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웬일로 눈이 일찍 떠졌다.
최대한(맥시멈)으로 자고 일어나는 우리 부부에게는 희귀한 일.
운동삼아, 한번 밖에 나갈까?
고비도 컸나 보고..
그야말로 농담삼아 던져본 말에, 남편이 그러자고 했다.
일어나서 준비하고 나오니, 막내가 잠이 깼는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난다.
"미리야, 엄마 아빠 산책가려는데, 같이 갈래?" 했더니,
기니픽 데리고 가도 되냐고 한다.
애완동물을 제 자식처럼
키우니, 우리가 제게 물었을 때와 똑같은 마음을 갖고 질문했을 생각을 하니, 우습다.
안된다고 했다.
잠깐 기다리라고 하더니, 작은 바스켓 하나 찾아서 들고 따라온다.
어머니날 아침은 이렇게 시작됐다.
깨끗하고 맑은 바람을 쐬면서 우리 셋이 걷기 시작했다.
강가 근처, 예전에는 비어있던 오래된 방앗간 뒤에는 고비와, 달래가 많이
난다.
비어있던 이집과 근방의 대지를 사서, 재작년에 크라이슬러 부부가 이사오고 난 다음에, 나물 뜯기가 좀 미안했었는데, 그들이 괜찮다고 했으니, 오늘 한번 가서 확인해볼 작정이다.
달래는 이제 먹을만하게 많이 솟아올랐고, 고비는 고개들을 들기 시작한다.
하루볕이 다르니, 이제 1-2주간 정신없이 솟아오를
게다.
우리 셋은 되는대로, 나물을 따기 시작했다.
나는 달래를 맡고, 남편은 주로 고비를 뜯었다.
키가 많이 자라지 않았고, 아직
묵은 옛가지사이에서 웅크린 것이 대부분인지라, 많지 않다.
그래도 한 20여분 채집을 했더니, 엔간히 먹을 만큼이 되었다.
숲속을 빠져나오니, 미스터 크라이슬러(폴)가 밖에 있다.
이제 고비가 많이 컸노라고, 보여주면서 그에게 조금 줄까?했더니, 자기도 곧 뜯을 거라고 괜찮다고 말한다.
숲속 뒤의 온땅이 그의
것이 되고 난 다음에, 자꾸 미안한 생각이 들어 제발이 저려 이렇게 보고를 한다.
1시간 가량 걸린 아침산책은 기분을 몽롱하게 만들었다.
큰딸이 아빠 책상에서 뭔 일인가 하고 있다.
작년에는 아이들이 아침상도 차려주고 하더니만, 며칠전에 막내가 이른 카드를 준 이후로는
이 아이들이 대체 어머니날인 것을 알기라도 하는지, 의심스럽다.
큰애에게 뭔 말인가 하려고, 쳐다보니,
평소의 그 매몰찬 억양으로 "문좀 닫으라"고 주문한다.
"흥, 녀석,,, 어째 그렇게 말하는 법을 모를까?,언제 한바탕 또 가르쳐야겠다" 하면서,
무심하게 앉아있는데, 둘째가 방에서
나오더니, 엄마 왜그러냐고 묻는다.
나는 그저, 손톱이 왜 이리 길었나, 하면서 그를 주시하고 있었는데, 별로 기분좋아보이지 않았나 보다.
그러더니, 둘째가 황급히 또
제방으로 사라진다.
이런 상황에 슬퍼해야 하는지, 엄마로서 뭔가를 기대한다는 게 가당키는 한 마음인지, 하면서 있는데 큰애가 다가오더니, 카드를 내민다.
종이꽃이 만발했다. 엄마 카드를 만드느라고, 그렇게 매몰차게 문좀 닫아달라고 몇번씩 주문했나 보다..
또 조금 있다가 둘째가 그야말로 일사천리로 요란하게 만든, 카드를 가져온다.
해피 마더스 데이! 하면서.
그 카드에는 눈 한짝이 크게 그려져있고, 립스틱으로 칠한 하트 모양이 몇개, 그 밑으로 U라는 대문자가 쓰여져있다.
그림이 하도 이상해서 물어보니, 눈은 I를 의미하고, 하트는 러브를 의미한다니, 그곳에는 기호로된 아이 러브 유가 들어있다. ㅎㅎ
웃어줘야지.
어쨋든 아이들에게 성에 차지는 않지만, 카드라도 받았으니 그걸로 족하다는 자위가 된다.
교회에 갔다와서, 선데이 누들(인스턴스 칼국수, 이날은 무조건 인스턴트 국수를 먹는 날이다)을 해먹이곤, 나와 남편은 아침에 뜯어온 고비를 삶아서 간장에 무쳐서, 다시 익혀서 먹었다.
