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모인 14명의 남자와 14명의 여자, 좀 특이한 만남이었다.
준비는 지난 겨울부터 시작되었다. 남편이 북미주 학사장교 모임을 뱅쿠버에서 하게 될 것 같은데, "여행삼아" 가보자,고 하였다. 그에 쉽게 동의하였다. 그랬는데, 장소가 토론토로 변경되었다. 토론토가 많은 회원들이 꼽은 오고싶은 도시라는 것이다. 즐겨보자에서 준비하자로 컨셉이 바뀐다. 그렇게 될 즈음에 나는 남편을 응원했다. 한번 잘 계획해보라고.
캐나다에는 남편(엄밀히 말해 토론토는 아닌데)을 포함 4명의 회원이 토론토에 있고, 몬트리얼에 1명, 뱅쿠버에 2명 정도 회원이 있다 하였다. 그밖에 미국 전역에 흩어져있는 회원까지 합하면 19명인데, 이번 참석자는 14명이었다. 발굴된 회원이 그렇지, 아직도 많은 회원들이 숨어있지 않겠냐 하는 것이 모두의 생각인 것 같았다.
남편은 이번 행사를 위해 토론토 회원들과 수시로 모임을 가졌다. 한번 모임을 위해 3시간 30분 걸려서 내려가서 만나고, 밤늦게 돌아오곤 하였다. 피곤하고 귀찮은 일일텐데도, 그 남자의 표정에 그때부터 봄이 오고 있었던 듯싶다.
본인들을 빼고는 "그 무엇 때문에 그리도 옛친구들과의 재회를 간절히 꿈꾸는지" 함께 오랫동안 산 아내들도 사실 모른다. 함께 내무반에 있었다거나, 얼굴을 아는 동기들도 많지 않아보였다. 그런데, 만나자마자, 아니 준비를 위해 카톡을 연 그날부터 그들은 서로 이름을 불러대고 있었을 게다.
이 모임을 성사시키려 애쓴 뱅쿠버와 LA 두 회원의 배우자들은 "학사모임" 때문에 가정불화가 생길뻔 했다고 진담반 농담반 말한다.
금요일부터 주일까지 2박3일간 행사가 있었다. 같은 호텔에 모두 숙식을 했다. 특별히 2베드룸과 리빙룸, 부엌을 갖춘 Suit Room을 빌려 이 장소를 리셉션룸으로 사용했다. 토론토에 살지않는 우리는 스윗룸에 짐을 풀었고, 간이 호스트 역할을 했다. 이 스윗룸 한방에는 학사장교의 선배이면서 이번 모임을 위해 예복 디자인을 하고 예복을 칫수대로 일일이 만들어 미국 신시내티에서 차에 싣고 온 3맥 선배도 같이 하였다. 각자가 받은 훈장이 달려있고, 특전사와 보병의 어깨띠의 색을 달리한 턱시도 스타일의 예복을 입히고 핏팅까지 해주기 위해 손수 차를 운전해서 오셨다.
파티는 아름다움과 격조와 우아함을 동반해야 한다. 남자들의 예복은 이미, 그 한몫을 담당하기에 충분했다. 턱시도안에 입는 윙칼라 와이셔츠와 소매에 꼽는 커프링크(cufflink), 하얀색 보우타이와 허리에 두르는 커머밴드(kummerbund)까지, 각자가 준비해야 할것도 많았다. 남편의 준비물을 위해 내가 나간김에 쇼핑을 했는데, 제대로 된 것을 쇼핑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결국 아마존에서 주문을 했는데, 이 과정에서 웃지못할 에피소드가 발생했다. 소매에 꼽는 커프링크는 스터드(stud)라고도 불리는데, 나중에 배송이 되어서 보니, 귀걸이가 두개 들어있었다. "꼽는 것"을 의미하는 스터드는 귀걸이등을 지칭할때 "stud"라고도 한다는 게 막내의 설명이다. 그 귀걸이는 막내가 갖고, 아빠를 위해 커프링크를 새로 주문했다. 턱시도를 입어봤어야 말이지, 명칭도 다양하고, 갖추야 할것도 많았다. 나름대로 준비하고 갔는데, 선배앞에서 옷을 입어보는 과정에서 신발에서 걸렸다. 둥근코의 검은 신발을 신어야 하는데, 각진 구두라 실격이라 하였다.
뭐 그렇게까지, 뒷쪽에서 수군대기도 하였지만, 자신이 만든 아름다운 예복을 빛내고 싶은 선배의 바램을 되도록이면 충족시키고자, 남편은 그날 구두를 한켤레 샀다. 우리로서는 그 턱시도를 또 입어야 하는 일이 있어서, 최선을 다하기도 하였다.
선배님은 부인들의 드레스 코드에도 심혈을 기울이셨는데, 긴 롱 드레스를 입고 온 부인은 한집에 불과했다. 모두 다 그리 입었다면 더욱 아름다왔을 것같긴 하다. 그래도 최선들을 다해서 그날의 행사를 대비했다.
호텔에서 행사가 있던 식당까지는 겨우 5분도 걸리지 않은 거리였는데, 주최측에서 "깜짝 이벤트"로 리무진을 준비했다. 2차로 떠났는데, 나중에 떠난 내가 속한 팀은 14명 정원에 17명쯤 타게 되어서 리무진의 우아함과는 거리가 먼, 만원버스를 탄것처럼 붐볐지만, 기분은 그럴싸했다.
