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소리를 만났다.
그녀를 처음본 것은, "TV는 사랑을 싣고"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다.
잘나가는 배우라는 진행자의 소개를 듣고 그녀의 직업을 알게됐다.
혹시 그전에 굴러다니는 주간지에서 그녀의 이름석자를 봤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쨋든 공식적인 일면식은 그 프로를 통해서인 듯하다.
그런데, 참 많이 달랐다.
눈썹조차 제대로 다듬지 않은 것같은
시장에서 만나는 그런 느낌의 여성이었다.
자연스러운 것이 아름답다는 것을 그를 통해 알게 됐다.
연한 핑크색 드레스로 약간은 야시시했지만,
그것까지도 그 사람의 취향으로 여겨주게 됐다.
초등학교때 담임선생님을 찾는 그 프로에서
등장한 당시 교사는 처음 문소리를 보고
"그때하고 똑같구나"라고 말했다.
그말에 문소리는 "예. 아무것도 안고쳤거든요"하고
맞받아치고.
여자 연예인중에는 왜 그리 어색해보이는 이들이 많은가했더니
고쳐서 그렇다는 걸 고치지 않은 문소리를 보고 알게 됐다.
어느날 남편이 한국식품에서 <오아시스>라는 영화를 빌려왔다.
정신박약아로 나오는 문소리는,
비뚤어진 연기를, 정말로 팔푼이처럼 해냈다.
웬만한 배우들이 침을 질질 흘리는 그런 역을
좋아라 하지 않았을 것 같다.
설경구의 인상적인 연기와 맞물려 서글픈 영화를 찍어냈다.
장애인들이 살기에 너무나 때가 묻은 그런 사회가 사실적으로 그려졌다.
양심이 더럽혀진 중년부부들을 보면서,
또 마음이 편치 않다.
그 다음에 그녀를 다시 본 것은 <바람난 가족>이라는 영화를 통해서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변호사지만, 이미 바람난 남편,
그리고 암 선고를 받고도, 의사의 말은 귓등으로 듣는
제멋대로인 시아버지,
새 남자친구를 사귀며 절정을 느낀다는 시어머니와
입양아를 키우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문소리가 나온다.
남편은 이미 진하게 바람난 상태이고,
그 사실적인 성행위와 언어들이 섬찍하다.
윤리와 책임에서는 이미 멀어져버린 남편,
그의 파렴치로 인해 마음을 통째로 주던 아들을 잃고..
그녀는 이웃집에 사는 문제아 고등학생과 성접촉을 한다.
완전히 바람난 가족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곳서도 문소리의 연기가 주목된다.
테이프가 몇번 연속 녹음하여 상태가 안좋은 점도 있었으나,
문소리는 이쁘게 보이려고 노력하지 않는 게 분명하다.
극의 흐름을 읽고, 그 글에 제 몸을 싣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 텔레비전을 가끔씩 시청한다.
대장금도 월요일과 화요일 저녁에 본다.
한국에서 유명했던 <다모>를 비디오로 빌려다 보았는데,
그것만큼 유명하다하여, 기대가 컸지만 정말 <다모>의 바닥에도 못미친다는 생각이 든다.
대장금의 여인들은 한결같이 있는대로 치장하고,
말투며 얼굴표정까지 현대인의 속없는 그것을 너무 닮아있다.
주인공의 연기도 너무 가볍다.
음식을 만들고 다듬고, 그런 일들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은 좋지만,
임금님 한사람을 위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는 것등이
현실적으로 소모적으로 보인다.
반면에 <다모>는 아주 재미있게 시청했다.
활극이면서 사극이지만 현대음악이 들어간 것도 독특하니 참신했다.
민중혁명이라는 전체적인 배경과,
남매의 헤어짐이 씨줄과 날줄이 되고,
하지원과 어릴때부터 함께 살았던 그의 오라비나 다름없는 종사관과의
절절한 사랑, 그들의 서로를 향한 애정이 가슴저리게 다가온다.
하지원의 연기과 신중하고 눈빛이 예사롭지 않고, 대단한 촬영스케일이 돋보였다.
극을 위해 급조한 날림 무대가 아니어서 실감이 나고, 흥이 났다.
보면서 한가지 흠이 있었다면
하지원과 오라비가 동굴에서 며칠을 지내면서,
죽음을 목전에 둔 극한의 상황에서까지 가게 된다.
그들 가슴속 한이 밖으로 표출될만도 하건만
남매간임을 결코 밝히지 않고 넘어갔던 11회분인가는
그 동굴장면 자체가 너무 길고, 내용조차 없어서
가슴이 탔다.
