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 글로브상 남우주연상에 리차드 기어가 받았다는 기사를 보았다.
영화광도 아니고, 더군다나 영화제에 대한 관심도 없는 내가, 리차드 기어를 보면서,
생각나는게 있다. <부정>에서 바람난 아내의 남편역을 한, 침울하다못해 암울한 표정의 그,,, 그 덕분에 한번 몇편의 영화를 되집어보기로 한다.
** Unfaithful(부정)**
한국말로 하면, <부정>이 되려나, <불륜>이 되려나.
부인과 아이를 위해 온몸을 바쳤던 중년남자에게 다가온 아내의 부정.
고뇌와 분노로 결국, 아내와 정을 나눴던 총각을 죽이고 그의 시체를 쓰레기더미속에 파묻어버리고 돌아온 남편.
어두컴컴한 부엌의 조명아래서, 나이트가운을 걸친, 간신히 일상으로 돌아온 아내가, 남편에게 묻는다.
“What did you do?”
그가 되묻는다.
“What did you do?”
부러울 것 없는 평범한 상류층의 일상을 지내던 여자, 바람부는 뉴욕거리에서 갖게된, 묘한 만남. 그 만남의 유혹에 빠져들면서 욕정에 휩쓸리는 가녀린 여자로.
그 끝이 이렇게 참혹하게 끝난다.
<부정>은 <바람>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현실에 안주해서 살고있는데, 갑자기 불어닥친 바람. 과연 <바람>으로 몰아쳐도 될까? 그 많은 비극을 거치면서 그 여자의 머리에 오버랩되는 광경이 있다. <바람>불던 날, 그 청년이 권하는 대로 그 집에 들어가서 차를 마시지 않고, 택시를 타고 집에 왔더라면. 그랬더라면 그런 모든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바람>에 맞서기에는 그 여자가 너무 약했다.
<바람>의 냄새를, 색깔을 알아내야 한다. 그녀는 바람이 불기전 이미 무너져있었다
**in the bedroom(침실안에서)**
이 영화도 인생에서의 한번의 어긋남이 얼마나 큰 댓가를 치루게 되는지 보여준다.
의사와 여학생들의 합창지휘자인 부부의 외동아들이 아이가 둘 있는 여성을 사랑하게 된다.
아들은 이제 칼리지를 가야할 나이.
품위있는 가정의 방식대로, 그의 아들을 강압적으로 제어하지 못한다.
아들이 복잡한 그 여성의 가정사에 얽히면서, 이혼정리가 안된 그 여성의 남편에게 죽임을 당하게 된다. 그것만으로도 비극의 끝인 듯한데, 재판에서도 범죄를 입증하지 못하고, 내노라하는 지성인이고 점잖았던 이 부부의 관계에도 간격이 생기기 시작한다.
결국 그 의사는 친구와 협력하여 아들 살해범을 직접 죽이고 그를 파묻어버리는 범죄를 행하게 된다.
처음에는 아들의 의사를 존중해서, 그를 방임한 것이 온 가족의 파멸을 자초한 결과가 된다.
**Riding in the with boys(남학생과의 동승)**
드류 배리 무어의 주연작품이다.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드류는 15살에 임신을 하게 되고, 경관인 아버지의 마음을 상하게 하면서 결혼을 초고속으로 하게 된다.
천진난만한 그녀가 아줌마가 되는 이야기, 마약중독자인 남편,,,
몸부림치며 살기를 노력하나 수많은 벽들.
이야기는 아들이 엄마(드류)의 남자친구처럼(차이가 많이 나지않으니..) 클때까지 이어진다. 글쓰기를 좋아했던 드류 배리무어가 자신들의 이야기가 담긴 노트를 들고, 아들과 함께 옛남자를 찾아간다. 책의 출간을 위해서는 책발간후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그 남자의 서명이 필요했으므로. 그러나 돈냄새를 맡은 옛남자의 여자친구가 출간되지도 않은 책을 담보로 많은 돈을 요구하고. 드류 배리무어는 옛날부터 꼬인 제 인생이 마지막 빛을 보는 순간까지도 장벽이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래도 양심이 살아있던 옛남자가 훌륭하게 커있는 아들에게 도장을 넘겨주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이난다.
한번의 실수로 인생의 온갖 굴곡을 겪어야했던 드류 배리무어의 인생이 가슴찡하게 다가온다.
