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하면, "선물"이 우선 생각난다.
"받을 선물"이야 즐기면 되지만, "줄선물"이 훨씬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엄마된, 어른된 이들의 입장이 아닐까 싶다.
한국문화와 캐나다문화의 다른점 중에 "크리스마스 선물"을 빼놓을 수 없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지만, 내가 한국에서 살 당시만 해도, 크리스마스때 "카드" 보내기에 열심이었지, 선물은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니었다.
그런데, 캐나다 이민온 첫해의 크리스마스를 즈음해, 이땅에서 20여년간 살던 언니네 집을 방문해보면, 선물이 그득히 거실을 채워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선물에 달려있는 꼬리표를 보면, 내이름도 있고, 동생이름도 있고.
언니의 설명에 따르면, 이곳 사람들은 크리스마스가 되면, 친인척, 혹은 가까운 사람끼리 선물을 교환하는 것이 큰 일이라 했다. 일인당 크리스마스 소용비용이 700-1000달러 선이라고 하니, 크레딧 카드 이용이 급증하고, 정초부터 빚에 쪼들리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이때쯤이면 "선물을 현명하게 구입하는 방법"등에 대한 전문가들의 조언이 신문 한 구퉁이를 장식한다.
한해 두해 이땅살이가 늘어가면서, 언니에게 받기만 하던 것을 이제는 조금씩 우리들도 선물행사에 동참하기 시작한다. 대상을 정해놓고 그를 위해 선물을 고르는 기쁨을 맛보기도 하면서.
그게 작년에는 피크를 이뤘다.
러시아에 나가있던 동생네와 미국에서 동생네 가족도 크리스마스를 기해 올라와, 30여명의 대가족이 크리스마스 잔치를 치뤄야 했는데, 말하자면 30명이 모두에게 한가지씩 선물한다면, 그 뭐시냐 30의 제곱, 900 이라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선물이 양산되게 된다. 이 많은 수를 쌓아놓는 것만도 큰일이다.
물론 어린아이들은 받기는 많이 받지만, 그렇게 대대적으로 선물을 준비하진 않으니, 그정도는 아니었으나 작년에 동생네의 작은 가족룸이 선물로 장관을 이뤘던 기억이 있다. 크고 작은 포장이 3백여개는 되지 않았을까 싶다.
이 선물은 여러가지 문제를 야기시키는데, 일단은 선물사는 사람들이 한두가지씩 고르다 보면, 빠진 사람에 대한 미안함으로 다시, 일일이 챙기다 보면 다리품을 얼마나 팔아야 하는지 모른다.
나중에는 그저 아무것이나, 집어들게 되고, 억지춘향식의 해석을 빗대어 그 물건이 그에게 필요한 이유를 갖다붙인다.
또한 나같이 시골에 사는 사람은 갈수 있는 곳도 한정되어 있어서, 물건 고르기가 쉽지 않고, 눈이라도 와서 발이 묶이면 그야말로 허접한 동네가게라도 뒤적여 "아무것"이라도 사야 할때가 있다. 그렇게 너무 힘들었던 어느 한해는 "돈"으로 준비했더니, 그것 또한 썰렁했던 기억이 있다.
컴퓨터 할때 발이 시리다는 말을 언니에게 들은 적이 있는 나는, 밧데리를 부착하면 보온이 되는 발 보온 슬리퍼 같은 것을 언니에게 선물했다. 언니는 그 당시엔 고맙다고 받았으나, 얼마전, 그것을 치우려고 하는데, 혹시 우리 애들중에 누가 갖고 싶은 사람이 있냐고 물어왔다.
내가 준 선물을 도로 갖고 가라는 것이었는데, 나는 그걸 다시 가져오고 싶지도 않았고, 잘 쓸것 같지 않아서 거절했다. 아마도 그 발싸개는 지금 어디 구세군이나 쓰레기소각장에 있을 것 같다.
어쨋든 이렇게 급작스런 선물은 제대로 애지중지 쓰기 힘들다. 오히려, 그를 아끼고 잘 쓰고 있다는 것이 더욱 별스런 일에 속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선물 개봉식도 아주 볼만하다. 우선 사회자를 정하고, 선물을 하나씩 집어들면서 주인공을 나오게 한다. 그 주인공이 포장을 뜯고, 누구에게서 온 것인지, 알린 다음 모두 감탄하고..... 그 개봉식이 길고 길어서 중간에 "쉬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
작년까지 모두가 그 일에 열심을 내었다. 나름대로 기대도 있고, 특별히 아이들은 한물건 챙기는데 재미를 들여서 희희낙낙하게 되는데, 올해 그 일을 다시 하려니, 이게 마음과 몸이 영 따로 노는 느낌이다.
