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왁자한 지껄임 때문인지, 밤공기가 찬 4월28일 버스의 창에는 김이 서린다.
체슬리 고등학교에서 열린 <폐교를 검토중인 학교들의 주민모임>를 끝내고 돌아오는 차안이다.
마을 사람중 하나가 대절한 학교버스안에는 작은 불빛 하나 없어서, 서로의 얼굴빛은 분간할수 없지만, 목소리에 깃들여있는 탄성을 느낄 수 있다.
나 역시 그렇다.
<페이슬리의 주민>인 것이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 없다.
석달전에 폐교대상에 오른 학교들이 90일간 말미를 받아서 준비한, <프레젠테이션>을 한 날이다. 모두 4학교였는데, 오늘의 주인공은 단연 페이슬리 주민들이다.
학부모회의 권고대로 학교의 상징색인 빨간색 옷들을 입었다. 버스를 두대나 대절해 놓았으나, 막상 한대만 간신히 차서 떠날 즈음에는 마음이 착 가라앉았었다. 주민들의 호응이 이렇게 없나 하면서. 그러나, 막상 행사장에 도착해서 보니, 개인차를 타고 속속들이 들어오는 사람들이 다 낯익은 빨간옷을 걸친 이들이다. 관중석의 반을 차지했던 것 같다.
순서지에서도 우리 마을 발표에는 참으로 긴 명단이 있다. 해서 보니, 주제발표자 1명에, 보조발표자를 10명을 두었다. 다른 마을이 많아야 두세명인 것에 비해 우선 구별이 되었다.
첫번째 나온 이는 내가 예전에 언급한 방앗간을 고치는 폴이라는 은퇴한 교수. 폴은 많은 내용을 일목요연하면서, 이해하기 쉽게 모든 자료를 컴퓨터에 넣고, 큰 스크린으로 반사시켜 보여줬다. (그가 교수생활한 것이 아무래도 페이슬리의 오늘을 위해서였던 것 같다)
교육위원들이 미처 지적하지 못한 학생수의 미세한 증가를 증명했고, 데이케어를 들여서 가외 수입을 잡을 수 있다는 것등…
그는 “교육은 단지 돈으로 이야기될 수 없는, 그 이상의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런 다음에 5분씩의 시간을 얻어 발표한 일반 주민들..
세 아이의 엄마인 샌드라는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에 학교가 있는 것이 얼마나 큰 혜택인지, 방과후 많은 학생들이 과외 수업을 받고 특별한 지도가 필요한 아이들을 보살펴줄 수 있다는 것등, 교육위원들이 주장하는 <작은 숫자의 학생으로는 질좋은 수업을 시킬 수 없다>는 것에 전적으로 반대하고 나섰다.
그밖에 이 마을에 55년간 거주한 은퇴교사면서, 손자손녀들이 이 학교에 다니는 할머니가 자신의 페이슬리 교사경험을 나누며, 가족과 학생들에게 지역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한마음으로 협력했던 것이 얼마나 정서적으로 중요한가를 말한다.
도시에서 3아이와 함께 가족이 이주해온 학부모는 도시에서는 받을 수 없는 <관심과 사랑>을 아이들이 받고 바로 적응하게 됐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점은 나도 느끼는 것이지만, 서로 이름도 모르는 넘치는 학생수로 인해 복도를 걷기조차 힘겨운 그런 도시 학교에서의 생활은 아이들이나 엄마로서나 기억하기조차 싫은 일이다.
오죽하면, 큰애는 <가장 기억에 남는 자랑스러운 일>로 페이슬리 학교에 온 것을 꼽겠는가. 학교 프로젝트로 내는 에세이에 있는 그 내용을 보고 유치하다고 생각했지만, 이런 문제에 부딪치니 그게 우습지만은 않아 보인다.
페이슬리 학교는 학생과 선생, 그리고 부모들까지 서로가 서로를 아는 안전한 공동양육장이 아닌가. 제멋대로 혼자 자라는 곳이 아닌, 책임감있는 지역사회 주민으로 키워지는…
이밖에도 목사님의 발표,,,도 감동적이었다. 내 자식은 없지만, 지역사회의 지도자의 한사람으로 책임감을 느껴서 나왔다는. 그는 학교를 중심으로 자아가 형성돼가는 아이들의 정체성을 들고나왔다.
