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먹구름이 오랫동안 얹혀있다.
이 해가 넘어가는 마당인데, 그것이 나의 그림자처럼,
아직 꼬리를 내리지 않고있다.
먹구름이 깊게 내려앉기 전까지는,
그럭저럭 모두에게 가는해인사와 새해인사를 하면서,
평범하게 마무리지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이제는 아픈 가슴으로 진지한 반성을 하지않고는, 이해를 보낼 수 없게 됐다.
<엄마로써>
가슴이 철렁했던 것은 아이들이 성적표를 받아오고서다.
걱정했지만, 그래도 수업은 따라가기에 그것한가지만으로,
안도점수를 줬던 큰애가 형편없는 성적표를 받아왔다.
며칠간 멍한 가슴을 진정할 수 없었다.
어떻게 혼내야 하나부터,
텔레비전, 컴퓨터를 다 치울까?
아예, 학교끝나고 붙들어앉히고 공부를 시키나?
그러다가 아이와 이야기를 하게 됐다.
공부가 싫지는 않은데,
학기초반에 저는 약하다는 이야기.
옆 친구가 자꾸 불러대는 바람에
수업에 충실하지 못하다는 이야기.
공부하는 게 중요한지는 안다는 이야기,
들을 나누면서, 내 화를 다 뿜어내지 않은 것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별 여유는 없이 살아왔다.
그 여유없음이 아이들 때문만은 아니었다.
가게 일로, 내 개인적인 일들로, 아이들끼리
방치해둘 때가 많았다.
숙제 한번 부탁하지 않길래, 이제는 혼자서도 잘해가나보다 속으로 좋아했었다.
그러나, 큰애의 관심은 우선, 컴퓨터와 텔레비전이다.
그를 잡기가 쉽지 않다.
일일이 붙어앉아서 잔소리하지 않는다면, 스스로가 절제하는 데 문제가 있다.
밑의 두애가 그런대로 제몫을 해오지 않았다면,
나의 어머니로서의 명예는 땅으로 떨어질뻔 했다.
어째됐거나, 도와주지도 않고 관심쓰지도 않으면서
아이들이 모두 잘하기를 바라는 것은,
가당치않은 일이다.
애들이 그동안 잘해왔던 것도, 내 공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그 공을 돌려야 한다.
7학년부터는 고등학교를 준비하는 과정이라서
교과내용도 어려워지고, 점수채점방식도
달라졌다.
머리가 후끈후끈 달아오르던 일도 이제 기억속에 흐려져가고,
내년엔 아이들곁에 붙어있어야 한다는 자기명령만 남아있다.
큰딸의 엄마로만 본다면, 한 50점을 밑도는 엄마성적일 것 같다.
내딸이 50점을 받아왔다면, 나는 어떤 얼굴을 했을까?
<아내로써>
마음의 먹구름 어쩌구저쩌구 이렇게 글을 시작했다.
2003년을 어깨동무한 팔힘이 풀린채로 마감하려는 나의 맘이 아프다.
내가 아프면, 그도 아플까?
- <다모> 버전(웃고 넘어가자)
나는 마음이 아파서 베개를 여러차례 적셨다.
그는 와보지도 않아서, 나의 눈물을 한번도 보지 못했다.
아주 작은 일이었다.
그의 밥을 챙겨주지 못한 것...
조금 더 자세히 말하면, 그가 밥 먹을 시간이 있게끔,
내가 서둘러서 그의 일을 돕지 못한 것 때문이었다.
남편은 하루종일 밥먹을 시간을 찾지 못했고,
그것이 나때문이라고 말했다.
저녁시간이 넘어서, 그가 일하고 있는 곳으로
밥을 싸가지고 차를 타고 달려갔다.
안개가 마치, 술래잡기하듯이 차를 감쌌다가는 풀어주곤 했다.
깜깜한 시골길을 달려갔는데,
나의 엄청난 화해의 손길을 그는 마주 잡지 않았다.
