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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나, 그리고 우리

장똘벵이

장마다 돌아다니며, 물건을 파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렸다.
이곳 저곳 문물도 구경하고, 싸가지고 다니는 것도 팔고,
객지바람이 흠씬 든 그런 저잣거리의 장똘벵이를 말이다.

남편과 나는 가끔 그 기분을 느낀다.
물건을 팔러 다니지는 않지만, 물건을 구하러 가끔 도회나들이를 하기 때문이다.

어제 같은날.
아침 9시 출발, 밤 12시가 넘어서 집에 돌아왔다.
뭔일이 그렇게 많았나?

우선 이제 꽃장사를 시작해야 하는데, 작년에 거래했던 꽃농장이 물량이 달린다며 다른 곳을 추천해줬다.
이곳에서 2시간 정도 거리.

대규모 화원에 갔더니, 벌써 수만가지의 꽃들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작년에도 똑같은 난관에 봉착했는데, 1년이 지난 올해,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 많은 꽃중에서 어떤 것을 갖다놓아야 할지,,
그나마 이름조차 모르는 꽃이 대다수고.
한국말로도 모르는 꽃들을 영어이름으로 외운다는 게 쉽지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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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묻지 마세요.. 그럴 줄 알았으면, 사진찍고 알아오는 건데... 위에 하얀꽃은 행잉바스켓으로 집집의 처마끝에 달려서 봄 여름 가을을 납니다.

밑에 것들은 모종들, 정원용으로 사가는 꽃이지요.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화원에 가서는 정중한 고객 대접 받기를 기다릴 수 없다.
주인도, 일하는 사람도 눈 한번 마주칠 시간없이 손을 놀리느라 바쁘다.

앤서링 머신으로만 남겨놓고, 처음 방문했는데, 농장 주인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었다. 꽃들 사이를 누벼, 헤매다가 사무실에서 전화하는 그를 만났는데, 오늘 당장 꽃을 주문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고.
그렇잖아도, 큰 체인점의 대장이 와서, 그와 할일이 한참이라고 한다.

노란 꽃이 줄기를 타고 오르는 꽃바구니가 다른 데서는 보지 못하던 것이다.
딸기를 심어놓은 화분도 있고, 각종 모종들이 파릇파릇 올라오고 있다.
아직 절정기가 아니니, 주인은 다음주에 오면 조금 더 많은 꽃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내주에 다시 와서 눈 동그랗게 뜨고 꽃을 골라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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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원이 있는 구엘프 시내에서 달리는 차속에서 찍었어요. 건물이 눈을 사로잡았는데, 사진이 별롭니다. "여성의 교회(Church of the our lady)"라는 작은 푯말이 붙어있더군요.

 


꽃집을 떠나서 토론토로 내려가니 벌써 배가 고프다.
한국식당에 들러서 점심을 먹는다. 곁다리로 주문한 찐만두가 고등학생 시절 청파동 굴다리 밑에서 먹던 그 맛과 비슷하다.

어쨋든 그렇게 초반전을 끝내고, 잡화도매상을 들렀다. 이곳도 가끔 오지만 요즘 시들해졌다. 의욕이 없어진 것인지, 독특한 아이템을 고르기 어렵다. 그저, 노트, 볼펜등 문방용품을 조금 걷어왔다.

그 다음엔 어디냐?

중국타운으로 간다.
남편이 필요한 물품들을 사러. 얼굴이 깨끔하게 생긴 중국청년이 카운터를 보는 한약방에 들려서 침과 우황청심환을 주문했다. 우황청심환은 품절이란다. 다음엔 전화하면 미리 비축하겠다고. 침과 로얄젤리 약간을 구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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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타운입니다. 아주 번화한 곳은 아니고. 빨강과 노랑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간판들이 그렇게 말해주지요?

 

남편이 이곳 지역 사람들에게 하는 한의의 근간은 침 치료이다. 초기엔 한약을 다려먹이려고 했으나, 환자들이 그를 즐기려고 하지 않는다. 풀, 나무 뿌리, 열매들이니, 그 씀씀한 맛에 길들여지지 않나 보다.

어쨋든 여기서도 큰 쇼핑은 하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에 숙모님댁에 들렸다.

숙모님은 앉지도 않으시고, 부친개를 부치신다고 하신다. 점심을 먹고 왔다고 해도, 막무가내시다. 오렌지를 자르고, 강정을 내어놓고.

갓 뜯어온 야생마늘을 썰어넣고, 그곳에 감자와 양파를 갈아넣고 잘 저어서 바로 부쳐주신다. 연세드신 분이 언제나 그렇게 정을 주신다.

실컷 먹고, 가면서 먹으라고 싸준 부친개는 들고나왔는데, 집에가서 해먹으라고 신문지에 꽁꽁 싸매서 주신 야생마늘과 다른 방에 벗어놨던 겉옷은 놓고 왔다.
사실은 엄마집에 간다고 했는데, 약속시간이 지나버려서 허둥지둥 나오느라고 그랬던 것 같다.

숙모님께는 엄마집(친정)에 간다고 말하지 않고 말이다. 이렇게 이중생활을 하면 항상 문제가 생긴다.

