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봄볕을 보니, 무언가 감격스런 느낌이다.
어제는 아이들과 산책을 나갔다.
아직 앙상한 가지들로 둘러싸여 사방이 보이는, 휑한 산책로를 걸었다.
그래도 눈이 녹아 스며들어서, 땅은 얼마나 부드러운지..
어머니 젖가슴같은 땅, 이라는 생각이 저절로 났다.
합창연습이 있어서, 오랜만에 걸어서 교회로 갔다.
작은 다리 하나 건너 약간의 언덕에 있는 교회를 매번 차를 타고 다녔다. 3분이면 걷는 거리를 그 3분이 부족하여 차(1분)를 타고 다니는 나에게 실망하면서도, 지금까지 2분의 시간을 빼내지 못해 그런 폭이다. 또 너무 춥거나, 바람불거나 그러기도 했지만.
근데, 문제는 교회가서 생겼다. 뿌듯한 마음으로 산책하고, 저녁을 지어먹이고 교회에 온 것은 좋았으나, 내 신발 생각을 해야했다.
합창 중간 휴식시간에 지휘자가 내 발밑을 보며, “모래들!”이라고 하는 바람에 깨닫게 됐다.
사람들은 흑묻은 신발로 실내로 들어오지 않는다. 바닥이 깨끗한 보조신발을 지참하든지, 그것도 아니면 아예 신발을 벗고 맨발로 교회로 들어온다.
나도 그를 지켜보고, 가능한한 신발에 묻은 잡것을 털어버리고 들어왔지만, 오늘은 아예 생각조차 안한 것이다.
이럴때 아주 많이 부끄럽다.
문화가 나에게 배지 않았다. 집안에서 어떻게 더럽게 신발을 신고 사느냐고 말할 줄은 알아도, 이사람들이 집안이나, 건물안을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관리하느냐에는 관심이 없는 것이다.
내집안과 꼭같이 어떤 공공의 장소도 같은 의미를 갖고 청결함을 유지한다. 산책까지 해서 운동화에 끼었던 보송보송한 모래가 빨간 카펫위로 가득 떨어진 것을 보고, 황당해하는데, 옆사람이 “괜찮다. 청소하는 이가 치울 것”이라고 말해준다.
시금떨떨한 마음으로 합창을 마치고, 신발을 벗어들어 악보위에 올려놓고 교회를 총총히 빠져나왔다.
이런 일이 종종 발생하기도 한다. 언젠가는 동네 도서관에 갔다. 그날은 공교롭게도 <아이들 공작의 날>이라고 몇몇 아이들과 지도교사가 함께 있다. 우리 아이들도 함께 하겠느냐고. 아이들이 좋아라해서, 앉혀놓고 집에 돌아왔다.
공작이 끝나고 돌아온 둘째가 말한다. 그날의 회비가 1불씩이었다고. 나는 회비 생각은 하지도 않았고, 그저, 그런 기회가 우연히 돌아온 것에 대해 기뻐하며 떠나온 것이다. <모든 것을 확실하게 매듭짓는 습관>이 되어있지 못하다.
다음에 돈을 지불했지만, 이것도 나의 불찰을 보여준 작은 사건중의 하나이다.
<공짜>는 없다, <공짜>인 것은 미리 모두에게 주지되어진다. 그렇지 않은 것은 정당한 댓가를 지불해야 한다. 누군가의 수고에 대한 댓가를 항상 생각해야 한다.
그러고보니, 또하나 생각나는 문제. 바로 시간에 관한 것이다.
토론토에서 있던 일이다. 큰애가 집을 옮긴뒤 새학교에 등록했을 때, 선생이 학교시작 시간이 8시45분이라고 말한다. 내 머리속에는 동시에 <아 9시에 학교가 시작되는구나. 15분전부터 아이들이 학교에 와서 시작은 9시에 하는 거야>라고 입력되었다. 그 다음날, 아이를 9시가 거진 다 되어서 데려다 주었다. 아이들이 모두 반에 있었다. 아마 며칠 동안 그랬나 보다. 그런데 선생이 이상하게 쳐다본다는 것을 느꼈다. 45분에 시작하는데, 9시에 아이가 매일 오니, 얼마나 이상했겠는가?
정말 그일은 지금 생각해도 머리가 뜨근뜨근해지는 일이다. 45분이라는 개념은 내 머리속에는 없는 시간이다. 특별히 그런 공공기관에서는. 그러나 지금 깨닫는데, 의미없는 시간은 1분도 없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8시45분에 도착해야 한다고 하면, 바로 그 말은 8시45분까지 와야 한다는 말이다. 내 멋대로 재단하고, 계산해서 조금 늦게 갈 수 있는 게 아니다.
