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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나, 그리고 우리

아버지날에

<질문: 아버지로써 가장 보람있는 일, 그리고 어려움이 있다면?

 

30대 아빠 :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들을때 가장 기쁘고, 그 아이들을 훈육해야 할때 가장 어려움을 느낀다.

 

40대 아빠: 아이들이 부쩍부쩍 자라는 것을 볼때 경이롭고, 그 아이들에게 방청소를 시켜야 할때 힘들다.

 

50대 아버지: 아이들을 데리고 어딘가 가는 것이 즐겁고, 그 아이들에게 좋은 삶의 터전과 풍요로운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 어렵게 느껴진다.

 

60대 아버지: 할아버지가 되는 것이 가장 기쁘고, 내 아이들이 십대였을때 가장 힘들었다.

 

70대 할아버지: 내가 아이들의 아버지라는 사실과, 나에게 손주 손녀가 생긴 것이 기쁘고, 나의 세대는 컴퓨터가 없었는데, 아이들과 요즘의 세대는 컴퓨터 세대라 그를 이해하기가 어렵다.

 

80대 할아버지: 나의 자식들이 우리들을 봉양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 것이 기쁘고, 그렇지만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자식들에게 이해시키는 것이 어렵다.>

 

이번 주 일요일로 다가온 "아버지날(Father's Day)"을 맞아 지역 신문사에서 동네사람들을 대상으로 짧은 인터뷰를 한 내용이다.

미소짓는 아버지들의 얼굴밑에 실린 이같은 기사에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아버지가 된다는 건 어떤 것일까?

 

내 남편은 친구가 많지 않다.

골프를 치자고 사람들이 권유해도, 그럴 시간이 없다며 즐기질 않는데, 잘 치지도 못하는 나와는 시간을 맞춰서 같이 하려고 한다. 친구들보다 부인을 좋아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랬는데 어제는 전화가 왔다.

미국에 사는 친구인데 캐나다에 놀러왔다는 것이다.

나이아가라에 들렀다가, 토론토 한인타운으로 가서 신문사에 들러서 주소록을 보고 전화하는 중이라고 했다.

남편의 오래된 친구를 본 적이 없는 나는, 전화받는 남편에게 입술말로 "한번 다녀가라고 해.."를 몇번 말해줬다.

 

남편이 그에게 시간있으면 다녀가라고 말하는데, 그가 오늘 전화하겠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 이야기를 들으니, 고등학교 친구인데, 결혼을 배경좋은 부인과 하더니 친구들과도 소원해졌었단다. 남편 역시 그 친구가 결혼한 후 그를 보지 못했다고 하니, 한 20여년도 넘게 못만난 친구이다.

 

그 다음날, 일을 미루고 친구를 기다려야 하나 했는데, 그로부터 이번에는 못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딸애 때문에 바로 내려가봐야 한다는 것이다.

 

오랫만에 만나게 되는 내 친구같으면 강권해서라도 우리집에 다녀가게 했을 것 같은데, 그는 별로 그래 보이지 않았다. "그래 그러면 다음에 보자.."

 

미국 신시내티에 산다는 데, 언제 다음에 보겠는가마는 그는 그렇게 친구와의 연락을 끊었다.

 

그래서, "당신은 어떻게 친구에게 좀 무심해보인다"고 하면서 친구들이 안 그립느냐고 했더니..

"어떤 친구? 매일 만나서 술먹는 친구? 한국도 아니고,, 가정이 있는 사람이 집안 식구들이 친구지? 뭘 그렇게 친구타령하겠느냐?"고 반문한다.

 

생각해보면 결혼하고 그의 생활은 온전히 가족에게 매인 것 같다.

나와 아이들에게는 좋은데, 어딘가에서 "무심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을 것 같다.

 

다른 사람에게 인기있는 남자가 집안에서는 별로라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그래도 그런 인기있는 남자가 좋긴 하더라만), 내 남편은 밖에서는 별 인기가 없는 것 같으니, 집안에서는 꽤 괜찮은 사람임에 분명하다.

 

신혼때 그를 보고 놀란 일은 밥통에 밥이 많이 남지 않았으면 꼭 밥을 해놓았다는 것이다. 데이트할때, 집에 들어가는 내 차를 주유소까지 따라와서 꼭 기름을 채워넣어주었던 것이 생각난다. 부족함을 채우는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그에겐 있다.

