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엔 심한 바람이 불더니, 아침 가게가는 길에 눈이 날렸다.
첫눈도 아니고, 이미 눈바람을 몇번 맞고 나니, 속절없이 가을이 없어져버렸다는 안타까움이 남는다.
올 가을은 정말 너무 축축했다.
남편이 자리를 비운 3주간, 거의 매일 비가 내렸다. 의욕적으로 낙엽치우기를 하려고 하는 내게, 그 일을 할 기회가 좀처럼 주어지지 않은 것만 봐도 알만하다.
남편의 부재시에 한국의 "귀빈"들이 방문하셨다. 큰 권세를 지닌 분들은 아니지만, 우리 집안에서는 그들의 출현을 "귀빈급"(맘적인 예우로 친다면)으로 대우하기로 하였다.
그들은 오빠 내외와, 둘째언니 내외이다. 오?내외가 귀빈이 된 것은 우리가 이민오고 한번도 캐나다를 방문하지 않다가, 첨 오는 것이어서 그렇다.
기억력이 좋은 독자들은 우리 엄마가 오빠의 생모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모든 집안사를 이 글터에 담아놓으니, 그에 관해 몇번의 글을 올린 적이 있으니 말이다.
서로간에 실수도 많았다.
지금 이 지면에서 묵은 갈등을 끌어내고싶은 생각은 없다. 오빠내외와 우리(엄마, 딸들)가 소원했던 몇십년간의 찬 기운이 세월에 의해 조금씩 녹아내리고 있었나 보다.
그러고 피어난 화해의 꽃이 오빠의 캐나다방문이다. 그러니, 어찌 귀빈이 아니겠는가? 오빠도 초등학교 교감선생으로 올초 정년퇴임했으니, 그의 인격이 무르익고, 예전에 나누었던 형제 자매애가 살아나서, 우리들은 서로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마음이 뿌듯했다.
오른쪽부터 둘째언니 내외, 엄마, 오빠 내외, 큰언니 내외...
가을색이 한창입니다.
오빠가 2살이었던 그때부터 오빠를 업어키운 엄마는, 오빠의 방문에 정말 가슴이 터질 것같은 감격이 있었을 것 같다. 오기전부터 오빠에 대한 야속함이나, 섭섭함을 다 지워버리고, 잘 대접해야 한다고 우리들에게 신신당부하셨었다.
이번 방문을 주선했던 시골의 둘째언니 내외가 귀빈이 된것은 많은 부분, 둘째형부 때문이다. 작년에 뇌출혈을 일으켜, 병원신세를 져야했던 형부는, 조금씩 회복중이시다. 언니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이제 노인의 반열에 들어서는 형부의 건강은 우리가 그를 "귀빈"으로 보호하지 않으면 안될 만큼 심각하다.
페이슬리의 강가에서 둘째형부와 언니
"귀빈"들이 와있는 그 시간동안도 캐나다는 햇살이 찰랑찰랑 넘치는 그런 날이 하루도 없었다. 비가 오고, 구름이 끼고, 그 와중에 잠시 보여주는 햇빛에 모두의 마음들이 녹고.
나이아가라를 가는 길에, 잎바랜 숲을 보여주면서, 나는 무언가 허전함을 금할 수 없었다. 단풍의 고운 자태를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저, 여러 종류의 갈색의 향연이었다. 단풍의 아름다움은 우리들의 차지가 아닌가 싶었다.
9층 호텔에서 바라본 전경. 왼쪽이 미국쪽 폭포, 오른쪽이 캐나다쪽 말발굽 폭포. 날씨가 맑지
않아서 이정도의 사진밖에 건질 수 없었다.
많은 시간, 걸을 수 없는 어르신들이기에, 날씨 핑계대면서 아주 잠간씩 밖의 바람을 쐬었고, 그렇게 잠깐 밖에 있었던 것에 비하면, 민첩한 사진사가 많은 사진을 찍어주었다.
귀빈들은, 모델처럼 잘 서주었고, 잘 웃어주었다.
늙어가는 형제를 대하니, 세월이 손에 잡히는 듯하다.
그중에서 둘째언니는 형부가 쓰러지고 난 다음에, 그의 온전한 지팡이가 되고 있는 것을 본다. 이런 것을 입안의 혀처럼 군다고 표현하는지. 우리는 과잉보호라고 놀리지만, 그 보호에 전적으로 기대서있는 형부를 보면서 안스러움과 아름다움의 감정을 한꺼번에 경험한다. 둘째언니는 형부가 아프기 전에 서로 아껴주고, 좋은 경험을 함께 했다면 얼마나 좋았겠느냐고 말한다.
그래도 형부는 행복해보이고, 조금 늦게 반응하지만, 예전의 그 기개와 노련함이 몸에 배어있다는 생각도 든다.
오빠의 연설은 훈장질한 사람의 그것이다. 남편에게 잘못하는 동생들에게 제대로 하라고 일장연설을 하신다. 그 옆에서 새언니는, 오빠의 비리를 고발한다.
우리는 다시 새언니 편이 되어서 오빠를 공격한다.
그들은 시대의 희생양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자의 헌신과 희생으로만 가정을 세웠던. 우리집의 늙은 여자들은 권리세우기에 열심이다.
오빠가 우리 부부를 보면서 그런다.
-그러니까, 말이야. 얘들은 서로가 잘한단 말이지.(우리도 숱한 문제가 있지만, 구세대보다는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되긴 한다)
"귀빈"들은 지금 미국에 있다. 그곳에 있는 두 가정집에서도 대접을 잘받고 있을 것이다. 이제 큰언니의 아들 결혼식을 보러 내일 미국쪽에서 모두 올라온다.
"귀빈"들을 미국에 모셔다 드리기 위해 나와 남편, 그리고 언니가 동행했는데, 정말 힘들었다. 나이아가라의 최고급 호텔에서 폭포를 쳐다보며 하룻밤 보낸 것은, 우리들의 허영심을 채우는데 일조했지만, 그곳에서 미국으로 가는 길, 미국국경에서 걸려서 1시간 보내고, 게다가 바람불고 비오는 축축한 가을길을 12시간 달려야 했던 것은 고역이었다. 그것도 몸이 불편하신 분들을 모시고 말이다.
간혹, 여러색의 단풍으로 물든 길을 달릴라치면, 손가락으로 가르키며 호들갑을 떨기도 했지만, 역시 별로 화사하고, 매혹적이지 않았다.
그래, 가을은 떨어지는 계절 아닌가?
인간이 늙을때 어찌 이쁘기만 할까.
가을의 단풍에서 고운빛만 찾아내려는 것은 나의 욕심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늦게서야 들었다.
어쩌다 눈에 띄는 고운 빨강과 노랑은 또 그 빛 때문에 주목을 받을 이유가 있지 않은가 말이다.
어쨋거나 "귀빈"이 있는 동안 캐나다의 날씨가 조금 협조했으면 좋겠다.
차타고 마구 달리다, 다시 돌아와서 찍은 사진. 언덕과, 소들과, 먼데 솟은 숲이, 나를 잡았다.
어제 행운처럼 날씨가 좋았다. 페이슬리 한 도로에서의 노을.
'여행을 떠나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캠핑카 가족에 합류하다 (0) | 2007.05.22 |
---|---|
3월 휴식안으로 날아온 나비 (0) | 2007.03.20 |
바다같은 호수의 동네 부루스 반도 (0) | 2006.08.10 |
나이아가라를 다녀오다 (0) | 2005.11.23 |
그 어떤 것도.. (0) | 2005.08.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