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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떠나요

여행자의 눈으로 --- 토론토(2)

“과학관”에서 더 놀고싶어하는 아이들을 재촉해 엄마집으로 향했다.
어린 조카들을 데리고 먼곳에서 동생이 와있고, 남편과 언니도 우리 온 다음날 내려오기로 했기 때문이다.

 

엄마가 계신 아파트는 65세 이상의 노인들이 사는 곳이다.
교통의 요지일뿐 아니라, 차없는 노인들이 살기편하게 조금 걸어가면 큰 상가들이 있다.
아파트 앞쪽으로 넓은 잔디가 펼쳐져있고, 높지않아서, 시원하고 편안한 느낌을 준다.
아파트 뒤쪽으로 난  수풀진 오솔길은 엄마를 비롯한 노인들의 산책로로 이용된다.
또한 작은땅을 원하는 사람에게 줘서, 정원을 가꿀수 있게 하는데, 엄마는 그곳에 상추나, 파, 고추등을 심어서 우리들에게 나눠주고는 하신다.

 

엄마가 처음 아파트를 보던 때가 생각난다. 신청해놓고 차례가 와서 보러간 아파트는 고층빌딩이었는데 무표정한 노인들이 현관 근처에 할일없이 앉아있는 모습하며 어쩐지 세상과 격리되는 듯한 느낌, 엄마가 남은 생을 보내기엔 어쩐지 황량해보이는 곳이었나 보다.
기운이 빠진 엄마에게 딸 사는 곳이 가깝고, 교회도 지척인 곳에 방이 났다며 담당자가 새로 소개해준 곳이 이 아파트였다.

 

답사차 들른 이곳에서 한인할머니를 만나고, 친절하게 노인아파트 생활을 설명들으시고, 그 아파트가 주는 편안함 때문에, 엄마는 마음을 바로 굳히셨다. 그곳에는 10여명의 한인들이 있으며, 그들과 교제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큰 힘으로 작용하셨던 것 같다.

 

정부에서 주는 연금의 30%를 집세로 내고, 나머지는 생활비로 쓰신다. 
사실 말이지, 엄마의 독립은 그동안 치대었던 자식들에게서의 해방이었다.
60세가 훨씬 넘어서까지 우리 아이들까지 봐주셨던 엄마를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로 인해 “해방”이 늦어졌던 건 아닐까 죄송함이 앞선다.

 

어쨋든 거실, 방, 부엌, 화장실로 이뤄진 작은 아파트지만 온 가족의 아지트로 충분하며 이번에도 우리가족 5명, 동생네 3명, 엄마와 언니까지 10식구가 뒹굴수 있었다.

 

집에 오니, 남편은 바로 나가야한다고 말한다. 캐나다에서 남편쪽 인척으로는 한분뿐인 삼촌이 함께 저녁을 먹자고 하셨다고.

 

중국식당에서 생전 처음 맛보는 죽을 먹었다. 이름이 뭐라더라? 여하튼 중국 황제가 먹던 음식이라나 뭐라나. 우리 어른들이야 삼촌 숙모께서 주문해준 음식이 맛이 있었지만 아이들은 처음에는 그렇지 않게 보였다.

 

아이들에게 식당선정과 음식주문은 대단한 토론이 필요한 사안인데, 이번에는 그런 모든 과정이 없었던 것. 나는 조금 있으면 먹을거라며,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시키자고 제안하지는 못한다. 나는 천상 한국산 얌전아지매인가 보다. 조금 지나니 막내는 죽을 잘 먹고, 큰애 둘째도 볶음밥을 많이들 먹었다.

 

그렇게 하루가 끝나는지 알았다.

 

집에 돌아오니 7시가 조금 넘어있었는데, 막내동생이 눈을 반짝이며 말한다.

 

-“Passion of Christ(예수의 수난)” 아직 안봤지?
오늘 엄마와 언니와 함께 가. 유명한 영화잖아.

 

얼마전부터 언제볼까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영화를 동생이 가라고 하는 것이다.
제가 아이들과 함께 있겠으니 저녁 편을 보고 오라는 것.

