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첫인상은 안개였다.
새벽5시에 나선 길은 안개에 가려 마치 섬처럼 모든 사물들이 떠있는 것 같았다.
그 깊은 아름다움.
비행장에서 남편은 마지막까지 쫓아들어올 기세로 앞장서다가 겨우 두번째 관문에서인가 더이상 진전할 수 없게 됐다.
짧은 헤어짐의 인사를 하고 또 몇번의 관문을 통과하여 비로소 개찰구 앞에 앉게 됐을 때 한줄기의 눈물이 삐져나왔다,
내가 어쩌자고 남편을 떠나고 있는가, 하는 남편에의 그리움이 그 첫 원인이었다.
설레임에 가려서 빛을 보지 못했던, 남겨진 자에 대한 안타까움이 그제서야 얼굴을 들여민 것이었다.
그도 공항을 빠져나가는 차속에서 눈물을 흘릴지도 모르겠군 하는, 오랫동안 함께 살아온 동물적인 직감으로 그를 떠올려본다.
약간 상기된 얼굴로 준비해간 노트와 연필을 꺼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아이들을 보며, 여행이 어떤 얼굴을 드러낼 지 자못 걱정이 된다.
토론토에서 직행하는 비행기값보다 더 비싼 항공료를 지불하고 산 티켓은 시카고를 경유해서 가는 것이었다.
어느날 차를 타고 달리다, 한국행을 결정했고 그날 저녁 인터넷으로 비행기표를 조사하기 시작한 것이 화근이었다. 인터넷 비행기값은 턱없이 비쌌고, 직행편은 거의 배나 하는 등 상상을 초월한 금액이었다.
15년만에 하는 쇼핑이라 시장의 원리를 몰랐던 우리는 그날 그래도 크게 불편하진 않지만 그중에서는 그래도 가장 저렴했던 항공표를 골랐고, 반환이 안된다는 경고 자막을 읽으면서 신용카드로 결재해버렸다.
나중에 알고보니 한국행 티켓은 한국여행사를 이용해서 구입하는 것이 가장 저렴하다는 것이다. 아이들까지 어른값을 주고샀는데 다른 정보들에 의하면 70%만 내면 될 것이라는 더 기막힌 사실도 알게 됐다.
이 일은 우리 부부의 경솔함을 만방에 고하는 사건이어서 남들앞에서 떠들면서 억울함을 토로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이렇게 해서 미국비행기를 먼저 타고 시카고를 가게 됐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으면 보지 못했었을 아름다운 하늘을 보았다.
안개로 시작된 아침이 환하게 밝아서, 아주 작은 비행기를 타고 오르자,
쉽게 구름위로 비행기가 나는데, 땅에 있는 사람들은 구름낀 하늘을 올려다보고, 하루를 열고 있겠지만 구름위의 우리들은 정말 새파란 창공이었다.
"구름 바다"
구름은 마치 바다에 떠있는 미처 녹지못한 눈들처럼 서로서로 물위를 떠흐르고 있었다. 구름밑으론 정돈이 잘된 도시가 가라앉아있는 것 같다.
내려다본 하늘..... 구름 아래 도시가 선명했는데, 사진으론 잘 보이지 않네요.
나중 시카고에서 갈아탄 대한항공은 자리가 두 통로를 양쪽으로 둔 가운데여서 그랬는지, 밖을 찬탄을 담은 시선으로 볼 기회를 갖지 못했었다.
10513 km
고도 17588 피트
속도 시속 800 km
우리 좌석 바로 앞에서 펼쳐지는 이러한 숫자는 계속해서 변한다. 비행기가 움직이는 것이 감지돼, 위치 속도 남은 거리 남은 시간들을 알 수 있다.
거리감각은 자동차를 생각하면서 감을 잡는다. 1만 킬로미터를 달리는 양은 새 차를 사서, 매일 열심히 사용한다고 해도 반년 가까이 움직인 거리가 된다. 그 길을 하루만에 가야 한다는 말이 아닌가.
