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머리가 아프다.
새해 벽두에 시작한 두통이, 한달여를 끌고 있다.
뒷머리에서 나타난 두통이 이제는 오른쪽 관자놀이 근처로 옮겨갔다.
목 뒷 부위를 누르면 약간의 통증이 오고, 그것 때문에 머리가 아픈 것 같다.
원인을 생각해보자면, 딱히 집히는 게 없다.
영적인 면에서 본다면,
머리가 아픈 이웃을 보고, 그를 연민한 적은 있었다.
저렇게 아파서 어쩌나, 참 힘들겠다 하고.
그러나 그것은 약간의 오만이 섞인 자세였던 것 같다.
나는 안 아픈데, 왜 그렇게 아프다고 하는거야.
뭔가 잘못된 것이 있지 않겠어? 하는.
그런 일 이후에 나에게도 두통이 왔다.
그것이 심할때는 머리 돌리는 것조차, 힘이 든다.
머리를 숙이고 책을 읽을 수도 없고.
그 와중에 그보다 더한 질병이 찾아왔다.
아랫배가 썰렁하고, 찬 기운이 몸속으로 퍼지는 것 같더니,
소변을 보아도 시원하지 않고,
나중에는 너무 아파 몸이 덜덜 떨릴 정도로 소변보기가 힘이든, 그런 병이었다.
방광염에 걸린 것이다.
이것은 그간 머리아픈 것은 저리로 가라 할만큼 극심한 고통을 몰고 왔다.
약먹기를 싫어하던 나도, 이 병은 항상제를 먹어야 낫는다는 것을 알고
병원에 갔다.
10일치 약을 지어줬다.
간김에 머리아픈 것도 이야기했다.
의사는 뒷목 부위를 집어보더니
최근에 잘 보이지 않는 희귀한 병(백 사이러스?)일지 모르겠다며
엑스레이를 찍게 했다.
머리를 붙이고 이쪽저쪽으로 대여섯장의 사진을 찍었는데,
결과는 금방 이상없음으로 나왔다.
머리가 계속 아프면 가정의에게 진료를 받으라고 조언해줬다.
이곳 의료제도는, 우선 아프면 각자가 선택한 가정의에게 먼저 간다.
그곳에서 간단한 진료는 하고, 전문적인 검사가 필요한 것은
전문의에게 예약을 해주게 된다.
가정의에게 갈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는 응급환자들은 병원으로
달려가면 된다.
물론 의료비는 정부에서 전액 지원하며,
의사들은 환자를 치료한만큼 청구해서 정부로부터 돈을 받게 된다.
반면에 약값은 개인이 돈을 내고 사야하는데,
노인들이나 약 의료보험이 있는 사람들은 그 가격이 무척 싸다.
어쨋든 말이 옆길로 샜는데,
나는 이곳에 이사와서 가정의에게 한번도 가지 않았다.
가정의에게 약속을 했다가 눈이 많이 오는 바람에 취소하고,
증세가 많이 호전되어서 주춤하고 있는중이다.
작은 아픔을 겪으면서,
며칠전 무릎을 친 일이 있다.
내 게으름의 "끼"가 발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냅춰두고, 그저 책이나 읽는식의...
간신히 치유되던 게으름이 아픔을 빌미로 다시 고개를 들다니..
윤대녕의 소설 "눈의 여행자"를 최근에 읽었다.
그 소설속에는 소설가가 나온다.
밤낮이 없는 사람. 무책임하면서 내몰려서 글을 써야하는사람.
글쓰기란 어떤 것인가?
일반적인 생활을 건너뛰면서 기형적으로 살아도 면죄부를 받을
그런 일인가?
일부 어설픈 이들의 글쓰기를 과소봉대한 감이 없지 않지만,
소설을 읽으면서 고얀한 노파심이 들었다.
우리집에 방문와있는 초등학교 6학년이 되는 아이는
한국에서 발간되는 베스트셀러를 포함한 소설등을
거의 읽은 것 같다.
나는 뜨끔하다.
불건전한 정신세계를 그린 그런 책들을
어린 소녀가 여과없이 본다면
어떻게 될까?
책은, 소설은
나이든 사람과, 어린사람이 읽는 것이 따로 구분되어 있는 게 아니라,
누구나 무리없이 읽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그만큼 책임이 막중하다는 이야기겠다.
학창시절 문학자연했던 친구들이 떠오른다.
세상의 죄를 다 짊어진양 너무 심각해서
술을 먹을일밖에는 다른 일은 없었던.
나도 그들중에 한자리 차지했던 사람으로서
부끄럼을 감당할 길 없다.
열심히 사는 것을 배워야 할 시간에
시간죽이고, 돈죽이고, 감정을 소모하는
억지춘향에 놀아났었다는 자각이다.
그들도, 세상에 속해 더이상 게으름이 용서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도 남았으리라.
나에게는 책은 도피처 같은 것이기도 했다.
그 안에 빠져있으면, 다른 것은 안보이는.
게으름의 시작이 마치 책에서 비롯됐다는 피해의식도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책임을 작가에게 전가하는 듯, 이 글이 이상하게 흐른다.
나의 문제로 돌아가서
보이지 않는 미망에 혼돈스러워 했던 젊은날을 지나쳐
삶을 살면서 개운해진 나를 기뻐하면서,
"게으름"이란 복병에 패배하질 않길 원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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