허겁지겁 도착하니, 가까운 데 사는 큰언니와 형부, 그리고 엄마가 기다리고 있다.
엄마의 18번 음식, 게장과 찌개가 올라와서 이젠 저녁을 먹는다.

포식하는 날이다.

빈 김치병을 다 모아서 갖다드렸는데, 김치주실 생각을 안하신다. 예술작품인 엄마 김치는 이번에 얻어먹기는 틀린 것 같다.

큰형부와 엄마 비석 문안과 디자인을 다시 한번 상의한다. 엄마 이름은 크게, 자식 이름은 작게 하면서 수정하다 보니, 엄마가 주인공인게 확실하다.
엄마도 즐거이 동참하시면서, 남편이름이 제대로 들어갔나 주의깊게 보신다. 아빠 산소는 한국에 있으니 이름만 넣어드리는 것이다.

엄마집을 나와서 도서대여점에 가서, 책을 바꿔왔다. 이번에는 “한겨레 문학상”을 받은 권현숙씨의 “인샬라”를 빌려왔다. 그리고 정품이 아니라는 “태극기 휘날리며”와 또 한편의 영화.

그 모든 것을 마치고 차에 탄 시간이 9시17분.
아이들에게 전화하니, 큰애는 내일 시험보는데 엄마가 도와줘야 한다고 울상이다.
오늘 공부하고 자면, 내일 아침 물어봐준다고 했다.

남편과 나는 할말이 없어질때까지 이야기를 한다.
조금 신경이 쭈빗 서는 주제는 “신, 교회, 믿음”등에 관한 것이다.
나와 그는 “냉정과 열정 사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온탕과 냉탕이 골고루 있어야, 교회가 바르게 성장한단다. 모두 뜨겁기만 해서 어쩌냐고.

사실, 나도 “온탕”은 아니다. 다만 남편과 비교했을때 그렇다는 것이지.

다른 문제들은 죽이 잘맞는다. 그는 내 앞에선 온갖 종류의 코메디언이 된다.
남들은 아마 짐작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나도, 그하고는 독설가도 되고, 아량이 바다처럼 넓은 성인이 되기도 하고.


우리들의 “장”을 핑계로한 나들이는 아이들이 크면서, 언니가 가까이 살게 되면서(아이들을 지켜볼 수 있으니) 조금 대범해진다(시간이 늘어난다).

그 모양도 달라져간다. 예전에는 정말로 많은 곳을 돌면서, 가게에 채워넣을 물건고르기에 일분일초를 아끼지 않았다면, 요즘엔 짧은 시간이지만, 우리들의 문화욕구와 방문욕구까지 채우고 있다. 물건하기는 점차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느긋해진 것인지, 나태해진 것인지.
그래도 일초도 떨어져있지 않고, 온전히 서로에게 매인 이런 시간을 우리는 즐기는 것 같다.

외투를 숙모집에 놓고와서인지, 조금 싸늘함을 느끼는 중인데, 남편은 자꾸 창문을 내린다. 위에 입은 바람통하지 않는 추리닝이 작은 차속에서 후덥지근한가 보다.

추운 표시를 심하게 내지 않느라, 몸을 옹송거리다 보니, 기분조차 조금 나빠지려고 한다.
남편은 아무래도 겉옷을 벗어야겠다길래,
“그래, 사실은 나는 조금 춥다. 그 옷을 벗어서 날 주면 되겠다”고 해서 집에 도착하기전 1시간전에 그렇게 하고 나니, 우리 둘의 온도가 딱 맞게 됐다.

그는 땀이 나서 속옷이 조금 젖어있다.

어떤 집은 부부의 체감온도가 달라서 침대에도 반쪽에만 전기요를 켜고 잤다는 말도 있더니만, 우리도 주로 “추워”하는 나에 비해서 그는 겨울만 지나면 “에어콘”켜기를 좋아한다.

그런데, 그 다름을 해결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일례로 비상용 옷을 하나 더 가져간다. 튼튼하게 입고, 또 비상옷이 있으니, 그가 아무리 에어콘을 틀어도 크게 괴롭지 않다.

그도 자주 에어콘 바람을 끄고, 다시 덥힌 다음에 재 사용한다.

맞춰간다. 그게 그렇게 어렵고, 힘든 작업만은 아니다.

올라오는 길,
강한 헤트라이트를 켠듯, 하늘 동쪽에선 마른 번개가 쳐댄다.
아이들이 잘 잘까 걱정이 될 정도로.
그러더니, 우리가 거진 도착할 즈음 거짓말처럼
온 하늘의 구름들이 벗겨지고 있었다.

뒷마당에 내려서 올려다 본 하늘은
미처 도망가지 못한 솜털 같은 구름들 사이로 별과 반달이 빛을 내고 있다.

아 정말 아름다운 밤하늘이
15시간의 고된 차타기에 지쳐서 온 몸의 뼈를 바로 세우는 나를
감싸준다.

그러고도 또 한가지,
집에 올라오니, 식탁에 막내가 만들어놓은 오무라이스 한접시가 있다.
이모가 저녁으로 먹이고 남겼을 김밥 옆에.

- to Mindy & David
- from Mirie

막내에게는 어젯밤 먹은 것으로 되어있는그 밥을 오늘 점심으로 먹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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