사놓았던 닭튀김을 다 식은 다음에, 너무 배고파서 많이 먹었다고,
왜 전화하지, 가져왔냐고,
국물 한두 수픈 떠먹곤 건네줘서 도망치듯
안개길을 되집어 달려왔다.
그러곤, 침대에만 누우면 눈물이 나왔다.
가슴이 타고, 뻑뻑해지면서 아팠다.
어제같은 날은 아이들에게까지 웃음을 줄 수 없었다.
청소하는 손끝이 얼마나 무거운지...
<너무 저기압>이라며 등을 쓸어주고 나가는 그가 또 야속해
설겆이하면서도 눈물을 흘렸다.
이게 올해의 마지막을 걷는 아내의 모습이다.
바닥이 드러나지 않을 만큼만 해오며 살다가,
드디어는 바닥이 드러난 날들의 풍경이다.
한가지 감사한 것이 있다면, 오랫동안 잊었던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아플 수도 있다>는 것을 다시금 음미했다는 것이다.
좋은 일은 아닐지라도, 사람들의 아픔을 좀더 깊게 들여다볼 수 있게 될 것 같다.
<주부로써>
나는 정말 힘들다.
단아하고, 반듯하고, 깔끔하고, 정갈한
그런 집안을 만들 수가 없다.
간신히 밥먹고 살게 된 것만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며칠전부터 청소를 시작했다.
한국서 손님들도 오시지만,
그동안 게을리했던 청소를,
이해를 넘기면서 묵을때를 안고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데, 아무리 머리를 짜도, 그럴싸한 정돈된 집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사람들의 집을 방문해보면, 모두들 어쩌면 그렇게
요모조모 잘 꾸미고, 잘 치우고 사는지...
그러나 어쩌는 수 없다.
그게 내 한계지만, 또 직업인 것을, 못하지만 안할수는 없는 일이다.
굼벵이처럼 구르다보면 언젠가 길날이 올지도 모른다.
<자 어떻게 할까?>
이렇게 말하다보니, 내가 참 불쌍해진다.
아이들 밥을 막 차려주고, 급하게 가게를 봐야할때가 있다.
그래서 다다닥 내려가보면, 안경이 뿌애서 아무것도 안보인다.
음식하다가 튄 얼룩이 안경사방에 묻어있다.
입고있는 옷에 안경을 닦으면서,
여유없는 내 모습에 웃고 만다.
합창일, 교회일, 마을일 등이 가정을 벗어난 나의 일이다.
배우는 중이다. 아직도 구경꾼에 가까울 수도 있고.
핵심에 있지는 않다. 이왕 할 것, 더 열심히 할 수도 있을 게다.
그런데, 합창은 어쩔까 생각하고 있다.
매주 하루 온전하게 2시간을 나에게 투자하는데,
엄마노릇을 조금이라도 더하려면, 합창을 잠시 쉬어야 할 것 같다.
그것만이 내가 양보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인데.
1달간의 여유가 있으니, 조금 더 고민해보자.
우리 아이들은 다 큰 아이들이 아니라,
엄마손이 아직 많이 필요한 어린애들이 아닌가.
내가 조금 일찍 <푼수>를 떤 것 같다.
정신없는 세 아이 엄마에서, 아이 다 키우고 제할일하는
고참엄마로 스스로를 너무 빨리 올려놓은 것 같다는 말이다.
내년에는 무조건 아이 학교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로 한다.
필드트립(견학학습)은 함께 가고, 학교행사에 부모참여를 바라면 이유없이 참석한다.
그러면서 아이들을 관찰하고, 교사하고도 긴밀한 통로를 구축한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봐서, 나는 내년에도 남편과 싸우지는 못할 것이다.
주로 잘 지내고, 이렇게 마음이 가끔 아플수도 있겠지.
남편이 원하는 반성은 되지 않는다.
