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갈 거에요?
나를 보면서 묻는 서영이에게 뭐라 대답해야 할지, 잠시 머릿속에서 말을 찾아야했다. 9살 서영이는 조카의 큰딸이다. 설날 이브 언니네 가족이 모이는 날, 나와 나래를 초대해 주었다. 함께 저녁을 먹고, 소파에 앉아있는 내옆에 와서 서영이가 물어본다. "아, 서영이는 내가 가기를 원하는 것 아닐까? 오랜만에 할머니네 왔는데, 약간은 낯선 이모할머니가 와있으니, 불편할 수 있을 거야"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오늘 자고 가요.
이렇게 내눈을 보고 덧붙인다. 나는 금새 마음에 감동이 인다. 그날 밤을 언니네서 지내면서 처음 만나는 조카사위(서영이 아빠)와 언니, 함께 소주파티를 벌였는데 그것도 즐거웠다. 서영이 엄마는 내가 살고있는 캐나다 시골에서 나와 함께 있었다. 9학년(고등학교1학년) 때 동생과 함께 조기유학와서 대학 1년까지 마치고 한국으로 들어갔다. 감수성이 예민한 10대를 우리집에서 보냈다. 그때 내 아이들은 저학년 초등학생들이었고, 10대를 처음 대하는 나는 그애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한국과 캐나다의 문화가 다르니 그애를 보는 나의 눈에도 엄격한 내 자를 기준으로 재단하고 있었다. 그래서 부모 없이 이모집에서 살았던 서영엄마에게 나는 지금까지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 늦게 일어난다고 잔소리하고,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것같아 속상하고, 속시원히 말하지 않아 답답해 했었다.
그때 우리집에는 아이 셋과 조카 2명, 그리고 다른 2명의 홈스테이 아이들이 함께 있었다. 나는 언제나 발을 동동 구르며 바빴다. 어느날 휴일 아침, 점심나절쯤 일어난 조카 둘을 데리고 일장 연설을 하기 위해 강가를 함께 걸었던 기억이 난다. 너희들을 위해서 우리 모두 조금씩은 희생한다. 그애들을 더 아프게 하기 위해, 한국에 있는 너의 엄마가 너희들을 보내기 위해 얼마큼 희생하는줄 아느냐고 으름짱을 놓고, 어떻게 생활습관이 이리 게으를 수가 있느냐? 아침인사를 해야할지, 점심인사를 해야할지 모르겠다, 하면서 강가 벤치에 앉아서 일장 훈시를 했다. 가엾은 우리 조카 둘은 이모에게 아무런 대꾸도 못하고, 다음엔 잘하겠다고 말했었겠지.
그 아이들이 내곁을 떠난뒤, 그 아이들보다 서너배는 게으르고, 말을 안듣고, 자기 주장이 강한 아이들을 키우면서 내가 왜 그리 잔소리를 해대고, 마음에 안차했었는지 큰 반성을 했다.
어쨋든 조카 둘은 이제 한국으로 돌아와서 결혼도 했고, 삶을 잘 꾸려나가고 있다. 캐나다에서 공부한 것을 살려서 모두 "영어 교사"를 하고 있으니, 헛된 시간들은 아니었던 것 같다. 서영이와 장우는 그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난듯 싶었다. 내가 깬 기척을 내자, 내방으로 건너왔다. 오래전에 깨었지만, 잠든 엄마 아빠를 깨우지 않아야 해서 몸을 뒤틀다가 이모할머니방으로 온 것이다. 서영이는 그런날 아침이면 동생과 수신호로 장난을 한다고 내게 알려줬다. 소리를 내지 않으면서 놀수 있는 방법이란다. 어떻게 아이들이 부모를 깨우지 않기 위해 그런 아이디어 놀이를 한단 말인가? 참으로 기특하다. 모두가 잠든 아침시간에 나는 두 귀여운 꼬마와 소꿉장난하듯 놀았다. 할머니 오래된 사진첩을 찾아 꺼내 보여준다. 그 사진첩 안에는 오래전 내 모습도 있고, 우리 가족 사진도 있다. 서영이가 이모할머니를 기억할까?
그 다음날 민형이(서영이 엄마)가 준비한 선물을 준다. 이모부에게 주라고 홍삼 드링크, 할머니 선물등을 한보따리 준다. 캐나다에 돌아와서도 그 선물은 우리 마음에 애뜻한 대견한 미안한 따뜻한 마음으로 들어와 그애들과 함께 했던 지난 시간들에 대한 상장을 받은듯 뿌듯했다. 어쨋든 민형이 가족과는 하룻밤을 같이 자고났더니, 만리장성을 쌓은 느낌이다.
이런 일이 또 있었다.
인천 다연이가 나를 보고싶어한다는 소식이 왔다. 아줌마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는 말도 함께. 이건 그야말로 귀가 확 열리는 소식이었다. 아니, 그런 꼬마가 사는 밥을 어찌 얻어먹는단 말인고, 그러나 나를 만나고 싶다는 데야 안갈수가 없었다. (여러분은 보고싶다는 사람들을 안만날 자신이 있는가?)
