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춥다”
라고 작은 종이조각에 적어놓은 것 밑에
“마음이 춥겠지요.”
라고 답글이 달려있었다.
20년전쯤 되는 일인가?
생각해보니, 기가막힌 세월이 흘렀다.
나에겐 바로 어제 저녁에 있었던 것 같은데.
그날,
모교 학생회관 3층에서 나는 추위에 떨고 있었다.
가물가물한 기억속에서도, 교지편집 때문에 임의로 사용할 수 있었던,
비어진 한 방에서 나는 소설책을 마주하고 있었던 듯싶다.
무슨 일로인가 방문했던 키가 훌쩍 컸던,
지방 분교에 다녔던 그 남자가, 시를 쓴다고 했던 그가
그 방에 들렀다가, 그런 메모를 남기고 사라졌었다.
사라졌었다? 라고 썼지만, 사실 기억이 혼미하다.
어쨋든 나는 그날,
푸르죽죽하게 얼어있는 얼굴로,
학생회관을 어떻게 아무도 안만나고 나갈 수 있는가를
연구했던 것 같다.
누군가가 내 영혼을 저당잡고,
투명인간을 제안했다면 그를 수락했을지도 모르겠다.
극심한 소외감을 스스로 만들어냈다.
그 당시의 나는 아마도 짝사랑을 하고 있었던 것 같고,
그 사랑이 갈바를 몰라,
그 남자의 말대로, 마음이 엄청 추웠던 것이었을게다.
오늘,
모처럼 도매상에 혼자서 물건하러 가게 됐다. 물건을 고르다가,
화장실을 잠시 들렀었다.
아직 추위가 완전히 풀리지 않아선지,
거울속에는 얼굴색이 고르지않고, 약간 언듯이 보이는
푸르죽죽한 아줌마가 서있었다.
그날 학생회관에서의 그 모습처럼.
그런데, 그때처럼 내 존재에 대한 불편함은 없다.
생전 하지 않는 분가루를 바른다면,
남들 보기에 좀 나아보일까, 혼자 속으로 생각해봤다.
그렇다.
그 가파랐던 감성의 날들이 나에겐 다 지나간듯이 보였다.
인터넷을 좋아해도, 그안에 떠있는 음악소리들은 아주 많은 순간 소음으로 들린다.
그래서, 나는 자주 소리를 아예, 죽여놓을 때가 많다.
그리고, 소설과 시 보다는
요리책, 정원가꾸는 법, 아이 키우는 법 등, 그런 책들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해오기 시작했다.
특히, 중언부언하는 소설들을 읽었을때, 거의 절망적으로 이제는 이해할 수 없는 언어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경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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