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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나, 그리고 우리

마늘밭

작년 육쪽마늘을 한박스 샀다. 공동구매 비슷하게 구입했는데, 정말로 마늘이 실했다. 30 파운드였는데, 파운드당 8불, 240불이었다. 캐나다산 마늘은 구하기도 어렵고, 더군다나 육쪽마늘을 본적은 많지 않다.

마늘을 까다가 올해는 마늘을 심어볼까 싶었다. 긴 겨울을 지내고 마늘이 과연 살아날까, 의구심이 들었다. 엄마에게 자문을 구하고, 인터넷을 뒤져 마늘을 심었다. 처음엔 한 100쪽 정도 심으려고 했는데, 엄마와 통화하면서 그것밖에 안심니? 하시길래 눈꼭감고 100쪽을 더 심었다. 엄마 말씀에는 거의 100% 예쓰를 하는편이라(ㅎㅎ) 용감하게 도전하였다.


심으면서도 과연 봄에 이것이 솟아날까? 정말 궁금하였다. 


다 심은 다음에는 제대로 심었는지, 적당한 깊이로 심었는지, 모든게 불안했다. 솔잎을 덮어주면 좋다는 엄마말씀에 소나무껍질로 만들어진 멀치를 사다 두껍게 덮어주었다. 긴 겨울 마늘밭에는 눈이 소복소복 쌓였다. 울타리까지 눈이 쌓이고, 황량한 겨울바람을 맞으며, 눈속의 마늘들은 안녕한지, 집을 나서고 들어올때마나 눈길을 줬다. 


그리고 어느 봄날 아침, 삐죽이 푸른것이 돋아난 것을 처음 본날, 거의 기절하는 줄 알았다. 한톨의 마늘이 겨울을 지내고, 봄이 되어 싹이 나오는 것이 그리 신기했다. 기다림만큼 보람이 컸다.

마늘은 매일 쑥쑥 자랐다. 


마늘에 비료를 뿌려야 하나, 엄마와 통화를 했는데, 조금 자라면 뿌려주면 좋다 하였다. 엄마에게서 얻은 비료가 있었다. 마늘에 직접 닿지 않게 잘 뿌려줘야 한대니, 비료가 독하긴 독한가 보았다. 아직 어린 것들이라, 독한 비료가 더 해가 될까 하여 기다렸다. 


어느날 어스름한 저녁에 밭에 나가니, 토끼가 울안에 들어와 있었다. 울밖에 있는 나와 울안에 있는 토끼가 눈이 마주쳤다. 바로 달아날 생각을 하지 않고는 빤히 쳐다본다. 나는 토끼를 향하여, "너 왜 아줌나 마늘밭에 들어갔어? 빨라 나와!" 말을 걸었다. 토끼가 훌쩍 뛰어 울을 넘어서 달아난다. 그러고도 몇번을 토끼를 만나게 된다. 울안에 있기도 하고, 울밖에 있기도 하고.


토끼는 마늘밭에 무슨 미련이라도 있는듯, 줄행랑보다는 마지못해 자리를 양보해주는 듯보였다. 도대체 왜 그런 것일까?


얼마후에 가만히 보니 마늘과 마늘을 심은 사이 흙이 파헤쳐져있다. 마늘을 먹은 것은 아닌데, 토끼가 마늘밭에 굴을 파고 있는 것이다. 첫번째 발견했을 때는 그 굴을 다시 메웠다. 그리고 밤새 다시 올지 모르니, 무언가 단도리를 해야했다. 우유 케이스를 갖다가 마늘을 덮었다. 한 케이스안에 4-6 그루 정도 들어가니, 전부다 방어할 수는 없으나, 토끼도 약간의 머리가 있을테니, 마늘밭에 들어올 흥미를 잃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었다. 며칠을 관찰하니 토끼 흔적이 없었다. 마늘은 키가 커가고 우유케이스를 치우고, 이번엔 울타리를 조금 더 높였다. 뜨개실을 가지고 몇바퀴 더 돌았다. 이젠 포기하겠지, 했는데..


어느날 보니 다시 굴이 파져있었다. 굴을 다시 막아야지, 생각만 했었는데 그 다음날인가 그 위에 소복히 하얀털이 덮여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그리곤 덜컥 드디어 올것이왔구나 싶었다. 남편과 막내를 불러 확인해보라 하였다. 흰털을 살살 걷어내고 나니, 그안에 새끼토끼들이 들어앉아있다. 그날 새벽 어느 시간쯤 토끼는 산고를 치르고, 제 새끼들을 낳았을 것이다.


1초도 안되어 머리속이 정리가 되었다. 그깟 마늘이 문제냐, 새끼 토끼들을 살려야 한다 라고.


첫날엔 토끼가 제 털을 뽑아 이불을 만들어 덮어놨더라. 요즘엔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낙엽같은 것들로 위장을 해놓았다. 인간에게 제 새끼를 들키면, 엄마 토끼가 제 새끼들을 죽인다는 말을 들은지라, 조심하고 있다. 가만히 쳐다보면 숨쉬느라 낙엽이 미세하게 움직인다. 또 가만히 그 위에 손을 대면 한곳에서 옅은 열기가 느껴지기도 한다. 오늘까지는 토끼가 살아있는 것 같다.


어제 나갔더니, 동네 돌아다니는 고양이가 마늘밭 근처에서 어슬렁거린다. 혹 새끼 토끼들이 있는 것을 눈치채었나, 걱정이 되기도 한다. 새끼를 낳아놓은 후로 어미 토끼는 한번도 본적이 없다. 새끼 젖먹이려 매일 들를텐데 말이다. 인적이 없는 새벽쯤이겠지. 그들 가족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 그들 가족을 살리는 일일게다. 토끼집이 있는 곳의 마늘은 모로 누워있기도 하고, 비틀거린다. 


토끼집으로 마땅하지 않음을 토끼도 알텐데, 오죽했으면 이곳에 둥지를 틀었을까?  안스럽기도 하다. 우리집 마늘밭에서는 토끼가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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