우선 선물을 사는 것 자체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겠더라. 크리스마스는 다가오는데, 이게 뭔 징조일까 싶었다. 며칠간 고민에 고민을 하였다. "선물이 없는 크리스마스"는 어떨까 하면서 말이다.
최근에 살림을 낸 큰조카 헬렌이가, 예산이 쪼달려 예년처럼 선물을 모두에게 하지 못하겠다고 나에게 귀뜸을 하였다. 그래, 그렇지, 그럴 필요 없다 하면서 그애에게 나의 감정을 말했다. 나도 선물사기가 보통 힘들게 생각되지 않는다. 그래서, 어찌할까 고민중이다 하면서.
우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 엄마, 크리스마스에 관한 구체적인 의견있어?
- 내가 뭘. 별로 없다.
- 엄마 선물 사는 것 어때? 힘들지?
- 그래, 내가 어딜 나가는 게 쉽기를 하냐? 그래서 올해는 안하려고 한다.
- 그렇지? 나도 그래서 의견을 알아보려고.
- 올해는 만두를 빚어서 집집마다 줄까 어쩔까 생각중인데.
- 에이 엄마. 그렇게 일하는 쪽으로 생각하지 말고. 그냥 선물 없이 하는 건 어때?
똑바른 선물 사기도 힘들고. 그저 돈만 쓰게 되잖아?
이렇게 해서 의견을 모으다 보니, 거의 누구나 선물스트레스를 안고 있었다.
아들을 장가보내고, 딸을 한살림 차려서 독립시킨 큰언니네 집에서 "공식적인 선물이 없는"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기로 하였다.
둘째는 나보고 크리스마스 선물로 디지털 카메라를 사달라고 한다. 비싸지 않는 것으로. 그래서 내가, 예수님의 탄생일에 왜 네가 선물을 받아야 하니? 라고 물으니, "전통"이라 한다.
크리스마스의 전통이 정말 오래 이어져 왔다.
이때쯤 되면 라디오에서는 어린이들이 "산타에게 보내는 편지"를 매일 읽어준다.
산타 할아버지,
얼마나 선물 준비에 피곤하세요.
나 착하게 살았어요.
올해는 나 게임보이 어드밴스 갖고 싶어요.
산타 할아버지가 드실 쿠키와 밀크 준비해놓을께요..
이런 내용이 들어있는 수백장의 어린이 편지들이 각종 매체에 쌓인다. 매체에서는 아이들에게 편지를 보내라고 성화다.
어떻게 이런 일들이 매해 벌어지나?
최근에 만든 우리 교회 홈페이지를 방문하니, 의미있는 기사가 실렸다.
기사 앞부분을 옮긴다.
[쿠키 지구촌=호주]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호주의 한 목사가 산타는 어린이들에게 탐욕과 이기심을 가르치는 "거짓된 신"이라고 말해 논란이 일고 있다.
9일 호주언론에 따르면 빅토리아주 와남불의 새생명교회(New Life Christian Church) 스티브 맥닐리 목사는 산타가 하나님의 불경스러운 대역으로 부모들을 거짓말장이로 만들고 어린이들에게 혼란을 야기한다고 비판했다. 맥닐리 목사는 산타 이야기가 상업적인 경쟁심을 조장하고 어린이들의 마음에 물질주의와 이기심을 심어준다면서 "산타가 어린 꼬마들의 사랑과 헌신과 신앙심을 빼앗아갔다"고 주장했다.
그 목사는 또한 가난한 집의 아이들은 부자친구가 받은 선물을 보고, 회의하지 않겠냐며 불평등을 조장한다고 지적한다. (우리 미리도 친구가 산타에게서 받은 선물은 큰 것인데, 왜 자기것은 항상 원하지 않는 "이상한"것이냐고 묻곤 했다)
의미있는 글이다. 우리 가족도 이제서야 눈을 뜨고 전통을 한번 깨보려고 한다.
우리 애들에게는 아직 말하지 않았다.
다행인 것은 산타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막내까지 확연하게 알아버렸다. 예전에는 부모가 주는 선물, 산타가 주는 선물 그 두가지를 나눠서 해야 했고, 어느 한쪽이 소홀해질수밖에 없었는데, 이제 그런 이중적인 머리를 쓸 필요가 없다는 것도 아주 홀가분하게 생각된다.
그래도 무언가 서운할 듯도 싶어 한가지 도모하는 일이 있긴 하다. 그건 크리스마스가 끝나고 여러분께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아, 선물로부터의 해방, 이 기쁜 크리스마스여.
진정한 크리스마스의 의미에 대해 지금부터 생각해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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