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래 루미 미리.

요즘 우리 애들

2000년 2월의 어느날

아이들과 스케이트를 타러갔다.
저이들끼리 타면 좋으련만, 막내까지 같이 데리고 가야했으니, 엄마가 움직였다.
스케이트장이라야 걸어서 5분 거리.
근데 분위기가 소란스럽다.
무작정 안으로 들어가보니, 스케이트장에서 다른 행사를 하는가 보다.
학부모 한명이 내곁에 서더니, 오늘 <공공 스케이트날>은 쉬고, 스케이트 클럽에서 하는 카니발날이라고 알려준다. 입장료가 얼마씩이라며.
무대포로 들어가려다, 입장료를 지불하고 아이들과 함께 관중석에 앉았다.
구경하면서 보니, 동네사람들이 죽 앉아있다. 실내스케이트장이니, 추위를 막으려고 털로짠 간이이불을 가져온 사람들, 스노우바지에 두툼한 털잠바까지...
그때, 빙판을 아름답게 수놓는 아이들..
제 수준대로, 그저 걸어다닐 수 있는 아이부터 솔로 댄스까지 여러종류의 옷을 입고나와 선보인다.
강습자들의 발표회인가 보다.
제법 몸매가 여성티가 나는 고등학생들의 춤.
단체로 빙빙 돌면서, 다리를 번쩍 번쩍 올리는 그들을 보면서 생각한다.
"내 아이들도 저 무대에 올려야겠어. 이 시골에서 살면서 우리 아이들에게도 같은 기회를 줄거야."

2003년 2월16일 일요일

once Upon A Time"
아이들이 출연한 "스케이트 카니발"의 올해 타이틀이다.
4번째로 나온 <세마리 작은 돼지>중 한마리 돼지가 둘째딸 루미다.
무대복이 작고, 우습게 생겨서 입고싶지 않다고 그러더니, 그럭저럭 몸에 꿰니, 볼만하다. 돼지꼬리를 흔들면서 얼음위에서 춤을 춘다. 볼이 탱탱한 것이 귀엽다.
같은 레벨에 있는 아이들 8명과 지난번 스케이트 경연대회에 올렸던 브리트니 스피어스 옷을 입고 을 춘다.
이 무용에는 큰애 나래도 합류했다. 8명이 빙빙 돌기도 하고, 둘씩 짝지어 왈츠도 추고, 시원한 음악에 맞춰서 몸을 흔든다.
휴식시간을 지나, 막내순서가 왔다.
아직 레벨5인 막내가 출연한 부분은 <인형들>.
빨간색의 멜빵 반바지와 흰색과 빨간색의 체크무늬 남방, 그 위에 같은 모양의 스카프를 둘렀다.
덩치가 큰 한 아이는 맞는 옷이 없어서, 대강 비슷한 모양으로 옷을 만들어 입었다. 엉성한 폼이지만 한 다리도 번쩍 들기도 하고, 반쯤 꼬브리고 앉기도 하고, 저이들 수준에서 할 수 있는 묘기를 보여준다.
몸이 통통한 큰애가 <세마리 곰>에 곰옷을 입고나오니, 진짜 곰이 빙판위에서 춤추는 것 같다. 우스워라.
나래, 루미는 또한번 무대에 섰다. 피터팬에 나오는 <선장>들로 분해서.
이제 갓 스케이트를 배우는 서너살짜리들은 백설공주와 7곱 난쟁이 옷을 입고, 얼음판을 벌벌기면서 빙빙 돈다. 그래도 가장 많은 박수를 받는다.

사촌언니들을 보러 3살난 조카가 엄마와 함께 왔다.
언니들 이쁘지?
나이도 할 거야?
"나이는 넘어져..."
이제 바톤이 어린 조카에게 넘어간다.
시작하라. 그것이 오늘의 일기주제다.


2월17일 오후7시

나래의 <리전 스피치 대회>가 있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 목욕재계시키고 드레스입히고 머리를 묶고, 한번 더 연습시킨 다음, <마을회관>으로 향했다.
어린이부에서 4명, 쥬니어부에서 4명, 시니어부에서 4명 오늘의 연사들이다.
제비뽑기를 했는데, 나래가 첫번째다. 불길!!
나래는 제 역량보다 조금 못하게 했다. 한군데서 중복말하기도 했고.
나래가 연설을 시작하니, 엄마 가슴이 쿵쾅거린다. 단상에 서있는 딸은 멀쩡하다. 연설이 끝날즈음에, 내 가슴도 진정된다. 새가슴같으니라고.
나래가 속한 부에서 특별히 잘하는 아이가 있다. 반에서 1등으로 뽑힌 아이라더니.
<병>에 대해서 했는데, 어려운 의학용어와 통계등을 똑바라지게 한다. 발음도 정확하고, 음성크기, 얼굴표정 나무랄 데가 없다. 내 맘에서 심사가 끝났다.
시니어부에서도 한명이 도드라진다.
<쇼핑>에 대한 주제였는데, 남자와 여자의 쇼핑습관의 차이부터, 재미있게 소화했다. 약간 목소리가 뜬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이고.
아이들의 발표가 있고, 심사위원들이 채점을 하는 동안 모두가 기다린다. 연사들은 무대위에서 의자에 앉아있다.
꼬마들은 의자밑으로 발이 닿지도 않는다. 그래도 지루한 시간동안, 잘도 참아낸다. 나래도 치마에 무늬져있는 은박이를 만지작거리며 앉아있다. 사촌언니가 댄스파티때 입으라고 사준 롱드레스를 오늘 입었다.

발표가 났다. 내가 위로 꼽았던 세명(어린이부에서는 <말>에 대해, 차트까지 동원 열심히 한 꼬마)이 1등으로 뽑혔다.
나래는 쥬니어부에서 3등이 됐다. 4명중 3명이지만 잘했다. 상장과 부상으로 10불이 봉투에 들어있다.
1등은 25불이 부상이란다.
각 1등은 북서부 온타리오 말하기 경연대회에 나간다. 세 명이 좋은 성적을 거두길 바란다.

2월18일

아침에 드디어 컴 시간(내 시간)이 와서 기뻐하고 있는데,
남편이 말한다. 나래가 학교에서 전화왔는데, 아침에 들고나갔던 피아노 책을 길가 눈뭉치위에 놓고 갔다고. 찾아서 학교로 가져오란다.
<정신없는 녀석...>이다.
학교버스타는데 갔더니, 검은 가방이 쌓인 눈위에 놓여있다. 가방의 엉덩이가 얼어있다.
학교로 가서 피아노 연습중인 방으로 갔다.
<에구구구....>
화내기도 피곤해서 책을 주고 나온다.
교장하고 부딪쳤다.
"You should be proud of Alyssa!"
라며 나래의 스피치가 좋았다고 말한다.
그래서 내가 1등한 세명의 연설도 아주 좋았다고 덧붙였더니, 모두 좋은 연설들이었는데, 1명만 나가게 되서 그렇다고 위로한다. 자신은 나래의 연설을 아주 감명깊게 들었다고.
헛걸음이 아니었다.
말썽많은 딸이 엄마 어깨를 으쓱거리게 한다.


'나래 루미 미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누가 감히..  (0) 2003.04.29
가족회의  (0) 2003.03.04
Guess What  (0) 2003.02.16
우리집의 구정나기  (0) 2003.02.03
실패한 이의 조언  (0) 2003.0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