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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래 루미 미리.

스노우데이와 아이들

눈내리는 날이다.
오랜만에 페이슬리의 전통적인 모습을 보게 된다.

눈이 오면 사물들의 키가 비교되면서 돋보인다.
키큰 나무, 그 밑에 보이는 삼각형의 지붕,
그보다 낮은 차, 작은 나무들..
앉아서 놀데가 없는지, 비둘기가 사다리에 쥐죽은듯 엎어져있다.
언젠가 눈내리는 날, 꼬리가 눈에 덮여서 날지못했던 비둘기가 생각난다.

촘촘히 나리는 눈발들.
이런 풍경을 은연중 기다렸다는 듯이 낯익다.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아이들은 라디오앞에 붙어앉는다.
이런 정도의 눈이면 <스노우데이>가 될 공산이 커지기 때문이다.

점심을 쌀 준비를 하다가, 나도 솔깃 귀를 기울였다.
예상대로 거진 모든 학교가 문을 닫았다.
문을 닫는 가장 큰 이유는 버스를 운행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길이 미끄러워 안전사고가 날 수 있고,
학교 파하고나서 더욱 큰눈이 오면 아이들이 집에 가지 못할 수가 있으므로
문을 닫게 된다.
이런 소식을 지역 라디오에서는 전해준다.

자켓에 장화를 신고, 스노우 바지를 내려서 발목을 덮는다.
장갑을 끼고 옷에 달린 모자와 또하나를 덧쓰고 나서면,
그런대로 눈밭에 있을 수 있게 된다.

눈썰매를 끌고 나간 아이들을 챙겨보느라 나선 길에
사진기도 들었다.
요즘 사진을 찍어도 편집할 수가 없어서 사진이 밀리고 있지만,
어쨋든 기록을 위해서 찍는다.

한국에서 꼬마 3명이 방문와 있다.
겨울방학 두달을 영어환경에 있겠다고 야심차게 조국을 떠나온 아이들이다.
한국학원에서 영어교사로 일했던 언니의 친구가
제자들인 그 아이들을 데리고
지난 새해첫날 이곳을 온 것이다.

여자아이 둘은 큰애와 둘째의 중간인 92년생이고,
남자아이 한명은 큰애와 같은 91년생이다.

이제 며칠 놀았다고, 한국서 온 아이들은 영어가 입에 익어가고,
우리 아이들은 제딴에는 한글을 조금 쓴다고 생각하고 있다.

6명의 아이들과 고등학생 조카까지,
그리고 네명의 어른들..
누구 하나 식사시간에 빠져도 모를정도로 밥먹을때는 부산하다.

사실, 이렇게 되기까지에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간의 경험으로 다시 하고싶지 않다는 남편의 바램도 있었고.

이번에는 언니에게 전적으로 주관하라고 했다.
나는 도와주겠다고.
언니는 작은 살림만 하다가, 어떻게 그런 용기가 생겼는지는 모르나,
어쨋든 우리 둘이 힘을 합하니 못할 것도 없어보였다.

나는 심중에 한국아이들과 놀면 우리 아이들의 한글실력이 좀 늘어날까,
그런 희망을 갖게 됐다.
그래서 남편을 설득해서, 또한번 일을 저지르게 된 것이다.

두 여자아이는 한명씩 딸아이 방에 들여보냈다.
서로 친구하라고.
남자아이는 조카와 같은방을 쓰게 하고,
언니 친구인 장선생님은 언니집의 한방에서 머무르신다.

그렇게 정돈을 하고보니, 사실 못할 것도 없는 일이다.
우리 엄마뿐 아니라, 옛 어른들은 대가족을 이루고 살지 않았는가?

감사한 것은 아이들이 모두 잘 먹고, 잘 지내고 있다는 점이다.
엊저녁의 김치볶음은 너무 인기가 좋았다.
그렇게 잘먹어주는 아이들이 고맙다.

방학이 끝나고, 어제 처음 학교에 갔다.
미리 말해놓았지만, 입학원서를 쓰고, 아이들을 각학년으로 들여보냈다.

비서로 일하고 있는 브랜다는 겨울방학전에 이러저러해서
요만고만한 아이들이 2달간 학교생활하고자 한다 했더니,
"오~ 우, 민디!"하면서 놀라워했다.

둘째딸 반 아이들은 <한국아이들>을 위해서 자리도 만들고 했다는 데,
아이들이 모두 윗학년반으로 가버려서, <김칫국>만 마신격이었다고
학교파한후 나에게 와서 말한다.

처음 출석했던 학교에서 여자아이들은 제 책상을 둘러싸고
물어보는 외국친구들 때문에 기분이 좋았다고 한다.
한 아이는 지난 여름에 20여일간 토론토를 방문했었다고 하는데,
영어를 썩 잘하는 걸 보고, 학교교장까지 놀랬다.

전체회의를 통해서 컴퓨터 쓰는 시간도 일률적으로 정하고,
소소한 규칙들을 정했다.

6명이 우르르 몰려나가 눈과 놀고 한명씩 들어서는데,
모두 눈귀신들이 되어있다.
고드름처럼 언 장갑과 스노우 바지를 벗겨서 건조기에 말리고 있다.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어울려 노는 이번 겨울,
서로에게 좋은 경험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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