비밀을 끝까지 가지고 가는 것이 극의 전개를 위해서 필요하다 해서 그랬을지라도
그런 부분은 너무나 작위적이고, <다모>의 격을 떨어뜨리는 데 한몫했다 생각한다.
그러나 그건 아주 작은 투정이고
전체적으로 아주 잘된 작품이었다.
<회전목마>라는 극을 중간중간을 건너뛰면서 한두번 시청하게 됐다.
어저께 분은 민교(혹은 진교?)라는 여자가 임신을 하게 된다.
그의 남편은 나이가 어리고, 그룹가수로 이제 무명시절을 달리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가 아이를 낳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어린 나이에 아이를 낳는 것은 두 사람의 앞날에 먹구름을 치게 된다며
그녀의 새엄마가 강력하게 반대하고,
본인조차도 남편에게 말하지 못하고 결국에 낙태할 결심을 하게 된다.
병원을 보여주고, 수술실까지...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런 이유 때문에 아이를 죽이려 하다니.
낙태가 불법인 나라에서 살아서인지,
그런 "불법"적인 일들이 버젓이 대낮에 행해지고 있다는 데 충격을 받았다.
그녀는 결국 수술하기전에 밥먹고 온 것이 문제가 되어서 다시 돌아오고,
다른 통로로 그 소식을 듣게된 남편의 환영으로
아이를 건사하게 된다.
누가 그런 사회를 만들었는가?
뱃속의 아이는 그렇게 쉽게 없앨 수 있다고 누가 그렇게 말했는가?
"불법"적인 것이 아니고, 단지 "개인"의 문제일 뿐일까?
그로 인해 상처받는 모성은 어떻게 되는 걸까?
성인들의 앞날만 중요할뿐, 이미 생명이 된 아이는 뒷전인 것이
마치 내가 버림받은 양 분이 인다.
책임없는 사회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했다.
영화를 보면서도, 드라마를 보면서도
그저 즐기게 되지만은 않는다.
때문에 좋은 극은 한동안, 가슴에 자랑으로 남고
그렇지 않은 것은, 친정오라비가 제몫을 다하지 못하는 것처럼,
어떻게 반발할수도 없지만, 쓴마음으로 지켜보게 된다.
극은 사실과 다르건만, 나의 감상법은 이렇게 경직돼 있기만 하니,
아무래도 사람 자체가 너무 딱딱한 건 아닌가 싶다.
마치 윤리교사마냥....
그녀를 처음본 것은, "TV는 사랑을 싣고"
잘나가는 배우라는 진행자의 소개를 듣고 그녀의 직업을 알게됐다.
혹시 그전에 굴러다니는 주간지에서 그녀의 이름석자를 봤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쨋든 공식적인 일면식은 그 프로를 통해서인 듯하다.
그런데, 참 많이 달랐다.
눈썹조차 제대로 다듬지 않은 것같은
시장에서 만나는 그런 느낌의 여성이었다.
자연스러운 것이 아름답다는 것을 그를 통해 알게 됐다.
연한 핑크색 드레스로 약간은 야시시했지만,
그것까지도 그 사람의 취향으로 여겨주게 됐다.
초등학교때 담임선생님을 찾는 그 프로에서
등장한 당시 교사는 처음 문소리를 보고
"그때하고 똑같구나"라고 말했다.
그말에 문소리는 "예. 아무것도 안고쳤거든요"하고
맞받아치고.
여자 연예인중에는 왜 그리 어색해보이는 이들이 많은가했더니
고쳐서 그렇다는 걸 고치지 않은 문소리를 보고 알게 됐다.
어느날 남편이 한국식품에서 <오아시스>라는 영화를 빌려왔다.
정신박약아로 나오는 문소리는,
비뚤어진 연기를, 정말로 팔푼이처럼 해냈다.
웬만한 배우들이 침을 질질 흘리는 그런 역을
좋아라 하지 않았을 것 같다.
설경구의 인상적인 연기와 맞물려 서글픈 영화를 찍어냈다.
장애인들이 살기에 너무나 때가 묻은 그런 사회가 사실적으로 그려졌다.
양심이 더럽혀진 중년부부들을 보면서,
또 마음이 편치 않다.
그 다음에 그녀를 다시 본 것은 <바람난 가족>이라는 영화를 통해서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변호사지만, 이미 바람난 남편,
그리고 암 선고를 받고도, 의사의 말은 귓등으로 듣는
제멋대로인 시아버지,
새 남자친구를 사귀며 절정을 느낀다는 시어머니와
입양아를 키우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문소리가 나온다.
남편은 이미 진하게 바람난 상태이고,
그 사실적인 성행위와 언어들이 섬찍하다.
