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부루스 카운티 산책

"쟁이"들의 고장--페이슬리?

몇해전에 생긴 “Paisley Art Walk”이 지난주에 있었다.
말하자면 “페이슬리-예술의 거리” 행사라고나 할까?

 

“ART”와는 상관없지만, 남편도 주최측의 권유로 매년 참가해오고 있어서 조금 더 깊게 들여다 볼 기회가 되었다.

남편이 하는 일은 “한의학”이지만,  페이슬리 아트 워크가 처음에는 “건강”을 주제로 모였다가 변형된 것이어서 그때부터 연관있어온 “침”이 들어가게 된 것도 같다.

 

어쨋든 동네에는 이런 저런 모양으로 제 분야를 가꾸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또한번 발견했다.

 

남편에게 매주 침을 맞으러 와서 “환자”로만 알고 있던 “앤”은 바위조각에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였다. 매번 부인을 따라와서 함께 있어주던 할아버지는 그녀를 보조해주는 예술품을 태동하게 하는 원동력이었고.

 

이들 부부는 바닷가에 가서, 판판한 바윗돌을 캐온다. 몸이 약한 부인이 할 수 없어서 남편이 그 일을 하며, 부인은 그 판돌에다 그림을 그린다. 그 그림은 주로 야생동물들로, 그 동물들을 발견하면 사진을 찍는 것은 또 남편의 일이라는 것이다.

 

남편인 할아버지가 근사한 큰 사진기를 가지고 있어서 사진예술가냐고 물어보았더니, 취미로 하고 부인이 밖에서 동물들을 미처 다 그리지 못하기 때문에 사진을 찍어서 나머지는 집에와서 작업을 한다고 했다.

돌을 캐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어서, 무척 큰 돌이 나중에는 아주 작게 부서져서 속상할때도 많다고 한다.

 


 

앤의 작품.. 새와 풍경등 자연을 소재로 한 것이었다. 재료는 바위조각.

 

 

앤은 나와 이야기하다가 너희집에도 그림을 좋아하는 아이가 있느냐, 미술도구를 본 것 같은데 하면서 묻는다. 나는 막내가 좋아해서, 제방에 회사를 만들어 놓고 만화를 그려 복사해서 친구들에게도 팔고, 친척언니에게도 판다고 소개했다.

 

미리는 A4용지로 앞뒤 10장도 넘는 그림을 그려서 이를 묶어 책을 만들어서 친구들에게 50센트씩 주고 파는데,(그 돈은 종이값도 안된다..,방학중에는 25센트로 세일판매를 하기도 했다) 그 책의 시리즈가 이제 꽤 모아지고 있다. 남편과 나는 미리의 회사가 커질때(?)를 생각해 그 이익금을 겨냥하고, 잘 안쓰는 복사기를 기부하기도 했다.

 

어디를 갈때도 종이와 연필을 챙기는 미리이야기를 하다보니, 오늘 같은 날 미리에게 이런 예술가들의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집에 와서 막내를 데리고 다시 갔다.

 

앤은 미리가 그린 만화를 주의깊게 봐주고, 재미있다고 웃어주고, 자신의 그림과, 그림을 그리는 도구들을 소개해줬다.

미리는 시종 아주 부끄러운 얼굴로 열심히 듣고, 앤과 헤어질 때는 “조언을 줘서 감사하다”고 깍듯이 인사했다.

 

앤의 작품옆에는 아주 시골스런 정경을 그린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다. 평면에 타원형으로 볼록한 볼륨을 준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자니, 작가가 나타났다.

 

“그게 조금 신기해 보이는가” 묻더니,
가운데는 사진이고 타원형 옆으로는 그림을 그린 것이라고 했다.
입체적으로 보이면서 사실적인 느낌이었던 게 사진과 그림을 합성해서 그런가 보았다.

그는 옆 마을에서 그림도 그리고, 옷에 자신이 그린 그림을 박아서 인쇄도 해주는 비지니스를 하고 있다고 명함을 주었다.

 


 

왼쪽 위 두번째가 사진과 그림의 합성작품..

 

맞은편에는 그래도 그동안 나와 많은 말을 나눈 잰의 판화가 걸려있다.
잰은 지난 10년간 “배”를 타고 다니며 생활을 했는데, 배안에서 하기 좋은 작업이라고 자신의 목판화를 소개했다.

한국의 목판화가 생각나는 작품들이 많다. 나무를 파내고 물감으로 찍어내고, 그 위에 색을 덧칠한 것 같다.

 

학교에서 아이들 미술시간에 보조교사로 봉사하던 그녀는 나의 둘째딸 루미를 잘안다. 요즘에도 하냐고 물어보니, 건강도 안좋고, 교장이 바뀌어서 그런저런 이유로 봉사활동을 접었다고 한다.

 

잰은 “암”과 투병중이지만, “암”과 아주 친한 친구처럼 이야기해서 조금 놀랐다. 내 몸안에 어딘가 남아있겠지만,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고. 지금은 “슁글(shingles, 대상포진)이 와서 얼마나 아픈지, 침치료를 받아볼까 고려중이라고 했다.


