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꼴까닥 넘어가는 순간을 잡을 수 있었다.
미국서 온 동생이 사진찍는 것을 좋아해서 차를 돌려 물가로 몰았다.
해는 수평선 바로 위에 긴띠처럼 형성된 잿빛구름속에 깊숙이 몸을 걸친 상태였었다.
불이나케 동생이 사진기를 트렁크에서 꺼내는 순간, 그 해가 점점 밑으로 떨어지더니 사진기를
치켜드니, 이미 자취를 감추고 없었다.
그렇게 석양을 본 그 다음날이었다. 모처럼 일 때문에 아침일찍 일어나 거리를 달리게 되었다. 석
양을 받으며 왔던 길을 달려서 도로 가는데 아침해가 따땃하게 지상을 데우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 해가 그 전날 나와 헤어졌던 똑같은 해라는데, 또한 그 해는 내가 잠자는 동안 지구 반대편
내살던 조국을 무더운 여름날로 만들며 일하고 온 그 해라는데, 의미가 심장해졌다.
마치 자연시간에 배운 것을 처음으로 체득한 날의 학생처럼, 감탄사가 나온다.
창세기에 <해가 뜨고 해가 지니 첫날이 지났더라>가 아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
째날이니라>로 나온다. 우리가 흔히 하는 계산법과는 성경은 그 기초부터 다른가 하는 생각이 들
었는데, 저녁과 아침을 연결해서 하루를 시작해보니, 그 뜻이 알 듯 모를 듯 하다.
어제 갔던 호숫가도 생각난다. 다른 볼일로 언니와 함께 갔는데, 시간이 남아서 차를 몰다가 호수
에 근접한 공원에 차를 세우게 됐다. 긴 산책로와 아이들 놀이터, 공연할 수 있는 큰 정자 스타일
의 구조물이 조화롭게 형성된 곳이다. 나무의자들이 곳곳에 있고, 아이들이 뛰어놀다 수영할 수
있게끔 물가로 가는 길이 자유롭다. 캐나다 기스(오리과의 큰 새?) 대가족들이 바위위에서 한가롭
게 노닐고 있는 모습도 눈에 잡힌다.
공원앞에 세워진 비석을 보니 작년에 여러 사람의 기부를 받아서 만들었다 했다. 아이들에게 자
유로운 공간으로 보이면 나는 우리 아이들을 상상속에 세워보곤 한다. 문화를 즐기는 데서 나아
가 조성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하면서, 말이다.
이날 오웬사운드라고 불리는 작은 소도시에서 오랫동안 살았고 은퇴생활을 하시는 한인의 집에
갑작스런 방문을 하게 됐다. 35년전에 캐나다에 오셔서 공부를 마치고 고등학교 교사가 되어 한
우물을 파다 은퇴하신 존경스런 분이다. 사모님이라는 소리를 아주 어색하게 생각해서 제대로 부
를 호칭을 찾지못하고 있는 부인도 아주 소박하시다.
두 아이를 잘 키워서 모두 출가시키고, 작은 공원같은 역사가 배인 집에서 선생님이 끓여주는 커
피를 나눠마시며 이야기한 것도 물론 즐거웠지만, 사모님이 가꾼 밭을 구경하는 재미를 누렸다.
키가 사람키보다 더 크게 자라서, 버팀대를 줄기줄기 만들어 오이를 매달고 있는 오이밭, 맵지 않
은 서양식 고추와 깻잎을 땄다. 둘이 먹기에 차고 넘친다고 오며가며 들리라는 사모님?의 말씀이
빈말이 아닌 듯 싶었다. 나는 한술 더 떠서 <내가 깻잎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그 향기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누누이 설명>드렸다. 그러므로 자주 들리겠다고.
그곳에서 따온 깻잎과 고추와 오이를 씻고, 또 며칠전에 다른 동네를 순례하며 따가라고 성화바
쳐서 따온 상추까지 씻어놓으니, 내가 짓지 않은 농사로 호강했다. 이제는 이렇게 싱싱한 식사법
을 하고 싶다. 그저 고대로 먹는. 주부인 나도 편하고, 모두에게 건강식이 될 수 있는.
요즘은 어디를 가나, 무척 아름답다. 건물이 없는 들판을 달리다가, 약간 솟은 언덕위에 아름답게
지어진 집을 보면, 탐이 난다. 그런 탐나는 집이 어디 한두군데인가? 예전엔 그냥 그렇게 꿈꾸면
서 지나갔지만, 자꾸 그 꿈을 현실화시키고 싶은 욕심에 내 자신이 놀랄 때가 있다.
생각해야 할 것이 한두문제가 아닌데도 아이들 말처럼 <노말 하우스>에서 살아보고 싶은 생각이
난다. 가게 위층에 붙은 오래된 낡은 집이 아니라, 그림같은 집에서 아이들에게 뻐대기도 하고,
뽐나게 살고 싶다는 욕망말이다.
