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에 가려서 빛을 보지 못하던 둘째가 스스로의 알을 깨고 나온 건 아주 오래전일이다.
엄마 아빠를 비롯해서 할머니 이모들, 조카까지 집안에서 오랜만에 처음 본 갓난아기였던 큰애를 끔찍이들 이뻐했다.
2살 터울로 태어난 둘째는 남들은 “돌”이라고 해서 요란하게 빵빠레를 울리는 1살 생일도, 거의 잊어버릴뻔 하다가 퇴근길에 간신히 기억, 케익을 자르고 모자를 씌워줬던 기억이 난다.
우리 부부는 “남들은 밑에 애가 이쁘다는데, 어째서 우리눈에는 큰애만 보일까?” 하는 소리를 오랫동안 해왔다.
그러니까, 그애가 한 4살쯤 되었나?
같은 아파트에 살아서 자주 놀러왔던 선배의 아들이 있었다. 그애가 오면, 당연히 큰애와 단짝이 되고, 동생들은 그들 주위를 빙빙 돌게 된다.
남자애가 둘째를 따돌리는 건 당연하달수 있으나, 우리 첫째도 같이 놀다가도 그애가 오면, 완전히 모르는척하고, 끼어들지 못하게 할뿐 아니라, 둘이 짜고 힘없는 둘째를 자주 놀렸던가 보다.
어느날 둘째의 고함소리를 들었다.
아주 어렸고 싸나움과는 거리가 멀었던 그애가 제 언니와 오빠의 폭군적인 행동에 반기를 든 것이다.
어린 동생이 논리적으로 따지면서 덤벼든다. 더이상 당할 수 만은 없다는 선전포고였겠지.
그때 나는 부엌에 있다가 둘째의 고함에 적잖이 놀랐다. 그리고 그애의 날까롭게 선 눈빛앞에서 “어떤 힘과 변화”를 감지하게 됐다.
그 뒤로 둘째는 언니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를 구축하고 대단한 세상탐험을 시작한 것이다. 나역시 새로운 눈으로 둘째를 관찰하게 됐다.
둘째를 생각할때마다 그때 그 장면이 떠오르는 것을 보면, 그게 그애에게는 대단한 혁명이었던 듯싶다. 기득권과, 부조리에 맞서 싸우는(좀 거창한가?).
둘째 이야기를 더하자.
그애는 친구가 많다.
조금 심하다할만큼 친구들에게서 전화가 자주 오고, 유대감의 정도도 견고하다.
작년에 친구 한명이 도시로 이사가게 된 사건이 있었다.
그 이사가는 과정이 얼마나 길었는지.
부모가 이사가기로 결심한 날로부터 해서, 집을 시장에 내놓는 것에서 시작된 이사.
어느날 전화를 받더니 통곡을 한다. 전화를 끊고나서 “엄마 시드니(친구)네 집 팔렸어!!! 엉엉엉..”
집을 내놓고 몇달후의 일일 것이다. “이사가기 때문에” “슬립오버”도 해야했고, “이별파티”도 해야했고, “특별한 외식”도 해야했다.
이사가기로 한 것을 안날로부터 한 6개월 동안 이별식을 치뤘다.
그렇게 헤어진 친구가 제 조부모가 있는 우리 동네도 가끔 방문하고, 그러면 둘째와 또 한참을 놀다간다.
지난번에는 그 친구가 둘째를 생일파티에 초대했다. 2박3일간의 생일파티. 3시간 떨어진 도시에 또 한명의 친구를 태우고 데려다 주고 또 데리러 가고. 통털어서 12시간의 고된 행군이었어도 어쩌겠는가? 유명한? 딸을 둔 댓가를 치뤄야 한다고, 운전하는 남편과 이야기했다.
"친구하고 나하고 어깨동무 내 동무!!"
학교에서 "지구의 날"에 했던 동네청소의 날 쫓아다니다가 찍은 사진입니다. 이날 쓰레기 많이 주웠지요. 3학년 4학년 아이들이 섞여 있는 막내 반이라서 그런지 아이들 모두 키도 뒷모습도 다르지요?
둘째의 그런 친구 관계를 보면 사실 조금 부럽다.
“부라 부라”(수다꾼)라고 친구와 장시간 통화하는 그애를 놀려대긴 해도, 나는 “부라 부라”파가 되지 못한다.
이민이 힘들때, 그런 생각을 했다.
친구가 가까이 한명만 있어도, 훨씬 견디기 쉬울 거라고.
이때의 친구는 “올드 패션” 친구다.
새로 친구를 사귀는 것은 포함되지 않고.
그렇게 저렇게 시간이 흘러서 새로운 친구들을 조금 갖게 됐지만,
가슴을 푹신 적시는 그런 관계로 진행되지 않는다.
어쩌면 어떻게 친구를 사귀어야 하는지 조금 잊어버린 느낌이 있다.
아무리 먼곳에 떨어져산다 해도, 예전 친구들과 마냥 멀어져버린 게 나에게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내 모습을 언어로 보이는 데 서툴고, 그들의 일상사에 일일이 신경쓰는 그런 사람이 못되는가 보다.
이곳에도 한인들이 한집두집 생겨서, 이제 심심하면 전화걸어서 만날 수 있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아직 다소곳하다. 열정적으로 마음을 열지 못한다.
물처럼 흐르리라 고상한 척 하면서, 진하게 마음을 나누지 못한다.
그래도,, 먼 의미의 친구로 그들이 나를, 내가 그들을 생각하는 것은 괜찮을 것이다.
가만, 그렇다고 내가 닫혀있는 것만은 아니다.
새 통로로 내 안에 들어온 사람들.
내 속을 많이 보여서 조금 편안한 그런 사람들.
말로 아닌 글로 만나는 사람들.
그들을 내 친구로 명명할 수 있을까?
그것이 요즈음 나의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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