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삶은 각별하다"라는 말로 시작되었던 기사를 썼던 것이 1989년의 일이다.
그 글은 이민와서 남편을 잃고 식당업을 하던 한 아주머니에 대한 것이었는데, 박스 처리된 첫번째 인터뷰 기사라서인지, 기억에 남는다.
교민 신문사에 입사할때 도움을 주셨던 부사장님의 체면을 세워드리는 "썩 마음을 움직이는 글"이 아니었는가 싶다.
마기에 관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그와 시간약속을 정하고 인터뷰를 우리집에서 했다.
그녀를 만나기전 인터넷에서 입양에 관한 약간의 글들을 찾아보았다.
신문사를 떠나온 이후 처음으로 글쓰기를 작정하고 만난 케이스였다.
마기는 많은 자료를 들고왔고, 우리들의 인터뷰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마기가 간후, 저녁식사를 짓기 전에 약간의 시간이 있었는데 그렇게 쉽게 쓰여지지는 않았다. 글을 쓰다가 딸내미에게 전화가 와서 그애를 데리러 학교로 가야했고, 아이들 저녁을 다 먹이고 시간이 났을때는 컴퓨터 사용금지 시간인 저녁시간이었다. 글쓰는 일이야, 아이들에게 양해를 구해도 되지만, 조금 참고, 노트에다 생각나는 대로 메모를 해야되겠다 생각하고 거실의 상앞에 앉았다.
시험 준비를 하는 큰애와 한상을 쓰면서, 머리속이 혼미해질뿐 가닥이 잡히지 않았다.
거의 졸듯이 앉아서 1시간여를 소비하다가, 포기하고 성경을 읽기 위해서 자리를 옮겼다.
기도를 잠깐 드렸다. 글쓰기 전에 그 글을 위해 기도한 적은 거의 없는 일이라, 나 자신도 의아해하며, 글쓰기의 혼미함을 고백하고, 마기 가족을 위한 좋은 글이 되었으면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곤 조금씩 가닥이 잡혔는데, 큰 덩어리로 눌러오던 "입양"에 대한 것보다는 "마기"에 대해서 써야겠다, 그녀의 삶에 초점을 맞추자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뷰 기사였으므로 신문사에서 처음 썼던 그 기사가 기억의 저편에서 떠올라왔는지도 모르겠다.
그 정도의 소득으로 잠에 들었다가, 갑자기 잠을 깬 새벽 2시경, 첫 문장이 떠올랐다.
"여기 갓 결혼한 젊은 부부가 있다고 하자.."로 시작되는 마기에 대한 글이 쓰여진 것은 이날 새벽 2시가 넘어서였다. 그러곤 일사천리... 나중에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쓰고 저장해놓았던 그 글과 비교해보니, 시작이 얼마나 중요한가 새삼 느끼게 됐다.
조용한 마루에서 잠옷에 몇개의 덧옷을 걸치고 쓰여진 글은 몇번의 수정끝에 새벽 5시경에 끝을 냈다.
그러곤, 그 다음날 아이들을 보내고 컴퓨터를 켠 나는 거의 쓰러질뻔 하였다.
내가 컴에 들어오는 시간은 한국시간으로는 자정되기 한두시간 전인데, 내 블로그가 예전같지 아니했다.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그전과 다른 것이라면, 얼마전에 "다음 기자단"에 등록을 해서, 마기 글을 기사로 등록한 것뿐이었는데, 마치 폭탄을 맞은 것처럼 이리저리 기사가 흘러넘치고 있었다.
다음의 메인 화면에 브라이언과 두 형제가 찍은 사진이 뉴스란에 올려져있어서 사람들이 미디어 다음에 떠올라있는 내 글에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특별한 때를 제외하곤 매일 20-40명선의 사람들이 드나드는 블로그에는 하루에 3천명도 넘게 왔다가고. 또한 미디어 다음에 뜬 기사는 처음에 2만명이나 읽어서 나를 놀라게 하더니, 나중에는 24만명이나 접속을 했다.
거진 2백개의 답글, 그리고 한분은 글을 신문에, 또 한분은 잡지에 게재하시겠다고 했고, 블로그 베스트 뉴스에 뽑히기도 하고. 꿈꿔볼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다.
지금 생각해보면, "초심"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 모르겠다. 그리고, 노상 작은 숫자에서 놀고 만족하던 나에게 하나님께서 크고 귀한 선물을 주셨으며, 또다른 하나님의 계획이(아이들의 부모를 찾게 된다거나) 숨어있는 것은 아닌가 헤아려보게도 된다.
나자신을 생각해볼때, 사람들과의 관계에 약간의 거리가 있다고 느껴왔다. 나를 붙잡고 하소연하면서, 자신의 온 문제를 털어놓는 사람 나에게는 많지 않다. 나는 그걸 기대하고, 나를 최대한 열어놓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또 한편 생각해보면, 내가 그 안에 푹 담겨지는 것을 두려워하나 그런 생각도 들고, 왜 나에게 약간씩의 거리를 둘까 반성해보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 일을 겪으니, 그 "약간의 거리"가 나에게 객관성을 부여해주는 것 같다. 말하는 사람을 넘겨짚지 않는, 또 그안에 빠져서, 같이 허우적거리지 않을 수 있는 그런 장점이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와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때, "늙은 기자"의 영예가 서린 망또를 보여주며 그들의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듣고, 원하면 본격적인 글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며칠전 DVD로 본 영화 "Lord of War"가 생각난다.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배우, 니콜라스 케이지가 주연으로 나왔는데 그는 무기도매상이다. 혼란한 전쟁지역을 돌아다니며 무기를 판다. 잘 될때는 그의 부로 흠모했던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이는 성공도 누리지만, 동생이 마약중독에 걸리고 결국 부인도 제 곁을 떠나는 비운을 당한다.
남편을 사랑했던 아내와의 말다툼끝, "그 일에서 손을 떼라"고 요구하자, "나는 그일을 잘한다"고 대답한다. 자신이 안하면 누구라도 할수 있다고 항변하기도 했지만, 그는 자신이 잘하는 그 일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 영화를 보면서, 그런 일을 잘하는 사람이 아닌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르겠다.
내가 (아마도) 잘하는 것은 "타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안에 있는 핵심을 찾아내서 나열하는" 재주이다.
남편을 인터뷰했던 이곳 신문사의 기자는 할머니였는데, 그 할머니기자의 말에 따르면, 신문사 녹을 먹은 사람들은 활자를 떠나기가 어렵다고 하셨다.
그때는 "나는 완전히 발을 뺐는데" 라며 속으로 생각했지만, 이렇게 "요란한 신고식"을 치르고 보니, 나도 영광스럽게도 신문쟁이의 한명이라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다.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지 모르지만, 내가 잘하는 일을 통해서 나의 존재를 드러내고, 또한 하나님께서 혹여 나를 통해 하시고 싶으신 일이 이런 일이라면, 어떻게 순종할까 목하 생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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