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준비를 앞두고, 밥을 먼저 앉혀야 한다고 생각했다. 재미없는 텔레비전에 눈을 주고 있느라, 그 시간을 놓치고, 저녁을 위해 일어난 시간은 5시가 조금 넘었었다.
오랫동안 쓰던 밥통이 드디어 수명을 다하여, 새것을 쓰는데, 이것이 기능은 많지만 여러가지 불편하다. 그중 큰 것은 밥하는 시간이 예전것의 두배이상 걸린다는 것이다.
이날 저녁은 미리 담가놓은 고비나물과, 된장찌개, 그리고 부로콜리를 살짝 데쳐서 치즈를 덮어서 녹여먹기로 작정했으니, 음식만들기에 그다지 시간 걸리는 건 없다.
역시나, 밥은 아직 될 생각을 안하는데 , 반찬이 다 만들어지고 있다. 따뜻하게 먹어야 하는 야채반찬도 그렇고, 된장찌개도 두부까지 다 넣어서 더이상 할일이 없게 됐다. 다행인 것은 고비나물이 조금 짜게 볶아져서 다시 물을 넣고 더 자작하게 끓이기 시작하였다.
내 마음에는 몇가지 생각이 싸우고 있다.
반찬을 한가지 더 해서 시간을 맞춰야 하나(그런데 귀찮다),
찬밥을 먼저 먹게 하면서, 새밥이 되면 더 주느냐(찬밥 먹이기
미안하다),
새밥이 될때까지 반찬을 스톱하고 좀 기다리느냐(일을 하다가 멈추기가 쉽지 않다),
어린이들만 먼저 찬밥을
데워서 먹게 하느냐(그러면 나는 상을 두번 차려야 한다).. 등등.
김치를 썰고, 수저를 놓고, 반찬만드느라 어수선해진 싱크위를 다 치우고났는데도, 아직 밥이 된다는 신호를 보내지 않는다.
드디어 반찬을 상위에 올려놓고 사람들을 부른다. 찬밥을 데워서 조금씩 덜어주고 나니, 그제서 밥이 되려면 10분이 남았다는 표시가 뜬다.
찬밥을 해치우고, 새밥까지 먹게 된 사람도 있고, 찬밥으로만 끝낸 사람도 있고, 그 약간의 간격 때문에 우리들의 저녁식사는 그렇게 대중이 없게 끝이 나 버렸다.
처음에 잘못된 판단과 행동으로 일을 벌여놓고, 그후로는 마음을 정하고 초지일관하는 자세가 부족하여 발생하는 이런 일은 이외에도 무척 많다.
지지난 주말엔 바람과 폭설로 학교가 문을 닫았던 날이다. 며칠간 날이 흉흉했는데, 이런 날은 당연히 집에 있어야 한다.
둘째는 매주 금요일 옆동네 교회의 “청소년 모임”에 나가는데, 오늘은 꼭 가야 한다면서 궁시렁거렸다.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윽박질렀는데, 포기하지 않고, 그날 꼭 가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이날 가지 않으면, 이 모임에서 하는 아프리카 어린이 돕기 “1일 금식”에 참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날 신청서를 나눠주게 되는데 그걸 가져와야 한다는 말이었다.
라디오에서 날씨뉴스를 계속 들으라고 둘째에게 말했다. 저도 뉴스를 들으면 어느정도 포기가 되리라 생각했던 것.
둘째는 가야할 시간이 임박하는데 아직도 기대를 가지고 있다, 그녀 왈, 뉴스를 들으니 막혀있던 길도 열렸고 갈만한데, 혹 다른 문제로 가고싶지 않은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밖을 보니, 날씨가 맑았다가 흐렸다가 종잡을 수가 없다.
남편과 나는 아이의 말에 굴복, 그아이 친구 한명을 데리고 옆마을을 가기 시작했다. 이날 눈과 함께 센 바람이 문제였다. 아이들을 데려다주고, 그 동네에서 2시간여를 배회하다가 데리고 돌아오는 길….
바람이 시속 70km로 불어대니, 천지에 쌓였던 눈이 온 거리를 휘감고, 그 거리를 달리는 차를 흰 무리로 감싸안는데, 한치앞이 보이지 않는다. 몇번이나, 가던 자리에 서서 길이 보이길 기다려야 했다.
경찰차같은 비상등을 켠 트럭이 우리앞에 보였다. 우리는 그 트럭의 꽁무니를 쫓아서 가는데, 얼마 가다보니, 길옆으로 박힌 차가 보인다. 차
주인이 트럭을 세우고 도움을 청하자, 그 트럭 주인은 박힌 차 옆으로 주차한다.
