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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나, 그리고 우리

매듭을 짓고..

큰 매듭이 지어졌다.
매일 저녁 올라가던 밥숟가락이 거진 절반이상이 줄어든 것이니…
녀석들이 갔다.
자책과, 미움과, 안타까움과, 원망등 복잡미묘한 감정을 연출해내게 했던 녀석들이 드디어 오늘 떠났다.

그들이 사실은 더이상 <녀석들>이 아니고, 당당한 어른이 되어서 떠났다. 떠난 3명은 11학년 16살에 와서 캐나다가 성인으로 치는 19살에 갔으니 말이다.

결론을 말하면 괜찮다.
그중 두명이 아주 공부를 잘했다. 캐나다의 좋은 대학에 당당히 합격하고 떠났다.

조카 민형이의 대학 오리엔테이션을 따라갔었다. <마지막 떠나보내는 마음>으로 따라갔던 그 자리는 사실은 <새로운 시작을 위한 자리>란걸 알았다. 그가 맘으로라도 이모를 의지하길 바란다.
단지 몸만 떨어진다는 것. 어쨋든 3년반만에 캐네디언들도 가기힘든 학교, 좋은 과에 붙었다는 것만도 자랑스러워졌다.

또 한명, 태현이,,, 그도 졸업만하면 미국쪽에서 모셔간다는 워터루 공대 컴퓨터 사이언스과에 들어갔다. 작은 장학금을 받고. 지난번 온타리오주 수학경시대회에서 전체2등했다더니, 성적이 엔간히 높았던가 보다.

그리고, 제이… 그는 한국으로 아주 돌아간다. 오늘 헤어졌으니, 이제 그의 소식은 접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국에서 대학에 가겠다고 했다. 공부에 덜 관심을 보이더니, 외동아들 그의 외로움과 외동아들을 멀리보낸 부모님의 그리움은 이쯤에서 풀어야 한다고 생각했나 보다. 그는 잘 선택한 것 같다.
제이가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머리가 가끔 아팠다고 말하는 바람에 갑자기 암담해졌다. 다른 건 몰라도, 있는 동안 건강만 하라던 내 소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학교생활에 시들했던 것도, 제 안에 빠져지내던 것도 그런 까닭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객지생활을 너무 오래해서 그런지 모르겠다는 의사의 진단도 있었다니, 참 안타까운 일이다.

그렇게 3명이 내곁을 확실하게 떠났다. 이제 9월이면 11학년이 되는 조카 민욱이만 돌아온다. 키가 껑충한 착한 녀석이다.

내가 뭐라고 말했던가? 결론은 아주 잘 끝났다는 것이다. 잘 끝났다는 말속에는 <공부>를 최고로 치는 한국부모에게 면목이 서게 됐다는 말이다. 내가 공부한 것도 아닌데, 그 점이 나에게도 다행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나는 사실 그 부분에 그렇게 집중하지 않았다. 방안에만 박혀서 인터넷만 하는 그들을 한심해했고, 문화적응을 위한 노력을 보이지 않고, 이방인처럼 살아가는 그들이 안돼 보였었고, <약속>과 <인사>에 약한 그네들을 혼내고싶을 때도 많았다.
그들로부터 한국문화와 캐나다문화가 그렇게 다르다고 느꼈고, 그 접목될 수 없는 간극에 한숨을 쉬었었다.

가기전에 청소를 깨끗이 하고가라고 했다. 엊저녁만 해도, 공중화장실보다 더한 상태이던 그곳을 치웠다. 제이는 태어나서 화장실 청소를 처음 해본다 했다. 어떻게 그렇게 더러운 곳에 사느냐고, 그랬더니 해본적이 없어서 어떻게 할지 모른다는 데야… 집에서야 부모들이 다 해주었다고.
그런 아이들이 3년을 있었으니,,

생활의 기본이 안되니, 많은 부분 부딪친다. 부모밑에서라면 혼나면서라도 배웠을 것이다. 부모처럼 혼내지 않은 것이 그들에게 미안하다. 그들과 밀접해서 훈육이 안되니, 일정부분 서로가 서로를 포기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남편이 힘들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얼마나 고역인 생활이었을까?
부모밑에서 한참 어리광을 부릴 나이이기도 하겠지? 공부잘한다고 추켜주지 않았었다. 말이 없는 그들앞에서 나도 말이 없어져갔고, 너른 의미의 울타리 역할로 점차 만족해갔지.


더이상 부스럼을 파헤치고 싶지 않다. 그래도 지난번 헤어지기 전에 가졌던 작은 다과파티에서 저이들 나름대로는 유학생활이 인생에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태현이는 박사학위까지 생각하기도 하고.

아이들 유학시키다가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와 어려운 사이로 발전하게 되기 십상인데, 우리도 그렇게 침윤하려다가 건져올려진 적이 많아서, 이 정도의 마무리도 정말 감사하다.

아이들이 처음 올때, 우리 아이들 대하듯 하자, 했던 것은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나, 다시한번의 기회가 있다. 조카 민욱이를 이제 아들처럼 생각해야겠다. 네명이 똘똘 뭉쳐 나를 왕따했을 때는 못했지만, 이제는 어린 조카 한명이니, 대학갈때까지 남은 2년간 다시한번 도전해보자. 혼구멍내면서, 내 아이들의 오빠로 자리정립해주면서, 한번 부딪쳐볼 생각이 든다. 실패를 교훈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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