 

-너는 안봐도 되고?
하고 묻고나서 보니, 동생은 셋째를 임신하고 있는 중이라 그런 잔인한 영화는 볼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응. 나는 잡지에서 많이 읽었어. 어떤 사람은 영화 때문인지 보다가 심장마비로 죽었다는 사람도 있고, 하여간 대단해서 영화가 끝나도 바로 일어서는 사람이 없데. 마음의 준비 단단히 하고 가..

 

-엄마도 볼거야?

했더니, 목사님이 권했다며 관심을 보이신다.

 

남편은 삼촌집으로 컴퓨터를 봐주러 떠났고,  그래서 늙은 두딸과 할머니 한분이 영화를 보러 갔다.

철들고는 한번도 엄마와 같이 극장에 들어갔던 적이 없는 듯했다. 참 특이한 느낌…

 

다음날, 사람들 사이에 소문이 나있는 한인마켓을 쇼핑겸 구경갔다. 이 마켓 때문에 주변의 작은 식품점 몇이 문 닫았다는 소문까지 들리는 그곳에는 정말 없는 게 없는 것 같았다. 마켓 내에는 떢뽁이등 음식 파는 곳도 있고. 한인들이 많아지면서 이렇게 대형화되는가 보다.

 

그러곤, 정부청사로 여권을 하러 갔다. 15년전 이민올때 한국에서 만든 여권 하나만 들고있는 나는 여권이 필요없는 미국에는 여러번 나갔으나, 물건너서는 한번도 떠나지 않았었다. 내 고향인 한국도. 이제 여권이 생겼으니 언제 한번 갈수 있으려나.

 

이제 두군데 들리면 된다.

그 하나 중국타운. 토론토의 번화가 바로 밑에 위치한 차이나타운은 그 거리의 냄새조차 조금 다르다. 가게앞에 좌판을 벌이고 있는 것도 다른 데선 볼수 없는 풍경이고, 거리를 오가는 인파들은 온통 중국인이다. 가끔씩 싼것을 찾아다니는 한인들도 섞여있겠지만.

 

남편은 이곳에서 필요한 약재를 구입한다. 작년에 “사스”가 창궐할때 무척 큰 타격을 입은 곳이다.

 

그리고 한인타운.
70년대 이민행렬이 늘어나기 시작했으니, 이민역사 40년을 향해가는데, 오리지날 한인타운은 많이 발전하지 않은 것 같다. 작은 규모의 가게들, 쉽게 세워지고 쉽게 문을 닫는 업소도 많고. 건물에 투자하지 않아서, 번듯한 빌딩들이 많지 않다. 우리도 이 거리를 방황한 사람들이라 남편과 예전의 가게 자리를 보고 빙그레 웃어본다.

 

한국사람이 모이면 이렇게 한인문화도 따라오게 되어있는 것인가 보다. 우리는 이제는 토론토를 벗어났지만, 먼곳에서도 한인들이 만나 특별한 교제를 이루고 있지 않은가. 한인회, 교민신문사, 한인단체등을 생각해보면, 이곳도 작은 한인공화국인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제는 한인타운이 처음 생겼던 “블루어” 거리 뿐만 아니라, 북쪽에도 서쪽에도, 남쪽에도, 동쪽에도 한두가게가 생기면서 그 숫자가 늘어 작은 한인촌이 형성되고 있다. 멀리 길게 자라는 뿌리들마냥.

 

노래방과 인터넷 카페, 그리고 한인학원까지, 그야말로 뭐가 없는지 아리송하다.

 

토론토는 한마디로들 모자이크 사회라고 한다.
그래 그거! 복합문화.
각 모양으로 생긴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제 나라 문화를 보존하면서 케네디언의 한 구성원으로 살아간다. 그리고 그런 것이 그런대로 조화되어 있다. 발음이 튀어도 별로 이상하지 않고, 생긴 것이 독특해도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
서로가 서로의 다름을 잘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내는 불협화음같은 하모니,,,

 

 

그래서 나는 그곳에 가면 한인문화를 끄등겨안고 내 사는 곳에 온다. 배안에는 얼큰한 순부두 찌개로 채우고 몇가지 한국소설과, 한국에서 유명했던 텔레비전 드라마 디비디와 한국식품이 든 보따리 보따리를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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