쉘리 파커라는 키가 조그많고, 흰머리의 할머니… 그녀는 교육위원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다하겠다. 학교는 비단 아이들과 그 아이들을 보내는 부모들만의 학교가 아니다. 커뮤니티 학교인 것이다. 함께 굴러가는. 학교를 닫는다면, 당신들도 우리들로부터 닫아지게 될 것”이라는 위협성 발언까지 섞어서.
그리고 마지막 발표자로 나온 두 학생. 학생회의 회장과 부회장인 자신들이 이 학교에서 얼마나 즐겁게 생활하는지, 각종 운동선수와 합창부, 그리고 밴드부로 활동하면서 친구와 사귀는 이야기… 대회에 나가서 이기는 것은 큰 문제가 안된다며, 후배들에게도 똑같은 경험을 물려주고 싶다는 진지한 발표가 있었다. 사실 학생수가 조금만 많아져도 누구나 밴드부에 들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누구나 합창부 활동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학교대항하면 실력이 달리지만, 저이들은 마음껏 소질을 계발하면서 즐겁게 학교생활을 보낸다는 것이다.
거의 완벽한 프레젠테이션이었다. 어떤 세미나가 이보다 훌륭할 수 있을까?
첫번째 연사의 발표가 끝나고 난 다음 나는 벌떡 일어났다. 한 두명 일어서더니, 페이슬리 사람들(다른 마을 사람들은 모르겠다)이 모두 일어나서 기립박수를 쳤다. 그건 학교를 그대로 두라는 엄청난 함성과 같은 것이었다.
학교는 어때야 하는지, 살아가는 모습이 어때야 하는지, 지역주민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걸 의미하는지 유감없이 보여준 하루다.
오늘부터는 발을 뻗고 잘 것 같다. 교육위원들이 정신병자들이 아니라면 수백개의 눈이 동시에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는데, 폐교 결론을 내리진 못할 것이다. 그들의 모임이 5월20일에 있다. 만약에 그때 부정적인 결정이 내려지면, 다시 한번의 검토기회가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6월안에는 끝날 것이다.
그러나 나는 희망에 차있다. 나뿐 아니라, 페이슬리의 모두가 같은 마음일 것이다.
누가 감히 우리 마을에 하나뿐인 학교문을 닫을 수 있겠는가? 없다. 그 누구도..
체슬리 고등학교에서 열린 <폐교를 검토중인 학교들의 주민모임>를 끝내고 돌아오는 차안이다.
마을 사람중 하나가 대절한 학교버스안에는 작은 불빛 하나 없어서, 서로의 얼굴빛은 분간할수 없지만, 목소리에 깃들여있는 탄성을 느낄 수 있다.
나 역시 그렇다.
<페이슬리의 주민>인 것이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 없다.
석달전에 폐교대상에 오른 학교들이 90일간 말미를 받아서 준비한, <프레젠테이션>을 한 날이다. 모두 4학교였는데, 오늘의 주인공은 단연 페이슬리 주민들이다.
학부모회의 권고대로 학교의 상징색인 빨간색 옷들을 입었다. 버스를 두대나 대절해 놓았으나, 막상 한대만 간신히 차서 떠날 즈음에는 마음이 착 가라앉았었다. 주민들의 호응이 이렇게 없나 하면서. 그러나, 막상 행사장에 도착해서 보니, 개인차를 타고 속속들이 들어오는 사람들이 다 낯익은 빨간옷을 걸친 이들이다. 관중석의 반을 차지했던 것 같다.
순서지에서도 우리 마을 발표에는 참으로 긴 명단이 있다. 해서 보니, 주제발표자 1명에, 보조발표자를 10명을 두었다. 다른 마을이 많아야 두세명인 것에 비해 우선 구별이 되었다.
첫번째 나온 이는 내가 예전에 언급한 방앗간을 고치는 폴이라는 은퇴한 교수. 폴은 많은 내용을 일목요연하면서, 이해하기 쉽게 모든 자료를 컴퓨터에 넣고, 큰 스크린으로 반사시켜 보여줬다. (그가 교수생활한 것이 아무래도 페이슬리의 오늘을 위해서였던 것 같다)
교육위원들이 미처 지적하지 못한 학생수의 미세한 증가를 증명했고, 데이케어를 들여서 가외 수입을 잡을 수 있다는 것등…
그는 “교육은 단지 돈으로 이야기될 수 없는, 그 이상의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런 다음에 5분씩의 시간을 얻어 발표한 일반 주민들..