나의 오래된 취미가 <부동산 소개>를 유심히 보는 일이다. 신문에 난 것이나, 매달 한 번씩 발간
하는 소책자들. 그건 아주 흥미로운 일이다. 집의 규모와 위치, 생김새, 가격... 등 등을 비교하면
서 우리의 형편을 대입하며 저울질하면서 본다. 어떨때는 파는 사람의 위치가 되어보기도 하고,
집이 필요하거나 가게가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정보를 동그라미쳐놓기도 한다. <재미>중에 최고
를 꼽으라면 <집사는 재미>일 것 같다. 집을 쇼핑할 수 있는 여건이 되는 날을 기다리기도 하고.
아직 문제는 많다. 우리 가족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림같은 집에서 살지만, 별 할 일
없이 살게된다면 그것도 그렇게 즐거울 것 같지 않다. 지금 이곳은 그런 면에서 모든 것을 갖추
고 있다.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고, 동네일에 그래도 곁다리 낄 수 있는 것.
어디를 가서 살아도 살아낼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은 아직은 내것이 아닌 것 같다. 집만을 따라서
그렇게 훌쩍 갈 수가 없는 이유가 그것이다. 그러고도, 나의 욕심이 정말 정당한 것인지, 다시한
번 되집어보게 된다. 경제적인 형편과, 우리 가족의 비전이 그런쪽으로만 흐르는 것이 옳은 것인
지 말이다.
캐나다의 집들은 정원을 잘 꾸며놓는다. 집앞쪽의 정원은 모든 사람을 위해, 그리고 집뒤쪽의 정
원은 그들의 가족을 위해 만든다고 하던가? 캐나다의 전체가 하나의 아름다운 공원처럼 되어진
것도 그런 봉사정신 때문이 아닌가싶다. 지나가는 이들을 위해 자신의 정원을 가꾸는 사람들.
이런 것을 생각하면, 이런 <꾸미기>에 문외한인 나는 지금 살고있는 상가가 밀집해있는 우리 건
물이 가장 안성마춤일 것같다. <고객들을 꼬셔들이기> 위해 남편이 쓸고 닦는 가게와 우리끼리
편하게 살 수 있는 잘 꾸며지지 않은 뒤란을 가진 지금의 내 처지가 말이다.
내가 모든 것에서 준비되면 그때쯤, 또다른 삶을 위해 비약할 수도 있을까?
미국서 온 동생이 사진찍는 것을 좋아해서 차를 돌려 물가로 몰았다.
해는 수평선 바로 위에 긴띠처럼 형성된 잿빛구름속에 깊숙이 몸을 걸친 상태였었다.
불이나케 동생이 사진기를 트렁크에서 꺼내는 순간, 그 해가 점점 밑으로 떨어지더니 사진기를
치켜드니, 이미 자취를 감추고 없었다.
그렇게 석양을 본 그 다음날이었다. 모처럼 일 때문에 아침일찍 일어나 거리를 달리게 되었다. 석
양을 받으며 왔던 길을 달려서 도로 가는데 아침해가 따땃하게 지상을 데우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 해가 그 전날 나와 헤어졌던 똑같은 해라는데, 또한 그 해는 내가 잠자는 동안 지구 반대편
내살던 조국을 무더운 여름날로 만들며 일하고 온 그 해라는데, 의미가 심장해졌다.
마치 자연시간에 배운 것을 처음으로 체득한 날의 학생처럼, 감탄사가 나온다.
창세기에 <해가 뜨고 해가 지니 첫날이 지났더라>가 아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
째날이니라>로 나온다. 우리가 흔히 하는 계산법과는 성경은 그 기초부터 다른가 하는 생각이 들
었는데, 저녁과 아침을 연결해서 하루를 시작해보니, 그 뜻이 알 듯 모를 듯 하다.
어제 갔던 호숫가도 생각난다. 다른 볼일로 언니와 함께 갔는데, 시간이 남아서 차를 몰다가 호수
에 근접한 공원에 차를 세우게 됐다. 긴 산책로와 아이들 놀이터, 공연할 수 있는 큰 정자 스타일
의 구조물이 조화롭게 형성된 곳이다. 나무의자들이 곳곳에 있고, 아이들이 뛰어놀다 수영할 수
있게끔 물가로 가는 길이 자유롭다. 캐나다 기스(오리과의 큰 새?) 대가족들이 바위위에서 한가롭
게 노닐고 있는 모습도 눈에 잡힌다.
공원앞에 세워진 비석을 보니 작년에 여러 사람의 기부를 받아서 만들었다 했다. 아이들에게 자
유로운 공간으로 보이면 나는 우리 아이들을 상상속에 세워보곤 한다. 문화를 즐기는 데서 나아
가 조성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하면서, 말이다.