처음엔 어떤 모임이든지, 제 시간을 지키기가 힘들었다. 교회도 조금 늦게 도착하고, 학교모임이나, 합창모임이나…
그러나 그것은 한번 “씩”웃으며 넘어갈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 “병”에 가깝게 인식되어져간다. 모두가 안늦는데, 정당한 이유없는 늦는 사람은 “병”에 걸린 것이다.
몸에 배인 습관이 고쳐지려니 그야말로, 몇십번의 각오와, 창피함을 넘게 된다. 제 시간에 모이니, 그 시간을 알차게 사용하고 또 제시간에 끝낸다. 모두의 시간이 귀중하게 계산되어진다.
오늘은 교회에서 일이 있었다. 장로교 여성들이 모여 하루 세미나를 열었는데, 우리 교회 담당이어서 점심을 준비했다. 식사준비에 동참을 권유받고 나가서 도와줬다. 끝나고 남은 음식을 나누는데, 혼자 사는 할머니 마가렛이 “옥수수와 감자구운것”을 가져간다고 하시며, 돈을 지불하려고 지갑을 열으신다. 이날 음식을 주관한 여자장로님이 “괜찮다”며 그냥 드렸지만, 그 할머니를 나는 유심히 본다. 나는 할머니보다 다섯배는 되는 음식을 분배받았다. 우리집에 사람이 많다는 이유로. 그러나 수중에 가진 돈도 없지만, 남은 음식을 받고, 돈을 지불할 생각이 나에겐 들지 않는다. 억지로 달라고 하지 않는한 말이다.
그러나 마가렛 할머니는 어쨋든 당신이 가져가는 음식에 대한 댓가를 지불하려고 노력하신 것이다. .
그런 부분이 내나라 사람들과 참 많이 다른 것같다.
“덤”으로 퍼주는 문화, 공짜가 횡행한 문화, “참석만 해주십시오”하는 모임권고형 문화에서, 내 것은 내가 계산하고, 내 돈내고 내 시간내서 모임에 참석해야 하는 그런 문화속으로 빠진 것이다.
나는 이제 “계산”을 잘해야 한다. 그런 다름을 잘해낸 다음 내 문화를 조금씩 선보여야 할 것이다.
기회가 되면, 몸만 이땅에 있는 사람이 “이 나라사람으로 사는 어려움”을 토로하고 싶다. <다른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말이다.
어제는 아이들과 산책을 나갔다.
아직 앙상한 가지들로 둘러싸여 사방이 보이는, 휑한 산책로를 걸었다.
그래도 눈이 녹아 스며들어서, 땅은 얼마나 부드러운지..
어머니 젖가슴같은 땅, 이라는 생각이 저절로 났다.
합창연습이 있어서, 오랜만에 걸어서 교회로 갔다.
작은 다리 하나 건너 약간의 언덕에 있는 교회를 매번 차를 타고 다녔다. 3분이면 걷는 거리를 그 3분이 부족하여 차(1분)를 타고 다니는 나에게 실망하면서도, 지금까지 2분의 시간을 빼내지 못해 그런 폭이다. 또 너무 춥거나, 바람불거나 그러기도 했지만.
근데, 문제는 교회가서 생겼다. 뿌듯한 마음으로 산책하고, 저녁을 지어먹이고 교회에 온 것은 좋았으나, 내 신발 생각을 해야했다.
합창 중간 휴식시간에 지휘자가 내 발밑을 보며, “모래들!”이라고 하는 바람에 깨닫게 됐다.
사람들은 흑묻은 신발로 실내로 들어오지 않는다. 바닥이 깨끗한 보조신발을 지참하든지, 그것도 아니면 아예 신발을 벗고 맨발로 교회로 들어온다.
나도 그를 지켜보고, 가능한한 신발에 묻은 잡것을 털어버리고 들어왔지만, 오늘은 아예 생각조차 안한 것이다.
이럴때 아주 많이 부끄럽다.
문화가 나에게 배지 않았다. 집안에서 어떻게 더럽게 신발을 신고 사느냐고 말할 줄은 알아도, 이사람들이 집안이나, 건물안을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관리하느냐에는 관심이 없는 것이다.
내집안과 꼭같이 어떤 공공의 장소도 같은 의미를 갖고 청결함을 유지한다. 산책까지 해서 운동화에 끼었던 보송보송한 모래가 빨간 카펫위로 가득 떨어진 것을 보고, 황당해하는데, 옆사람이 “괜찮다. 청소하는 이가 치울 것”이라고 말해준다.
시금떨떨한 마음으로 합창을 마치고, 신발을 벗어들어 악보위에 올려놓고 교회를 총총히 빠져나왔다.
