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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래 루미 미리.

"캔 유 비 어 마이 발렌타인?"

 



초대합니다

시간 : 금요일 3시-8시
장소 : 미리의 방

이곳에 오면, 공작, 게임을 즐길 수 있으며
스낵 시간도 있습니다.

오는 방법 : 약도 참조

이상과 같은 삐뚤빼뚤한 글씨로 쓴 초대장을 나와 남편이 받았다.
막내에게서 온 것이다.

확인을 위해 달려온 아이에게 3시부터 8시까지는 너무 길고,
저녁먹고 난 다음에 하면 어떻겠느냐고 양해를 구한다.

한시도 쉬지않고, 재미있는 일을 계획하는 막내다운 발상이다.

그애의 방에 가면,
아마도 핫 초코렛과 토스트, 그리고 과일을 깎아서 대접할 것이다.
몇가지 게임을 하도록 종용받을 테고, 제 방에 있는 기니피그와
물고기들에 대한 설명등을 들어야 할 것이다.

어제는 소파에 앉아서 나와 남편이 책을 보고 있었다.
처음엔 아빠의 양말을 벗기더니,
발바닥이 마치 가죽같다면서 발 마사지를 해주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베개를 가져와서 아예 눕히고는
팔 다리 주무르기,
머리 빗겨주기를 마치고
마지막 서비스로 음료수에 빨대를 꽂아 누워있는 아빠에게
먹이는 것이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우스운지...

그 다음엔 엄마 차례라면서 나도 같은 서비스를 받았다.
발바닥을 맛사지할때는 간지러우면서도, 시원했다.

이날 내가 읽고있던 책은 제인 구달의 "희망의 이유"였는데,
이 책은 우리 미리를 많이 생각나게 했다.

동물행동 연구가인 제인이 18개월때 지렁이를 잡아다 침대곁에
모아논 사건이 나온다.
미리도 자주 그러는 편이라, 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랬더니, 어떻게 됐느냐고 묻는데
"그 아이는 엄마가 지렁이는 흑이 없으면 죽는다고 해서
모두 바깥으로 다시 갖다놓았다"고 말해줬다.

미리는 아예, 큰 그릇에 흙과 풀을 담아서 지렁이를 잡아온다.
뚜껑에는 구멍을 뚫어서 공기통로를 만들고..

아마 제인이 조금 더 컸더라면 미리처럼 했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저께도 교회가기전 잠시 들린 월마트에서
미리는 물고기 몇마리를 더 사고자 했다.
나는 당연히 "노"라고 하고 그를 데리고 나왔는데,
그녀의 푸념,,, 아빠하고 왔으면 살수 있을 것이라고.

이미 집에 세개의 어항에 네 마리의 물고기가 있다.
두 마리는 한집에, 같은 종류인 두 마리는 서로 싸워서
각각 독방을 쓴다.

이제 또 물고기를 사면, 그애는 매번 네개의 어항의 물갈이를 해야한다.
그뿐인가.

제방의 기니 픽까지 케어하려면, 음식주고, 케이지 청소해주는등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것이다.

내가 돌아오는 차속에서 막내 이야기를 하면서
"당신이 갔다면 미리에게 물고기를 사줬을 것"이라고 말했다.

남편에게도 다 속중이 있다.
"그래서, 아이들과 함께 월마트에 들리지 않았다"는 것.
거절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마음 여린 남편에, 귀여운 딸.


막내는 매주 월요일 "브라우니"라는 클럽에 나간다.
7-8살의 여자아이들로 구성된 모임이다.
"소녀 캐나다 가이드"라는 큰 회합의 한 부분으로,
이웃과 자신에 대한 케네디언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맹세하고,
어떻게 이 사회에 도움이 될 것인가를 배우는 모임인 것 같다.

지난주에 선서식이 있었는데,
부모와 친구들앞에서 캐나다 가이드의 지역 책임자와 인솔교사 앞에서
"맹세"를 하게 된다.

제 차례를 기다리는 미리는 거의 그 설레임으로 천장으로 솟아오를 것
같은 표정이다.

