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부루스 카운티 산책

제2의 생

겨우내 쌓였던 눈이 녹아 강물에 스며들면서, 물이 범람할 지경에 이르고 있다.
우리동네는 두 줄기로 흐르던 서긴강(Saugeen River)과 티스워러강(Teeswater river)이 합류하는 곳에 위치해 있어서, 예로부터 문물이 발달할 곳이라고 했다.

인구수가 적다뿐이지, 그래도 뼈대있는 동네?의 모습을 갖추고 있긴 하다. 강이 합류하는 동네 중간에 있는 다리에 올라서면, 댐밑으로 불어간 강물을 볼 수 있다.
이 강은 연어가 알을 낳는 때가 되면, 강물을 역류해 헤엄쳐가는 연어를 볼 수 있는 곳으로, <잠깐 스톱, 연어를 보고 가세요>라는 표지판이 이때쯤 붙게 된다.
그런데, 비가 와서도 아니고, 쌓였던 눈이 녹아 그렇게 큰 강줄기를 형성하다니, 신기하기도 하다.

강에는 카누(작은 노젓는 배)를 타는 사람들이 많아, 강가에 댓목이 달려있다. 봄 여름이면, 아이들이 발담그고 놀기에 좋기도 하다. 작년에 발견한 한 곳에서는 사람들이 빈번하지 않아, 의자를 놓고 낚시를 하기도 했다. 낚시중에 천둥치고 비가와서, 급하게 도망왔던 생각이 난다.
어쨋든 다른 한쪽의 강줄기를 따라가다보면, 작은 수풀이 나온다. 사람의 흔적이 없는 평지보다 약간 낮은 우거진 숲이라고 해야할까?
이곳이 고비가 많이 자라는 곳이다. 우리 가족이 오기전에는 그저 피어났다가 스러지고, 피어났다가 스러지는 역사를 반복했겠지만, 이제는 그 많은 고비들중에 약간은 우리의 식탁으로 올라오고 있다. 고비가 나는 곳에는 달래가 또 많이 자란다. 땅이 촉촉할때, 달래를 캐면, 그런대로 운치가 있다. 나는 생활에 바빠 한가롭게 여유를 즐길 시간이 그간 없었지만, 올해는 늘어난 식구들과 함께 봄나물 캐기에 조금 맛을 들일까 싶다.

그 나물이 많이 나있는 길가에 오래된 건물이 하나 있다. 아무도 살지않는 5층짜리 건물. 방앗간이었다는데, 20여년전부터 비어져있다 하였다.
우리 가족들은 고비를 뜯으면서, 저 건물을 사서, 봄마다 고비와 달래를 뜯어서 밖에 내어말리고 하면 좋겠다고 농담을 하곤 했다. 그러나, 그 건물은 사실, 허물어버리기에 마땅할 정도로 헐어보였었다. 귀신나오는 집으로 쓰면 알맞은 모양새를 하고..

근데, 작년 어느때부터인가 그집앞에 차가 세워져있고, 사람들이 들락날락했다.
창문공사를 하더니, 어느때인가는 낡은 시꺼먼 판자가 뜯어내지고 새 나무가 담벼락에 붙었다. 규모가 큰 건물이라 전부 다 바뀌지는 않고, 1층 가운데 부분이 고쳐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피아노선생집에 가려면, 그 집앞을 지나게 되는데, 조금씩 달라지더니 마침내,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자, 그 집에 형형색색의 크리스마스 전구가 내걸리고, 집안에서 따뜻한 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유리문 저쪽에서 사람이 앉아있는 모습도 보이고, 촛불켜놓은 것도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해놓은 것도 보였다. 우리 동네가 끝나가는 곳에 흉물스럽게 서있던 낡은 건물이 사람의 숨길이 깃든 따뜻한 집으로 변해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 집의 주인공들에 대한 궁금증이 일어나기 시작할 즈음, 동네 합창단에서 연습을 하고 있는데, 한명이 들어섰다.
<제가 크리스마스 공연에 올 수 없는 상황이라서, 감상을 하러왔다>고 양해를 구하는 머리가 짧고 눈빛이 강렬한 어떤 아주머니.. 그는 2시간 내내 우리들 연습하는 노래소리를 듣고갔다. 나중에 알고보니 헬렌으로 불리는 그가 그 건물의 여자주인이었으며, 나중에 합창단에 합류한 사람이기도 하다.

최근에 우리마을의 또하나 문제는 <돼지사육장>에 대한 것이다. 우리 동네에서 3천 마리의 돼지를 키우고자 하는 어떤 이가 자치정부에 허가장을 내놓고 기다리고 있는데, 동네사람들의 반대가 만만치 않다. 나는 아직도 그 심각성을 잘 모르겠는데, 주장하는 사람들에 의하면 <돼지 3천마리는 일반 농장이 아니고, 기업형 농업인데, 돼지똥에서 나오는 가스가 공해가 되며, 수질을 더럽히고, 동네에 나쁜 냄새를 풍겨 여름 관광에 큰 해가 된다>는 것이다.

이의 저지를 위한 마을 공청회가 열리는데, 그 자리에 헬렌과 그 남편이 앞장서서 이끌어나갔다. 이 마을에 들어온지 1년도 채 안된 사람들이, 하는 일은 마치 20여년 이상된 사람처럼 굴어서 참으로 이상한 인상을 받았다.

그들 부부의 일이 신문에 나와서 자초지종을 알게 됐다. 헬렌의 남편 폴은 물리학과 교수였던 사람으로 은퇴했으며, 헬렌은 아이들책을 취급하는 서점에서 일했다 한다. 그들의 부모들이 농촌생활을 했으며, 은퇴후에 하고싶던 일을 찾던중, 147년된 역사적인 <방앗간>이 매물로 나와서 바로 이것이구나 하고 샀다는 것이다.

그러곤 들어와서 방앗간을 고치고, 청소하고-쓰레기가 트럭으로 몇차가 나왔으며, 죽은 동물들의 시체가 큰 쓰레기백으로 38개, 벌들이 집을 짓고 살았던 것을 다 치워냈다는 등- 그런 이야기들 뒤에, 자신들은 이제 이 집을 고쳐, 방앗간에서 쓰던 장비도 전시하고, 기념비적인 것들을 수집, 전시하는등, 다른 사람들이 하지않는 특별한 기념품집을 만들 생각이라며, <페이슬리>를 보기 위해 도시사람들이 발걸음을 돌리게 만드는 데 일익을 하겠노라고 했다. 물리학과 교수를 했던 남편은 가끔 <세미나>등도 그 건물에서 가질 예정이라고.

참 흥미로운 일이다. 은퇴하게되면 편안하고 안락함만을 쫒을 것 같은데, 그들은 제2의 인생을 사는 것 같다. 하고싶었으나 여러가지 사정상 하지못했던 일, 남들이 생각지 못하는 일, 마치 폐품활용같은 그들의 삶이 참으로 창조적이란 생각이 든다.

깜깜한 건물을 빛으로 바꿔놓은 사람들… 그들에게 잘보일 일이 하나 있다. 바로 매년 그집 뒤뜰(숲)에서 나물을 캐야하는 우리집 일행을 그들이 어떻게 볼지. 엄마와 언니를 위해 내가 언젠가는 외교사로 그와 말을 터놓아야하는데. 그들의 탁 트인 인간성으로 볼때 큰 문제는 될것 같지 않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