그저, 그가 내가 너무했다는 말을 언제 하나 기다리게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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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해가 넘어가는 마당인데, 그것이 나의 그림자처럼,
아직 꼬리를 내리지 않고있다.
먹구름이 깊게 내려앉기 전까지는,
그럭저럭 모두에게 가는해인사와 새해인사를 하면서,
평범하게 마무리지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이제는 아픈 가슴으로 진지한 반성을 하지않고는, 이해를 보낼 수 없게 됐다.
<엄마로써>
가슴이 철렁했던 것은 아이들이 성적표를 받아오고서다.
걱정했지만, 그래도 수업은 따라가기에 그것한가지만으로,
안도점수를 줬던 큰애가 형편없는 성적표를 받아왔다.
며칠간 멍한 가슴을 진정할 수 없었다.
어떻게 혼내야 하나부터,
텔레비전, 컴퓨터를 다 치울까?
아예, 학교끝나고 붙들어앉히고 공부를 시키나?
그러다가 아이와 이야기를 하게 됐다.
공부가 싫지는 않은데,
학기초반에 저는 약하다는 이야기.
옆 친구가 자꾸 불러대는 바람에
수업에 충실하지 못하다는 이야기.
공부하는 게 중요한지는 안다는 이야기,
들을 나누면서, 내 화를 다 뿜어내지 않은 것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별 여유는 없이 살아왔다.
그 여유없음이 아이들 때문만은 아니었다.
가게 일로, 내 개인적인 일들로, 아이들끼리
방치해둘 때가 많았다.
숙제 한번 부탁하지 않길래, 이제는 혼자서도 잘해가나보다 속으로 좋아했었다.
그러나, 큰애의 관심은 우선, 컴퓨터와 텔레비전이다.
그를 잡기가 쉽지 않다.
일일이 붙어앉아서 잔소리하지 않는다면, 스스로가 절제하는 데 문제가 있다.
밑의 두애가 그런대로 제몫을 해오지 않았다면,
나의 어머니로서의 명예는 땅으로 떨어질뻔 했다.
어째됐거나, 도와주지도 않고 관심쓰지도 않으면서
아이들이 모두 잘하기를 바라는 것은,
가당치않은 일이다.
애들이 그동안 잘해왔던 것도, 내 공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그 공을 돌려야 한다.
7학년부터는 고등학교를 준비하는 과정이라서
교과내용도 어려워지고, 점수채점방식도
달라졌다.
머리가 후끈후끈 달아오르던 일도 이제 기억속에 흐려져가고,
내년엔 아이들곁에 붙어있어야 한다는 자기명령만 남아있다.
큰딸의 엄마로만 본다면, 한 50점을 밑도는 엄마성적일 것 같다.
내딸이 50점을 받아왔다면, 나는 어떤 얼굴을 했을까?
<아내로써>
마음의 먹구름 어쩌구저쩌구 이렇게 글을 시작했다.
2003년을 어깨동무한 팔힘이 풀린채로 마감하려는 나의 맘이 아프다.
내가 아프면, 그도 아플까?
- <다모> 버전(웃고 넘어가자)
나는 마음이 아파서 베개를 여러차례 적셨다.
그는 와보지도 않아서, 나의 눈물을 한번도 보지 못했다.
아주 작은 일이었다.
그의 밥을 챙겨주지 못한 것...
조금 더 자세히 말하면, 그가 밥 먹을 시간이 있게끔,
내가 서둘러서 그의 일을 돕지 못한 것 때문이었다.
남편은 하루종일 밥먹을 시간을 찾지 못했고,
그것이 나때문이라고 말했다.
저녁시간이 넘어서, 그가 일하고 있는 곳으로
밥을 싸가지고 차를 타고 달려갔다.
안개가 마치, 술래잡기하듯이 차를 감쌌다가는 풀어주곤 했다.
깜깜한 시골길을 달려갔는데,
나의 엄청난 화해의 손길을 그는 마주 잡지 않았다.
