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엄마들은 이상해. 누가 제 애들 흉이라도 볼라치면, 온몸에 발톱이 돋는 것 같애. 방어하고, 어쩌면 공격하고 싶어서..”
운전하는 남편옆에서, 속으로만 생각하다가, 말을 뱉았다.
“누가? 우리애들 흉봤어? 그게 누구야?”
긴장해서 묻는 그에게, “글쎄, 그게 남편일지라도 말이야.”
“………………”
지난 일요일날 토론토에 있는 남편 삼촌이 숙모님과 함께 방문했다. 한의사인 삼촌의 한방에 관한 원고를 타자쳐서, 소속해있는 교회 웹사이트에 올려주는 일을 남편이 맡아해주고 있었는데, 삼촌이 보기를 원하셨다.
내가 곁에서 들으니, 남편이 “오늘은 특별한 상황이라, 컴퓨터를 켜야되겠다”고 아이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삼촌께는
“아이들이 컴퓨터를 너무 많이 해서, 오늘은 안하는 날이다. 아이들에게 간신히 허락을 받고 켜는 것”이라고 설명하는 것을 들었다.
바로 그 순간 내 몸에 발톱이 두두둑하며 일어서는 걸 느꼈다. 삼촌은 “그래?”하셨지만, 속으론 “얼마나 아이들이 컴퓨터를 많이 하면 그런 규율이 생겼을까…”하셨을지 모른다.
엄마인 나는 매일 정한 시간만큼만 컴퓨터를 하고, 엄마가 특별히 제안한 일주일에 하루 <스크린 보지 않기>를 지켜주는 아이들이 대견하고, 특별나게 생각되는데, 그 정도로밖에 설명하지 못하는 남편이 맘에 들지 않았다.
그 문제로 인해 돋아났던 발톱에 대해, 남편에게 말하는 거였다.
남편은 “갑자기 더워진다”면서, 나의 갑작스런 공격에 할말을 잊는다.
자식사랑으로 이야기될 수 있는 일은 이외에도 많다.
아이들 때문에 별경험없이 낚시를 갔던 때가 생각난다. 낚시를 같이 가주기로 했던 남편은 웬일인가로 없었고, 그 대신 아이들과의 약속을 지키느라, 다리밑으로 흐르는 강가에 따라갔었다. 지렁이 한통을 사가지고.. 그날따라 고기는 왜 그리 많이 잡히는지… 지렁이를 깊숙히 문 붕어를 떼어내는 건 거의 고문에 가까왔다. 피 흐르고, 그렇다고 붕어를 안떼내고 그냥 낚시할수는 없는 일이고. 팔딱팔딱 뛰는 그 작은 생명들의 아가리를 벌리고 낚시바늘을 꺼냈던 기억이 지금까지 생생히 남아있다. 그날 이후로 낚시를 가지 않는다. 누가 낚시를 고고한 <정신수양>처럼 소개했는지, 엄마라는 직업이 아니었다면, 일찌감치 손털고 일어났을 일이었다.
며칠전에 둘째가 캠프를 떠났다. 4박5일간의 합숙생활이다. 작년에 세 아이 다 갔었는데, 이번에는 적응을 잘하는 둘째만 다시 가기를 원해서, 그렇게 하게 됐다. 호수를 끼고 있는 캠프장에 가서, 등록확인하고 케빈에 침낭을 잘 펴놓고, 짐을 들여놔주니, 작년에 경험이 있던 막내가 막상 눈으로 보니 마음이 동했나 보다. 자기도 하고싶다고 속삭인다. 캠프등록은 미리미리 해야하고, 준비도 만만치 않다. 그런데, 마치 뱀의 유혹처럼 아이가 하고싶다고 하니, 주최측에 당장 말해서 한자리 남아있나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아이에게 만약에 합류하고 싶으면 내년밖에 기회가 없다고 말하면서도, 내 맘속에는 어디 한자리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빨리 돈내서 등록하고 집에 달려가서 짐보따리 싸들고, 막내도 들여밀고 싶어진다.
이상이 빠른 속도로 내 맘속에 지나간 생각이다.
