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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나, 그리고 우리

요즘 우리 동네 물이 좋지 않다. 강물을 정화해서 먹는데, 완전세균되지 않아, 경고가 떨어졌다. 탭(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을 그냥 마시면 안되고 끓여먹으라는 것이다. 벌써 두달째에 이른다. 주민들의 회의가 이어지고 있고, 한 주민은 물회사와의 접촉을 통해 물을 기부받아 주민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일주일에 세번씩 생수를 얻으러 다닌다.
주민들의 불편함과, 새로운 물 경로 때문에 회의가 빈번하다.

3년전에 큰 물 사고가 있었다. 바로 워커톤이라고, 옆마을에서 물에 세균이 들어가 7명이 죽고 2천명이 병에 걸린 사건이었다.
사고의 원인은 큰비에 있었다. 5월 중순경 강물이 범람해 길이 약간 물에 잠길정도가 되었었다. 식수의 공급처였던 우물에 큰 비 때문에 농가에서 흘러나온 돼지똥이 섞였다. 그곳에 있던 이-콜라이라는 병균이 이런 사태를 가져오게 된것…
주민들은 그 당시를 기억해내며, 정부의 조속한 해결을 촉구한다.
농가가 많은 이 동네에 가축들의 분비물이 물에 스며들어 강물이 오염되가고 있다. 해결책을 찾기에 분주하며, 이의 시정에 들어갈 시간과 돈이 크게 문제된다. 주민들의 세금이 올라가게 될지도 모르며, 설비비용을 수십년간 주민들이 분담해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깊은 것은 모르겠는데, 어쨋든 물이 이렇게 되니 비상이 걸린다.
물은 더이상 감상이 아니라 생존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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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은 유혹이다. 안식의 근원이다.

저녁놀을 받아 불타고 있는 물빛은 정말 찬란하다.
마구 달려가 안기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러나 깊이를 알 수 없다. 아름다움과 위험이 한꺼번에 있다.


물이 좋았다. 특히나 바닷물이.
감상의 극에 달했던 대학교 시절 방문했던 제주도의 밤바다는, 나를 끌어들이려는 듯 출렁였다.
썰물과 밀물이 만들어내는 모양이 정해지지 않은 물살들이 서로 엉겼다가 풀어졌다를 반복했다.
알코올이 약간 들어간 상태로, 물을 마주하고 앉았던 나는, 갑자기 일어나 방파제를 걷기 시작했다. 부정확한 발걸음과, 현실감없는 생각을 안고.
친구가 갑자기 팔꿈치를 부여잡는 바람에 놀라 멈춰선 곳은 물과 아주 가까운 난간이었다.

물은 그렇게 사람을 자극한다.


수영을 잘하지 못하지만, 숨을 쉬지않고 물속에서 있을 수는 있다.
물밑에 부유해있으면, 이상한 고요가 온몸을 휩싼다. 엄마의 자궁속이 이랬을까? 길어야 몇분에 불과한 그 시간이 마치 영원처럼 길게 느껴진다. 그 시간을 가끔 즐긴다.

이곳은 물이 많다. 없는 것은 바닷물이지, 실개천부터 강, 그리고 연못과 거대한 호수까지, 물을 자주 만난다.

오늘도 강가를 거닐었다. 인적이 하나도 없는, 산책하는 이들을 위해 잔디길이 나있는 움푹 패인 강가에 아이들과 언니와 함께 갔다왔다. 새소리뿐, 물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조용한 강이다. 아이들은 양말을 벗어놓고 첨벙이는데, 이제는 감각이 늙어버린 나는 그저 하나의 풍경처럼 물을 곁에 놓는다.
물가를 어슬렁거리며 걷다보니, 달래가 한무더기씩 솟아있다. 다음에 올때는 작은칼과 비닐백을 가져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이 키운 달래를 뜯어서 김치를 한번 더 담가야겠다.

엄마가 달래를 좋아하신다. 달래를 깨끗하게 씻어서 초간장에 절이면, 훌륭한 반찬이 된다고 말씀하신다.
매년 이맘때를 기다리기도 하셨다. 그런데 오시지 않겠다고 한다. 교회 일이 많다고 하신다. 그러면 다행인데 정작 건강이 문제가 되는 것 같다. 장시간 차타기가 힘들고, 집을 떠나면 불편하시다 하신다. 사뿐사뿐 날아다니셨던 엄마가 더이상 아닌가 보다.
엄마가 좋아하는 달래를 뜯으며 경치좋고 공기좋은 곳에서 함께 하고싶은 언니와 나의 바람을 연기시켜야 할 것 같다.
엄마가 늙어가고 있다는 슬픈 소식을 인정해야만 한다.

물 이야기를 하다가 이야기가 샜다.
나에게 물은 어머니같다. 그 넓음과, 편안함..
캐나다의 어머니날에 세상의 작은 실개천으로 흐르고 있는 자식들을 생각하면서, 흐뭇함과 염려를 한몸에 지니고 계실 엄마를 생각하는 것으로 물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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