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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나, 그리고 우리

"잘못된 해고"로 인한 손해..

기어이 P와 사단이 나고말았다.
작년 11월,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진 남편이 휑하니, 나갔다 온뒤 P를 해고시켰노라고 했다.

 

가게 하나를 더 오픈한 뒤로 신경쓸 것이 늘어나고 일손이 딸리고 해서,  나와 남편이 두탕을 뛰는 등 고단한 날들이 이어졌었다. 그래서 직원들에게 일을 많이 맡기게 되었는데, 그중에서도 P는  조금 특이한 데가 있다.
그녀는 “보스” 기질이 있는 것 같다.

 

물에 물탄듯, 제 가게에서도 고용인처럼 일하는 나에게도 문제가 있지만, 그녀는 종종 나에게 “쿨러를 닦아야 한다. 내가 이 부분까지 했으니, 나머지는 잘 청소해라”는등, 주문을 하곤 했다. 어떤 일에도 말이 많아서, 손님중에는 그녀의 너스레를 피곤해한다는 소식도 듣는다.

 

주인에게도 이러할진대, 다른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보스적”이어서 모든 걸 좌지우지 하려고 하고, 일일이 트집잡고 그러했다.

 

처음엔 가게에 대한 “애정”이 지나친 것으로 이해해주었으나 정도가 심할 때가 있고, 특별히 모두가 골고루 돌아가면서 일을 분담해야 할때면, “좋은 시간”만 일을 하려고 해서, 나머지 직원들의 불평을 샀다.

 

 

내가 그쪽 가게에서 손을 떼고 3명의 직원과 남편이 돌아가면서 일를 하게 됐는데, 남편에게 듣는 그쪽 상황에는 P로 인한 문제가 끊이지 않았다.

 

계산기 작동을 잘못해서, 기어이 망가뜨린 일,
시간표 때문에 다른 직원을 눈물 흘리게 한일,
몇몇 손님은 P 때문에 발길을 끊었다는 이야기,
새벽(가게 오픈 시간이 6시이니)에 제 시간에 문을 열지 않아서 손해를 끼치고…

 

그런 일들이 이어지다가, 어느날 남편이 가게로 전화해보니 전화를 받지 않고, 가게 오픈 시간에서 2시간이 훨씬 지났는데 문을 열어야 했던 P가 그때까지 자고 있던 것을 알게 되었다.


남편은 여러가지 문제가 중첩되어 있었던 데다, 그전에 회계사에게 문의하여 알아본 결과, 일하는 사람의 명백한 과실에는 “해고”를 시킬 수 있다는 조언에 힘입어, 무리없이 해결하고 오라는 나의 말을 귀등으로 듣고 그녀를 그 자리에서 “해고”시킨 것이다.

 

그동안 직원들을 잘 데리고 있는다는 칭찬도 가끔 듣고, 또 별 무리없이 상부상조한다는 생각을 하던 우리에게 그 일은 참, 어려웠다.

 

그녀가 가게를 그만둔 뒤, 그쪽 가게는 그야말로 직원들 사이의 문제로 아옹다옹 하는 일없이 평화로왔지만, 일이 그렇게 쉽게 끝난 건 아니었다.

 

몇달후에 우리집에 날라온 한통의 편지. “고용인들을 위한 정부 기관인 휴먼 리소스”에서 보낸 것이었는데, P에 대한 “해고”는 불법이므로, 우리가 변상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그 편지의 말미에는 만약에 불복한다면 항소할 수 있으며 그 다음엔 휴먼 리소스에서 선정한 레프리(배심관)들이 그 일에 대해서, 청문회를 해서 심판하게 된다고 했다.

 

우리 입장에서는 억울하기도 하고, 그녀의 명백한 잘못으로 인한 것이니 한번 붙어보자고 했다.