사놓았던 닭튀김을 다 식은 다음에, 너무 배고파서 많이 먹었다고,
왜 전화하지, 가져왔냐고,
국물 한두 수픈 떠먹곤 건네줘서 도망치듯
안개길을 되집어 달려왔다.
그러곤, 침대에만 누우면 눈물이 나왔다.
가슴이 타고, 뻑뻑해지면서 아팠다.
어제같은 날은 아이들에게까지 웃음을 줄 수 없었다.
청소하는 손끝이 얼마나 무거운지...
<너무 저기압>이라며 등을 쓸어주고 나가는 그가 또 야속해
설겆이하면서도 눈물을 흘렸다.
이게 올해의 마지막을 걷는 아내의 모습이다.
바닥이 드러나지 않을 만큼만 해오며 살다가,
드디어는 바닥이 드러난 날들의 풍경이다.
한가지 감사한 것이 있다면, 오랫동안 잊었던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아플 수도 있다>는 것을 다시금 음미했다는 것이다.
좋은 일은 아닐지라도, 사람들의 아픔을 좀더 깊게 들여다볼 수 있게 될 것 같다.
<주부로써>
나는 정말 힘들다.
단아하고, 반듯하고, 깔끔하고, 정갈한
그런 집안을 만들 수가 없다.
간신히 밥먹고 살게 된 것만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며칠전부터 청소를 시작했다.
한국서 손님들도 오시지만,
그동안 게을리했던 청소를,
이해를 넘기면서 묵을때를 안고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데, 아무리 머리를 짜도, 그럴싸한 정돈된 집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사람들의 집을 방문해보면, 모두들 어쩌면 그렇게
요모조모 잘 꾸미고, 잘 치우고 사는지...
그러나 어쩌는 수 없다.
그게 내 한계지만, 또 직업인 것을, 못하지만 안할수는 없는 일이다.
굼벵이처럼 구르다보면 언젠가 길날이 올지도 모른다.
<자 어떻게 할까?>
이렇게 말하다보니, 내가 참 불쌍해진다.
아이들 밥을 막 차려주고, 급하게 가게를 봐야할때가 있다.
그래서 다다닥 내려가보면, 안경이 뿌애서 아무것도 안보인다.
음식하다가 튄 얼룩이 안경사방에 묻어있다.
입고있는 옷에 안경을 닦으면서,
여유없는 내 모습에 웃고 만다.
합창일, 교회일, 마을일 등이 가정을 벗어난 나의 일이다.
배우는 중이다. 아직도 구경꾼에 가까울 수도 있고.
핵심에 있지는 않다. 이왕 할 것, 더 열심히 할 수도 있을 게다.
그런데, 합창은 어쩔까 생각하고 있다.
매주 하루 온전하게 2시간을 나에게 투자하는데,
엄마노릇을 조금이라도 더하려면, 합창을 잠시 쉬어야 할 것 같다.
그것만이 내가 양보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인데.
1달간의 여유가 있으니, 조금 더 고민해보자.
우리 아이들은 다 큰 아이들이 아니라,
엄마손이 아직 많이 필요한 어린애들이 아닌가.
내가 조금 일찍 <푼수>를 떤 것 같다.
정신없는 세 아이 엄마에서, 아이 다 키우고 제할일하는
고참엄마로 스스로를 너무 빨리 올려놓은 것 같다는 말이다.
내년에는 무조건 아이 학교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로 한다.
필드트립(견학학습)은 함께 가고, 학교행사에 부모참여를 바라면 이유없이 참석한다.
그러면서 아이들을 관찰하고, 교사하고도 긴밀한 통로를 구축한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봐서, 나는 내년에도 남편과 싸우지는 못할 것이다.
주로 잘 지내고, 이렇게 마음이 가끔 아플수도 있겠지.
남편이 원하는 반성은 되지 않는다.
그저, 그가 내가 너무했다는 말을 언제 하나 기다리게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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