윤리와 책임에서는 이미 멀어져버린 남편,
그의 파렴치로 인해 마음을 통째로 주던 아들을 잃고..
그녀는 이웃집에 사는 문제아 고등학생과 성접촉을 한다.
완전히 바람난 가족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곳서도 문소리의 연기가 주목된다.
테이프가 몇번 연속 녹음하여 상태가 안좋은 점도 있었으나,
문소리는 이쁘게 보이려고 노력하지 않는 게 분명하다.
극의 흐름을 읽고, 그 글에 제 몸을 싣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 텔레비전을 가끔씩 시청한다.
대장금도 월요일과 화요일 저녁에 본다.
한국에서 유명했던 <다모>를 비디오로 빌려다 보았는데,
그것만큼 유명하다하여, 기대가 컸지만 정말 <다모>의 바닥에도 못미친다는 생각이 든다.
대장금의 여인들은 한결같이 있는대로 치장하고,
말투며 얼굴표정까지 현대인의 속없는 그것을 너무 닮아있다.
주인공의 연기도 너무 가볍다.
음식을 만들고 다듬고, 그런 일들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은 좋지만,
임금님 한사람을 위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는 것등이
현실적으로 소모적으로 보인다.
반면에 <다모>는 아주 재미있게 시청했다.
활극이면서 사극이지만 현대음악이 들어간 것도 독특하니 참신했다.
민중혁명이라는 전체적인 배경과,
남매의 헤어짐이 씨줄과 날줄이 되고,
하지원과 어릴때부터 함께 살았던 그의 오라비나 다름없는 종사관과의
절절한 사랑, 그들의 서로를 향한 애정이 가슴저리게 다가온다.
하지원의 연기과 신중하고 눈빛이 예사롭지 않고, 대단한 촬영스케일이 돋보였다.
극을 위해 급조한 날림 무대가 아니어서 실감이 나고, 흥이 났다.
보면서 한가지 흠이 있었다면
하지원과 오라비가 동굴에서 며칠을 지내면서,
죽음을 목전에 둔 극한의 상황에서까지 가게 된다.
그들 가슴속 한이 밖으로 표출될만도 하건만
남매간임을 결코 밝히지 않고 넘어갔던 11회분인가는
그 동굴장면 자체가 너무 길고, 내용조차 없어서
가슴이 탔다.
비밀을 끝까지 가지고 가는 것이 극의 전개를 위해서 필요하다 해서 그랬을지라도
그런 부분은 너무나 작위적이고, <다모>의 격을 떨어뜨리는 데 한몫했다 생각한다.
그러나 그건 아주 작은 투정이고
전체적으로 아주 잘된 작품이었다.
<회전목마>라는 극을 중간중간을 건너뛰면서 한두번 시청하게 됐다.
어저께 분은 민교(혹은 진교?)라는 여자가 임신을 하게 된다.
그의 남편은 나이가 어리고, 그룹가수로 이제 무명시절을 달리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가 아이를 낳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어린 나이에 아이를 낳는 것은 두 사람의 앞날에 먹구름을 치게 된다며
그녀의 새엄마가 강력하게 반대하고,
본인조차도 남편에게 말하지 못하고 결국에 낙태할 결심을 하게 된다.
병원을 보여주고, 수술실까지...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런 이유 때문에 아이를 죽이려 하다니.
낙태가 불법인 나라에서 살아서인지,
그런 "불법"적인 일들이 버젓이 대낮에 행해지고 있다는 데 충격을 받았다.
그녀는 결국 수술하기전에 밥먹고 온 것이 문제가 되어서 다시 돌아오고,
다른 통로로 그 소식을 듣게된 남편의 환영으로
아이를 건사하게 된다.
누가 그런 사회를 만들었는가?
뱃속의 아이는 그렇게 쉽게 없앨 수 있다고 누가 그렇게 말했는가?
"불법"적인 것이 아니고, 단지 "개인"의 문제일 뿐일까?
그로 인해 상처받는 모성은 어떻게 되는 걸까?
성인들의 앞날만 중요할뿐, 이미 생명이 된 아이는 뒷전인 것이
마치 내가 버림받은 양 분이 인다.
책임없는 사회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했다.
영화를 보면서도, 드라마를 보면서도
그저 즐기게 되지만은 않는다.
때문에 좋은 극은 한동안, 가슴에 자랑으로 남고
그렇지 않은 것은, 친정오라비가 제몫을 다하지 못하는 것처럼,
어떻게 반발할수도 없지만, 쓴마음으로 지켜보게 된다.
극은 사실과 다르건만, 나의 감상법은 이렇게 경직돼 있기만 하니,
아무래도 사람 자체가 너무 딱딱한 건 아닌가 싶다.
마치 윤리교사마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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