회계사의 도움을 받아서 항소장을 보내고, 직원에게 그간에 P에게 당한 일들을 편지로 써달라고 해서 함께 동봉하고, 그녀로 인한 손실을 써서 보냈다.

 

몇주전에 그 일에 대한 재판이 있었다. 이번에도 나는 집에 있고, 남편과 회계사가 참석했는데, 레프리3명과 P,그리고 우리쪽 2명이 참석한 재판을 끝내고 와서 남편이 하는 말, “감이 좋지 않아. 휴먼 리소스는 무조건 고용인 편이라는 데, 아무래도 우리가 질 것 같애”했다.

 

쓸데없는 말을 장황하게 하는 P를 익히 아는지라, 재판에서 어떻게 했느냐고 묻자, 말을 너무 많이 해서 제지를 당하긴 했지만, 일을 잘했노라는 “추천서”를 동네 주민들에게 10장이나 받아온 것과, 우리가 종이에 써서 경고를 몇번 준 다음에 계속 같은 잘못을 범하면 “해고”시킬 수도 있으나, “구두경고”는 증거로서 불충분하기 때문에 그녀를 “해고”시킨 건 잘못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가게문을 열지 않은 것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그녀는 그날 자신의 담당인줄 몰랐다고 증언했다) 것을 알았다며 혀를 내두른다.

 

회계사는 레프리3명이 만장일치로 우리 잘못으로 인정했다는 데에 대해서 “자존심”이 상한다며, 한번 더 심판을 요청할 수 있으니, 해보자고 했다는 것이다. 만약에 이기면 “자신에게 P에게 들어갈 돈의 절반만 지불하라”고 했다면서.

 

나는 이쯤에서 끝내자고 했다. 그동안 그것에 들인 마음고생도 고생이려니와, 그녀가 이긴 것으로 끝이 나면, 더이상 우리하고 “원수”질 것도 없으니 그것 또한 좋지 않겠는가.

 

그녀의 잘못을 깨닫게 해주고 싶었지만, 우리의 방법이 잘못된 것이었음을 인정해야 했다.

 

나는 오늘서야, 이글을 쓰면서 고용인보험청에서 보낸 레포트를 읽어보았다.


P는 재판을 위한 철저한 준비를 해서, 많은 동네 사람들에게 그녀의 인간성과, 가게에서의 매너 등등에 대한 편지를 무려 10장이 넘게 받아왔다.

 

그 재판을 준비하면서, 우리는 P에 관한 각종 안좋은 소문들을 접할 수 있었는데, 이를 공식 편지로 만들라는 회계사의 말에, 나는 썩 내켜지지가 않았다. 우리가 알수 없는 소문들인데, 그 당사자들에게 찾아가서 물어보고, P에 대해서 부정적인 견해를 나열해야 하는 것은 생각만 해도 골치아픈 일처럼 느껴졌다.

 

P 때문에 가게를 들르지 않는다는 손님에게도 몇번 전화를 하다가, 연결이 되지 않아 그에게서 다른 편지를 받는 걸 포기했다. ( 상황을 설명하고 우리쪽에 유리한 편지를 써달라고 하는 일은 얼마나 민망한가?)

 

그런데, P가 첨부한 서류들을 검토해보니, 다리가 아픈(다리를 약간 전다) 자신에게 하기힘든 일을 시킨 우리가 악덕업주가 되어있었고, 자신은 아픈 몸을 이끌고 충성을 다한 그럴수 없는 고용인으로 묘사되어있다.


아픈 다리를 검진한 의사의 소견서, 가게 물건공급자에게 받은 친절한 직원이라는 최상의 칭찬, 더이상 “나이스”한 사람이 없는 것같이 묘사한 동네사람들의 편지,,, 등등은 내가 배심원이라 해도 고용주의 잘못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직원들과 불화해서 하루도 가게가 편안할 날이 없고, 주인에게 고분고분하지 않고,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며 “주제” 넘게 일했던 P를 법적으로 잘못했다 할 수는 없었는지 모른다.