제 앞가림도 못하는 우리들은 직진… 인도하던 앞차도 없어지고, 광풍이 휘몰아치는 거리를 뚫고 달리는 일은 아주 죽을맛이었다.
앞에서 달려오는 차도 안보여 정면충돌이 걱정되는 그 길을 비상등을 켜고, 거북이걸음으로 운전하여 오는 동안 나는 남편에게 삐져서 말도 하기
싫었다.
“앞에서 차가 오고 있어, 조금 이쪽으로 붙어야 해…”등등으로 잔소리를 늘어놓다가 핀잔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뒷좌석에 있던 둘째는 “부모님 말을 안듣고 가자고 우겼던 것은 큰 실수인 것을 알게 됐다”고 제 친구와 이야기한다.
나는 그 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부모가 되어서 아이 말에 따라서 줏대없는 결정을 했던 것은 우리들의 큰 실수였다”고 속으로 되뇌었다.
덧붙여서 아이에게 용감함을 증명하려고 할 게 아니라, 날씨가 나쁜데 다른 아이까지 같이 가다가 사고가 났을때 당할 어려움을 설명을 해주었어야 하고, 팩스로라도 그 신청서를 받아줄 수 있다는 걸 생각해 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미 엎질러진 물, 남편과 내가 (어른으로서) 티격태격하여 공포분위기를 조성할 것이 아니라, 서로 감싸주었어야 했다는 점들을 지적받을 수 있을 것이다.
어쨋든 이 결정은 아이의 기분을 맞춰주고자 했던 것이 우선했던 몰상식한 일이었다는 점은 더 말해 무엇하랴.
또하나.
텔레비전에서 왕년의 올림픽 피겨스케이트 선수를 다루는 다큐멘타리를 보게 되었다. 그녀는 캐나다의 꽃으로 추앙받았지만, 그 몸매가 조금 통통했던 것이 구설수에 올랐다. 프로에 입단해서 입단주가 그녀의 몸매를 탓하자, 다이어트를 심하게 하게 된다.
다이어트 한후의 그 사진이라니.. 그녀가 가졌던 모든 귀여움은 어디로 가고, 피골이 상접한 매력없는 그녀를 보는 것은 또다른 아픔이었다. 결국 그 프로단에서 탈퇴하고, 이제는 피겨스케이팅의 강사로 편안한 삶을 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 다큐물에서 그녀의 어머니는 “사람들의 입맛을 다 충족시켜줄 수는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일의 결정에서 타인의 구미에 맞출때 유의해야 할 것이다.
다시 나 자신에게 돌아와 보자.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행해지는 나의 성경읽기가 그런대로 잘 지켜지고 있다. 그런데 가끔 남편과 아이들에게 미안하기도 하다. 어느날은 일찍 그 일을 마무리하고, 남편과 “놀리라” 생각하고 그의 책상옆에 앉았다.
그런데, 그가 나를 아는체를 안한다. 나는 조금 머뭇거렸다. 우리 무엇좀 먹을까? 영화 볼까? 나 팔 아픈곳 뜸좀 떠줄래? 등등 마음속에 떠오르는 말들을 잠시 속으로 삼켰다. 그리고 시계를 봤더니, 내가 매일 성경읽는 시간이었다. 그가 은연중 나의 시간을 알아챈 것 같다. 그래서 다시 조용히 그앞을 물러나와서 다시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오늘은 조금 더 읽는 거야. 그래, 그래서 작은 파장의 머뭇거림이 나를 건져냈구나, 나의 “읽기 시간”을 이제는 인정받았구나. 남편의
비위를 맞추다가 하마터면 큰 일을 그르칠뻔 하였다.
어제는 성경읽는 시간에 남편은 한의학책을, 큰딸은 학교 미술과제를 나의 장소에서 우리 서로 방해하지 않으며, 편안하게 마칠 수 있었다. 이렇게도 되는 것을.
성경읽기중 야고보서에 그런 나같은 사람을 꼬집는 말이 나왔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물결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그동안에 번잡했던 마음들은, 바로 두 마음(그 이상의 마음)을 품어 정함이 없었기 때문에 빚어진 것이었다. 이는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못하는 일임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무슨 일을 결정할때, 한마음을 품어야 할 것이며, 우선순위를 잊지 말것을 다시한번 다짐해본다.(초등학생의
일기문처럼 마지막을 끝냈구먼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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