잰은 “지루한 병이야기”를 해서 미안하다고 병약해보이는 얼굴로 웃으면서 말한다. 그래도 자신의 예술작업을 쉬지않고 하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짠하다.

 


자화상으로 보이는 목판 인물화가 있고, 자신이 목판화를 하게 된 경위와 목판화가 중국에서 처음 시작되었다는 설명이 있다. 한국에서 먼저 시작된 건 아닐까?

 

그녀의 작품옆에는 바이올린을 만들어파는 첼로이스트 “쉬빌”이 있다. 그녀와  그녀의 남편은 직접 나무를 자르고 긁어내서 바이올린을 만든다. 여러가지 방법을 동원, 어떤 것이 좋은 소리를 내는지 시험해본다고 한다.  그녀의 가족 구성원 모두 음악가여서, 동네의 또다른 자랑거리가 된다.

 

그런데, 쉬빌을 볼때마다 혹, 그의 가족을 볼때마다 음악은 “귀족적인 예술”이라기보다는 “조용하며, 소박하고, 온화한 서민같은 예술”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내가 음악에 걸어놓은 잘못된 스테레오 타입을 정정하게 만드는 사람들이다.

 


 

바이올린은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다.

 

이날 남편은 한 5명에게 부황을 떠줬다.
침은 시간이 많이 걸려서 부황을 소개하기로 했는데,  이 집 여주인 헬렌을 비롯한 방문객들이 그의 부황치료를 받았다.

 

남편은 비서로 나를 데려왔는데, 비서가 남편 하는 일은 거들지 않고, 엉뚱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영 어정쩡해 보였다.

 

너무 사용해서 나달나달해진 퀼트 이불도 예술품으로 전시되어 있고,  연철 조각품 등이 곳곳에 걸려있는 이곳은 “Nature’s Millworks”(자연 방앗간)라는 곳으로 이 장소 자체가 예술적이다.

150여년전에 세워진 방앗간, 그동안 30여년간이나 비워져있던 것을 은퇴 교수 부부가 사서, 고치고 다듬어서 이번에  공공장소로  이용했다.

 

5층 건물인데 이번 전시를 위해 손을 본 것이 2층이고, 2층 곳곳에는 예전에 방앗간에서 사용했던 오랜된 나무 도구들이 그대로 붙어있다. 시멘트 문화와는 비교할 수 없이 나무가 사람에게 주는 안정감이 그대로 전해져 온다.

 

1층엔 이들 부부의 기념품가게가 있는데, 이 가게에서 파는 것도 동네 예술가들의 작품들이며, 시중에선 볼 수 없는 것들이 즐비하다.

 

 


 

 


 

"자연 방앗간"에 기념품으로 전시되어 있는 작품들.. 가격이 싸지는 않다.

 

나는 “방앗간”에서 진행되는 예술품과 예술가만 만났지만, 팜플렛을 보니 사진을 전시하고 있는 곳도 있고, 카누 가게에서는 카누와 노를 어떻게 손으로 만드는지 사람들에게 보여준다고 되어있다.

 

발 맛사지사도 자신의 가게를 열어놓고, 원하는 누구에게나 서비스를 베풀고, 나무 조각도 “홈 하드웨어” 가게에 전시되어있고, 스테인드 글라스를 하는 사람, 파이프를 불고 다니는 전직교사, 케잌과 초코렛 만드는 사람은 자신의 작품을 “비누가게”에 전시하고 있었다.

 

또한 “아이비 티룸”이라고 차를 파는 가게에서는 음악가가 생음악을 연주하고 있다며 사람을 부르고 있다.

 

온 동네 사람들이 가게 문을 활짝 열어놓고, 무엇을 하는지, 어떻게 하는지, 왜 하는지 보여주는 “예술의 날”. 사진을 찍고 액자를 만들어 걸어두었다는 요즘 문을 연 “맨디”의 가게에 가고 싶었는데, 웬지 모를 피로함으로 그냥 생각만으로 떼웠다.

 

어쨋거나 페이슬리의 사람들은 아주 조그마한 것도 보여주고, 자랑한다. 전문 예술가들은 아니지만, 그래도 예술의 이름으로 그들은 열심히 자신들의 작품을 업그레드하고 나눈다.

 

 “The Heritage Village of  Paisley”.

 

페이슬리를 소개하는 책자에는 언제나 들어가는 “헤리테지 빌리지 페이슬리”라는 말은 이곳이 독특한 문화유산을 간직한 마을이란 뜻이다.


문화유적지(Heritage)라고 하면, 대단한 문화유산이 있어야 할 것 같지만 150년에도 못미치는 역사에서 얼마나 대단한 문화유산이 있겠는가.

 

그래도 이렇게 오늘과 어제, 그리고 내일의 예술가들을 보호하고 존중하는 분위기, 그걸 말하는 것이라면 페이슬리가 헤리테지 빌리지로 불려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부루스 카운티 산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싱거운 숙원사업  (0) 2005.09.11
노을지는 하늘 한토막  (0) 2005.09.05
나의 산책길  (0) 2005.08.03
오래된 인연  (0) 2005.05.28
캐네디언 라이프  (0) 2005.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