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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루스 카운티 산책

겨울풍경

"내 평생 이런 겨울은 처음이야. 정말 이렇게 이상한 날이 계속되다니.."
무언가 잘못된 것마냥, 고든 아저씨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그도 그럴것이 지난 12월에 눈이 며칠 오고나서는 1월 한달 내내 썩 겨울다운 겨울맛을 보지 못했었다.

 

사람들은 "좋은 겨울"을 노래하면서도 무언가 섭섭한 표정을 드러내곤 하였다.
곳곳에 그전에 왔던 눈이 녹으면서, 작은 물샘이 마치 봄이 온것처럼 맑게 고여있기도 했고,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도 했다.

 

그러던 것이 지난 금요일 오후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30cm내지 그 배의 눈이 올것이라고 라디오에서 말하더니, 그 다음날 아침 온 세상에는 눈꽃이 피었다.

막내를 데리고 산책을 나갔다.
눈이 엄청 와서 그런지, 가지들이 무겁게 휘청 늘어져있다.

핫 초코렛 타령과, 걷는 것의 고통스러움을 호소하는 어린것 때문에 마음껏 감상하지 못하고,

일찍 집에 들어왔다.

 

그리고 다음날은 바로 일요일이었는데, 아침 9시가 되어서 전화가 왔다.
"교회 취소"를 알리는 여자 장로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처음 이 동네에 와서 날씨 때문에 교회가 문을 닫는 것을 보고는 하품을 했었다.

그래도 그렇지, 몇사람이라도 모여서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 아닌가? 하면서.

그러나 요즘은 그런대로 받아들이게 된다.

 

눈이 많이 온 날은 집밖으로 나가는 것도 큰 일이다.

가게에 왔던 손님중 하나는, 이날 집에서 차에까지, 차문을 열수있게 치우고, 또 차가 빠져나갈 도로를 치우는데 2시간이 걸렸다고 말했다.

 

캐네디언 교회에는 안나가게 됐는데,
가만 생각하니 1시간 걸리는 한인교회 가는 것도 무산될 공산이 커 보였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데, 운전한다는 것도 무리였고...

이래서 "안식일"을 집에서 지키게 됐다.

일요일에 이곳저곳에서 전봇대가 부러져서 전기가 나간 곳이 많고,
차 사고의 소식도 들리는등 흉흉하다.

그중에 병원에 가지 못해 차속에서 아이를 낳은 이웃마을 부부의 이야기도 신문에서 접하고.

우리집은 전기가 들어오고, 아무도 나가있지 않으니 눈길운전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아이들은 월요일 틀림없이 "스노이 데이"가 될것 같으니,

지난 금요일 "PD (교사들 학과준비로 학생들 하루 쉬는날) 데이"부터 시작된 긴연휴로 말미암아
흥청거리는 분위기가 스며든다.

 

월요일 아침,
그 전날보다 눈이 더 오기 시작했다.

라디오에서는 모든 곳이 문을 닫았으니까, 어디 움직일 생각말라고 협박한다.

라디오는 이럴때 가장 요긴한 우리들의 정보통이다.

지역 라디오에서는 일일이 학교를 포함, 모든 것을 호명하며, 소식을 전해준다.

 


이 지역의 전학교가 문을 닫고, 직장들도 많은 곳이 문을 열지 않으니,
일상이 완전히 텅빈것처럼 시작됐다.

아침을 먹고 아이들과 밖으로 나갔더니,
그 쌓인 눈과 떨어지는 눈들 때문에 까닭모를 하이 소프라노의 웃음이 나왔다.

정말 대단한 멋진 쇼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오늘...

또다시 학교가 쉬는 날이 되었다.

가까운 사람중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서 추운데서 하루를 난 사람들도 있고,
나무 화로덕분에 추위는 모면했지만, 음식만들어먹기 힘들다고 하소연하는 사람도 있다.

전기는 들어오지만, 텔레비전 위성접시가 눈에 가려 전파가 잡히지 않는다고,

가게에 영화 테입을 빌리러 오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도 한다.



우리는 여전히 전기도 들어오고, 집에 끓여먹을 것들이 남아있으니,
아직도 약간의 흥분이 남아있다.

오늘 아침에는 못다 찍은 눈 사진을 위해, 밖으로 나갔다.

날이 많이 차분해졌다. 바람이 상쾌하기도 하다.
늙은 나무들이 상처를 많이 입어서 다시 소생하기 힘들어보인다.
길에 다니는 차량의 절반 가량은 눈을 치러 다니는 트랙터들이다.

 

남편은 밖으로 나가는 나에게 넘어지지 말라고 당부했는데,

그래서 웬 할머니 취급하는가 하고 귀로 들어넘겼는데,
그말이 없었으면 정말 몇번이고 넘어질 만큼 길이 미끄러웠다.

 

강가에 아예 몸이 갈라져서 드러누워있는 나무들을 촬영한다.
길 한쪽으로는 "Road Close" 표지가 붙어있다.

오랫동안 참았던 눈들이 한꺼번에 쏟아진 듯싶다.
보란듯이..

내일은 아마도 날이 훨 좋아질 것 같다.
아이들도 정말 원없이 잘들 쉬었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소방서. 등대같은 모습으로 강옆에 서

있다.

 

 

함께 군무를 추듯 늘어서 있는 나무들. 팔을 살짝 내린 댄서들 같고나.

 

 

 

자연 냉동된 이름모를 열매.

 

 

엄마 이리좀 와보세요, 큰애가 끌어서 갔더니, 웬 흰 무덤이.. 그속에서 들려오는

색색거리는 숨소리... 얘얘 빨리 나와 큰일나, 했더니 고개를 살짝 빼내는 막내.

 

 

눈의 무게에 못이겨 주저앉은 나무들... 생살을 찢는 아픔들이었을텐데, 그를

느꼈을려나. 강물은 얼음을 싣고 흐르고 있구나.

 

 

강건너에서 바라본 동네 모습 (예전에 비슷하게 찍은 사진을 소개한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자 이쪽에서도 한컷, 사진 오른쪽에 올드 소방서가 보인다.

 

 

 

왼쪽 흰것이 봉긋하게 솟아오른 게 무엇인가 했더니... 차 딜러쉽 마당에 주차돼

있는 새차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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