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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나, 그리고 우리

과격해진 아이들...

 


놀라지 말라.

(*아무래도 제 맘이 안되겠어서, 아이들 대화는 삭제했습니다. 나중 읽으시는 분들을 위해, 약간의 은어와 불경스런 말들을 사용하여 아이들끼리 대화나누는 내용을 적었었습니다.)

위의 대화는 우리집에 방문와있던 아이들이 모여서 나누는 이야기의 한토막이다.
부엌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너무 놀라, 몇줄 기록해놓았다.

 

그 아이들은 평소엔 예의바르고, 평범한 아이들이다.

공부도 잘하고, 가정형편도 괜찮은.

문제는 이같은 대화가 그저 일상적이라는 데 있다.

 

대화중 나온 이야기중에 교도소라는 말이 있다.

교도소는 그 아이가 다니던 학원을 부르는 말이다. 이런 노래가 있다 한다.

 

"나의 살던 고향은 00 교도소
그속에서 살던 때가 괴롭습니다."

 

그애가 하는 이야기를 주의깊에 듣진 않았지만,
학원의 웹사이트에는 1등부터 마지막까지 이름이 전부 공개되고,
숙제를 안해가거나 시험을 못보면, 다섯개의 자를 택배를 붙이는 테이프로 붙여서
세로로 세워 아이들을 때리며,
밤11시에 끝나고도 내준 숙제를 하려면, 새벽까지 하든지, 그 다음날 일어나서 다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학원이 부모들에게는 성적을 올려준다고 소문나서,
그 학교 학생중에 이 학원을 안다니면 왕따를 당할 정도라나.

 

겨우 초등6학년이 되는 아이들이, 이렇게 공부를 하고 있으며,
그아이 말에 따르면 초등2-3학년때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이 아이는 이곳에 있는 것을 즐겨했는데,
아마도 이런 공부환경을 견디지 못했던 것 같다.

엄마에게 학원 안다니기로 간신히 반허락을 받았던 때도 있었는데,
주위 아줌마들의 참견으로 다시 학원으로 내몰렸다며 분해하기도 했다.

 

이런 친구에게 옆에있는 아이들은
"나같으면 그런 데 다니면 죽겠다.
가출해. 그게 최고 좋은 방법이야. 우리집에 와. 재워줄께."
하는 말을 농담같지도 않게 말한다.

 

학원에서 제 학년 과정을 공부하는 아이는 거의 없으며, 거의 한학년 위에 것을 하거나,
어떤 아이들은 중등과정을 공부하기도 한다고 한다.

듣기만 해도 숨이 막히는 일이다.

아무래도 부모들은 이렇게 아이들을 박아놓으면 안심이 되나 보다.

 

이제 중학교에 올라가는 남자녀석은 외모에 지대한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같이 있는 친구보고는 넌 부은 것 같다. 그런 다리로 치마는 절대 입지 마라.
제 영어선생보고는 얼굴이 사각이다
나보고는 너무 삭았다
우리 둘째보고는 너무 얼굴이 크다
또 누구보고는 배가 나왔다
저 자신보고는 다 완벽한데, 눈두덩이에 기름이 많고, 피부가 좋지 않은 것이 문제라고 말한다.

 

그런 이야기를 공공연하게 해서 문제를 자주 일으켜서 주의를 주었는데도,
어쩔 수가 없는 가보다.

 

언젠가는 큰딸이 나에게 "변태"가 무엇이냐고 물어본다.
누구에게 들었느냐고 하는 내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
같이 있던 남자아이가 동생에게 그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서로간에 잘못이 있었는데, 그에 대고 한국말로 그렇게 놀린 것이다.

 

한국에 가기 전날 토론토를 보여주러 세아이만 데리고 토론토로 갔다.

꾀꼬리같은 목소리로 가는 내내 노래를 불렀는데,
나도 모르게 혀를 차게 된다. 수도 없는 개사곡들.

