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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래 루미 미리.

가을이 되면서







<인버휴론>으로 불리는 휴론호수에서 석양에 놀고 있는 아이들입니다.

왼쪽 세아이는 우리 딸들, 오른쪽 작은 아이는 조카입니다.

찬란했던 여름이 지나갔다. 부담없이 놀 수 있었던 때…
손등이 어린애들처럼 타서 손등과 손바닥의 명암이 또렷하다.

캐나다에서 가을은 시작의 계절이다.
그동안 방만하게 놀던 것 다 정리하고, 새로운 <노동>에 힘을 기울여야 할때다.

우선 아이들을 생각해보자.
모두들 한학년씩 올라간다. 새로 반 배정을 받고, 담임을 만나게 된다.
학교가 작다보니, 그 선생에 그 학생들이지만, 그래도 희비가 엇갈린다.
합반이 수시로 일어나다 보니, 5학년이 되는 둘째는 6학년학생들과
합반, 저이들끼리는 똑똑한 아이들만 모였다고 한대나.
9명의 5학년 학생들이 같은 반에 들어가 있다.

나도 처음에는 똑똑한 아이를 가려뽑아서 상위학급에 포함시키는 줄 알았다.
큰애가 3학년때, 오로지 4명의 학생들만 4학년 학급에 들어갔었다.
나는 우리애가 한학년을 건너뛰었나 했다.
그럴정도로 뛰어나지도 않은데 그런 착각을 했다니..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된 이후에도 <똑똑한> 몇명중에 포함되는 걸로 생각했었다.
4명의 면면을 보아도 그렇고.
그러나 그렇지만도 않다.
그 다음해에 4학년이 되는 큰애에게 3학년반에 가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해왔다.
나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누군가가 가야하긴 하지만, 3학년때에도 제 학년 아이들과
놀지못한 그애에게 또다시 3학년반으로 가야하는
4명에 포함시키려고 하는 것은 우선 공평성에 어긋나는 일이 아닌가.
교장에게 그럴 수 없다고, 전해에도 4학년과 공부한 아이에게 다시
그렇게 하라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이렇게 해서 우리애는 다행이 빠졌지만, 3학년반에 있어야 했던
4학년 학생 4명은 제대로 학업성취를 못해서 한학년이 강등된 것이
아니냐는 오해를 참아내야 했다.

학급의 정원을 넘는 아이를 다른 반에 합반시켜야 하는 일은
주먹구구식 한국아줌마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책상 4개만 갔다놓으면 될텐데 다른 반에 집어넣으면,
교사는 교사대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얼마나 힘이 들 것인가?
캐나다 초등학교 학급정원이 25명이며 28명을 넘을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생겨나는 문제들이다.
주요 교과목은 아이들이 옮겨다니며 수업을 같이 듣지만,
예술쪽이나, 체육등은 제 학급 아이들과 함께 수업을 받는다.
어쨋든 이 문제 때문에 매년 여러가지 일들이 벌어진다.
학교는 학교대로 학부모의 불만을 참아내느라, 아이들끼리도 위화감도 있고,
영 불편한 채로 학기를 시작하게 된다.

한 해 두 해 그런 식으로 하다보니, 1학년 상간에서는 서로가 친구가 되는 이점도 있다.
나는 이제는 어느정도 적응이 되어서, 그 문제는 너무 신경쓰지 않기로 한다.
어쨋든 그나마 학교가 문을 닫지 않아서 감사해야 하는 것 아닌가..

개학과 함께, 과외수업들도 하나둘씩 문을 연다.
여름방학 동안에는 거의 일체의 과외가 쉬고,
캠프등 여름을 이용한 특별한 프로그램들이 학생들을 위해 열리게 된다.

아이들의 겨울운동으로 <피켜 스케이트>를 등록했다.
10월 중순부터 3월말까지 거진 6개월간을 매주 2번씩 얼음판에서 있게 된다.
스케이트와 함께 겨울이 와서 스케이트와 함께 겨울이 가는 것으로 나에겐 각인되어 있다.

둘째가 바이올린 레슨을 시작했다.
호기심이 많고 취미를 고상하게 만들기 원해 자원한 일인데
언제까지 흥미를 가질지 모르겠지만, 어쨋든 두고 볼 일이다.
엊그제 있었던 2번째 레슨을 데리고 간 날은 가을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날이었다.
선생이 늦게 도착해서 아이에게 교회앞 잔디밭에서 연습하라고 했다.
녹색의 나무들이 탈색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일찍 낙엽이 된 잎들이 바람에 일제히 일어서서 몰려다닌다.
어떤 시인은 낙엽들이 바람에 몰려다니는 모습을 보고, 데모한다고 하던데,
길가를 뒹구는 나무잎들을 보면 그 시인의 글이 생각난다.

기초음을 연주하는 왕초보 연주자의 모습도 멀리서보면,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하는 <진짜 바이올리니스트>같아 보일지
모르겠다고 아이를 놀린다.

