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다는 아니었습니다.
한 15% 정도 보신거죠.
교회 여섯군데, 식품점 3개, 식당3곳과, 가구점까지..
인구 1천명의 마을에 너무 많은 공공장소가 있다고 생각하신 게지요?
그러게 숫자의 비밀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이렇게 따지듯이가 아니라,
이해안되는 것들을 조근조근히 설명드릴라고 했지요.
전화온 날,
마치 도시에서 두메산골로 전화하듯이 목소리를 높이시며
한번 오시겠다고 했을때부터 얼마나 기뻣는지.
그러니까 결혼 12주년 기념때 뵈었으니
3년전쯤 되는군요.
너무 멀어 오랫동안 딸네집에 못온 친정부모 기다리듯,
마음이 설렜습니다.
아무런 것도 준비하지 마라.
김치와 불고기 가져간다,고 다시 전화걸어서 남편에게 말씀하셨다지요.
15년전에 뵐때 그때처럼,
두분은 소꿉장난하는 신혼부부같은 냄새가 납니다.
자 처음부터 시작할까요?
이민와서 2주만에 교민신문사에 취직했고,
눈꺼풀도 제대로 떠지지않는 직장에서의 일이 얼마나 낯설었는지.
어느날이던가,
한인여성회 취재를 가게 됐습니다.
그곳서 만난 당시의 여성회 회장님.
가물거리던 눈꺼풀이 한꺼번에 번쩍하면서 떠질만큼, 강렬했습니다.
"똑 부러지던" 회의진행과 그 선진적인 내용이 먼 이민의 땅에
한국의 보석같은 여성들이 반짝이고 있는 것 같았지요.
그때 단단히 닦아놓은 기초가,
여러 단체가 다툼과 행정미숙으로 불안한 데 비해,
2세 여성회 회장을 탄생시킬 정도로 성숙했다지요?
시원한 눈매가 인상깊던 이선생님과의 만남이
남편을 소개받는데에 이르고...
아이들에게 "매치 메이커"- 너희들의 젊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온다고 했더니
아이들이 실실 웃습니다.
"매치 메이커"가 자주 쓰이는 살아있는 단어인지조차 의심스러운, 정말 고리타분한 결혼의 방식아닌가요?
이번에는 시인 이선생님 차례입니다.
아마도 결혼전일 겁니다.
교민신문사 편집실은 기사가 탈고되면서, 본문글씨는 청타라고 불리던
식자방법으로 뽑아내고,
제목등 큰 글씨만 사진식자를 거쳐서 활자화됐지요.
그러면 기사를 오려 뒷면에 왁스(풀)를 발라서,
큰 신문판형만한 뻣뻣한 도화지에 붙이게 되는데, 이 과정을 "편집"이라고 불렀습니다.
신문3면의 왼쪽 하단은 고정적으로 <오늘의 시>라고 해서(일주일에 한번이었던가요?)
교민시인들의 시를 붙이는데,
어느날의 시 한편이, 저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왁스냄새가 풍기는 신문사 편집부의 자잘한 소란이 일시에 정지된 것 같은 느낌이었달까요?
그러게, 사람들이 좋은 시를 만나면
그 시를 베껴서 외우기도 하는 이유를 알것 같습니다.
지금 아무리 생각하려 해도,
그 내용이 떠오르지 않지만, 그 시에서 받은 영감은
나에게 또다른 청신호가 되었습니다.
"훌륭한 시인이 살고있는 곳이 내가 살아갈 캐나다"였단 말이지요.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시인이 우리 부부의 중매자되신 이 선생님의 남편이었다는 사실..
정말 두고두고 우려먹을 수 있는 행운의 이야기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부쩍 큰 아이들 때문에 신나하신 두분과
나물 위주의 점심을 함께 먹은 다음,
시간이 많지 않으니, 어디 동네라도 산책하는 게 어떠냐고 물어오셨지요.
산책하면서는 여행이야기를 주로 했지요?
트레일러 공원에 많은 미국인들이 여름마다 놀러온다고 소개하자,
왜 미국에 이만한 풍경이 많을텐데,
매년 놀러오는지, 호기심을 보이셨어요.
사실, 듣고보니 그 점이 이상하긴 하더군요.
여행을 다녀보니, 좋은곳 멋진곳만 찾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나쁜땅"을 골라 그곳에서 캠핑하는 이들도 보았다고,
우리가 모르는 어떤 문화가 이 사람들에게 있는 모양이라고 결론을 지었던가요?
대륙횡단을 두분이서 하셨다는 이야기에, 며칠간이었냐고 묻자,
"3주가 넘었지."
"아니야, 여보. 4주가 채 안됐어." 하신 뒤끝에
"글쎄, 우리는 이러면서 싸운다니까, 똑같은 말 가지고.."
하셔서 또 한바탕 웃었습니다.
여행전에 만반의 준비를 하신다는 시인과,
그 시인의 촉망받는 학생이신 그의 부인,
1달 동안 차를 타고 돌아다니셨을 두분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즐겁습니다.
다음에는 젊은 두 학생도 포함시켜 주시면 안될까요?
집을 나와 산책로를 돈 것이 1시간이 훨 넘었지요.
15%라고 한말이 바로 그것입니다.
강 줄기를 따라서 한바퀴 돈 듯하지만, 그건 우리 동네의 일부분일 뿐입니다.
두분께 더 많이, 더 멋진 곳을 보여드리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말하자면 강이 내려다보이고, 야생화가 지천이고, 파란 잔디가 강처럼 흐르는
뚝방길로 우리가 가지 않았고요,
아이들 학교가는 길쪽으로 오래된 집들이 나무들에 묻혀있는 뒷길도 가지 않았지요.
그것뿐인가요.
내가 좋아하는 호수마을에 가서
숨을 턱 막히게 하는 아름다운 비치도로옆에 차를 세워놓고 걷다가,
언덕위에 올라앉은 벤치에 앉고 서고 하여, 긴 호흡을 하면서
많은 이야기들을 호숫가에 날려보낼 수도 있었을텐데요.
그 다음날 기회가 되어 혼자 호숫가에 갔습니다.
여름의 성성한 절정기를 눈앞에 둔 백사장에서
고요하게 몸을 뉘이고 있는 모래들을 밟아주었습니다.
또 가만히 앉아서 먼데 눈길을 주니,
큰 갈매기들의 비행에 가려, 시야에 들어오지 않던
작은 새들의 방정맞은 날개짓과,
노을이 지는 모래벌판에서 갈매기를 쫓으며 돌아다니는
부녀를 볼수 있었습니다.
이런 풍경들이 시인의 눈에는 어떻게 보였을까요?
하늘과, 물과, 땅과 사람들이 말입니다.
.
.
.
두 분을 알게 된 것이 얼마만한 축복인지,
저는 오늘도 뻐기고 싶어서 이렇게 너스레를 떨고 있습니다.
'부루스 카운티 산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쟁이"들의 고장--페이슬리? (0) | 2005.08.24 |
---|---|
나의 산책길 (0) | 2005.08.03 |
캐네디언 라이프 (0) | 2005.05.24 |
추운 주말이었지만 (2)..경매 (0) | 2005.04.07 |
추운 주말이었지만(1).. 메이플시럽 페스티발 (0) | 2005.04.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