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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책속으로

휴 캐나다>!!

엊저녁에 이상한 영화를 봤다.
무척 진지하고, 생각할 거리가 많은 듯한 영화였는데,
실상은 동성애를 교묘히 그려낸 작품이었던 듯싶다.
"The Hours"라는 제목인데, 다른 영화와는 달리, 포장에 어떤 설명도 나와있지 않다.
다만,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세 여자의 사진과,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니콜 키드먼이 여우주연상을 탔다고 써있다. 언제 수상한 것인지, 그것조차 나와있지 않으나, 이 영화가 최근에 출시된 것으로 미뤄봐, 작년쯤이 아니었을까 싶다.


시대가 다른 세 여자가 등장한다.
1920년대, 영국의 작은마을…
1960년대, 미국의 로스엔젤레스..
2000 년대, 미국의 뉴욕 한복판…

세 여자를 둘러싼 이야기의 전개방식이 특이하다.

첫번째 니콜키드먼이 연기한 그 여자(버지니아)는 작가다. 그 옛 시대의.. 자신을 사랑해주는 남자옆에서 정신과치료를 받으면서 글을 쓴다. 그녀는 단 한순간도 행복한 적이 없다. 왜냐면, 아주 작게 보여주지만, 그는 여자를 사랑했다. 단 한번 보여주는 입맞춤. 그녀는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자신을 사랑했던 남자에게, “당신의 삶을 더이상 유린시킬 수 없다”며.

니콜 키드먼이 쓴 소설을 읽는 이로 등장하는 두번째 여자, 줄리앤 무어. 그녀는 4살쯤 되어보이는 남자아이와, 자상한 남편, 그리고 뱃속에 든 아이가 있다. 그녀의 삶은 평온해보이지만 그녀의 정신속은 황량하다. 그녀 역시, 여자친구의 방문을 받고, 그녀의 이야기를 듣다가 그녀와 깊은 입맞춤을 한다. 그러곤, 남편의 생일날 자살하러 호텔에 들른다. 니콜 키드먼이 쓴 소설과 이 여자의 이야기가 소설이 현실화된양, 내용이 중첩되고, 상황이 반전된다. 줄리앤은 자살충동을 접는다.

에이 아이 디 에스(AIDS)에 걸린 남자친구에게 헌신하는 세번째 여자로 머릴 스트립이 나온다. 시인이자, 최근에 난해한 소설을 완성한 남자친구를 위해 파티를 준비중인 그녀도 여자 친구 쉘리와 공동생활하고 있다. 아버지를 모르는(아마도 자궁내 수정으로 잉태한듯) 딸이 결혼적령기가 되어있다.
옛 친구들을 초대하고, 꽃을 준비하고,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남자친구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몰골이 흉칙해진 남자친구는 파티 당일날 “나는 당신을 위해 살아줬다. 이제는 나를 놓아줘라”며 창문으로 떨어져 죽는다.
파티는 갑자기 장례식으로 바뀌고, 남자친구의 어머니가 찾아온다. 그는 바로 두번째 주인공으로 등장한 줄리앤 무어이며, 그때 4살났던 아들이 AIDS 환자로 살다가 죽은 그 소년이었다. 소년의 엄마는 뱃속에 있던 아이를 낳았고, 아이들을 일찌기 버리고 가출했었다. 쪼글쪼글 늙은 그녀. 가장 긍정적으로 그려진 머릴 역시 같이 살던 여자친구 쉘리에게 깊은 입맞춤을 한다. 진정한 사랑이 그곳에 있는 듯.

내용을 통틀어서 정리해보자.
이 영화에서 세 여자들은 불행한 삶을 산다. 다정한 남편, 아이까지 있지만, 마음의 쉼이 없다. 그것이 제대로 된 사랑을 하지 못했기 때문인듯 싶다. 각 인물별로 단지 한번씩의 입맞춤으로 동성애자임을 보여주지만, 그것이 전삶을 파괴시킬 만큼 고통스럽고 큰 부분이다.


요즘, 캐나다가 시끄럽다. <동성애자 결혼법안>이 통과한다는 내용이다. 이미 <불법>의 단계를 넘어섰고, <결혼 라이센스>가 동성애자 부부에게 발급된다고 한다. 대법원에서의 해석과 법제정의 문제가 남아있는지.

인권을 존중한다는 나라 캐나다의 가장 큰 실수가 될 것 같다. 동성애자들은 <자랑스런 내 조국 캐나다>라고 방방뛰고 있다지만, 인간의 배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염려스럽다.

동성애를 나서서 찬성하던 한 국회의원은 “가족중에 동성애자가 없는 이들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면서 “이들을 양지위로 끌어올려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 말을 들으면, 도매금으로 넘어가 억울하기도 하지만, 정말 그정도로 확산되어 있는지 의문이다.

사랑에 실패한 사람들이, 어쩌다 마음맞는 동성을 만나, 그것이 <진짜 사랑>인줄 착각하고 있는 것 아닐까? 내 좁은 소견으로는, 인간안에 그런 <동성애>적인 사람이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이들은 아이들(아마 입양인듯)도 양육하고 있다. 때문에 <아빠> <아빠>가 있는 가정, <엄마> <엄마>가 있는 가정들이 생기게 되고, 법까지 바뀌면 이제 초등학교 교과서까지 <결혼>정의를 달리해야 한다. 염려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이 남자를 위해 여자를 돕는 배필로 지으시고, 가정을 이루라 하셨는데, 만면에 행복에 겨운 웃음을 짓고 어깨걸이하고 찍은 <동성부부>들이 자주 신문에 등장하더니만, 결국 이런 웃지못할 결론으로 치닫는다.

국회의사당앞에서 통성기도로 반대의사를 외치던 종교계 지도자들의 사진도 실렸지만, 뱅쿠버의 영국성공회 신부중에 <동성애>자가 임명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으니, 갈수록 태산이다.

오늘 목사님은 설교중에 <하나님을 우리 삶에서 몰아내는 우리들, 어떻게 은혜를 갈구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한 빌리그래햄 목사의 딸의 인터뷰 내용을 인용하며, 이제 더이상 가 아니라며, 국회에 <동성애 입법안>에 반대편지를 보내자고 당부하셨다.

<인권이 살아있는 나라>, <교과서적인 나라>라고 내가 존경했던 나라 캐나다가 이렇게 너무 <인간이 중심이 되어있는, 앞질러가는 나라>까지는 되지 않기를 기도해야 겠다. 도덕이 살아있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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