알아보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르지만 그건 아이에게도 설명이 되지 않는 이야기다. <뮤직 캠프>에 이미 등록하고 돈까지 지불했는데, 맘이 변해서 안했으면 한다고 할때, 눈물을 쏙 빼게 혼을 냈었는데, 엄마가 여차저차해서 들여넣는다해도, 아이에겐 교육적이지 않다.
한번 결정한 일, 마음이 변했다 하더라도 내년밖에 기회가 없음을, 그래서 내년이 돌아오면 다시 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옳은 결정을 하게 놔두어야 하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유혹을 접으면서, <엄마의 욕심>에 혀가 내둘러진다.
또 있다.
오늘 아이들과 골프를 같이 다녀왔다. 언젠가 골프장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골프 카트(작은차?)에 아이들을 태워서 같이 데리고 다니면서 골프를 치면 어떻겠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때 괜찮다는 말을 들어서 한번은 아이들을 데리고, 엄마 아빠 골프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골프카트를 운전하면서 잔디밭을 누비게 될테니, 아이들이 좋아하기도 하겠고, 한번 동참하면 하고 싶은 마음이 들리라 하는 생각도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오늘 같이 갔었다.
문제는 남편이 주인에게 아이들과 같이 있다는 말을 하지 않은 것인지 모른다. 남편의 속셈이야 알 수 없지만(좋게 해석하면, 예전에 반허락 받은 것 때문에, 나쁘게 생각하면 거절당할지 모르니까 그냥…), 아이들을 태우고 떠나려는데, 아줌마가 “다음부터는 아이들과 같이 골프칠 수 없다”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나는 그때부터 마음이 안좋았다. 남편에게 “왜 말을 하지 않았느냐”고 궁시렁대고, 그냥 아이들을 데리고 돌아갈까, 어쩔까 하다가 9홀을 돌게 됐다. 뒷머리가 뜨거운 채로.
큰 문제는 없었다. 처음 골프 카트를 운전해본 큰애는 <그것> 때문에 골프를 배울 생각이 났다. 골프를 치지 않으면서, 따라다닐 수는 없다는 것을 이번 경험으로 저도 알게 됐으니까. 어떤 일에 입문하도록 끌어들이기가 쉽지않은 그애에게 동기부여를 해준다는 장한 속셈은 있었지만, 규칙을 어기면서까지 무언가 해주려고 하는것, 부모가 참으로 경계해야 할 일이다.
세월을 되집어 생각해보면, 세 아이 때문에 눈총도 많이 받았다. 아이들을 데리고 공공장소에서 남들 눈에 쏙 들게 데리고 있을 수 없다.
교환교수로 캐나다를 방문했던 남편의 대학은사가 우리의 결혼기념일 즈음해서 한턱을 냈는데, 그때 모두 어렸던 아이들을 데리고 식당에서 겪었던, 그 난장판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우아한 체면지키기가 내 아이들로 인해 그렇게 힘들던 일.
장시간 운전을 해야하면, 꼭 중간에 소변을 보고싶은 막내 때문에 길가 풀섶에 차를 끌고 들어가 일을 보게 했을때도 있고, 대도시엔 그나마도 공공화장실이 없어서, 이리저리 끌고다니며 화장실 제공을 구걸한 적도 많았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죄인>이 아닐 수 없다는 성경말씀을 이해할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아이들 때문에 절절 매고, 눈치보고 했던 것을 다 설명할 수 없다.
이제는 그런대로, 온정신을 가질만하게 아이들이 커주었다. 이제는 <엄마의 욕심>을 잘 다스려야 하는때…. 해주고 싶은 일과, 하고싶어하는 일 사이에 균형을 갖고, 아이들을 이끌어야 한다. 아이들로 인해 실수하지 않도록, 사랑이 지나쳐서, 아이들과 엄마가 낭패를 당하는 일은 없도록 해야겠다. 혹은 엄마는 전지전능한 심판관처럼 아이들을 흉도보고, 혼도 내면서, 타인(남편까지 포함)의 관심을 억압적으로 제한하고, 깎아들여서 받아들이는 속좁은 엄마가 되면 안될텐데..아직도 얼마나, 실수하게 될런지 나도 나를 모르겠다.