피아노 레슨시간은 아직 잡지를 못했다.
교사(언니)와 학생이 바로 붙어있어서 오히려 더욱 어렵다.
언니는 아이들이 연습을 하지 않아, 레슨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나는 그저 레슨전 한번만 봐주면 될 것 같은데,
언니는 아이들이 매일 피아노를 조금씩이라도 쳐야한다고 말한다.
아이들에게 매일 피아노치게 하는 것은 아직 자신이 없다.
어쨋거나 피아노 레슨시간만 잡히면 아이들의 이번 가을의 시작이 마무리되는 셈이다.

나도 <합창>을 시작했다. 지난 6월 공연이후로 3개월을 쉬어선지 조금 어색하다.
어제 연습시간은 자칫 잊고 넘어갈뻔 했다.
하루종일 무언가 여유있고, 시간이 남아돌아서 이상하다 했더니만
저녁준비를 거진 마쳐갈 즈음 합창연습이 있다는 걸 기억해냈다.
부랴부랴 상을 차리다만채로 악보 하나만 달랑 들고 갔다.
근데, 악보뿐이 아니라 지휘자가 말할때마다 악보에 덧붙여 기록해야할 연필과,
크리스마스용 책, 그리고 이번 텀의 회비를 들고 가야했다.

아주 작은 것에 충실하지 못해서 마음이 안좋다.
슬라이딩해야할 정도로 시간도 급박하게 가고, 모두들 고개숙여
적어야하는 시간에는 멀뚱거리며 앉아있다.
옆사람에게 연필을 빌려달라고 하지도 않는다. 마음이 열려있지 않아서 그런 것일게다.

내가 합창을 정말로 즐기나 다시한번 생각해본다.
가기전에 한번쯤은 연습을 하고 가야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예전에는 낯선 곡을 연습할때 무척 힘들었었다.
악보보랴, 가사읽으랴 정신이 하나도 없었는데 이제는 제법 따라부르고,
어떤 곡은 소리를 높여서 자신있게 부르기도 한다.
악보를 보는 실력이 늘었나, 언어실력이 향상됐나 혼자 짐작해본다.


이제 조금있으면 학교에서 하는 <아침식사 클럽>도 재개될 것이다.
아침잠이 많은 나에겐 조금 일찍 일어나야 하는 이 일도 힘들게 느껴진다.
그러나 규칙적으로 몸으로 하는 유일한 봉사인 이 일을 그만둘 수는 없다.


항상 어린애처럼 보이는 막내가 상에 책을 펴놓고 숙제를 한다.
2학년까지는 공부랄 것 없어서 도와줄 것도 없었는데,
산수 문제를 풀다가 나에게 묻는다.
곱셈의 기본개념을 배우는 중이다. 잘 시간은 되어가는데,
빨리 끝내고 싶은 이 녀석은 집중하지를 않는다.
개념을 잘 이해하라고 하면서 설명하다가 급기야 내 목소리가 커졌다.

평소에는 그애에게 눈을 부라리고, 목소리를 높일 일이 없다.
그러나 이번에는 자연스럽게, 맛을 보라면서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그 눈에 눈물이 맺힌다. 그때서야 조금씩 이해하는 것 같다.
"잘 모르고 학교가면 계속 힘들지? 이렇게 집에서라도 하고
가야지, 네가 학교에서 잘 따라갈 수 있다"고 말한다.
막내를 어린애 다루듯 하는 남편은 숙제가 끝난후 아이를 껴안고 우리방으로 간다.
아빠와 같이 자자고.
둘이 속삭이는 소리가 부엌에 있는 나에게 들린다.
엄마가 소리쳐서 울었노라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아이에게 다가가서, 소리쳐서 미안하다고, 다음엔 조심하겠다고 말해줬다.
아이가 괜찮다고 말한다.




막내와 그 친구입니다. 쥬스를 판다고 내놓은 것입니다.사람들에게 25센트씩 받지요.
본전에 못미치지만, 자본가(엄마)가 공짜로 주니, 아주 더운 날에는 <쥬스 바>를 오픈한다고 조릅니다.
이것도 여름날들의 추억이지요.





이제 아이들의 교과를 봐주는 것도 내 생활목록에 포함시켜야한다.
소리치지 않고, 다정하게... 될려는지 모르지만.
어쨋든 아이들이 진도를 놓쳐버리는 일이 없도록, 그래서
내가 봐줄 필요도 없도록 처음에 잘 잡아줘야 할일이다.

이런 것이 가을이 되면서 나에게 생긴 일이다.

합창을 끝내고 한 2분이면 오는 차속에서 든 생각이 있다. <공부>를 해볼까 하는 것이다.
직업을 잡을 수 있는. 크,,,,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고, 혼자 해볼까 한다.
집에서 공부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까지는 노느라 바빴는데, 이제 아이들이 커가니 내가 무언가를
공부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나도 영어로 공부할 수 있나 시험해보고.
패스를 안한들 중간에 그만둔들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학생의 태도하고는 쯧쯧...)
무얼 공부하려고 하느냐고? 그건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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