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한번더 생각해보자.
다른 사람들이 잘 모르지만, 알게 되면 유용한것,
네가 관심이 가는 것
그런 주제를 찾아야지.
고래이야기도 좋지만, 글쎄 그게 그렇게 일반적인 사람들의 흥미를 끌 수 있을까.
아냐 아냐.
주제를 정해야 하고,
글을 써야 하고,
또 고쳐야 하고,
그 글로 연습해야 하고,
많고 많은 과정이 남았어.
한번에 다 할 수 없어.
힘들어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돼.
이런 설왕설래를 거쳐서,
둘째의 "Phobias(공포)"란 글이 탄생했다.
처음에 "Whale(고래)"로 제목을 삼고, 도입부분을 읽어가던,
그애에게 딴지부터 걸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것이, 처음에 발을 잘못들여놓으면, 다시 고치기가 난감해지지 않는가?
제 생각에는 고래를 소개하고, 고개사냥으로부터 파생하는 생태계 파괴,
환경문제를 거론하고 싶었었는지는 모르겠다.
어쨋든 제 연설주제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얼굴이 울퉁불퉁하더니,
얼마후에 "Phobias"로 바꾸기로 했다며, 자료를 찾고 난리다.
나는 조금 더 실생활에 근접한 제목이었으면 했으나, 더이상 참견할 수 없어서
알아서 하도록 했다.
며칠후 루미가 작성한 원고를 보니, 어느정도 가닥은 잡혀있었다.
그런데, 무언가 허전한 그것..
공포에 대한 것을 잘 설명했어. 여러 종류, 그리고 "벌"에 물린 경험으로 벌을 보기만 해도 떠는 네 경험까지 잘 넣었고.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지도. 그러나, 네 이야기가 조금 미흡해. 넌 공부하고 나서 어떤 걸 느꼈어? 너의 관점은 무엇이냔 말이지. 그런 이야기가 들어간다면, 훨씬 좋은 글이 될 것 같애.
잘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았지만, 그렇게 조언해주었다.
그 다음에 그애가 나에게 읽어주는데, "공포는 우리 삶의 큰 굴곡이다. 없으면 좋을. 그러나, 어떤때 작은 희열도 있다. 우리 할머니같은 분. 할머니는 고무로 만든 뱀을 보면, 기함하신다. 다른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말이다. 아! 나는 이제 가야겠다. 저 멀리서 벌이 날아온다."라고 맺고 있다.
바로 이것이다. 무언가 산뜻하게 글을 매듭지어서 살짝 들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이제는 됐다.
매년 열리는 스피치 대회는 아이들에겐 큰 프로젝트이다.
우선 원고를 마련해야 하고, 이를 어느 정도 기억해서 반에서 경선을 한다. 반에서 통과한 몇명이 뽑힌 아이들과 학교 강당에서 다시 한번 겨룬다.
올해 우리집의 세 어린이 모두 출전했는데, 오로지 둘째만 학교경선에 올랐다.
막내는 학교에서 다 한다고 해서, 원고도 볼 기회를 갖지 못했는데, 너무 짧고 목소리도 작고, 주제가 광범위해서 떨어졌노라는 점수표를 나중에 받았다.
학교에서 작업하던 것을 프린트해서 집에 가져왔어야 하는데, 어정쩡하다가 그렇게 된 것 같다.
올해 처음 해본 스피치이니, 다음에는 엄마와 함께 하자고 이야기했다.
큰애의 스피치 주제는 "알러지(알레르기)"로 제가 앓고있는 "동물털 알러지"를 기반으로 해서 광범위하게 사람들에게 퍼져있는 병에 대한 것을 조사했으나, 도입부분에 사람들의 주목을 끌기위해 "코를 훌쩍이고 재치기"를 했는데, 그 부분이 너무 길었던 것 같다. 살짝 맛만 보여줬어야 하는데.