이날 오웬사운드라고 불리는 작은 소도시에서 오랫동안 살았고 은퇴생활을 하시는 한인의 집에
갑작스런 방문을 하게 됐다. 35년전에 캐나다에 오셔서 공부를 마치고 고등학교 교사가 되어 한
우물을 파다 은퇴하신 존경스런 분이다. 사모님이라는 소리를 아주 어색하게 생각해서 제대로 부
를 호칭을 찾지못하고 있는 부인도 아주 소박하시다.
두 아이를 잘 키워서 모두 출가시키고, 작은 공원같은 역사가 배인 집에서 선생님이 끓여주는 커
피를 나눠마시며 이야기한 것도 물론 즐거웠지만, 사모님이 가꾼 밭을 구경하는 재미를 누렸다.
키가 사람키보다 더 크게 자라서, 버팀대를 줄기줄기 만들어 오이를 매달고 있는 오이밭, 맵지 않
은 서양식 고추와 깻잎을 땄다. 둘이 먹기에 차고 넘친다고 오며가며 들리라는 사모님?의 말씀이
빈말이 아닌 듯 싶었다. 나는 한술 더 떠서 <내가 깻잎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그 향기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누누이 설명>드렸다. 그러므로 자주 들리겠다고.
그곳에서 따온 깻잎과 고추와 오이를 씻고, 또 며칠전에 다른 동네를 순례하며 따가라고 성화바
쳐서 따온 상추까지 씻어놓으니, 내가 짓지 않은 농사로 호강했다. 이제는 이렇게 싱싱한 식사법
을 하고 싶다. 그저 고대로 먹는. 주부인 나도 편하고, 모두에게 건강식이 될 수 있는.
요즘은 어디를 가나, 무척 아름답다. 건물이 없는 들판을 달리다가, 약간 솟은 언덕위에 아름답게
지어진 집을 보면, 탐이 난다. 그런 탐나는 집이 어디 한두군데인가? 예전엔 그냥 그렇게 꿈꾸면
서 지나갔지만, 자꾸 그 꿈을 현실화시키고 싶은 욕심에 내 자신이 놀랄 때가 있다.
생각해야 할 것이 한두문제가 아닌데도 아이들 말처럼 <노말 하우스>에서 살아보고 싶은 생각이
난다. 가게 위층에 붙은 오래된 낡은 집이 아니라, 그림같은 집에서 아이들에게 뻐대기도 하고,
뽐나게 살고 싶다는 욕망말이다.
나의 오래된 취미가 <부동산 소개>를 유심히 보는 일이다. 신문에 난 것이나, 매달 한 번씩 발간
하는 소책자들. 그건 아주 흥미로운 일이다. 집의 규모와 위치, 생김새, 가격... 등 등을 비교하면
서 우리의 형편을 대입하며 저울질하면서 본다. 어떨때는 파는 사람의 위치가 되어보기도 하고,
집이 필요하거나 가게가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정보를 동그라미쳐놓기도 한다. <재미>중에 최고
를 꼽으라면 <집사는 재미>일 것 같다. 집을 쇼핑할 수 있는 여건이 되는 날을 기다리기도 하고.
아직 문제는 많다. 우리 가족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림같은 집에서 살지만, 별 할 일
없이 살게된다면 그것도 그렇게 즐거울 것 같지 않다. 지금 이곳은 그런 면에서 모든 것을 갖추
고 있다.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고, 동네일에 그래도 곁다리 낄 수 있는 것.
어디를 가서 살아도 살아낼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은 아직은 내것이 아닌 것 같다. 집만을 따라서
그렇게 훌쩍 갈 수가 없는 이유가 그것이다. 그러고도, 나의 욕심이 정말 정당한 것인지, 다시한
번 되집어보게 된다. 경제적인 형편과, 우리 가족의 비전이 그런쪽으로만 흐르는 것이 옳은 것인
지 말이다.
캐나다의 집들은 정원을 잘 꾸며놓는다. 집앞쪽의 정원은 모든 사람을 위해, 그리고 집뒤쪽의 정
원은 그들의 가족을 위해 만든다고 하던가? 캐나다의 전체가 하나의 아름다운 공원처럼 되어진
것도 그런 봉사정신 때문이 아닌가싶다. 지나가는 이들을 위해 자신의 정원을 가꾸는 사람들.
이런 것을 생각하면, 이런 <꾸미기>에 문외한인 나는 지금 살고있는 상가가 밀집해있는 우리 건
물이 가장 안성마춤일 것같다. <고객들을 꼬셔들이기> 위해 남편이 쓸고 닦는 가게와 우리끼리
편하게 살 수 있는 잘 꾸며지지 않은 뒤란을 가진 지금의 내 처지가 말이다.
내가 모든 것에서 준비되면 그때쯤, 또다른 삶을 위해 비약할 수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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