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여... 함께 생각해보세나..

"그래 그 검은 잎이 뭐라고 생각하니?"

그렇게 너는 질문했다.

나는 인터넷을 뒤져서, 주섬주섬 전문가들이 말하는 것,
나조차도 잘 납득되지 않는 것들을 옮겨주었지만, 너는 받아들이는 것 같지가 않다.

그의 책을 산지도 꽤 오래된다.
"그 검은 잎"을 풀어주고 싶었다.

 

따라서 이 글은 그 "잎"을 풀기위한 나름대로의 여정이 될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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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속의 검은 잎

 

기형도

 

택시운전사는 어두운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이따금 고함을 친다. 그때마다 새들이 날아간다
이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황혼,
나는 한번도 만난적 없는 그를 생각한다.

 

그 일이 터졌을때 나는 먼 지방에 있었다
먼지의 방에서 책을 읽고있었다
문을 열면 벌판에는 안개가 자욱했다
그해 여름 땅바닥은 책과 검은 잎들을 질질 끌고 다녔다
침묵은 하인에게 어울린다고 그는 썼다
나는 그의 얼굴을 한번 본 적이 있다
신문에서였는데 고개를 조금 숙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일이 터졌다. 얼마후 그가 죽었다.

 

그의 장례식은 거센 비바람으로 온통 번들거렸다
죽은 그를 실은 차는 참을 수 없이 느릿느릿 나아갔다
사람들은 장례식 행렬에 악착같이 매달렸고
백색의 차량 가득 검은 잎들은 나부꼈다
나는 혀는 천천히 굳어갔다. 그의 어린 아들은
잎들의 포위를 견디다 못해 울음을 터뜨렸다

 

그해 여름 많은 사람들이 무더기로 없어졌고
놀란 자의 침묵 앞에 불쑥불쑥 나타났다
망자의 혀가 거리에 흘러넘쳤다

택시 운전사는 이따금 뒤를 돌아다본다
나는 저 운전사를 믿지 못한다, 공포에 질려
나는 더듬거린다. 그는 죽은 사람이다
그 때문에 얼마나 많은 장례식들이 숨죽여야 했던가
나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으면 안된다, 어디서
그 일이 터질지 아무도 모른다. 어디든지
가까운 지방으로 나는 가야 하는 것이다
이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황혼,
내 입 속에 악착같이 매달린 검은 잎이 나는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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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잎"에 대한 표현이 서너군데 나온다.

 

그해 여름 방바닥은 책과 검은 잎을 질질 끌고 다녔고,
검은잎들이 백색의 차량 가득 나부꼈고,
잎들의 포위에 죽은자의 어린아이가 울음을 터뜨렸고,
그리고 마지막 연, 입속에 달라붙어있는 검은 잎이 두렵다고 했다.

 

기형도가 보냈던 젊은 시절은 1979년(대학1학년)부터 1989년(신문사 종사)까지 광주항쟁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고, 군사정권이 사람들의 호흡을 말아쥐고 있었던 바로 그시절이다.

 

사람들은 기형도의 글을 민중시와도 서정시와도 구분되는 모호한 경계에 있는 것으로 묘사하지만, 내가 보기엔 서정적인 그가 불합리한 사회에서 몸둘바를 몰라 했던 것 같다. 그리하여 안으로 신음을 삼키고 있었던 것처럼 보여진다.

 

글을 자꾸 읽다보니, "검은 잎"은 대체로 두가지로 해석된다.

 

장례차량을 덮은 검은 잎들에서는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던 그 당시의 기관원들이나, 경찰들과 연계된 높은 사람들, 하수인들을 포함하는 공권력으로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어린아이가 마침내 울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는 그런 무서운 사람들..

 

두번째는 기형도라는 시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책과 검은 잎들을 질질 끌고다녔다고 했는데, 아마도 그가 쓰고싶으나 쓸 수 없는, "죽어버린 시어"들이 아닐까 싶다. 날선 눈초리로 검열하는 그 당시의 비자유함에서 시인은 입밖으로 나오는 시어들을 꿀꺽꿀꺽 삼킬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마지막 연에서도 그는 자신의 입안에 있는 검은 잎을 두려워한다.
많은 사람들이 무더기로 없어지고, 또 불쑥불쑥 나타나는 그런 이상한 시절에,
택시운전사조차 믿지못해 말을 더듬는 그런 시절에,
그는 시인이기 전에 이 나라의 열혈청년으로 목젓이 말라오고 있었을 것이다.

