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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나, 그리고 우리

겨울의 끝자락에서

눈이 오는 겨울에 할수 있는 것이 있었다는 건, 겨울에 만난 보석같은 일이었다.

그렇잖아도 긴 겨울, 눈길 운전에 몸을 벌벌떨며 사는 게 통상이었는데, 그걸 이겨내었다. 눈폭풍이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올지언정, 또 간간이 날이 잠잠해지면, 겨울 도로 관리에 전세계에서도 알아줄만한 내공이 있는 그레이 부루스 지역인지라, 언제나 큰길은 다닐만 하다. 그런 날 토요일은 오웬사운드 한인회 산행날이다. 작년 겨울을 지나며 10회 산행을 했으니, 꽤 성공적이지 않았나싶다.


우선 오웬사운드 한인회가 재작년 결성되었다. 한인모임을 생각하며 뜸을 들인 시간들이 꽤 길어졌고, 더이상 끌고갈 여력이 없어 그간 모아놓았던 2백여불의 기금을 도네이션하고, 손을 놓아버리자고 제안했을때 꺼져가는 불씨를 다시한번 살리자는 여론이 일어 마침내 한인회란 열매를 얻게 되었다. 한인이 귀하고, 모임을 함께 하자는 마음들은 더욱 귀한 지역에서 그래도 30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함께 하기로 했던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한인회가 결성되면서 큰 행사를 몇번 치렀고, 산행 모임이 추가되었다. 참석인원이 3명으로 극소로 떨어질 때도 있었지만, 할일들을 미루고 삼삼오오 그렇게 산을 오르고, 눈덮인 산속에서 싸가지고온 컵라면과 간식들을 나눠먹고, 그랬었다. 그 핵심에는 한인회 회장으로 일하고 있는 오랜 경력의 산행가 백회장님의 리더쉽이 컸다.


방수가 되는 하이킹 신발을 장만했는데, 그 목이 긴 등산화를 생각하면 지금도 뿌듯하다. 그 장화가 밟고 다닌 길이 생각나고, 그때 같이 갔던 일행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최대 걷기 기록이 10km 정도 되었던 것 같다. 눈이 너무 많이 쌓여서, 사람들의 발자욱이 없어 깊게 들어가기를 포기하고, 사이드 로드쪽으로 돌아나온 경험도 있다. 부루스 트레일 몇 구간은 바위가 군데군데 쪼개져 긴 쪽벼랑으로 이어진 곳도 있다. 발을 헛딛지않게 조심해야 하는 곳이다. 단층애로 설명되는 에스카프먼트(escarpment)는 부루스 트레일을 설명하는 자연지형으로 유명하다. 눈이 덮여있어서 꽤 위험할 수도 있는 길을 앞서가는 사람이 인도하고, 숨이 찬 사람들을 위해 서로 기다려주면서 무사히 산행을 끝내곤 했다. 오웬사운드 해리슨팍에 있는 트레일도 기억이 난다. 울창한 산림에, 긴 산행을 처음 하신다는 연세드신 언니를 모시고 함께 했던 산행말이다. 뿌연 눈안개가 낀 깊고깊은 산속에서 함께 점심을 먹었나 했는데, 그 다음에 다른 길로 갔더니, 그곳은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열린 공간이었다. 그때의 기억과 많이 달라서 황당했다. 


한인회 산행뿐 아니라, 남편과 나는 작년부터 동네 트레일을 돌기 시작했다. 페이슬리에 20여년 이상을 살면서, 이 마을을 위해 낸 세금을 제대로 받아먹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페이슬리에는 꽤 많은 걸을 길들이 있다. 우선 강물 범람을 막기위해 둑방을 만든 것이 우리가 이사오기 얼마전이라고 들었다. 그 둑방길은 동네사람들의 산책로로 이용된다. 총 4km 정도. 아래위 길이가 다른 3자 모양이다. 그런데 이 길은 겨울이 깊어지면서, 바람이 불고 그 눈이 쌓이고 쌓여 사람들이 다닐만하지 못하게 되더라. 그때부터 예전에 기찻길이었던 길을 트레일로 꾸민, Rail Trail을 돌기 시작했다. 두개의 다리로 연결된 고느넉한 기찻길이다. 산길이 아니어서 힘도 들지 않고, 겨울내내 이 레일 트레일을 돌았다. 등산화 외에 눈길을 걸으려면, 각반이 필요하다. 눈이 등산화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아주고, 보온효과도 있다. 남편과 나는 아마존을 통해 각반을 구매했다. 등산화 다음으로 각반도 꽤 유용한 도구다. 등산 스틱은 그리 애용하지 않는다. 손이 무엇에 저당잡힌 느낌이 좋지않고, 때때로 사진기를 메고 다니기 때문에 스틱이 방해물로 생각되어지곤 한다.


레일 트레일뿐 아니라, 강가 주위로 캠핑장을 돌아 또다른 트레일이 있다. 트레일은 트레일이 만나, 마음만 먹는다면 꽤 긴길을 걸을수도 있다. 동네 트레일은 날씨가 나쁘더라도 운전해서 어디를 가야하는 것이 아니어서 우리에게 언제나 너른품을 내주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페이슬리 마을에 낸 세금이 이런 트레일 관리등으로 소용된다고 생각하니, 돈이 아깝지 않다고 농담으로 남편과 이야기를 나눈다.


남편 이야기가 나왔으니 조금 더 말하자면, 그 남자의 뱃살이 많이 들어갔다. 몸이 가벼워진 만큼 마음도 가벼워져가는 듯싶다. 남편의 갱년기가 매일의 산책으로 꽤 긍정적으로 돌아서는 듯싶다. 어떤 소소한 주제라도 들어줄 아량이 생기는 때가 산책길이다. 나보다 더 열심히 걷는다. 나는 가끔은 건너뛰는데 말이다.


오늘 산책길에서는 잔설위에 냉동되었던 나뭇잎이 몸을 드러내고 있는 모습이 이곳저곳서 포착되었다. 잎사귀가 햇빛을 더 많이 끌어들여, 그 부위가 얼음이 녹아 눈위에 누가 곱게 펴놓은듯한 모습이다. 마치 금방 떨어져 얼음위에 앉아있는 것 같은.

안좋은 습관은 흘려보내고, 좋은 습관을 입양하자,는 새해의 결심들을 잊지않기를 바란다. 그 좋은 결심중에 "걷기"가 포함되었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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