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그렇게 심각한 얼굴을 하지는 않지만,
음식만드는 시간이 나에겐 아주 각별하다.
우선 음식만드는데, 정해진 시간안에서 해야하기 때문에
누군가 나를 방해하면 신경이 선다.
이럴때 전화가 오면, 아이들이 뎅강 달려와서 수화기를 귀에 대줘야만
마음에 차지,
나를 내처 부르면서 수화기를 내가 챙겨받게 하면 분명히 한마디 하게 된다.
음식하느라 손닦을 시간없고, 우선 몸의 각도를 바꾸기도 쉽지 않다.
조금 게을러서 다른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큰애는 그럴때 내 잔소리를 듣게 된다.
음식을 구상하는데, 짧게 잡아서 한 30여분, 만드는데 1시간이 소요된다.
대장금에서 한상궁이 장금이에게 맛을 그려보라고 하는데,
나는 음식을 만들기전 항상 상을 그린다.
많지 않은 반찬을 만들기 때문에 모두가 흡족한 상차림을 하려면,
대단한 연구가 필요하다.
음식중에서 한가지만 실패해도, 그날의 상차림은
별볼일없음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요즘은 식구가 많아져서 생각도 많아진다. 입맛을 맞추기가 더욱 까다롭다.
항상 희생타가 한두명쯤 생기게 되는데, 그게 둘째가 될때가 많다.
맵고 콜콜한 한국음식은 입에 대지 않고, 국도 한두가지만 좋아하고,
입맛이 거의 서양식이라, 전통적인 한국식이 많은 상차림에서 자주 소외된다.
그래서 안된 마음에 그애를 위해서만 음식을 만들게 될때도 있다.
그애가 좋아하는 음식중 특이한 것중에 순 한국적인 멸치국물 수제비가 있는데,
이 음식은 또 다른 사람들에겐 인기가 없다.
며칠전의 일이다.
둘째에게 점심으로 수제비를 만들어준다고 했다.
내 마음에는 떡국(다른 사람을 위해)과 수제비 두 종류를 생각하고 있었다.
떡을 먼저 물에 불려놓고, 이런저런 야채를 준비하는데
부엌을 왔다갔다 하며 기미를 엿보던 둘째가,
오늘 무슨 음식을 하냐고 묻는다.
나는 그애에게 "엄마가 말하지 않았었냐? 말하기 싫다"고 쏘아주었다.
수제비할 밀가루는 안보이고, 떡만 보이니, 그애 입장에서는 당연히 염려가
되었겠지만, 나는 마음속에 작정을 세우고 있는데,
반복해서 말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나도 내가 왜 그런지, 그 까짓것 말해주면 좋을텐데....
하다 보면, 주걱을 가진자의 권력휘두르기인 것같다.
요즘은 내가 차리는 것뿐 아니라, 얻어먹을 때도 많다.
바로 우리 옆집, 언니네 집에서다.
한국에서 손님이 온 뒤로, 일주일에 세번은 언니집에서 저녁을 한다.
얻어먹는 재미가 있긴 하지만,
어떤땐 언니를 통해 주걱의 권력앞에 조그마해지는 걸 느낀다.
음식이 부족할 것 같던지, 음식이 입에 안맞던지,
혹은 음식먹는 분위기가 편안하지 않을때도,
별다른 불평을 하지 못하고, 밥한 자의 눈치를 보게 된다.
그러면서, 차려준 대로, 항상 맛있게 먹어주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배운다.
나 또한 위에서처럼, 음식만들때서부터 신경을 세우고 다른 사람을 무시한다거나, 실패한 음식에 대해서는 미안함을 표현하기전에,
제 마음에 불만족이 생겨 인상을 쓴다거나,
시간을 맞추기 힘들어, 누군가의 도움을 바랄때
제때 도움을 주지 않는 집안의 다른 일손들에 대한 원망때문에
상차림 자체를 즐기지 못하게 된다.
그런 와중에서도 음식만드는 경력이 쌓여가면서,
한두가지 성공한 요리들을 검증받으면서 나름대로 노하우가 쌓여져가는 기쁨이 있다.
무슨 음식이든 한번 해서 먹여보고픈 의욕이 드는 것도 아주 좋은 현상이다.
며칠천에 읽은 한비야의 "중국견문록"에 나오는 징기스칸이 먹었다는,
음식을 오늘 점심메뉴로 내놓았었다.
육수를 만들고 그곳에 데워먹는 "훠궈"라고 불리는 이 중국음식은
일본식으론 샤브샤브라나..
한번 만들어보고 싶었는데, 소스만드는 법에서 막혔었는데,
한비야가 일러준 대로 하니, 모두 좋아하면서 먹었다.
음식만드는 자로서 주어진 지위를 확실히 하기 위해선,(잘릴 염려는 없더라도)
직업정신을 십분 발휘하여 쉬우면서 영양가있고 인기있는
음식발전을 도모할 것이며,
먹은 음식이 살로 가게, 편안한 얼굴로 봉사할 것을
흩날리는 눈발을 바라보며 다짐하는 바이다....
음식은 만드는 사람의 정성과 먹는 사람의 감사함이 빚어져
아름다운 풍경이 되어야함을 한시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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