 

아이들과 나에게 필요한 것은 말하자마자 바로 해결하려고 하니, 나는 한참을 기다렸다가 그때서야 말한다. 생각해볼 것도 없이 통과니, 내안에서 잘 걸러서 그에게 통고해야 실수가 없다.

 

결혼하기전에 내가 그에게 주지했던 것은, 나에게나 아이들에게 군림하는 권위에 빠진 남편이 아니라, 친구같은 남편, 아빠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그 약속을 너무 잘 지켜서 아이들에게는 엄마는 무섭고, 아빠는 무엇이든 들어주는 친구가 되어있다.

 

아이들을 "스포일" 시킨다고 가끔 짜증내지만서도 부모중 어느 한쪽 따뜻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면 그가 그 일을 감당하고 있는 셈이다. 가끔 책에서 읽듯이 아이들에게 마음에 깊은 감동을 주는 생전 잃어버리지 않을 권위있는, 보석같은 충고를 주는 아이들의 아빠를 상상해보기도 하지만, 그건 어쩌면 너무 큰 기대일지도 모른다.

 

얼마전에는 막내가 등허리가 아프다고 아빠에게 침을 맞겠다고 했다. 가방을 메고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가다가 가방속에 판판하게 들어가지 못한 바인더가 등어리를 쳐서 멍이 들었던 것 같다. 10살짜리 꼬마가 학교에서  오면서, 아빠에게 침을 맞으면 좀 괜찮아지려나 생각했다는 것이 얼마나 귀여운지..

 

그날 막내는 침을 맞고, 아빠에게 댓가로 몇번의 뽀뽀를 해줘야 했다.

 

또 어제는 둘째도 팔이 아프다고, 아빠가 보시면 어떨까 하면서 나에게 물었다. 막내에 이어 둘째까지 동양 치료법에 무언가 있다고 믿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면 신기하다.

 

요즘 남편은 인터넷으로 침공부를 시작했다. 이병국 교수가 강의하는 침코리아의 전과정을 등록해서 공부하고 있는데, 나조차도 남편의 실력이나, 신념이 아주 강해지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된다.

 

토론토에서 놀러왔던 언니는 공장일을 하는지라 너무 노동강도가 높아서 그런지, 매일 저녁 "쥐"가 난다고 하였다. 남편이 정성껏 며칠 침을 놔주었더니 한 10년된 그 증세가 나타나지 않았다. 요즘은 다시 도졌다고는 하지만, 남편의 적극적인 침술방법이 통하기 시작한 것 같다.

 

물론, 아이의 학교 선생같이 한 두번 맞고 호전되지 않는다고 하는 환자들도 있어서, 좀 무안한 적도 있지만, 하고있는 일을 즐거워하고, 열심히 하니 나도 우습게 보던 침을 조금씩 다른 각도에서 보게 되기도 한다.

 

남.자.는.

일을 해야하는 것 같다.

그것이 돈이 되든 안되든, 무언가 열심히 하는 것이 그를 남자답게 만든다.

 

나의 가까운 사람중에도 결혼생활에 파탄을 맞은 사람들이 있다. 그 남편들의 대표적인 공통점은 "일"을 열심히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른 많은 문제가 중첩되어 있겠지만, 일을 피해서, 요행을 바라면서 사는 사람들은, 어떤 것도 제대로 이룰 수 없는 것 같다.

 

하나님께서 남자에게 명하신,

네가 땀을 흘려야 수고한 결실을 먹을 수 있으리라는 말은...

그것에서부터 남자의 길이 시작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게다.

 

열심히 일하는 남편옆에서 보조하는 일은 즐겁다.

 

남편은 예전부터 잡곡밥을 선호해왔다.

그를 맞춰주지 못했었다. 최근에 남편의 책중에서 "잘먹고 잘사는 법"이란 책을 읽고,

잡곡밥등, 가족의 건강을 책임진 주부의 사명을 되새기게 됐다.

 

요즘은 잡곡밥을 곧잘한다. 잊지 않고 담가놓는 것이 가장 중요하므로, 조금 일찍 생각하기를 실천중이다.

 

김치빼고는 나의 음식을 좋아하는 남편때문에 엄마(장모)에게 큰소리로 김치를 사양하지 못하는 나는, 그를 잘 먹이는 한편, 그의 친구가 되주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이다.

친구들이 많지 않은 그를 "샌님"이라고 나조차 흉보지 말고, 때가 되면 그에게도 많은 친구들이 생기리라고 믿으며, 친구가 부족한 그에게 다중의 캐릭터로 몇사람분의 친구노릇을 하기 위해서 연구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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