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갈길이 멀다
문제가 끝난 것은 아니다.
이제 당장 머리를 디밀고 들어오는, 급박한 일들에 무언가 결정을 해야 한다.
토요일날 있었던 창립예배는 무사히 잘 끝났다.
첫예배를 드리러 가는 심정은 새 신부가 신랑을 만나러 가는 것처럼 설레었다.
많은 말도 하지 않고, 차밖으로만 눈을 주며 어떤 하루가 될지 생각해본다.
엄마가 속한 교회에서 목사님과 큰언니를 포함한 가족들이
밴으로 한차 올라와주었고,
초대장을 받은 이 지역 한인들과, 그 가족들...
교회창립은 한두가정이 할때도 있다는 이야길 들었지만,
이런 오지에서 벌어지는 첫예배치고는 그리
서운하지 않을 만큼 모여든 것 같았다.
주축 아줌마들은 예배 중간에 있을 축하찬양을 위해 모두 앞자리를 장식했다.
노회에서 나온 목사님의 지루한 설교 때문에,
교회라는 게 "이런거구나" 잠시, 실망에 빠져보기도 한다.
그러나, 설교는 역시 노장답게 어떤 교회가 되어야 하는지,
그런 것들에 대한 지침이었다.
그날 예배의 꽃은 <우리들의 노래>였다. 성경공부반 아줌마들의 찬양.
합창으로 다듬어진 나도, 악보에만 빠져있지 않고, 청중을 보면서,
감동을 전하려 애를 썼다.
지루했던 예배에 기운을 불어넣고...
그다음에 축사가 있었다.
그중 인상에 남았던 것은, 우리에게 예배당을
빌려준 캐네디언 교회의 담임목사의 말이었다.
한인교회가 생기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인지,
주안에서 형제 자매된 사람으로서, 감사와 축하를 드린다는 말이었다.
서로간에 동반자 입장으로 서로를 도와주자는 말도 덧붙인다.
정장에 넥타이를 맸던 우리네 목사님과는 대비되게
캐쥬얼한 복장으로 나와서 말씀을 전해준 그는,
교인들을 떠나보내면서, 교회당까지 빌려주니, 얼마나 마음이 넓은지,
예수안에서의 사랑을 생각하게 된다.
나도 한인교회가 생겼음을 내가 다니는 교회의 목사님께 말씀드렸다.
그는 <원더풀 뉴스>라며 <내가 한국에 있다고 가정하고서 생각해본다면,
얼마나 기쁜일일지 짐작이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덧붙이시길, <그래도 우리 가족을 교회에서 잃고싶지 않으니,
두군데 모두를 다녀보는 건 어떻냐?>고 제안하신다.
나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이 교회를 당장은 떠날 생각이 없다>고 했으나
두 교회를 섬기는 일이 언제까지 가능한 일은 아닐것이다.
예배의 주역 3인입니다.
오른쪽은 임시설교자로 오신 목사님,
가운데가 전도사로 있는 언니,
왼쪽이 찬양인도자로 예배전 얼떨떨한 표정으로
순서를 정리하는 모습입니다.
어쨋든 문제는 아이들이다.
창립예배후 그다음날 있었던 주일예배에 나온 아이들이 열다섯명 정도 되었다.
한국어 설교를 이해하는 아이부터,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까지, 이해한다고 해도,
어른들 예배에 앉아있기란 아이들에겐 고역일 것이다.
예배가 끝나고, 잠시 의논을 했어도 아직 뚜렷한 방향을 잡지는 못했다.
역량이 없다는 것, 조금 더 두고 보자고 잠정 결론을 내렸다.
전통적인 한인이민교회는 <어른들 예배>와 영어로 드리는 <어린이예배>가 있다.
조금 발전된 교회는 어린이예배전 <한글학교>를 열기도 한다.
한국어를 하는 학생이 많은 곳에서 <한국어 예배>가 따로 드려지기도 한다.
그런 것들을 우리 교회에선 당장 시작할 수 없다는데 문제가 있다.
아이들의 수준도 각양각색이고.
나는 이민온지 오래되어서, 이곳서 아이를 낳아기른 한인어머니의 입장이다.
나같은 처지의 부모들을 이해할 수 있다.
자식들에게 한글을 가르쳐주고 싶으나, 여건이 안되었던 이들.
주위에 한인친구가 없고, 자주 한인들과 만날 기회가 없으니
아이들이 한국어를 배울 기회도 쓸 기회도 없다.
그러나 아이들이 클수록 부모의 걱정은 늘어간다.
한국어를 쓰지않는 아이를 가진 부모들은 죄의식까지를 느끼게 된다.
아직 여러가지 문제가 남아있지만,
그야말로 죽이되든 밥이되든 내가 한번 나서보면 어떨까 생각한다.
아이들의 수준생각하고, 투입될 선생이 있나 생각하고,
교재생각하고 하는 것은 그 다음의 일이라고 남겨놓기로 한다.
어제 남편이 토론토가는 길에 붙어서 갔다왔다.
교회서점에 들러서 한국의 주일학교 교재를 훑어봤다.
교재가 시리즈별로 모두 구비되어있지 않아서, 선택의 폭이 좁았다.
한국의 교회에서 가르치는, 아주 기초적인 교재를 두권 구입해왔다.
성경공부를 한글로 가르치기로 한다.
기역 니은부터 해야 하는 아이도 있지만,
성경 낱말 하나라도 한글로 가르치면서, 시작하려고 한다.
당분간은 아이들을 위한 <영어예배>는 없을 공산이다.
아이들이 한국어를 향한 귀를 열어놓고,
교육이 잘되어 부모와 아이들의 간격이 조금씩 좁혀진다면
그것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것이다.
제 나라 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맛을 일찍 감지하기를,
그리하여, 어설프게 시작하는 부모님들이 세운 교회가,
아이들에게도 의미만점이 되기를 기도하면서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