이제 우리 가족들은 모두 집에 남고, 나 혼자 한인교회를 가야한다.
막내는 친구를 불러서 논다 하고, 둘째도 이미 친구들이 와있고, 큰애는 청소를 시작한 것을 보고, 나는 집을 떠났다.
1시간이나 걸리는 한인교회가기를 누구도 좋아하지 않는다.
한국문화 소화하기를 너무나 못하는 특이한 우리 아이들 때문에, 내가 죽을 지경이다.
아이들이 어떤 면에서 대단히 부족한 것이
아닌가, 우려된다.
아니면 잘못 가르치는 나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겠지.
누군가는 꼬집는 말로, 너무 아이들에게 잘해주시는 것 아녜요?
하기도 했다.
어쨋든 지금 그걸 논할 자리는 아니고, 나는 혼자 떠나는 이 길이 어떤땐 자유롭다.
교회에서는 1편에서 다룬, 특별 식사대접이
있었는데, 가엾게도 나는 온전히 남으로부터의 대접을 받게 된 것이다.
노래를 불러주는 것도, 남의 아이들이고, 음식을 서빙해준 사람중에도 나의 남편은 없었다.
평소보다 조금 더 늦은 시간에, 차를 타고 오며 나는 실컷 먹었지만, 남편의 진두지휘 아래 엄마를 위한 밥상이 차려져 있는 기적이 일어나고
있지는 않을까,,, 기대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혹은 내가 재어놓은 고기가 있으니, 밖에서라도 고기를 구워놓으면, 생색나게 나를
대접해줄 수도 있지 않을까,
남편에게 전화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역시 그건 내 스타일은 아니다.
불이나케 갔더니, 막내는 친구집에 갔다하고, 모두 제각기 제할일들만 하고 있었다.
교회에서 남은 음식중에 생각이 있어서 가져온 8개의 구워진 감자에다, 점심때 무쳐놓은 고비, 돼지고기 갈비를 구워서 상을 차려냈다.
그렇게 어머니날이 가고 있는 중이었다.
조금 있다가 막내가 등뒤로 무언가를 감추면서 들어온다.
미리야, 그게 뭐니 하면서, 기니픽 먹이려고 또 풀이나 뜯어온게군,,,
생각했다.
조금 있다, 미리가 들고 온 것,,,,
을 화병에 담아놓은 것이다.
"해피, 마더스 데이 마미!!"
친구집 정원에서 그 엄마의 허락아래 꺽어왔다는 것이다.
시들지 않게, 물수건으로 꽁꽁 동여매서, 플라스틱 통에 담아준 조던의 엄마
샤론에게 고마움이 간다.
빨래를 신나게 돌리고, 군데 군데, 더러운 곳을 페이퍼 타월로 닦아내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밑의 가게에서 일하고 있는
남편에게서다.
"가게 끝나고 데이트할까?"
ㅎㅎ, 비웃음으로 웃다가,
"티버튼 스토어 가자구? 그러지, 뭐"
"꽃도
있어."
"아이구 그 남은꽃? 괜찮어."
일요일이라 9시에 끝나니, 티버튼에 있는 가게에 가서 둘러보고, 돈도 가져오고 해야 하는데, 나를 동반하겠다는 것이다. 별다른 일이 일어날
무엇도 없지만, 기분맞춰주느라 그러자고 했는데, 조금 있다 보니, 막내가 누군가와 전화를 하고 있다가, "맘, 캔 아이 고우 위드 유?"
한다
"엥?"
남편이 막내에게도 같이가자고 한 모양이었다.
나는 미리에게, 네가 가도 되지만, 아마 재미없을 것이고, 저쪽가게 갔다가 그냥 올텐데, 굳이 따라올려느냐고 했다.
미리는 볼이 발그래해져가지고
"엄마 데이트 한다며?" 하면서 부끄러워죽는다.
누가 데이트초대를 받았는지 의아해진다.
어쨋든 막내를 데리고 우리는 밤 데이트에 나섰다.
막내는 "자기는 없는 걸로 치고, 두분이 즐겁게 데이트" 하시라면서, 자꾸 종알댄다.
우리도, 서로 미리와 이야기하는 것이 더
즐거워서, 그애를 빼놓고 말을 하려고 하니, 자꾸 헷갈렸다.
"키스도 하고..."
하면서 킥킥거리는 막내딸을 데리고, 그쪽 가게를
들렀다, 조금 큰 마을로 갔다.
실상은 나도 남편보다는 막내딸과 이야기하는 게 더 부드럽고, 감칠맛난다.
사랑스러움이 절로 솟아나서 뽀뽀를 당장에라도 해주고
싶고.
남편도 아마 비슷할 것이니, 우리는 묘한 삼각관계인 채로 밤거리를 헤매고 있는 중이다.