발톱이여! 필요할 때만 일어나주려므나.
운전하는 남편옆에서, 속으로만 생각하다가, 말을 뱉았다.
“누가? 우리애들 흉봤어? 그게 누구야?”
긴장해서 묻는 그에게, “글쎄, 그게 남편일지라도 말이야.”
“………………”
지난 일요일날 토론토에 있는 남편 삼촌이 숙모님과 함께 방문했다. 한의사인 삼촌의 한방에 관한 원고를 타자쳐서, 소속해있는 교회 웹사이트에 올려주는 일을 남편이 맡아해주고 있었는데, 삼촌이 보기를 원하셨다.
내가 곁에서 들으니, 남편이 “오늘은 특별한 상황이라, 컴퓨터를 켜야되겠다”고 아이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삼촌께는
“아이들이 컴퓨터를 너무 많이 해서, 오늘은 안하는 날이다. 아이들에게 간신히 허락을 받고 켜는 것”이라고 설명하는 것을 들었다.
바로 그 순간 내 몸에 발톱이 두두둑하며 일어서는 걸 느꼈다. 삼촌은 “그래?”하셨지만, 속으론 “얼마나 아이들이 컴퓨터를 많이 하면 그런 규율이 생겼을까…”하셨을지 모른다.
엄마인 나는 매일 정한 시간만큼만 컴퓨터를 하고, 엄마가 특별히 제안한 일주일에 하루 <스크린 보지 않기>를 지켜주는 아이들이 대견하고, 특별나게 생각되는데, 그 정도로밖에 설명하지 못하는 남편이 맘에 들지 않았다.
그 문제로 인해 돋아났던 발톱에 대해, 남편에게 말하는 거였다.
남편은 “갑자기 더워진다”면서, 나의 갑작스런 공격에 할말을 잊는다.
자식사랑으로 이야기될 수 있는 일은 이외에도 많다.
아이들 때문에 별경험없이 낚시를 갔던 때가 생각난다. 낚시를 같이 가주기로 했던 남편은 웬일인가로 없었고, 그 대신 아이들과의 약속을 지키느라, 다리밑으로 흐르는 강가에 따라갔었다. 지렁이 한통을 사가지고.. 그날따라 고기는 왜 그리 많이 잡히는지… 지렁이를 깊숙히 문 붕어를 떼어내는 건 거의 고문에 가까왔다. 피 흐르고, 그렇다고 붕어를 안떼내고 그냥 낚시할수는 없는 일이고. 팔딱팔딱 뛰는 그 작은 생명들의 아가리를 벌리고 낚시바늘을 꺼냈던 기억이 지금까지 생생히 남아있다. 그날 이후로 낚시를 가지 않는다. 누가 낚시를 고고한 <정신수양>처럼 소개했는지, 엄마라는 직업이 아니었다면, 일찌감치 손털고 일어났을 일이었다.
며칠전에 둘째가 캠프를 떠났다. 4박5일간의 합숙생활이다. 작년에 세 아이 다 갔었는데, 이번에는 적응을 잘하는 둘째만 다시 가기를 원해서, 그렇게 하게 됐다. 호수를 끼고 있는 캠프장에 가서, 등록확인하고 케빈에 침낭을 잘 펴놓고, 짐을 들여놔주니, 작년에 경험이 있던 막내가 막상 눈으로 보니 마음이 동했나 보다. 자기도 하고싶다고 속삭인다. 캠프등록은 미리미리 해야하고, 준비도 만만치 않다. 그런데, 마치 뱀의 유혹처럼 아이가 하고싶다고 하니, 주최측에 당장 말해서 한자리 남아있나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아이에게 만약에 합류하고 싶으면 내년밖에 기회가 없다고 말하면서도, 내 맘속에는 어디 한자리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빨리 돈내서 등록하고 집에 달려가서 짐보따리 싸들고, 막내도 들여밀고 싶어진다.
이상이 빠른 속도로 내 맘속에 지나간 생각이다.
