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일인지, 요즘 힘이 없는 것이, 얼굴이 펴지지 않았다.
많은 이유를 댈 수 있지만, 공연에 사람을 끌어모으지 못함으로 인한 마음병이었는지 모른다.
안면을 두껍게 만들어, 오랜 사귐이 없는 성경공부반 사람들에게까지, 소개를 했다.
어렵게 와주겠다는 두명이 사정상 취소하고,,,, 남편에게 또 놀림을 받았다.
예전에도, 음악과 관계없는 주위의 한인에게 와주십사 표를 맡겼던 적이 있었다.
나는 순수한 마음에서 했지만, 생활이 바쁜 그들에겐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결국 그들은 오지 못했고, 표를 돌려받아야 했다.
공연 첫날, 참으로 작은 숫자의 사람들이 왔다. 합창단은 모두 몇명이냐? 우리 합창단만 해도 37명, 그리고 찬조출연으로 와준 옆마을의 여성합창단이 30여명이니, 거의 70명 수준이 된다. 작은 교회의 엉성한 자리를 보니, 우선 실망이 앞선다.
이런 공연을 해야 하나,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을 끌어모아 피곤한 자리를 만들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고, 가슴이 답답했다.
올 1월말부터 매주 하루에 두시간씩 꼬박 연습했고, 최선의 자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마지막의 두곡은 두 합창단이 함께 부르기 위해, 공연장인 교회에 갖춰지지 않은 계단식 무대를 마련하기 위해 트럭으로 큰 셋트를 빌려다 설치했다.
두번째 곡은 바이올리니스트를 초청해, 함께 연주하며 그의 독주도 들을 수 있게 만들었다. 그는 페이슬리를 유명하게 만드는 이중의 하나로, 바이올린을 만들어파는 사람이다. 그의 첫작품이라는 바이올린으로 하는 연주는 참으로 아름다운 선율을 선사했다.
지휘자는 어떤가? 그는 페이슬리와 옆마을을 오가며 두 합창단을 거느리고 매주 온힘을 바쳐 합창단을 키웠다. 그의 손끝에 음이 달려있다.
우리 페이슬리 단원들… 은퇴한 교사가 몇명, 성직자도 있고, 현직 교사, 그리고 농부까지, 온 시간을 들여서 준비했다.
그러나 누가 그런걸 알아줄 것인가? 누가 좋아하는가? 우리는 준비됐는데, 사람들을 끌어모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나는 톡톡히 그 맛을 본다. 우선 우리 아이들이 좋아하지 않는다. 멋모르고 지난 공연에는 참석했었으나, 엄청난 인내심을 요하는 공연, 주위에서 눈치주는 맛에 이젠 오고 싶어하지 않는다. 나도 아이들에게 강요할 명분이 없어졌다. 한두번은 하지만, 그 다음엔 그들이 알아서 결정할 수 밖에 없다. 남편은 어떤가? 말없는 후원자이긴 하지만 그가 공연을 즐긴다고는 볼 수 없다. 아마, 다음 공연부터는 무언의 압력조차 넣지 않아야 할 것 같다. 남편이 없는 공연, 그래도 내가 계속할 것인지, 혹 포기하는 것이 좋을지는 나에게 달려있다.
그래서 오늘까지 세번의 공연을 마쳤다.
오늘 오후의 공연은 폭우중에 천둥도 치는 살벌한 날씨였다. 갈수록 지휘자와 호흡이 맞는다. 그 곡의 의미를 알 것 같다. 교회음악이 거의 대부분이다. 기쁨과, 슬픔과, 앙망이 그 안에 녹아있다.
오늘 오후 공연에 와주었던 언니와 동생 그리고 2달된 어린 조카, 남편이 고맙다.
그런 다음 저녁 공연은 옆마을로 원정갔다. 예년처럼 두 공연의 중간에 단원들과 같이 저녁을 먹는다. 다른 마을로 가면서 나누는 대화….
“참, 그래도 이런 조그만 마을에서 이처럼 활성화된 합창단이 있다는게 어디냐..”
--내년에 동참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바이올리니스트의 말
“키치너(도시)에서 함께 합창단 생활하던 친구가 공연을 봤는데, 무척 잘했다고 하더라.”
--올해 합류한 헬렌의 말
공연을 할수록 기분이 나아진다. 그래, 비단 한사람이 오더라도, 우리의 최선을 다하면 되지 않을까? 왜 그렇게 숫자에 민감한가? 이렇게 작은 마을에서 그래도 두번의 공연에 많은 사람이 왔다고 생각할 순 없나? 물론 공연이 재미있으면 좋겠지만, <지루한 전통 공연>도 역시 필요할 수도 있다 라고 생각을 정리해본다.
내가 매주 즐기고, 공연에서 얻어지는 긴장과 마지막 입맞춤이, 소중한 것이라고, 그래서 또한번의 연습과 공연에 도전할 것이라고 말이다.