 

"검은 잎"에 대한 해석이 아주 다른 방향으로 나온 것은, 내가 분석한 것이 영 덜떨어진 것이라는 반증도 될 것같다. 어느 시인이 한 시에서 같은 시구를 다른 뜻으로 썼겠는가?

 

무게를 더욱 주고 싶은 것은 "검은 잎"은 결국 시인이 표현할 수 없는 절망의 언어들, 망자들의 한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시인의 의도와 읽는 이들의 받아들임이 너무 멀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이 시는 이한열의 죽음 이후에 쓰여졌으며, 그를 노래한 것이라고들 말한다.
그러나, 이한열은 연세대 2학년에 재학중인 학생이었는데, 시에서보면 장례차에 타고있던 그의 어린 아들이 울었다는 것이 삽입됨으로써 이한열에 대한 것이었나 그런 의구심도 든다.

 

어쩌면 부당한 권력으로 죽임을 당한 어떤 이에 대한 것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60년생에다 3월생인 그는 나보다 3년 이른 학교생활을 했다. 누구나 뜨거운 돌덩이들 같았던 대학생 시절에, 광주항쟁이 끼어있고, 전두환 정권의 군사독재가 있었다.  학생운동이 물밑으로 빠르게 번질때였으며, 사회의 부조리를 학생들이 온몸으로 저항해나가고자 할때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또 얼마나 부당한 일인가? 겨우 고등학교를 벗어난 젊은이들이 나라의 온갖 살림을 떠맡아 고민했다는 것이. 어른이나, 정권이나, 사회나 그런 것들을 하나도 믿지 못하고, 귓속말을 주고받으며 "독립운동" 하듯이 그 일들을 해왔다.

 

그러나 그런 청년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나를 보면 안다. 고의가 아니고 81년에 대학생활을 시작한 나는 그런 물밑 움직임이 있다는 것조차 몰랐다. 감추어진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느꼈을뿐 누구도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내가 다닌 대학의 분위기와 나라는 사람의 분위기가 그런 결과를 가져왔을 것이다. 때문에 간간이 교정에 날리는 최루탄만 피해다니면 얼마든지, 핑크빛 학창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러나 물밑생활을 아는 이들은 얼마나 고통이었을까? 기형도 같은 이들. 아예 드러내놓고 운동시를 쓰지도 못하지만, 언제나 가슴을 짓누르는 그 소리들을 다 막아낼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기형도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되어있는 누군가의 죽음.. 그의 죽음을 대면했던 어떤 시골의 풍경속으로 그는 다시 가고 있다. 그리고 그날의 망령이 다시 살아난다. 택시운전사가 죽은자와 닮아있었는지 모르겠다. 어쨋는 그는 그날에 뱉아내지 못했던 입속의 검은잎을 오늘도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그 검은 잎이 자신을 죽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글쓰는 재주가 있고, 따뜻한 가슴을 지닌, 기형도는 대학을 졸업하고 신문사 생활을 시작한 평범한 직장인으로 태어날 수 있었을 것 같다. 그러나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그는 새벽 극장에서 돌연사하고 만다.

 

70년대 말 80년대 초에 대학생활을 한 사람들은 이제 40대를 넘어서 50대를 향하고 있다. 기형도와 같은 아픔을 지닌 사람들이 이 사회를 이끄는 동력이 되고 있는데, 사회는 아직도 맞추지 못한 퍼즐처럼 혼란스럽다.

 

날나리로 보낸 학창시절이었지만, 다시 가라고 하면 거부할 것 같다. 기형도와 같은 선배들의 고통을 옆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입안에 쓴물이 든다. 다시는 그런 시절이 있으면 안되겠다는 것만이 내가 말할 수 있는 부분이다. 더이상 시대의 희생양을 지켜볼 도리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