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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래 루미 미리.

인연을 접으며..

마음이 약한 둘째가 눈물을 글썽인다.
매끄럽지 않은 언어로 아이들을 설득한다.
“선생은 훌륭한 사람이다. 그러나 학생과 맞지 않을 수 있다. 지금까지를 종합해본 결과, 이제는 우리가 떠날 때인 것 같다.”

아이들의 생활계획을 세우는 가족회의에서 중요안건으로 다뤄진것이 <피아노 레슨>이었다.

페이슬리에 이사와서 3년후,,,, 피아노를 마련하고 1년후,,, 아이들이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찾아간 피아노 선생집.
막내는 그때 5살이 되는 중이어서, 그애에게는 아주 작은 시간을 할애해서, 어쨋든 간에 일주일에 각자30분씩 선생집에 찾아가서 레슨을 시켰다. 이제 그 선생과의 인연을 접으려 한다.

나보다는 남편의 의지가 많이 작용한 <피아노치기>는 큰애가 음악적 소질을 보여줬고, 작은애들이 안하겠다는 소리를 하지 않는 것만이 나에게는 감사한 일이었다. 막내는 그저 한 10분쯤…. 언니들이 하는 동안 장난감과 놀다가 돌아오고 했었다.

지난 4월말 피아노 선생집에서 강습자들의 발표회가 있었다.
일주일 한번 레슨하니, 매일 연습을 해가야 실력이 늘 것인데, 최근에는 그저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이었다. 레슨있기 하루전날, 선생이 내준 숙제를 한번씩 연습해보는. 그런 정도가지고 실력이 늘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긴 했다.

어쨋든 발표회날. 전해에 만난 아이들 중 몇명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작년에는 큰애의 실력이 그래도 돋보여서 기분이 괜찮았는데, 한해가 지난 이번 발표회때 큰애의 연주곡목 중 하나는 작년에 연주한 그 곡이었다. 한곡만 최근에 배우고 있는 것이고.

조금씩, 아이들이 피아노에 싫증을 느낀다고는 생각했지만, 그처럼 정체하고 있었다는 데 큰 혼란을 느꼈다. 나와 함께 발표회를 지켜본 언니는, 문제를 좀더 세심하게 판단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흥미>를 잃어가는 것의 큰 문제가 선생에게 있을 수 있다는. 한국에 있을때, 시골 아이들을 가르쳐본 경험과, 본인의 피아노 레슨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하는 언니는, 피아노야말로 선생의 영향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언니는 덧붙여 이날 같이 연주했던 다른 아이들도, 악보를 읽는 기술이 발달되지 않았고, 박자감각등이 많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그간 조카들을 지켜본 결과 무언가 피아노 레슨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분석을 뒷받침했던 사건중의 하나가, 온타리오 중서부 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뮤직 페스티벌(경연대회)>이 매년 열리는데, 아이들 피아노 선생의 제자들은 아무도 이곳에 출전하지 않았다.

잘하는 아이들만 나가는 것이 아니라, 같은 등급의 아이들이 겨루는 것이니까, 등록하고 2-3개월간 열심히 연습하면 실력들이 오르고, 서로 자극을 받게 될 것 것이다. 제법 많은 숫자의 강습생을 가진 그가, 그런 큰 행사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지 않다는 것도 사실은 문제점일 수 있다.

우리 아이들 역시 한번도 피아노 경연의 경험이 없었고, 다만 학교에서 하는 밴드, 합창등의 부문에 출전했었다. 다른 이야기지만, 큰애는 <독창> 부문에 출전해서 유감없이 형편없는 실력을 보여주기도 했고. 어쨋든 부루스 카운티의 20여개가 넘는 학교들의 학생들이 출전해서 실력을 겨루는 큰 음악행사인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들로 머리속이 가득차 있는중에, 그냥 시간만 떼우는 피아노레슨에 대해서 아이들과 이야기를 하게 된 것이다.

큰애는 우선 흥미를 많이 잃어가고 있었다. 선생에 대한 점수를 제 나름대로 준다면, 60점 정도라며, 다른 선생을 만나고 싶다고 했다. 둘째는 선생에게 미안해서, 계속 하고 싶으나 사실은 <선생과 갈수록 격이 벌어진다>는 말도 했다.

이렇게 해서, 2년넘게 관계를 가져왔던 피아노 선생을 바꾸려고 한다.
그동안 바쁜 나 대신, 훨씬 전문가인 언니가 아이들 연습 시간에 봐주곤 했는데, 완벽주의자인 언니(이모)의 가르침이 쉽지는 않았을텐데, 아이들이 이모는 <좋은 피아노 선생님>이라고 말한다.

당분간은 언니가 아이들을 봐주고, 차차 좋은 선생을 구하기로 했다. 그런 김에 언니도 <피아노 교습>을 받고싶다고 하고 있고. 그간 손을 놓았던 피아노를 다시 쳐보고, 한국식이 아닌 이곳식이 어떻게 되는지 감을 잡아야겠다며.


이런 과정에서 많이 놀란 건 “나”이다. 나는, 아이들을 데려다주고, 기다려주고, 데려오는 것에만 만족했지, 사태가 이지경인지는 눈치채지 못했다.
진보가 빠르지 않은 피아노의 속성과 우리 아이들이 연습을 제대로 하지못한 점만 생각하고 있었다. <피아노 선생>의 문제라고는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정성없이 피아노를 대하고, 레슨받으며 선생에게 가끔 안좋은 말을 들는 큰애에게도 <그 아이의 불성실함>만 탓하고 있었다.

그래도 아이들이 <피아노치기>를 그만둔다고 말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환경을 바꿔주면, 아이들이 즐기면서 실력을 발휘하게 될까?

내가 보지못한 것을 봐준 언니에게 감사한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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