알아보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르지만 그건 아이에게도 설명이 되지 않는 이야기다. <뮤직 캠프>에 이미 등록하고 돈까지 지불했는데, 맘이 변해서 안했으면 한다고 할때, 눈물을 쏙 빼게 혼을 냈었는데, 엄마가 여차저차해서 들여넣는다해도, 아이에겐 교육적이지 않다.
한번 결정한 일, 마음이 변했다 하더라도 내년밖에 기회가 없음을, 그래서 내년이 돌아오면 다시 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옳은 결정을 하게 놔두어야 하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유혹을 접으면서, <엄마의 욕심>에 혀가 내둘러진다.
또 있다.
오늘 아이들과 골프를 같이 다녀왔다. 언젠가 골프장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골프 카트(작은차?)에 아이들을 태워서 같이 데리고 다니면서 골프를 치면 어떻겠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때 괜찮다는 말을 들어서 한번은 아이들을 데리고, 엄마 아빠 골프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골프카트를 운전하면서 잔디밭을 누비게 될테니, 아이들이 좋아하기도 하겠고, 한번 동참하면 하고 싶은 마음이 들리라 하는 생각도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오늘 같이 갔었다.
문제는 남편이 주인에게 아이들과 같이 있다는 말을 하지 않은 것인지 모른다. 남편의 속셈이야 알 수 없지만(좋게 해석하면, 예전에 반허락 받은 것 때문에, 나쁘게 생각하면 거절당할지 모르니까 그냥…), 아이들을 태우고 떠나려는데, 아줌마가 “다음부터는 아이들과 같이 골프칠 수 없다”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나는 그때부터 마음이 안좋았다. 남편에게 “왜 말을 하지 않았느냐”고 궁시렁대고, 그냥 아이들을 데리고 돌아갈까, 어쩔까 하다가 9홀을 돌게 됐다. 뒷머리가 뜨거운 채로.
큰 문제는 없었다. 처음 골프 카트를 운전해본 큰애는 <그것> 때문에 골프를 배울 생각이 났다. 골프를 치지 않으면서, 따라다닐 수는 없다는 것을 이번 경험으로 저도 알게 됐으니까. 어떤 일에 입문하도록 끌어들이기가 쉽지않은 그애에게 동기부여를 해준다는 장한 속셈은 있었지만, 규칙을 어기면서까지 무언가 해주려고 하는것, 부모가 참으로 경계해야 할 일이다.
세월을 되집어 생각해보면, 세 아이 때문에 눈총도 많이 받았다. 아이들을 데리고 공공장소에서 남들 눈에 쏙 들게 데리고 있을 수 없다.
교환교수로 캐나다를 방문했던 남편의 대학은사가 우리의 결혼기념일 즈음해서 한턱을 냈는데, 그때 모두 어렸던 아이들을 데리고 식당에서 겪었던, 그 난장판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우아한 체면지키기가 내 아이들로 인해 그렇게 힘들던 일.
장시간 운전을 해야하면, 꼭 중간에 소변을 보고싶은 막내 때문에 길가 풀섶에 차를 끌고 들어가 일을 보게 했을때도 있고, 대도시엔 그나마도 공공화장실이 없어서, 이리저리 끌고다니며 화장실 제공을 구걸한 적도 많았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죄인>이 아닐 수 없다는 성경말씀을 이해할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아이들 때문에 절절 매고, 눈치보고 했던 것을 다 설명할 수 없다.
이제는 그런대로, 온정신을 가질만하게 아이들이 커주었다. 이제는 <엄마의 욕심>을 잘 다스려야 하는때…. 해주고 싶은 일과, 하고싶어하는 일 사이에 균형을 갖고, 아이들을 이끌어야 한다. 아이들로 인해 실수하지 않도록, 사랑이 지나쳐서, 아이들과 엄마가 낭패를 당하는 일은 없도록 해야겠다. 혹은 엄마는 전지전능한 심판관처럼 아이들을 흉도보고, 혼도 내면서, 타인(남편까지 포함)의 관심을 억압적으로 제한하고, 깎아들여서 받아들이는 속좁은 엄마가 되면 안될텐데..아직도 얼마나, 실수하게 될런지 나도 나를 모르겠다.
발톱이여! 필요할 때만 일어나주려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