한국에서라면, 늦은 시간 문을 여는 곳도 많겠지만, 아이를 동반할 수 없는 한두개의 "바" 말고는 갈데가 없을것이 분명하니, 정말 어떤
기대도 없었다.
그런데, 그전에 자주 가던, 피자 딜라이트라는 음식점이 새로 수리해서 장사하고 있었는데, 아직도 영업을 하고
있었다.
남편이 저곳에 한번 가볼까? 해서, 들어갔더니 주인이 들어오라고 한다. 그때가 10시가 조금 넘었고, 2팀인가가 앉아있었다.
10시
30분까지는 괜찮다고.
우리가 들어간 뒤로 고객이 모두 떠나 우리 셋만 남아있어, 미안하면서도 스릴있다.
새로 단장한 그 식당은 보다 고급스럽고, 자유스러워졌다.
손님들이 끊이지 않아, 9시30분 종업시간이 이렇게 대책없이 늘어났음을 종업원을 통해 알게 됐다.
시간지키기로 칼같은 이곳 사람들이,
고객의 형편을 고려해준 것이 그렇게 고맙게 생각될 수가 없다.
남편과 나는 맥주 2병을 치킨윙과 함께 주문하고, 미리는 어린이메뉴, 스파게티와 가릭 브래드를 먹었다.
어머니날 특별대접이라고, "스토베리 치즈케잌"을 갖다줘서 그 위에 또 먹고.
늦은 시간까지 우리를 받아줘서 감사하다고 말하고 나오려는데,
어머니날이라며, 노란 장미꽃 한송이를 주인 아줌마가 준다.
미리는 "엄마, 아빠는 이런 걸 데이트라고 했단 말이야?"하면서 길 중간에 흉을 봤지만, 한두잔의 맥주마심과, 음식점 순례로 "데이트"가 그렇게 싱거운 것만은 아니구나, 깨달았을 테니 면목이 선다.
식당 주인이 준 장미를 중심으로 한장 더...ㅎㅎ
아침에 우리 셋이 길동무하여, 나물을 캤는데, 11시가 가까이 되는 이시간에 또 셋이 남으니, 기분이 묘하고, 딸이 우리삶의 증인이 된 것 같은 밤이었다.
저녁 데이트 하기 전에 토론토에 계시는 엄마에게 전화했다.
점심시간과 저녁시간을 피해서 한 것은 어디선가 잘 얻어먹고 계실 것이라는
짐작에서 였는데,
막상 엄마의 어머니날은 형편없었던 것 같다.
자식이 많지만, 죄송하고 미안하다.
"어찌 그래 되셨어요? 나도 못갔지만.."
"나는 괜찮다. 그동안 받을 꽃 충분히 받았고, 좋은 선물 다 가져봤다. 이제는 너희들이
엄마들이잖니. 그걸로 족하다" 하신다.
그러고 보면, 아버지가 꼭 생각나는 게 이 어머니날이다.
그것은 한장의 영상이 되어, 내 마음에 있는데,,
대청마루가 보이는 옆 마당에 이쁜 의자가 하나 놓여진다.
엄마는 한복을 곱게 입고 그 의자에 앉아계신다.
우리들은 순서대로
나가서, 엄마에게 카네이션을 달아드린다.
아버지는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느라고 바쁘시다.
웃으시면 한쪽 입이 위로 올라가시는 양복을 차려입으신 아버지께서, 엄마를 바라보며 흐뭇해하시던 그 정경이 지금도 눈에 잡힌다.
우리는 어머니날 아침이면, 아버지의 독려로 이렇게 행사를 치르곤 했다.
남아있는 사진중에는 비스듬히 앉으셔서 가슴에 한가득 꽃을 꽂고
웃으시는 젊은 엄마모습이 있다.
그러고 보면, 어머니날은 남편이 챙기는 것인가 보다.
엄마가 아이들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도,
어머니날에 선물하는 법까지 가르칠
순 없는 것 아닌가?
나는 한번인가, 이 이야기를 듣기 좋게 남편에게 들려줬건만,
아직 그런 대접은 받아보지 못했다.
아이들이 크기 전에,
마당에 앉아서 아이들에게 뽀뽀와 함께 꽃다발을 받고 싶다.
기념식과 곁들여서.
그때는 한복이든
드레스든 뭐든지 입으리라,
진행자가 요구한다면....
그러나, 그 장면은 그저 우리 어머니 아버지의 고유영역으로 남겨놓는 것도 좋겠다.
혹은 화려하게, 혹은 소박하게 그때그때 사는 모양에 따라서,
어머니날의 변천사를 겪는 것이 좀더 현실적인 바램일 것 같다.
올해의 어머니날은 마치 "긴 여행을 마친 것 같은 기분좋은 노곤함"으로 표현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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