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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떠나요

홀로 떠돌다 .. 모국방문 (7)

모범생처럼 새벽이면 눈이 떠졌다. 내 두뇌는 나보다 똑똑해서 한국에서 있는 동안 제대로 보고 듣고 즐기라고, 새벽마다 나를 깨워주었다. 캐나다에서는 아침기상이 늦은 편이다. 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내 비밀을 말할 필요는 없으니, 이쯤에서 넘어가기로 하자.




그날도 일찍 일어나서, 출근하는 따님을 위해 아침(그래봤자, 과일과 빵)을 준비해줬다. 나래는 대부분 걸어서 일터로 간다고 하였다. 가끔씩 카톡으로 보내주는 출근길 정경을 나도 한번 보고싶었다. 나래와 함께 길을 나섰다. 나래가 걷는 길은 탄천로이다.


탄천은 한강의 지류로 예전에 숯공장이 하천 주위에 많아 물이 검어 탄천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고 한다. 분당 야탑에서 탄천로까지 오는데 10여분이 걸렸던가? 금방 물이 흐르는 탄천로로 들어서게 되었다.  도시에서 맛보기 힘든, 공기가 맑고 깨끗한 물이 흐르는 물가 산책로다. 성남시와 경기도가 하천 생태살리기를 했다고 한다. 그 닦인 길과 하천 사이를 오갈 수 있게 곳곳에 세워진 다리와 접근이 용이하게 만든 진입로등, 주민들에게 활력과 낭만을 제공해줄 것 같았다. 특별히 하천을 걷다가 나래 일하는 곳으로 갈때에서는 징검다리를 건너야했다. 힘차게 흐르는 물위로 평평한 바위 위에 서니, 가위 바위 보라도 하면서 다리를 건너야 할 것만 같다.




나래는 길을 건너 일터로 가면서, 내게 온 그대로 되집어서 집으로 갈 수 있겠냐고 다짐받는다. 

나는 그럴 수 있다며 그애를 보낸다.



나래와 손을 흔들며 헤어진 다음, 가만히 생각하니 집으로 돌아갈 이유가 없었다. 오늘 하루 어떻게 해야지, 하는 계획없이 나래를 쫓아나왔지만, 기분좋은 이 아침을 연장하고 싶어졌다. 탄천로를 한참 더 걷다가, 밖으로 나가봤다. 물론 어딘지도 모르고 말이다. 벽화가 그려진 작은 다리를 지나 조용한 아파트 마을로 들어와 걷다보니, 큰 길이 보인다. 


멀리 꽤 멋지게 생긴 큰 건물이 있다. 성남아트센터였다. 건물은 여러가지 용도로 사용하는 문화공간인듯 싶었다. 카페등은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그런데 사진전시회 플랭카드가 붙어있다. 사진과 심정적 거리두기(?)를 유지하고 있지만, 사진을 무시할만큼 강심장은 아니다. 나처럼 할일없는 사람에게 사진전시회는 딱 맞는, 유혹될만한 소재였다. 에릭 요한슨 사진전이라고 한다. 물론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름이지만, 또 유명한 다른 사진작가를 아는 사람도 없으니, 그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건물의 문을 빼꼼히 열어본다. 아저씨 한분이 안내석에 앉아있다. 그는 사진전에 관해 질문하는 나에게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면서, 나에게 호기심어린 눈빛을 보낸다. 그 아저씨가 권했던가, 아니면 내가 그 테이블에 있는 그 팜플렛을 집었던가는 확실치 않다. "책 테마파크"란 팜플렛이 있었다. 눈이 확 떠진다. 사실 제대로 된 서점을 아직 가보지 못해서, 내가 할일을 방기하는 것같은 기분이 한편에 있었는데, 이 아니 좋은 기회인가 싶었다.


책 테마파크를 갔다오고 나서 사진전을 보면 시간이 맞을듯하였다.


우선 율동공원으로 가야한다. 공원에 도착하니 큰 호수를 가운데 두고 산책로가 마련되어 있다. 마스크를 쓰고, 빠르게 걷는 아주머니들, 천천히 걷는 나이드신 분들, 벤치에 앉아서 담소하는 분들이 눈에 띄인다. 


책 테마파크는 공원안 깊숙히 자리잡고 있었으나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안에서 한분이 준비하고 있다. 문이 열리지 않아 돌아나오려고 하니, 문을 열어준다. 사서로 보인다. 아직 문을 열려면 시간이 좀 남았다고 해서, 다시 오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미리 들어와도 될 것 같다면서 환영을 해준다. 


이 도서관은 조금 달랐다. 책이 생각보다 많지 않고, 앉아서 글을 쓰거나 책을 읽을 수 있게 책상과 의자가 많았다. 책은 묘하게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책이 더이상 내게 말을 걸지 않는다. 퍼지게 앉아서 책을 훑어봐야 하는데, 그럴 정도의 여유는 없었지 싶다. 