또다른 문제는 이 나라의 정책이 사용자보다는 고용인편에 서있다는 것이다. 그녀와 일을 못하겠으면 “일시 해직(Lay-off)”을 시켜서, 정부로부터 보험금을 타게 해주어야 했다. 그러나  “일시 해직”은 일이 생기면 다시 부른다는 조건이고, 그동안에 우리가 다른 사람을 고용하면 안되니, 당장 사람이 필요한 우리로서는 선택할 수 없었다.

 

이런 때 조금 더 머리가 돌아가는 사람들이라면, 직원에게 “하드 타임”을 줘서 스스로 일터를 떠나게 하는 것이라고들 말한다. “사퇴”는 우리들의 잘못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한편으로 생각하면 더욱 "질나쁜" 해고방법이라고 할수도 있겠다.)

 

어쨋거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 되었고, 몇몇 동네 사람들에게 웃음거리가 되어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조금 더 세분해서 들어가보면, 우리가 살지않는 다른 마을에 가게만 사서 입주하고, 직원들을 써서 가게를 경영하는 것이 주민들 눈에 곱게 보이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페이슬리의 가게는 좋아하지만 그쪽 가게엔 그렇게 정이 가지 않는다.

 

한인들에게는 가게 하나를 잘 경영하면, 다른 하나를 사들여 늘리는 경향이 있는데, 우리도 그런 사람들중의 하나라고 볼수 있다. 욕심이 사망을 낳는다는 말이 이때 필요한지도 모른다.


결론은 우리가 충성된 직원을 불충분한 이유로 해직했으니, 정부에서는 그녀에게 보험금을 줄 수 없고, 우리에게 그를 부담시키는 것이다.

 

아직 정확한 액수는 알수 없지만, 그녀가 받아야 되는 1년 미만의 매달 보험료를 우리가 지불해야 하며 회계사에게도 수고비(치고는 상당한)를 줘야 한다.

 

한국 사람들은 현지인들을 직원으로 쓰기 어려워한다. 일꾼이 가게에서 다치거나 했을때, 그 모든 책임이 주인에게 오기도 하고, 우리처럼 잘못 해고하면 법정에도 서야 한다. 세금 정산도 정확해야 하고, 일하는 사람들이 현금이나 물건을 가져간다고 생각해서 이를 꺼리는 사람들도 많다.

 

또한 사업 자체가 규모가 크지 않으니, 가족들이 힘을 합해서 직원을 되도록 작게 쓰면서 하는 것이, 신경도 덜 쓰고, 돈도 벌고 한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이 세계의 룰이다.

 

경제관념이 떨어지고, 놀기 좋아하는 우리 부부가 이를 어긴죄 또한 크지만, 생각해보면 지난 9년 동안에 이만한 일이 일어난 것은 그다지 큰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다.


많은 좋은 직원들 덕분에, 일독에 빠져있지 않고, 아이들과 정서적 교감을 나누면서, 내 시간을 즐겼던 것을 충분한 보너스로 생각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앞으로도 우리의 방식대로,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나아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래도, 그 쓴맛을 다 보면서 일군 그쪽 가게에 요즘은 고객이 많아지고 있다는 소식이니, P의 편도 있지만, 우리편도 있는 것도 같다.

 

한인이 많은 도시에서는 일꾼도 한인들을 많이 써서, 그들이 주인 면전에서 깍듯한 태도로 “사장님, 사모님” 소리를 해서 놀란적이 있는데, 이곳 직원들과 주인은 서로의 필요에 의해서 맺어진 정말로 “평평한” 관계이다.

 

직원부리는 일로 위세를 세우려 했다가는 우리짝이 나기 쉬울 것이다. “해고”시키는 권세를 사용해서 한동안 우쭐할 수 있는지는 몰라도, 이렇게 큰 고초를 당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