그리고 중복되는 부분을 많이 없앴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정보 자체가 그리 신선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게다가 발표때 당당하고, 자신있게 하지 못했겠지. 어쨋든 아쉽게 큰애도 반 경선에서 떨어져버렸다.
마지막 하나남은 희망, 둘째의 학교 경선때 보러 갔다. 11명의 연사들 중에서 4명을 뽑아내는 자리였는데, 막히지 않고, 또박또박 잘 해나갔다. 무사히 4명에 안착,
이렇게 올라온 아이들이 "The Royal Canadian Legion"(캐나다 재향군인회)에서 주최한 "말하기대회 페이슬리 결승전"에 오르게 되는 것이다.
저급(1-3학년), 중급(4-6학년), 고급(7-8학년)에서 각각 4명씩 출전한 연사들은 제한된 3분에서 5분 사이 부모와 친구들앞에서 발표를 한다.
저학년 아이들은 연설원고를 다 외우지 못한다. 들고나와서 읽는 아이도 있다.
둘째가 속한 아이들은 반은 외우고 반은 조금씩 훔쳐보면서, 연설을 하고,
고학년 아이들은 거의 모두가 완벽하게 외워서 마치 세미나를 주최하는 학자처럼, 능숙하게 이야기한다.
그것이 세 그룹의 가장 독특한 다른 점이었다.
둘째가 아주 흡족하게 발표를 했다. 목소리의 톤도 좋았고, 간간이 제스춰도 들어갔으며, 전달능력이 뛰어났다. 아이의 순서가 끝나자, 옆에 앉았던 학부모들이 "아주 잘했다"고 칭찬해준다.
이제, 결과를 말하자. 루미는 제 그룹에서 1등했다. 코밑으로 여드름이 나서 무대에 오를 수 없다던 녀석이 마침내 해냈다.
사진찍고, 사람들에게 축하받고, 1등한 사람들은 다른 지역에서 뽑힌 아이들과 다시 한번 겨뤄야 한다며 서류작성을 위해 남아달라고 말했다.
주최측의 책상에서 등록원서를 작성하는 아이 옆에 있는 내가 왜 그렇게 후들거리던지..
제 생애 처음 받아봤다는 작은 트로피를 만지작 거리는 녀석. 그들이 준 상장과 부상으로 준 봉투속에는 25달러가 들어있다.
그 자리에 모였던 동네 사람들, 그리고 심사를 담당했던 이들...
모두가 집에서들 우리 루미 소식을 나눌 것 아닌가.
그집애, 잘 하더라. 원고를 한번도 보지 않았어. 그리고 그 끝이 좋던데.. 모두 웃었지. 똑똑해 보였어... 하면서.
아 내 어깨에 힘이 팍 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재작년인가, 아이가 스피치를 연습할때 나는 아무 도움을 주지 않았다.
제가 혼자서 하길래, 그래도 되나 했었다. 내가 또 무엇을 도와줄 수 있으리라고, 스스로 기대도 하지 않고.
제딴에는 열심히 했는데, 결국 떨어졌다.
그 뒤로 친구부모들을 통해, 부모들이 많이 도와준다는 것을 알아냈다. 원고부터, 연습까지.
그때 이후로 아이들이 학교에서 하는 큰 프로젝트는 내가 많이 도와주려고 한다. 힘이 닿은대로. 나도 배우고 아이들도 배운다.
옆에서 팔짱만 끼고 있어서는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아냈다.
그덕인지, 작년에 큰애가 "Korea"로 3등에 입상하는 영광도 입었었다.
적극적으로 간섭해서, 이런 결과를 얻으니, 나 또한 기분이 좋다. 나도 참 많이 발전한 것 같다.
"사진 설명: 작은 연사들입니다. 왼쪽 끝 뒤에 선 아이가 둘째 루미입니다. 5학년치고는 키가 꽤 큰 편이죠. 3월7일날 지역 경선에 다시 나갑니다. 욕심은 없지만, 그래도 응원해 주세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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