도서관을 한바퀴 둘러보고 난 다음에 나가는 길에 나는 그분과 몇마디 대화를 나눈다.  그녀는 딸이 외국으로 나가서 살게 되었단다. 외국인 사위를 얻어서 떠날텐데, 벌써부터 걱정이라고 하신다. 그렇다. 한국인중 많은 사람들이 외국과 이런저런 이유로 관계되어 있다. 그로벌 시대답게 우리들의 의식도 조금은 넓은 마음이 되었으면 싶다. 가끔 교민들이나 외국에 사는 한국인들에 대해서 적대적인 인터넷 댓글, 말하자면 한국에 있으면 애국자, 밖에 나오면 배반자 이런 단순한 이분법적 의식을 가진 분들이 있는  같아서 마음이 아플때가 있다. 


딸을 보내는 마음에 울적해진 그분께 따님보러 외국에 나가시면 될텐데요, 뭐 하나마나한 소리를 한다. 한국방문 소감등을 그녀와 나눴다. 쌀쌀한 겨울 아침, 몇시간전에는 알지도 못했던 곳에 있는 나자신이 신기해서 그분과의 만남조차 예사롭지 않게 생각되었다. 그분은 내게 이런 편지를 써보겠느냐고 묻는다. 뭐냐면, "느리게 가는 편지". 이 편지를 써서 부치면 1년후에 배달해준다고 한다. 





편지지와 연필을 받고 책상 한구석에 앉았다. 이번 여행으로 가장 감사한 두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다. 내년 1월쯤 그 편지가 배달되면, 약간의 감동이 우리들에게 찾아올까? 내년을 위해 감동을 하나 예약해놓았다.





 테마파크는 책을 주제로 공원을 조성해놓았다. 물의 책, 하늘의 책, 공간의 책, 시간의 책, 천자문의 책, 음악의 책, 한글의 책, 바람의 책 등이었는데 팜플렛에서 소개한 그것을 실물을 보면서 느끼기에는 약간의 거리감이 있었다. 그러나 날씨가 좋은 5월의 봄날, 팜플렛이 소개하는  테마를 생각하며 탐색한다면 조금 달라질 수도 있으리라. 책을 진열하고 읽게 만든  장소는 공간의 책으로 이름되어 있다. 


공간의 책을 나와서 다시 걷기 시작했다. 한참을 걸으니, 번지점프   있는  타워가 있는데, 요즘은 운영되지 않는다고 사인이 붙어있다. 호수가  보이는 길에 흔들의자가 하나 있다.  의자에 가만히 앉아본다. 흔들거리며 앞을 보는데 고얀히 눈물이 난다. 대학을 졸업하고 한번도 만나지 못했으나, 언제나 내 마음에 있는 친구에게 아무래도 카톡문자라도 보내봐야겠다. 연락조차 안하고 간다면, 캐나다에 가서 후회할 지도 모르겠기에 말이다. 건들여보는 것이다. 이번  여행의 테마는 건들임이니까. 그녀의 카톡주소를 아는 친구에게 물어 카톡을 넣어본다. 나야, 라면서.


율동공원을 한바퀴 돌고 다시 성남 아트센터로 돌아갔다. 에릭요한슨 사진전은 성남큐브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었다. 사진전이라지만, 사실은 사진이 아니다. 만들어진 사진이다.  작품을 탄생시키기 위해 자신의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하고, 그걸 현실화했다. 상상을 찍는 사진작가라는 말이 그의 이름앞에 붙었다. 스웨덴 출신의 초현실주의 사진작가의 작품은, 양털이 구름으로 변하고, 들판이 카펫처럼 들고 일어나며, 섬과 섬사이에 건물들이 걸쳐있는 등, 찍은 것을 컴퓨터로 합성해 재구성해놓았다. 신기하기는 했지만, 상상력이 바닥인 내게는 한번 보는 정도에서 끝나는 전시회였다.


작품을 다보고, 그가 찍은(합성한) 사진이 들어가 있는 세장의 카드를 손에 쥐었다. 바로  자리에서 친구에게 보냈던 카톡이 읽혀졌음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녀의 답이 도착해 있었다.


나는  밖으로 나와서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기는 너무 멀리 살아서 나를   없을 것이라며 방문을 환영한다고 그런다. 그렇다면, 내가 찾아가도 될까? 했더니 그렇다면 고맙겠다고. 하루종일 널널한 시간이 있어서 이리기웃 저리기웃 했는데, 이제는 마음이 바쁘다. 친구는 너무나 멀리 살고 있었다. 집으로 불이나케 돌아가, 그녀가  주소로 버스편을 알아본다. 시골이라 막차시간에도 맞춰야 하고, 일단은 대전까지 가서 다시 갈아타야 하는등, 쉽지 않게 생각됐다. 가다 못가더라도 가보는 거야, 이렇게 마음먹을때 친구에게서 연락이 온다. 오늘 못오면 내일 와도 돼. 성남터미날 근처에 사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버스를 4번 갈아타고 기다리는 시간까지 6시간 이상 걸려, 밤늦게 친구의 집에 도착한 내게 친구는 "못찾아 올줄 알고 오라 했는데, 찾아왔다"며 깔깔 웃었다. 나는 오늘 본 사진전시회 제목이 "불가능은 가능하다(Impossible is possible)"였는데, 아마도 그래서 오늘 너를 만나게 되었다며, 같이 박장대소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