인천 막내이모를 먼저 만났다. 엄마의 하나밖에 남지않은 혈육. 기도와 눈물로 캐나다와 한국에서 자매의 정을 나누는 이모를 못보고 갈뻔했다. 이모는 내가 온다는 말을 듣고, 엄마에게 줄 선물, 우리들에게 줄 선물을 또 준비해놓으셨다. 캐나다에서 엄마가 이모에게 보낸 그 선물의 절반 가까이 다시 돌아왔다. 엄마는 한국에서 내가 가져온 모든 것을 좋아하셨는데, 막내동생이 보낸 그 선물(현금)만은 돌려보내고 싶어하셨다. 막내이모는 엄마가 석류를 좋아하시니, 이것으로 석류를 사드시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을 전하는 걸 잊어버렸네.
다시 다연이에게 돌아가보자. 다연이는 7학년(최고 무섭다는 중2?)때 캐나다 우리집에서 2달간 머물렀다. 사촌동생의 큰딸이다. 우리 아이들과 시골 초등학교를 같이 다녔다. 그때 개인주의적이고 영어만 쓰는 우리 아이들에게서 소외감도 느꼈을 수 있고, 내가 제대로 해준 것도 없는 것 같은데, 나를 보고싶어한다니 이게 무슨 일이냐 싶었다.
나와 둘째언니 그리고 다연이 고모 고모부가 만나기로 한 식당으로 갔더니, 그곳에 다연이 가족(동생빼고)이 나와있다. 그런데, 다연이의 성장한 모습에 깜짝 놀랐다. "너 뭔가 했지?" 내 입에서 자연스레 이런 말이 나왔다. 텔레비전 화면에서 금방 빠져나온 매끈한 여자 탤런트가 그 자리에 앉아있는 게 아닌가? 우리집에 왔을때, 소녀였는데 이제 대학을 졸업하고 유치원 교사로 취직해서 일하는 어엿한 사회인이었다.
"누나, 요즘 애들 다 이래" 하면서 손사래를 치는 다연이 아버지는 고등학교 교장선생이다. "눈쌍꺼풀 수술은 했어요" 하면서 웃는 다연이 엄마.
그런데 우리가 만난 그 식당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았다. 미리 주문했다고 음식이 들어오는데, 반찬이 하나씩 상에 올려지는 방식이 아니라, 그야말로 상이 테이블 위에 그대로 걸쳐지는 한상음식이었다. 한식전문점인가 보다. 내가 "아니, 이렇게 비싼 데서는 내가 이 음식을 사지는 못하겠는데? 다연이만 사주면 안돼?" 했더니, 다연이 엄마가 "오늘 음식은 제가 살께요. 괜찮지요?" 한다.
다연이네 가족에게 참으로 큰 대접을 받았다. 다연이는 겨우 2달 우리집에 와 있었는데, 잠시 다니러온 내게 이런 환대를 해주었고, 자신의 고마움을 표현했다. 우리집 세 자매에게도 꼭 맞는 선물을 주었고, 홈삼절편은 나와 남편을 위해, 그리고 정성껏 카드를 써서 주었다. 정말 뭐라 말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
"그때 우리 아이들이 네게 잘 대해주지 못했을텐데. 아이들이 철이 없었어" 나는 내가 잘못한 것은 생각지않고, 우리 애들에게 서운한 것이 있으면 이해해달라,고 다연이에게 부탁한다. 다연이는 감사카드에서 2개월의 생활이 좋은 추억으로 채워져 있다며, 가족 모두에게 감사하다고 적었다. 정말 이렇게 생각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으로도 한국에 온 보람이 있을 지경이다.
왕언니와 김순옥님을 만난 이야기까지 덧붙이고 싶다.
한국에 가기전 내가 보고싶다고 말씀드렸다. 왕언니는 내가 다음 블로그를 열때부터 알아온 대선배이신데, 16년전에도 만나주셨었다. 순옥님은 언제나 내글에 잊지않고 댓글을 달아주셨다. 블로깅이 새로운 돌파구를 찾지못하고, 침체되어 있을 동안에도 그렇게 관심을 보내주셨다. 블로그 친구가 많지않아서 그나마 보고싶다는 마음을 낼 수 있었다.
시간약속을 정하기까지 카톡으로 많은 대화가 있었다. 둘째언니와 16년전 같이 봤었기 때문에 왕언니는 둘째언니까지 함께 보자 하셨다. 그래서 우리 네명의 상봉이 왕언니 자택에서 있었다. 정말 그런 음식은 처음 먹어본다. 아름답기까지 한 예술품 같은 음식들을. 다시 복구할 수 없으니 마음에 담아두어야 한다. 작은 게 튀김, 꼬막, 전복요리, 소고기요리, 연어쌈, 해물탕, 4색 나물... 눈물이 나오지 않은 게 놀랄 일이다. 그런 대접을 받을 자격이 없는데, 왕언니의 마음이 원래 그리 크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왕언니는 동기같은 마음이 들어서 그리 준비했다 하셨다.
정성껏 차려진 음식에 비해선 많은 대화는 나누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왕언니는 감기 기운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선지 대화를 조심하시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쯤이 우한에서 터진 바이러스 뉴스가 심심치않게 들려올 때였다.
순옥님은 이 모임 중간에서 길을 안내하고, 시간을 조정하고 그런 모든 일을 하셨다. 그리고 우리와 만나기로 한날, 시간 계산을 잘못해서 너무 일찍 나와서 너무 많이 기다리신 듯 하였다. 병원 진료도 있었고, 직장도 있었고 여러가지 힘든 상황에서도 만남을 성사시키기 위해 애쓴 그분께 너무 감사드린다. 그야말로 성실과 친절이 몸에 배여있는 그분을 이번에 만나뵙고 온 것은 내게 큰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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