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말씀과 묵상

만남의 종류

<우울한 날의 수다>

"오늘 점심 어떠세요?"
차분히 가라앉은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전해진다.
며칠전 남편을 먼저 보낸 아줌마의 요청이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몰라서 시간있을때 만나고자 한다는 소식.

그는 너무 춥다고 했다. 날씨가 우중충하긴 했지만 추운 정도는 아니었기에 겨울을 떠나보낸 뒤로 잊고 살았던 단어였다.

식당에 들어갈때도 춥다고 몸을 옹숭거리며 전기히터에 손을 바짝 댄다. 동행했던 이들이 "옆에 사람이 없어져서 그렇지." 나도 고개를 주억거린다.
밤에도 전기담요를 펴고 잔다고 말한다.

남편이 죽기전 팔려고 했던 가게가 그 뒤로 훌쩍 작자가 나타나서 계약이 성사될 것 같다고 한다. 어떻게 살거냐는 질문에 아직 아무런 준비가 안되었단다. 딸과 친구집에 약간 신세를 졌다가 다시 생각해보겠다고.
조용하고 생활비가 덜 드는 시골이 어떻겠느냐는 나의 물음에 "너무 추워서 이곳은 싫다"고 한다.

그는 뼛속까지 추워보인다. 그 추위가 쉽게 가실것 같지 않다.

그가 계속 춥다고 하자, 일행들 모두 몸들을 떨기 시작한다. 나도 춥다는 생각이 든다. 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따뜻한 바람을 엄청 틀고 달렸다.


오늘 모임을 좀더 생각해보자.
그는 남편을 잃고 그래도 그자리에 찾아와준 한인아줌마들이 고마와서 불러서 점심을 사줬다. 다른 이들은 몇번쯤 자리를 같이했나 보다. 지역적으로 약간 먼 나는 오늘 새로운 멤버였고, 나이가 가장 어렸다.

그가 멍한 표정으로 하는 말,, 남편의 죽음후에 찾아온 새 이야기,,, 물끄러미 쳐다봐서 바짝 다가가서 가슴을 쓰다듬어도 날아가지 않았다는 그새. 그는 그가 죽은 애 아빠이었던 것 같다고 말한다. 참, 가엾다. 남편이 없고나자 자동차 타이어도 터져서 다른이의 도움을 받고, 혼자 집갖고 사는 것은 못할 일이라고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그때까지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나눴다. 어쩌면 오늘 모임은 그쯤에서 끝내는 것이 나았을지 모르겠다.

그 다음, 식당에 나오지 않았던 한 한인아줌마의 집을 찾아갔다. 그의 남편이 지은 집, 좋은 집이었지만, 그 안에서의 수다는 참 시간이 아까운 것이었다.

여자들이 모이면 아이낳는 이야기들을 한다. 임신과 유산과, 제왕절개등 출산에 얽힌 이갸기들,,, 기맥힌 피임방법 이야기까지... 피임의 주체가 누구냐 하면서 배꼽수술과 기타 온갖 아야기들을 쏟아내며 폭소가 터지고.

아주 자연스런 주제였지만, 난 자꾸 남편없는 그이가 맘에 걸렸다. 애완견 이야기, 포장테이프를 너무 비싸게 팔아서 놀랐다는 가게 주인 이야기(자기집은 안그런데...) 별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 식탁위로 떨어진다.

사람 만나는 걸 너무 좋아하는 나도 조금씩 조바심이 난다. 그런 이야기로 귀한 시간을 소모하고 싶진 않다.

한인들을 만나는 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조금씩 들려고 한다. 한인들이 늘어간다. 모임이 하나둘 생기게 될지 모르겠다. 수동적인 자세가 아닌 능동적인 자세로 모임의 성격을 만들어나가야겠단 생각이다.

내가 <의미중독증>에 걸린 건 아닐것이다. 사실, 피같은 시간들이 아닌가? 무엇인가 생산적인 일에 써야할 것이다...


<성경공부 모임>

오늘의 모임에서도 몇명인가 울음이 터졌다.
욥의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주는 메세지를 생각해보는 자리였다.

엄마들이기에, 자식들을 생각하면서 말씀을 상고하면 눈물이 흐를때가 많다.
이미 나이든 아들을 둔 나이드신 분... 그는, 돈을 많이 벌어 남들 부럽지않게 아들을 키우고 싶었던 생각에 휴일까지도 반납하고 열심을 부렸던 분.. 이제는 그것이 아들을 위한 길이 아니라, 진정으로 아들을 사랑해주는 가난한 엄마의 길을 걸어왔어야 함을 느꼈다며 소리없는 눈물을 흘린다.
어린아이를 둔 엄마들은 명심하라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랑으로 곁에서 아이와 함께 하는 것만이 나중에 자식이 잘못되어서 후회하는 삶이 되지 않는 최선의 길이라고.
그분의 이야기를 듣는 나도 눈물이 난다. 그의 뼈에 사무치는 뉘우침을 엿볼수 있다.
성경공부 지도자는 이제 하나님이 놀라운 일을 준비해두시고 보여줄 것이라고 희망을 준다. 지금까지가 고통이었다면 이제는 그 모든것이 원하는 것보다 더욱 좋게 될 것이라고. 나도, 그의 말에 공감하면서, 이미 머리가 희끗희끗 세어진 아주머니를 바라본다.
그의 집안 형편은 모르지만, 싱글맘으로 아이를 맡기면서 열심히 돈을 벌어서 아이에게 부족함없이 대령했었던 것 같다. 결론은 아이의 불순종과 사랑없음으로 나타났고.

젊은 엄마들인 우리가 범하기 쉬운 잘못이다. 아이보다는 경제에 더욱 매달리게 되는. 내 아이가 한살이라도 어렸을 때, 이런 교훈들을 얻게 되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매주 한번씩 열리는 성경공부반에 가면 이렇게 가슴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게 된다. 그리곤 자연스런 기도가 나온다.
그들의 아픔이 하나님의 치유의 손으로 아물게 하시고, 준비하신 놀라운 축복을 보여주시옵소서...하며.


'말씀과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크리스마스 파티  (0) 2003.12.26
참 어려운 이야기  (0) 2003.11.10
아직도 갈길이 멀다  (0) 2003.10.11
밀알이 떨어져... 열매를 맺습니다  (0) 2003.09.20
작은 교회  (0) 2002.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