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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나, 그리고 우리

하찮은 일들이...

“누가 계란 25다스를 가져올래요? 메노나이트 가정에 주문한 것 찾아오면 되는데.”
회의가 막바지에 접어든다.
“아침식사 클럽”에서 맘먹고 하는 대규모 행사로
오는 21일 2백여명의 전체학생과 주변의 주요인사(경찰, 시의원, 교사등)를 초청해서 아침식사를 하는 내용을 마무리중이다.
쏘세지 25파운드를 찜통에 익혀서 가져올 5명의 인원도 채워졌고, 과일, 치즈 자를 사람, 팬케익 구울 사람, (300알이 넘는) 계란찜할 사람, 설겆이할 사람, 아이들앞에서 음식을 나눠줄 사람도 정해졌다.

아이들의 아침식사를 준비해주는 봉사모임에 속한지 3년 이상 되가는 것 같다.
오늘 모임은 몇가지 안건이 상정돼 있었다.

정부에서 많은 보조를 해줬는데, 삭감되서 우리가 돈을 마련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
보조금 삭감의 이유는 더 많은 학교들이 “프로그램”을 따라하고 있으며, 그 학교들에게 골고루 혜택을 주다 보니, 자금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1주일에 한번씩 아침식사를 차리는 봉사자들은, 이제는 음식담당만이 아니라, 자금담당으로도 뛰어야 한다.

* 오는 9월부터 화요일에는 1불씩 기부를 받습니다. 물론 돈이 없는 학생들에겐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 빵 회사에 요청, 유통기한이 임박한 빵을 기부받아 냉동고에 얼려서 사용합니다.
* 6월과 8월 핫덕을 판매합니다. 주차장이 넓은 식품점에서 장소를 제공하기로 했습니다. 핫덕 하나에 2불씩 받습니다.
* 예쁘게 병을 장식해서 사람이 빈번한 가게에 동전함을 놓습니다.
* 동네 사업체에 편지를 들고가서, 기부를 요청합니다. 각각 5 군데를 돌면 되겠습니다.

이런 것들이 돈을 모으기 위한 방안으로 결정된 내용이다.
방문할 사업체 선정을 위해 주요 도로에 있는 가게들을 훑으니 42개나 나온다. 주유소, 하드웨어, 가구점, 비누전문 샵, 선물집, 꽃집, 옷집, 식품점, 카누점, 차 딜러, 미용실, 주류판매점, 티룸, 식당 그리고 멀리 떨어져있는 “Nature’s Mill Works”라는 특별한 성격의 가게까지 작은 마을에, 많은 가게가 있다.

“아침식사 클럽”을 조금 더 설명하면 이렇다.

아이들이 어떤 이유로인가, 아침을 굶고 온다. 부모의 탓이든 아이의 탓이든 그런 잘잘못은 덮어두고, 아이들이 빈 속으로 아침을 열게 할 수 없다는 데서 시작됐다.
처음엔 정부의 도움과 주위의 기부로 아이들을 위해 봉사자들이 아침을 준비하면 됐다. 아침이기 때문에 과일, 쥬스, 치즈등을 기본으로 매일 조금씩 다른 메인메뉴가 준비된다.

나는 처음 시작할때부터 매주 목요일 나가서 도왔는데, 잉글리쉬 머핀을 굽고 게다가 치즈위즈나, 잼등을 바른다. 요즘엔 핫시리얼도 하고, 팬 케잌도 부친다. 또 냉동 피자를 사서, 오븐에 구워서 주는등 매번 같은 음식에 식상하지 않도록 노력한다.

나와 일하는 페기는 이 클럽의 운영위원인데, 그녀를 지켜보면 배울 게 참 많다. 불편했던 부엌의 구조를 바꾸고, 필요없는 것 제때 다 버리고, 매번 아이들에게 따뜻한 안부를 전한다.

어쨋든 페기의 능동성으로 말미암아, 자금이 달려서 차차 어려워져가는 이 클럽이 아직도 생기를 잃지 않고 있다.

나는 참으로 이런 일을 볼때 아주 속좁은 생각을 하게 된다.
겨우 하루에 20-30명의 찾아오는 아이들을 위해 이렇게 무리하면서까지 끌어가야 하나.
아침밥 안먹여 보내는 것은 결국 그 부모들의 책임인데, 우리가 그런것까지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나?
학교가 시작되기 전 음식을 먹어야 함으로 들르는데 익숙해진 몇몇 아이들이 단골손님이 된다. 그리고 그들의 부모는 오히려 어떤 일들이 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는 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일 수도 있다.
그 아이들을 무시하고, 예산이 딸려서라고 쉽게 그만둘 수도 있다.
그래, 내가 운영위원…이라면 나는 어쩌면 이렇게 쉽게 접을지도 모르겠다.(그러니, 시키지도 않고 할 마음도 없는 것이겠지..)
또 돈도 그렇다. 돈이 있는 큰 회사에 요청해서 한번에 왕창 받아낼 방법을 찾아보면 쉽지 않을까도 싶다. 1불씩, 동전함에,,, 언제 돈이 모아질까 걱정도 된다.