 

 

제 차례가 됐을때, 또랑또랑하고 맑은 눈동자로
팔을 올려서 두 손가락을 모으고
그 동안 외원 "브라우니 선서"를 했다.

 

"약속합니다

나는 내 자신에 대해 진실로 최선을 다하고 이웃을 도와줄 것을,

나와 하나님과 캐나다의 이름으로 약속합니다.

브라우니로서 정직하며 친절하고 내 주위에 있는 세계를

돌보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그날 모임에는 미리의 친구인 조던 부모도 있었는데,
조던 엄마 샤론은 그 표정이 좋지 않다.
마치 중병을 앓는 자의 모습이다.
괜찮냐고 했더니, 3월에 검사를 위해 병원에 입원해야 한단다.
손목에 자라고 있는 이상한 뼈때문인데,
어쩌면 7월쯤에 수술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했다.

검사하는 날, 조던을 우리집에서 재우면 안되겠느냐고 한다.
그러마고 했더니,
조던과 미리가 펄쩍 뛰면서 좋아한다.

그날 집에 와서 보니, 미리는 조던의 엄마를 위한
"get well" 카드를 이미 만들어놓았다.

카드에는
당신을 위해서 아침은 00가 하겠습니다.
빨래는 00가 하겠습니다.
쇼핑은 00가 하겠습니다.

이런 내용이 죽 있는 것이었다.
인쇄된 내용에 미리는 제 이름과, 제 친구의 이름,
그녀의 남편의 이름, 이웃 아줌마의 이름등을 써놓았다.

안심하고 병원에 갔다가 회복하고 오라는 내용인 것이다.

이 카드에다, 온집안 식구들의 사인을 모집하러 다닌다.
심지어, 물고기의 이름을 써넣고, 기니픽 이름도 써넣고,
햄스터, 토끼까지 집안의 모든 살아있는 생명의 이름을 다 포함시켰다.

배달할 날짜를 "3월5일"로 써놓고 봉해놨는데,
그게 한달이나 남았다는 걸 그애가 아는지 모르는지...

미리는 가끔 나에게 지난날을 물어보곤 한다.
엄마는 어릴때 애완동물을 키웠냐고.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에 대한
마음아픈 기억이 있는 엄마밑에서 자라나서,
집안에 애완동물을 키워본 경험이 없다.

개구리,달팽이, 메뚜기, 거미, 지렁이까지
먹을 것을 주며 애정을 들이는 미리 입장에서 보면,
엄마는 참으로 어린시절이 불우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 것이다.

그러면 나는 생각다못해, 어렸을때 쥐가 아주 많았다고 말한다.
그 쥐들은 집안에 사는 것이 아니라, 광이나 들에서 많이 살고,
낡은 건물에 가면 자주 볼 수 있다고 말해줬다.

그랬더니, 한국에 가면 쥐를 많이 볼 수 있냐며 좋아한다.
쥐를 보기 위해 엄마고향에 가야겠다는 것이다.

같은 쥐를 보는 엄마와 딸의 시선은 얼마나 다른지.

어쨋든 미리 덕분에
이제는 지렁이를 보면서 소리를 지르지는 않는다.
매일 저녁 기니픽에게 뽀뽀를 해주고,
외출할때마다, 작별의 말을 잊지 않는다.
또한 케이지안에 들여놓은 작은 박스를 갉아대는 기니픽에게
이빨상한다고 충고해줄때 보면,
정말 기니픽이 말을 알아듣게 될것 같다는 착각도 든다.






어제는 매일 혼자자는 외로움을 호소하는 아이를 위해,
책을 들고, 그애의 침대에 같이 들었다.
종알거리는 조그만 소리옆에서 나는 한없이 풍요로와진다.

발렌타인데이에 남자친구에게 제가 산 테리베어를 줄까말까 고민하는
그애를 보며, "나의 발렌타인이 되어주시겠습니까?" 속으로 사랑고백을 한다.

잠시 잠깐, 남편이 없다고 하더라도
이 애 옆에서라면, 편안한 하루마감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황망히 그 생각을 접는다.

까만 속눈썹을 보며,
부드러운 볼때기를 보며,
내 몸으로 나은 기적같은 아름다움에 흠뻑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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