세 아이의 엄마인 샌드라는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에 학교가 있는 것이 얼마나 큰 혜택인지, 방과후 많은 학생들이 과외 수업을 받고 특별한 지도가 필요한 아이들을 보살펴줄 수 있다는 것등, 교육위원들이 주장하는 <작은 숫자의 학생으로는 질좋은 수업을 시킬 수 없다>는 것에 전적으로 반대하고 나섰다.
그밖에 이 마을에 55년간 거주한 은퇴교사면서, 손자손녀들이 이 학교에 다니는 할머니가 자신의 페이슬리 교사경험을 나누며, 가족과 학생들에게 지역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한마음으로 협력했던 것이 얼마나 정서적으로 중요한가를 말한다.
도시에서 3아이와 함께 가족이 이주해온 학부모는 도시에서는 받을 수 없는 <관심과 사랑>을 아이들이 받고 바로 적응하게 됐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점은 나도 느끼는 것이지만, 서로 이름도 모르는 넘치는 학생수로 인해 복도를 걷기조차 힘겨운 그런 도시 학교에서의 생활은 아이들이나 엄마로서나 기억하기조차 싫은 일이다.
오죽하면, 큰애는 <가장 기억에 남는 자랑스러운 일>로 페이슬리 학교에 온 것을 꼽겠는가. 학교 프로젝트로 내는 에세이에 있는 그 내용을 보고 유치하다고 생각했지만, 이런 문제에 부딪치니 그게 우습지만은 않아 보인다.
페이슬리 학교는 학생과 선생, 그리고 부모들까지 서로가 서로를 아는 안전한 공동양육장이 아닌가. 제멋대로 혼자 자라는 곳이 아닌, 책임감있는 지역사회 주민으로 키워지는…
이밖에도 목사님의 발표,,,도 감동적이었다. 내 자식은 없지만, 지역사회의 지도자의 한사람으로 책임감을 느껴서 나왔다는. 그는 학교를 중심으로 자아가 형성돼가는 아이들의 정체성을 들고나왔다.
쉘리 파커라는 키가 조그많고, 흰머리의 할머니… 그녀는 교육위원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다하겠다. 학교는 비단 아이들과 그 아이들을 보내는 부모들만의 학교가 아니다. 커뮤니티 학교인 것이다. 함께 굴러가는. 학교를 닫는다면, 당신들도 우리들로부터 닫아지게 될 것”이라는 위협성 발언까지 섞어서.
그리고 마지막 발표자로 나온 두 학생. 학생회의 회장과 부회장인 자신들이 이 학교에서 얼마나 즐겁게 생활하는지, 각종 운동선수와 합창부, 그리고 밴드부로 활동하면서 친구와 사귀는 이야기… 대회에 나가서 이기는 것은 큰 문제가 안된다며, 후배들에게도 똑같은 경험을 물려주고 싶다는 진지한 발표가 있었다. 사실 학생수가 조금만 많아져도 누구나 밴드부에 들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누구나 합창부 활동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학교대항하면 실력이 달리지만, 저이들은 마음껏 소질을 계발하면서 즐겁게 학교생활을 보낸다는 것이다.
거의 완벽한 프레젠테이션이었다. 어떤 세미나가 이보다 훌륭할 수 있을까?
첫번째 연사의 발표가 끝나고 난 다음 나는 벌떡 일어났다. 한 두명 일어서더니, 페이슬리 사람들(다른 마을 사람들은 모르겠다)이 모두 일어나서 기립박수를 쳤다. 그건 학교를 그대로 두라는 엄청난 함성과 같은 것이었다.
학교는 어때야 하는지, 살아가는 모습이 어때야 하는지, 지역주민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걸 의미하는지 유감없이 보여준 하루다.
오늘부터는 발을 뻗고 잘 것 같다. 교육위원들이 정신병자들이 아니라면 수백개의 눈이 동시에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는데, 폐교 결론을 내리진 못할 것이다. 그들의 모임이 5월20일에 있다. 만약에 그때 부정적인 결정이 내려지면, 다시 한번의 검토기회가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6월안에는 끝날 것이다.
그러나 나는 희망에 차있다. 나뿐 아니라, 페이슬리의 모두가 같은 마음일 것이다.
누가 감히 우리 마을에 하나뿐인 학교문을 닫을 수 있겠는가? 없다. 그 누구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