한국인이 승객의 대다수를 차지한 비행기속은 마치 친척들같은 느낌이고 미국비행기에서 느낄 수 없었던 안전감을 주었다. 아이들은 우선 벼개와 이불이 개인별로 있는 것을 좋아한다. 나의 놀라움은 승무원이 도서를 카트에 담고 통로를 지나다니며 읽고싶은 사람들에게 책을 빌려주는 것에서 고조된다. 얼마전에 이름만 익힌 김훈이라는 사람의 책을 집어드니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이었다.
뇌종양을 앓고죽은 부인을 보내면서, 그 까칠한 해부학적인 묘사가 섬찍하게 다가온다.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인간의 말로를 비참하게 그렸다. 죽어가는 부인옆에서 전립선염에 시달리는 회사 중역인 남자의 생각뿐인 사랑이야기가 오히려 구차스럽고, 결국 삶의 가벼움을 선택하는 주인공의 결정은 무언가 허전한 것을 전해준다.
어쨋든 김훈이라는 작가를 안 것으로 만족한다.
화면이 아주 잘보이는 중앙에 자리를 잡은 관계로 칼이 방영해주는 한국뉴스를 처음에 시청했다. 김선일씨 기사가 보도된다. 그 엄마의 자지러짐. 정부에서 빈소에 보낸 조화를 부셔뜨리며 실신하는 그 엄마를 보면서 눈물이 난다.
아들의 죽음을 "이성적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언제고 안될" 그 절박한 믿음 부재의 모성에서 참담함과, 절망을 읽는다.
죽음!! 그건 나중에 남겨진 자들의 몫이 되는 것 같다.
그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를 빌어볼 뿐이다.
남은 시간 7시간 25분.
전체 비행시간 13시간 50분에서 벌써 많이 지나왔지만 비행기는 아직도 북아메리카의 알래스카 상공을 날고있다. 창문가리개는 모두 내려지고 실내등이 꺼져 비행기속은 밤이 계속된다.
두 아이는 부시럭거리다가 잠이 들고, 잠들기에 총력을 다하던 둘째가 비로소 눈물을 보인다. 잠이 안온다고. 너무 피곤한데 잠이 안와서 힘이 든단다. 어쩔 수 없다고, 억지로 자지말고 그저 휴식하라고, 그애의 손을 한자리 건너서 잡아준다.
나는 그 시간 방영해준 "효자동 이발사" 때문에 정신을 모두 빼앗기고 있다.
한 이발사를 통해 접근한 한국사가 다시 내 눈물샘을 자극한다. 이발사의 아들이 받은 (웃음이 나는) 전기고문들, 그 인권의 열악함이 너무 부끄럽다.
벌써 세번째 눈물이구나. 왜 이리 눈물이 많아졌나 하면서 보았다.
참 잘 만든 영화.
나중에 한국에서 확인해보니 최신작이란다. 비행기에서 벌써 그런 영화를 방영해주냐며 놀란다.
그 영화뿐 아니라, 3시간쯤 걸린 것 같은 "콜드 마운틴"이라는 외국전쟁영화는 자면서 잠시 눈을 뜰때마다 화면을 보았고, 아이들 영화 하나도 방영됐다.
그래도 남고남는 시간들.
나도 엉덩이뼈가 아프기 시작했다.
그래도 깊은 잠들을 자고 일어난 아이들은, 마지막 몇시간은 설레임으로 비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세번의 눈물로 기억될 나의 여행은 이렇게 시작된다.
'여행을 떠나요' 카테고리의 다른 글
티나는 사람들...여행3 (0) | 2004.07.09 |
---|---|
바닷가에서 ---여행2 (0) | 2004.07.08 |
여행자의 눈으로 --- 토론토(2) (0) | 2004.03.25 |
여행자의 눈으로---토론토(1) (0) | 2004.03.20 |
낯선곳으로 3 (0) | 2003.10.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