어려운 제도이며, 정치간부중에서 "멍청이"는 있을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중국이 국가를 재건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올때, 세월만 보내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변화가 미미한 나라, 그중에서도 국가의 평균에도 못미치는 조금씩 침체되어가는 시골마을에 살면서 역동적인 그들을 보니, 무언가 뒤로 밀리는 느낌은 확실히 든다.
그러나 방송에서도 잠시 다뤄졌지만, 아직도 극빈층이 1억명 이상이며, 체제를 비판할 수 없는 사회에서 숨죽여 살아가야하는 중국 인민들의 고뇌도 있을 것이다. 무호적 아이들이 있는 가정의 어려움도 잠시 소개가 되기도 하였다. 시리즈에서는 다뤄지지 않은 종교적인 갈등은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다. 권력이 있는데는 부패가 있어서 최근에만도 중국의 재벌이 사형을 당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그 재벌과 관계를 맺었던 중국의 고위관리의 사정설도 무르익고 있는듯하다.
슈퍼차이나에서 소설가 위화도 잠시 나왔다. 위화는 중국의 빈부격차와 부패를 가장 염려하였었다. 그는 시진핑 주석에게 희망을 본다고 하였다.
2008년에 읽었던 위화의 소설 형제에서 한발자국도 나가지 못했던 나의 중국읽기였다.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지 않으면, 어느 방향에서든지 같은 오류를 범할 수 있을 것이다. 편견은 무섭다. 더이상 알고자 하지 않는다. 내가 그렇게 본 것이면, 그것 이외의 것에는 귀와 눈을 열어놓지 않는다. 중국이 떠오르고 있는 조짐은 이곳저곳에서 보여졌으리라. 단지 보고자 하지 않았던 나의 문제일뿐. 나의 의식은 느리게 흐르고 중국은 빠른 속도로 변하고, 그래서 감지하기 어려웠다고 말할수도 있겠다. 그러고보면, 인생후반기는 편견을 알아채고, 교정하고, 고백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같다. 새로 알아야 할 것도 많은데 말이다.
글을 맺을 수 없게 만드는 찜찜한 무엇인가가 있다. 그건 "자유"의 문제일지 모르겠다. 북미와 유럽은 "자유"가 넘쳐나고, "개인주의"가 도를 넘어서 군중의 힘이란 것은 미약하다. 그러나 중국은 "체제안에서의 자유"를 누릴뿐이다. 공동의 선을 추구하는데, 모두가 열심히 뛰고 있다. 그 체제가 흔들리기전까지는 이런 발전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개인들이 체제의 자유를 원하게 될때 엄청난 문제가 발생하게 될수도 있다. 중국이 풀어야 할 숙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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