**The Good Girl(착한 여자)**
브래드 피트든가? 잘생긴 남자배우와의 결혼식에 1백만달러를 탕진해서 내 눈밖에 났던 제니퍼 애니스튼이 주연한 영화이다.
파란눈의 애니스튼이, 결혼생활의 권태와 밋밋한 일상에서 헤매다가 같은 가게에서 일하는 젊은 청년을 만난다. 그와의 불장난. 남편의 친한 친구에게 들키게 되고, 전부터 친구의 부인을 사모하던 그는 애니스튼에게 한번의 잠자리를 요구하게 된다. 입막음에 대한 댓가로. 처참한 창부같은 신세로 전락하게 된 애니스튼은 결국 풀어진 망아지같은 젊은 청년이 가게에서 돈을 훔쳐내, 같이 도피행각을 벌이자는 요구를 받게 된다.
오랫동안 기다리던 아기가 들어섰지만, 건강하지 못한 남편의 정자 판정, 누구의 아이인지 모르는 상태. 결국 애니스틴이 선택한 길은
애니스튼은 지루하지만 선량한 남편과 아이를 키우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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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영화에 대한 기대감이 많지 않았다. 그러나 감각의 중추부분을 건드리며 다가온 명작들은 아니나, 흥미와 교훈을 함께 담고있는 그럴듯한 영화들이어서, 즐거웠다. 또한 이 영화들이 갖고있는 공통점이 너무 신기해서 한번 정리해보고픈 생각이 들었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일탈했다는 것.
한번쯤 일어날 수도 있을 것 같은 작은 사건들이 의외의 큰 사건으로 확대 재생산돼, 돌이킬 수 없는 비극으로 전환되는 과정.
본인들은 사랑이라고 믿은 그 사랑의 허상.
<부정>의 청년도 객관적인 시각으로 보면, 놈팽이에 가깝다. 그저 여자의 욕정과 자신의 욕정밖에 채우지 못하는. 리차드 기어가 내리치는 장식물에 피를 흘리며 인생을 마감하는 쓰레기같은 사람으로 등장한다.
<착한 여자>에 나오는 젊은 청년도 정신과 치료를 받고있는, 과대망상증환자에 지나지 않는다.
<남학생과의 동승>에 나오는 그도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선량하지만 의지력없고,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마약중독자일뿐이다.
<침실안에서> 외동아들을 죽이는 여자친구의 전남편도 파렴치한이다. 제 부인의 남자친구를 총으로 죽이고 컴퓨터의자에 앉아서 마우스를 만지는..
인간관계에서 주목받지 못하고, 책임의식이 없으며, 다른 사람의 행복에 관심없는 그런 이들에 의해 인생이 좌지우지당한다. 그런 것을 보면, 끔찍하다. 우리 사회가 고루고루 한사람 한사람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생각이 난다. 모두의 안녕을 위해.
<가족이기주의>라는 말을 생각해본다. 결혼하기 전에는 그말의 무게에 많이 눌렸었다.
친구중에서도 <가족이기주의>가 싫어서 결혼을 생각하지 않았다는 이가 있었다. 물론 다행이도 결혼했지만.
그만큼, 우리 시대에는 <가족이기주의>라는 말이 빈번했다. 삐딱한 반골기질이 대접받던 그때, 마치 몹쓸 유전병처럼, 제 가족만 생각하는 여자는 <사회의 지탄을 받아도 지당>하다는 말이 포함된 듯했다.
이 사회의 기본이 <가족>이며 그 가족을 건강하게 지키는 것만이 결혼한자의 소명이란 것에 대해선 많은 주지를 받지 못했다. 가족을 갖게 되어도, 제 가족만 신경쓰는 나쁜 사람이 안되야 하는 것부터 배웠다는 말이다.
최소한 내 가족이라도 잘 살아야 한다는 신념은 <이기주의>로 싸잡아 낮은 점수를 줄 것이 아니라, 사회가 존중해줘야 할 것이다. 이런 건강한 가정이 건강한 사회를 형성하는 것은 너무 쉬운 이치가 아닌가. <가족사랑>이 도를 넘어 <이기주의>라는 골목으로 회전하지만 않게 말이다.(그럴것같지 않지만)
<일탈의 유혹>에서 스스로를 지키는 방법도 <가족>밖엔 없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