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이 무슨 말이야?"
신문편집판 뒤에서 어깨너머로 기사를 체크하던 신문사 사장이 의문을 제기한다.
그날 기사의 내용은 잊었지만, "익명성"이란 제목을 집어넣은 내 글이 문제가 된 것이었다.
모기만한 소리로 "익명"은 이름을 숨기며 사는 사람들을 뜻하는 말인데요... 그렇게 신문사 초년 시절에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
한국에서 건너온지 수십년이 되어가는 사장인지라, 그 당시에 몇몇에 의해 말해지던 문학적인 용어인 "익명"의 낱말뜻을 몰랐었나 보다. 그래도 옆에서 거들어주는 다른 편집부원들 때문에 그 기사는 "살아서" 인쇄될 수 있었다.
이문열의 "익명의 섬"이라는 단편소설은 그 내용은 잊었지만, 익명으로 살아야만 하는 사람들의 고뇌에 대한 것이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어쨋든 그 소설 이후로 "익명"은 비로소 이름을 얻고 사람들 사이에서 활보하게 된것이 아니었는지.
예전엔 생소했던 "익명"이 요즘은 누구나 아는 단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닉네임으로 통하는 이 사이버
세계는 "익명이 보장된" 자유로운 공간으로들 인식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익명에 대한 혐오증세를 가지고 있다.
공공 방송이나 신문사에서 익명으로 기사를 처리하는 것에 대해서 항상 불만을 말한다. 어떤 심한 기사들은 기사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 사람을 모두 기호로 표시하여 감질나게 하기도 한다.
이 글을 쓰기 전에 인터넷을 열어 기사를 확인하니, "여대생 청부살인 사건 재조사"라는 제목밑에 있는 기사에도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윤모씨" "김모씨" "하모씨"등의 인물들이 등장하는 것을 보았다. 이 기사는 그래도 이름만 살짝 가렸을 뿐이지, 현재 일어나는 실질상황임을
알수 있는 기사였다.
어떤 기사들은 "실명"이 제대로 표현되지 않아, 기사의 신빙성이 의심되는 것도 허다한데, 오늘 내가 한번 훑은 바로는 다음에서 제공하는 익명으로 처리한 기사들은 이름 두자만 감춘 믿을만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다행이다.
나도 물론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얼마만큼 나를 드러내고, 내 주변을 그릴 것이냐로 고민한다. 내 소망은 모든 것을 투명하게 드러내고 싶지만, 그것이 그렇게 쉽지 않다. 그런 이유로 많은 글들이 남들에게 보일만한 것들이 간택되며, 그렇지 않은 글들은 써놓고도 마음이 불안하기만 하다. 특히 비판적인 글을 쓸라치면 주변에 누가 될까봐 일찌감치 그 의욕을 접기도 한다.
세상은 내가 그리는 것만큼 그렇게 아름답기만 한 것도 아니고, 불합리하면서 굴곡졌다는 걸 살아갈수록 더 느끼게 된다. 다만 그런 것들은 수면위로 떠오르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고, 용기를 필요로 한다.
글을 쓰지 않는다면 모를까, 이렇게라도 글쓰는 공간을 가지고 있는 나는,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그런 일을 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고발하고 싶은 생각이 가끔씩 든다. 혹은 내안에도 미처 소화하지 못하여 이야기감에서 벗어나서 내면깊숙히 자리잡은 부끄러운 것이 없다고는 말하지 못한다.
그런 글을 쓰는 것은 그저 남들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역할만 하거나, 글쓰는 이의 복잡한 인간관계와 입에 올려지는 당사자의 사생활 침범으로 끝나기 십상이어서 차마 쉽게 건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니 사람들이 익명으로 약간의 상황을 돌려서 풀어나가기도 하겠다는 생각이 마치 새로운 사실을 알아낸 사람처럼 내 머리를 친다.
어제도 그랬다.
남편과 나는 가까운 사람의 일로 잠시 다투었다.
사람들은 어떤 순간에 늪같은 난해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주변에 면목을 잃을만큼 신뢰성도 떨어지고, 그 환경에서 벗어나오기 어렵게 되고만다. 나는 "그 어떤 순간"을 초래한 것은 당사자의 잘못이 크다고 판단하는 쪽이다. 미리 알아서 잘해나갈 수 있었을 텐데.
그러나 이런 생각이 교만한 것이며, 남편을 화나게 한 요소였다.
"누구는 그런 상황에 처하고 싶어서 그렇게 됐냐?"하는 말속에는 지금 그럴만한 상황이 아닌 것을 자랑하지 말고 잘난체하지 말라는 뒷말이 담겨있음을 안다.
내가 애정을 갖고 그들을 들여다보고 싶을때는 "글"로부터 시작해야 할것 같았다. 그래서 내 안에서 선악을 조금씩 가려내서 올바로 사람을 판단해보고 싶어진다. 그런데 그 일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이럴때 "익명"이 필요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누군들, 제 이름 석자가 가려지는 걸 원하랴. 그러나 그럴수밖에 없을때, 우리는 "익명"이라는 보호막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것 같다. 나도 그런 보호막이 필요할때가 올지도 모른다. 아니, 그런 보호막이 필요하더라도, 나는 드러내놓고 "구체적인 도움"을 청하려고 한다.
이름 석자를 감추고, 당사자도 모르게 글을 올리는 일은 앞으로도 쉽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러느니, 당신의 아픈 부분들을 내가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허락해주시겠습니까? 하고 다음 단계를 생각하고 싶은데 그럴 용기는 더더욱 없으니, 아마도 오늘같은 이런 글로 내마음을 위로하는 수밖에는 없을 것 같다.
"익명"은 필요악이지만, 그 "익명"을 타고 넘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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