많은 이유를 댈 수 있지만, 공연에 사람을 끌어모으지 못함으로 인한 마음병이었는지 모른다.
안면을 두껍게 만들어, 오랜 사귐이 없는 성경공부반 사람들에게까지, 소개를 했다.
어렵게 와주겠다는 두명이 사정상 취소하고,,,, 남편에게 또 놀림을 받았다.
예전에도, 음악과 관계없는 주위의 한인에게 와주십사 표를 맡겼던 적이 있었다.
나는 순수한 마음에서 했지만, 생활이 바쁜 그들에겐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결국 그들은 오지 못했고, 표를 돌려받아야 했다.
공연 첫날, 참으로 작은 숫자의 사람들이 왔다. 합창단은 모두 몇명이냐? 우리 합창단만 해도 37명, 그리고 찬조출연으로 와준 옆마을의 여성합창단이 30여명이니, 거의 70명 수준이 된다. 작은 교회의 엉성한 자리를 보니, 우선 실망이 앞선다.
이런 공연을 해야 하나,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을 끌어모아 피곤한 자리를 만들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고, 가슴이 답답했다.
올 1월말부터 매주 하루에 두시간씩 꼬박 연습했고, 최선의 자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마지막의 두곡은 두 합창단이 함께 부르기 위해, 공연장인 교회에 갖춰지지 않은 계단식 무대를 마련하기 위해 트럭으로 큰 셋트를 빌려다 설치했다.
두번째 곡은 바이올리니스트를 초청해, 함께 연주하며 그의 독주도 들을 수 있게 만들었다. 그는 페이슬리를 유명하게 만드는 이중의 하나로, 바이올린을 만들어파는 사람이다. 그의 첫작품이라는 바이올린으로 하는 연주는 참으로 아름다운 선율을 선사했다.
지휘자는 어떤가? 그는 페이슬리와 옆마을을 오가며 두 합창단을 거느리고 매주 온힘을 바쳐 합창단을 키웠다. 그의 손끝에 음이 달려있다.
우리 페이슬리 단원들… 은퇴한 교사가 몇명, 성직자도 있고, 현직 교사, 그리고 농부까지, 온 시간을 들여서 준비했다.
그러나 누가 그런걸 알아줄 것인가? 누가 좋아하는가? 우리는 준비됐는데, 사람들을 끌어모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나는 톡톡히 그 맛을 본다. 우선 우리 아이들이 좋아하지 않는다. 멋모르고 지난 공연에는 참석했었으나, 엄청난 인내심을 요하는 공연, 주위에서 눈치주는 맛에 이젠 오고 싶어하지 않는다. 나도 아이들에게 강요할 명분이 없어졌다. 한두번은 하지만, 그 다음엔 그들이 알아서 결정할 수 밖에 없다. 남편은 어떤가? 말없는 후원자이긴 하지만 그가 공연을 즐긴다고는 볼 수 없다. 아마, 다음 공연부터는 무언의 압력조차 넣지 않아야 할 것 같다. 남편이 없는 공연, 그래도 내가 계속할 것인지, 혹 포기하는 것이 좋을지는 나에게 달려있다.
그래서 오늘까지 세번의 공연을 마쳤다.
오늘 오후의 공연은 폭우중에 천둥도 치는 살벌한 날씨였다. 갈수록 지휘자와 호흡이 맞는다. 그 곡의 의미를 알 것 같다. 교회음악이 거의 대부분이다. 기쁨과, 슬픔과, 앙망이 그 안에 녹아있다.
오늘 오후 공연에 와주었던 언니와 동생 그리고 2달된 어린 조카, 남편이 고맙다.
그런 다음 저녁 공연은 옆마을로 원정갔다. 예년처럼 두 공연의 중간에 단원들과 같이 저녁을 먹는다. 다른 마을로 가면서 나누는 대화….
“참, 그래도 이런 조그만 마을에서 이처럼 활성화된 합창단이 있다는게 어디냐..”
--내년에 동참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바이올리니스트의 말
“키치너(도시)에서 함께 합창단 생활하던 친구가 공연을 봤는데, 무척 잘했다고 하더라.”
--올해 합류한 헬렌의 말
공연을 할수록 기분이 나아진다. 그래, 비단 한사람이 오더라도, 우리의 최선을 다하면 되지 않을까? 왜 그렇게 숫자에 민감한가? 이렇게 작은 마을에서 그래도 두번의 공연에 많은 사람이 왔다고 생각할 순 없나? 물론 공연이 재미있으면 좋겠지만, <지루한 전통 공연>도 역시 필요할 수도 있다 라고 생각을 정리해본다.
내가 매주 즐기고, 공연에서 얻어지는 긴장과 마지막 입맞춤이, 소중한 것이라고, 그래서 또한번의 연습과 공연에 도전할 것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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