35년전 1984년에 함께 장교임관을 받았던 그날을 기념해, 사진사도 부르고, 전문사회자도 불러서 게임으로 친목을 다졌다. 자축파티가 성대했다.
토론토 학사장교 후배가 준비위원회에 참여하여, 궂은 일을 도맡아 하였다. 꽃다발, 이름표, 좌석이름표, 식탁장식, 작은 선물들, 식순과 배너등, 어느 것 하나 부족한 게 없어 참석자들을 감동시켰다. 또한 뱅쿠버 회원은 한국에 나간김에, 기념시계, 기념 티셔츠, 기념패등을 가져왔고, 젊은날 임관할때 사진이 들어간 컵은 토론토 회원이 준비했다. 그렇게까지 번잡하게 할 필요있느냐, 하는 의견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는 와중에 행사준비에 따른 많은 도네이션도 있었고, 토론토 회원들은 멀리서 오는 친구들을 위해 아이스와인이 들어간 "웰컴 패캐지"까지 준비했고, 3맥 회장님도 자리를 함께했다. 퍼즐로 큰 그림을 완성하듯, 많은 이들의 참여가 있었기에 가능한 행사였다.
행사 첫날밤, 남자들이 군대 이야기로 꽃을 피울때, 여자들은 방에서 문을 닫아놓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14명이 한방에 있었으니, 누구는 침대에 앉고, 누구는 의자에 앉고,누구는 창틀에 걸터앉아서 서로를 알지못하는 불안감과, 장소의 협소함 때문에 이야기가 잘풀릴까 걱정하였는데, 솔직한 이야기들이 쏟아져나왔다. 어렵게 참석한 사람들도 있었다. 모임의 의미에 대해 반신반의하였을 것이다. 비행기표를 사서 올만큼, 사업을 회사를 쉬면서까지 만나야할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서로를 알아가면서, 이번 모임에 참석하길 잘했다고 입을 모았다. 나이 60이 되어가는 사람들이 신나는 일이 그렇게 많지않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번 모임은 좋은 각성제가 되어준 것 같다.
남편들이 말도 안되게 학사장교 모임에 목을 맨다는 흉아닌 흉을 보다가 각자의 이야기로 들어갔다. 한 후배의 이런 제안이 참 좋았다. 어느 초등학교를 나왔고, 무슨 일을 하고 있으며, 아이들은 어떻게 되는지. 초등학교 이야기를 꺼내니, 고향이 같은 사람, 심지어 초등학교 선후배가 있음도 밝혀지기도 하였고, 많은 이야기가 이끌어져나왔다. 처음 만났다는 생각은 없어지기 시작하고, 오랫동안 사귀던 친구, 선후배같은 동지감이 들었다.
2번째 날에는 버스를 대절하여 나이아가라 폭포를 다녀왔다. 마침 약간의 비와 안개 때문에 나이아가라의 본모습은 많이 보지 못했지만, 그 시원한 물맛은 조금씩 느꼈으리라. 세상에서 가장 작은 교회(아닐수도 있다)에 가서 사진도 찍고 와이너리에 가서 함께 시음식도 하였다. 아이스와인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다가, 마이너스 8도라든가, 그런 때에 포도를 수확하여 당도가 최고가 된다고 했던것 같다. 나이아가라가 보이는 전망대에서 점심식사까지, 아름다운 시간들이 이어졌다.
호텔에서는 이틀간 아침을 먹었다. 마지막날 아침식사에서는 이사람 저사람과 섞어앉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 모임은 어디에서 할까, 이런 이야기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여성들도 자주는 못만나지만, 2년에 한번 정도는 만날 수 있지 않겠느냐, 하는데 마음들이 모아진 것 같았다. 그러기 위해선, 모두가 건강관리가 최우선임을 서로에게 주지시킨다.
남아있었던 3팀과 토론토 다운타운을 함께 갔다. CN타워를 올라갔다. 이민 초기에 한번 올라와보고는 2번째인데, 꽤 멋있었다. 온타리오 호수를 낀 토론토 시내 전경을 바라본다. 10불인가를 더 주면, 안전벨트를 매고, 타워밖에 매달려 방해물없이 시내를 내려다보는 상품이 있었다. 그걸 할수 있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아무리 장교 출신이더라도. 창으로 막혀있는 그곳에 서니, 조금 떨린다. 유리바닥에도 올라가봤다. CN타워는 세계에서 9번째로 높은 빌딩이라 한다. 553m 라니. 모임 마지막날 날씨가 좋아서, 토론토 다운타운 관광이 흥미로왔다.
남편이 싱그로와졌다. 갱년기가 훅 날아가버린 듯하다. 카톡에 빠져있는 시간도 이제는 이해가 되기도 한다. 결혼전, 학사장교 출신임을 자랑스러워했지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몰랐다. 오히려 감추고 싶은 과거가 아닐까, 이런 생각도 했다. 그런데 이번에 배우자들을 감동시켰다. 그에게도 나에게도 많은 친구들이 한꺼번에 생겼다. 로또는 이런 것이 아니던가?
그리고 오늘도 얼굴을 찡긋하며 묻는다. "나랑 결혼하길 잘했지?"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