그리나 일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다. 그렇게 쉬운 일은 없는가보다.

페기는 봉사야 말로 “이 사회를 움직이는 영혼의 심장소리”라고 표현한다.
자기가 어느때, 이렇게 아이들과 대화하고, 그들을 관찰할 기회가 있느냐는 것이다.
산책할때 아는체하는 아이를 만나면, 아침에 대면한 적이 있는 아이구나 짐작한다며 얼마나 고맙고 기쁜지 모른다고.

그렇다. 나도 좀 넓게 봐야한다.
집에서는 잘 먹지 않던 음식도 아이들과 이야기하면서 새롭게 시도할지도 모른다.
우선 배고픔에서 해방되어 하루를 상쾌하게 시작하게 되는 거겠지.
이런 공동체의 사랑으로 자라난 아이들이 어떤 어른으로 성장할지, 그 먼 미래를 그려봐야 한다.

아침당번을 하면서 잊을 수 없는 일들이 있다.

앵거스….
그 아이는 자폐아병을 앓고 있다.
어린이들 통제구역인 부엌에서 혼자 식사를 한다.
그 아이를 따라다니며 도와주는 선생님이 있다.
그의 마음을 속속들이 읽고있는 교사를 보는 것도 항상 감동이다.
그날의 메뉴가 무엇이든지 간에, 앵거스는 구운 와플(바삭바삭한 빵)에 시럽을 바른 것을 먹는다.
요즘엔 다른 메뉴를 조금씩 시도하는데, 영 입맛을 찾지 못하고 있다.
컵도 접시도 보라색으로 갖춘다.
음료수는 매번 찬물.
그애가 유치원때부터 지금 2학년이 되었는데,
얼마나 많이 변했는지.
눈동자도 많이 안정되었고,
특히 다 먹고난 다음에는 반드시 인사를 하고 나간다.
문에 서서, 탱큐 페기 앤드 민디!!
하면 유어 웰컴 앵거스, 해브 어 그레이트 데이!하면서
우리는 이구동성으로 대답한다.

페기가 일을 못하게 되어서 언니를 동반한 적이 있다.
앵거스에게 언니 “조앤”을 소개해주고.
그로부터 몇달후던가.
또 페기의 부재로 언니를 데리고 갔다.
가끔 아침시간에 부엌에 들리는 선생님들조차 “조앤”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데,
몇달전에 만난 언니의 이름을 앵거스가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 우리의 놀라움이라니…
좋아하는 음식앞에서 흥얼거리며
빵 몇쪽을 맛있게 먹는 앵거스를 보면
나도 모르게 미소가 배어나온다.

마크….
몇달간 우리와 같은 시간에 봉사를 했다.
처음에 마크가 부엌에 나타났을때, 조금 놀랐다.
물론 남자가 하지 말란 법은 없는데, 그래도 자연스러워 보이지는 않았다.
매번 당번을 끝내고, 페기에게 사인을 받아간다.
그래서 눈치챘다.
경범죄인에게는 형량의 일종으로 “사회봉사 활동 00시간”의 벌을 내리는데,
그 시간채우기의 일환으로 한 일이었다.
그가 어떤 혐의로 그런 벌을 받게 됐는지는 정확히 알수 없으나,
그는 일을 마치면서, 아주 많이 배웠고, 즐겁게 일했다고 우리에게 말한다.
그의 아내와 아이들이 영국으로 떠나서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마크가
도시로 일찾으러 간다는데, 어디서든지 잘 살아내길 바란다.

봉사하는 사람마다 모두 조금씩 그 태도가 다를 것이다.
나는 내 아이가 속해있는 학교니, 그래도 부모가 학교에서 어정거리면 내 아이에게 보탬되는 거라도 있겠지 해서 하는 적잖이 이기적인 생각이 한구석에 있지만, 이미 자식들이 성년이 다 되버린 사람들도 즐겁게 이 일을 하고 있다.
그게 참다운 의미의 봉사리라.
.

봉사자중엔 노부부도 끼어있다. 70세가 훨씬 넘은. 그 두 분은 함께 짝을 이뤄서 매주 일하는데, 요즘 할아버지가 건강이 안좋아 다른 사람을 찾고있다.
또한 일하다가도 직장을 얻게 되면, 또 빠져나가게 되고해서 겨우 10명이 있으면 되는 봉사자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내 삶에 있어서, 아주 작은 매주 1시간.
너무 하찮아서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같은 그런일들을 쌓아나가며,
그 작은 힘들이 모여 큰 것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매번 실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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