 

"어제밤엔 우리아빠가 화가나신 모습으로
한손에는 야구방망이 사가지고 오셨어요.
한대 맞고 참았어요. 두대 맞고 아팠어요.
세대맞고 반항했어요. 네대 맞고 병원실려갔지요.."

 

아이들이 재미있게 부를 수 있는 노래인지는 몰라도,
과격한 언어에 숙달되지 않은 내 귀에는(한국을 떠난지 오래되어선가)
말할 수 없는 걱정이 올라온다.

 

기억할 수 있는 것이 겨우 요정도이지,
숱한 노래들이 이렇게 파행적으로 개사되어 아이들에게
즐겁게 불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가장 듣기 거슬렸던 노래는 아줌마들이 화장실에 갔는데 아저씨들이 와서 어쩌구저쩌구 하는 노래였다. 그만 하라고, 그런 말을 자꾸 입에 담아서 좋을 게 무엇있냐고 해도 속닥이면서 낄낄대면서 몇번이고 불러제치던 아이들.

 

토론토 시내를 구경시키고 한인타운의 호도과자점에서 잠시 쉬었다.
한국의 어른들과는 사정이 달라서 나에게 경계심이 없는지,
부모에게 혼난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늘어놓는다.

 

나는 이렇게 맞았다, 하면, 나는 코를 옆으로 비틀리기까지 했다,
그래도 나는 때려서 고쳐지는 아이가 아니다 하니,
옆에서 여기도 그런 사람있다, 나도 그렇다, 하면서 동조한다.

 

어른들이 아무리 때리고 혼내도
전연 영향을 줄 수 없다는 것이다.

 

한명은 부모들은 본인들이 잘못했을때, 잘못했다는 소리를 안한다며,
자기는 그래서 부모에게 바락바락 대든다고 덧붙인다.

 

호도과자점 주인이 아이들을 보시고
"아가들아, 잘가라. 다음에 오면 또 들리고.."
하니,
문밖에서 저이들끼리 낄낄웃는다.
"우리 보고 아가들이래"하면서.

 

나는 그애들 등을 탁 치면서, 정말 너희들은 아가들은 아니다.
내가 인정하마 했다.

 

사실 아이들이 이곳 생활은 잘하고 갔다.
정이 많은 둘째는 아이들 보내면서 눈물바램을 했으며,
학교 친구들도 카드를 써주고, 교장은 전체 학생들에게
떠남의 방송도 해주고.

그동안 여자아이들이 속해있던 스케이트 강습반에서도
떠나기 전날 카드와 뱃지를 주고, 기념사진도 찍고.

 

남자아이는 그렇게 숙원하던 친구집 초청도 받아 하루밤 지내고 오기도 했다.
제가 꿈꾸던 그런 집이었다며, 그집 아버지와 아이와 함께 탄 스노우 모빌이 스릴이 있었다고 좋아했었다.
친구들이 준 카드를 토론토가는 차안에서 읽으며 눈시울도 붉히고.

 

또 세명이 가족 전체를 위해서 준비한 "발렌타인 데이 파티"는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한국의 아이들은 적극적이며, 거침이 없고, 학업능력이 뛰어났던 것도 좋은 장점이다.

 

아이들이 돌아갈 즈음에는 고운정 미운정이 많이 들었다.

 

우리에게는 아이들의 거친 언어가 받아들여지기 어려웠지만,
그건 아마도 그런 환경에서 살아남다 보니, 자연스럽게 저희들만의 언어가 발전한 것 같다.

내몰려진 환경에서 불평과 불만을 어떻게 다 소화할 수 있겠는가.
노래를 개사해서, 사회를 우스꽝스럽게 만들고,
다른 사람을 폄하함으로써 카타르시스를 얻고.


"아줌마, 이곳은 학원이 없어요?"를 몇번이나 물었던 아이의 눈빛이 오랫동안 생각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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