이런 일이 종종 발생하기도 한다. 언젠가는 동네 도서관에 갔다. 그날은 공교롭게도 <아이들 공작의 날>이라고 몇몇 아이들과 지도교사가 함께 있다. 우리 아이들도 함께 하겠느냐고. 아이들이 좋아라해서, 앉혀놓고 집에 돌아왔다.
공작이 끝나고 돌아온 둘째가 말한다. 그날의 회비가 1불씩이었다고. 나는 회비 생각은 하지도 않았고, 그저, 그런 기회가 우연히 돌아온 것에 대해 기뻐하며 떠나온 것이다. <모든 것을 확실하게 매듭짓는 습관>이 되어있지 못하다.
다음에 돈을 지불했지만, 이것도 나의 불찰을 보여준 작은 사건중의 하나이다.
<공짜>는 없다, <공짜>인 것은 미리 모두에게 주지되어진다. 그렇지 않은 것은 정당한 댓가를 지불해야 한다. 누군가의 수고에 대한 댓가를 항상 생각해야 한다.
그러고보니, 또하나 생각나는 문제. 바로 시간에 관한 것이다.
토론토에서 있던 일이다. 큰애가 집을 옮긴뒤 새학교에 등록했을 때, 선생이 학교시작 시간이 8시45분이라고 말한다. 내 머리속에는 동시에 <아 9시에 학교가 시작되는구나. 15분전부터 아이들이 학교에 와서 시작은 9시에 하는 거야>라고 입력되었다. 그 다음날, 아이를 9시가 거진 다 되어서 데려다 주었다. 아이들이 모두 반에 있었다. 아마 며칠 동안 그랬나 보다. 그런데 선생이 이상하게 쳐다본다는 것을 느꼈다. 45분에 시작하는데, 9시에 아이가 매일 오니, 얼마나 이상했겠는가?
정말 그일은 지금 생각해도 머리가 뜨근뜨근해지는 일이다. 45분이라는 개념은 내 머리속에는 없는 시간이다. 특별히 그런 공공기관에서는. 그러나 지금 깨닫는데, 의미없는 시간은 1분도 없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8시45분에 도착해야 한다고 하면, 바로 그 말은 8시45분까지 와야 한다는 말이다. 내 멋대로 재단하고, 계산해서 조금 늦게 갈 수 있는 게 아니다.
처음엔 어떤 모임이든지, 제 시간을 지키기가 힘들었다. 교회도 조금 늦게 도착하고, 학교모임이나, 합창모임이나…
그러나 그것은 한번 “씩”웃으며 넘어갈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 “병”에 가깝게 인식되어져간다. 모두가 안늦는데, 정당한 이유없는 늦는 사람은 “병”에 걸린 것이다.
몸에 배인 습관이 고쳐지려니 그야말로, 몇십번의 각오와, 창피함을 넘게 된다. 제 시간에 모이니, 그 시간을 알차게 사용하고 또 제시간에 끝낸다. 모두의 시간이 귀중하게 계산되어진다.
오늘은 교회에서 일이 있었다. 장로교 여성들이 모여 하루 세미나를 열었는데, 우리 교회 담당이어서 점심을 준비했다. 식사준비에 동참을 권유받고 나가서 도와줬다. 끝나고 남은 음식을 나누는데, 혼자 사는 할머니 마가렛이 “옥수수와 감자구운것”을 가져간다고 하시며, 돈을 지불하려고 지갑을 열으신다. 이날 음식을 주관한 여자장로님이 “괜찮다”며 그냥 드렸지만, 그 할머니를 나는 유심히 본다. 나는 할머니보다 다섯배는 되는 음식을 분배받았다. 우리집에 사람이 많다는 이유로. 그러나 수중에 가진 돈도 없지만, 남은 음식을 받고, 돈을 지불할 생각이 나에겐 들지 않는다. 억지로 달라고 하지 않는한 말이다.
그러나 마가렛 할머니는 어쨋든 당신이 가져가는 음식에 대한 댓가를 지불하려고 노력하신 것이다. .
그런 부분이 내나라 사람들과 참 많이 다른 것같다.
“덤”으로 퍼주는 문화, 공짜가 횡행한 문화, “참석만 해주십시오”하는 모임권고형 문화에서, 내 것은 내가 계산하고, 내 돈내고 내 시간내서 모임에 참석해야 하는 그런 문화속으로 빠진 것이다.
나는 이제 “계산”을 잘해야 한다. 그런 다름을 잘해낸 다음 내 문화를 조금씩 선보여야 할 것이다.
기회가 되면, 몸만 이땅에 있는 사람이 “이 나라사람으로 사는 어려움”을 토로하고 싶다. <다른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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